전장(진강) 여행7 - 감로사에서 오나라를 이은 동진과 송,제,양,진 6조를 회상하다!

*** 전장(진강) 여행 7번글과 8번글의 순서가 바뀌어서 송구스럽습니다. ***
10월 25일 양쯔강 남안에 위치한 엣날 오나라의 수도인 고도 전장 镇江(진강) 에 도착해
전장역 북광장에서 4路 汽車(버스) 타고 베이구산 北固山(북고산) 감로사에 내려
다시 49 路 汽車(버스) 를 바꾸어 타고는 자오산궁위엔 焦山公园(초산공원) 을 봅니다.

자오산에서 다시 49路 汽車(버스)를 타고 베이구산(北固山 북고산) 감로사 앞에 내려
가파른 언덕을 올라 성벽안 감로사(甘露寺) 에서 유비와 손권을 회상하는데
감로사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다가 그만 마눌과 헤어진지라.... 한참이나 찾아 다닙니다.


그런데 정작 마눌은 혼자서 정자 에 올라서는 六朝 (육조) 시대 梁 (양) 나라 무제가
“天下第一江山 (천하제일강산)“ 이라 불렀다는......
전장 镇江(진강) 시내와 양쯔장(양자강, 장강) 경치를 구경했다니 더 할말이 없네요?

6조 시대라고 불리는 것은..... 성벽으로 둘러쌓인 북고산 산중에 감로사 이르는 길이
东吴古道(동오고도) 이니 오 나라가 도읍한 이래 동진, 송, 제, 양, 진 여섯나라라!


손견과 손책에 뒤이은 손권이 229년 오나라 건국 이후 강남 개발이 본격화되어 이른바
육조시대 가 열려 중국 경제와 문화의 중심이 화북에서 강남으로 점차 옮겨지게 됩니다.


그런데 분란의 시초는..... 손권이 손화를 태자로 세우면서 동시에 동생 손패도 아껴
노왕으로 봉하고 태자와 동등하게 취급해 신하들이 패가 갈리니 승상 육손이
“적자와 서자는 마땅히 차별을 두어야 한다”고 간언하지만 손권은 듣지 않습니다.

오히려 손패파의 참언을 믿어 육손은 유형에 처해져 분사하고 많은 신하들이 처형되는데
이후 후회한 손권 은 손화를 태자 자리에서 내쫓고 손패에게 자결 을 명한후
막내 손량을 태자로 세운지 2년후에 10살 밖에 되지 않은 손량을 남기고 죽습니다.


손권 사후 어린 황제 손량 치세에서 제갈각 은 20만 대군으로 합비성을 공격하다가
패한지라 기회를 잡은 손준 이 그를 죽이고 실권을 쥐나.....
이후 그 아들과 왕이 서로를 죽이는 난세에 빠져 280년 晉(진)나라 침략에 망합니다.

한편 화북의 중원 지방에서도 변고가 있었으니 220년 조조의 셋째 아들인 조비 가....
한(漢) 나라 헌제를 밀어내고 세운 위나라 는 265년에 사마중달(사마의) 의 아들
사마염 이 찬탈하고는 강남의 오나라를 점령하니 15년 만에 천하를 통일한 것이네요?

晉(진)나라 는 위나라가 쉽게 망한데서 교훈을 얻은지라... 왕자들을 각 지방의 왕으로
봉했으나 중앙의 황후 일족과 마찰이 생겨 "8왕의 난" 이 일어나 혼라에 빠집니다.

그런 과정에서 진나라는 "흉노" 원병을 빌렸는데 낙양에 들어온 흉노족의
유연 이 영가의난을 일으켜 316년에 3대 회제를 살해하고
서진을 멸한후 前趙(전조) 를 세우니.... 바로 5호 16국 의 시작입니다.

다음해인 317년에 황실의 후예인 낭야왕 사마예 가 피란한 건강(建康 난징) 에서
진(晉) 왕조를 다시 세웠는데.... 이것을 “동진(東晉)”이라고 부릅니다.


동진 시대에는 화북에서 옮겨 온 귀족과 토착 호족에 의한 귀족 제도가 확립되었으며
또한 방대한 남천 인구의 영향으로 강남이 개발 되어 중국 경제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북부에서는 5호중에 저족인 부견이 세운 전진(前秦) 이 선비족의 전연을 흡수 통일한후
동진으로 남침하다가 비수에서 대패해 멸망하고 화북은 후연과 후진 으로 분열합니다.

동진의 시인 도연명 은 41세때 누이의 죽음을 구실삼아 팽택현 현령을 사임하고 세속과
결별해 고향으로 돌아오는 심경을 읊은 시에 “귀거래사(歸去來辭)” 가 있습니다.

그 전에는 상관의 순시 때에 출영을 거절하고 “나는 5두미(五斗米) 를 위하여
향리의 소인에게 허리를 굽힐 수 없다”라고 개탄하였다고 전합니다.


歸去來兮 (귀거래혜) 자, 돌아가자.
田園將蕪胡不歸 (전원장무호불귀) 고향 전원이 황폐해 지려 하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
旣自以心爲形役 (기자이심위형역) 지금까지는 고귀한 정신을 육신의 노예로 만들어 버렸다.
奚而獨悲 (해추창이독비) 어찌 슬퍼하여 서러워만 할 것인가.

이미 지난 일은 탓해야 소용 없음을 깨달았다.
앞으로 바른 길을 좇는 것이 옳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인생길을 잘못 들어 헤맨 것은 사실이나, 아직은 그리 멀지 않았다.
이제는 깨달아 바른 길을 찾았고, 지난날의 벼슬살이가 그릇된 것이었음을 알았다.

배는 흔들흔들 가볍게 흔들리고
바람은 한들한들 가볍게 흔들리고,
길손에게 고향이 예서 얼마나 머냐 물어 보며,
새벽빛이 희미한 것을 한스러워한다.

마침내 저 멀리 우리 집 대문과 처마가 보이자
기쁜 마음에 급히 뛰어갔다.
머슴아이 길에 나와 나를 반기고
어린 것들의 대문에서 손 흔들어 나를 맞는다.

뜰 안의 세 갈래 작은 길에는 잡초가 무성하지만.
소나무와 국화는 아직도 꿋꿋하다.
어린 놈 손 잡고 방에 들어오니.
언제 빚었는지 항아리엔 향기로운 술이 가득,

술단지 끌어당겨 나 스스로 잔에 따라 마시며,
뜰의 나뭇가지 바라보며 웃음 짓는다.
남쪽 창가에 기대어 마냥 의기 양양해하니,
무릎 하나 들일 만한 작은 집이지만 이 얼마나 편한가.

날마다 동산을 거닐며 즐거운 마음으로 바라본다.
문이야 달아 놓았지만 찾아오는 이 없어 항상 닫혀 있다.
지팡이에 늙은 몸 의지하며 발길 멎는 대로 쉬다가,
때때로 머리 들어 먼 하늘을 바라본다.

구름은 무심히 산골짜기를 돌아 나오고,
날기에 지친 새들은 둥지로 돌아올 줄 안다.
빛이 어두워지며 서산에 해가 지려 하는데,
나는 외로운 소나무를 어루만지며 서성이고 있다.

동진 은 전진 부견의 침략을 막아내고 위기에서 벗어나 한숨을 돌렸으나...
무장들이 정권을 쟁탈하려고 정변을 일으켜 419년에
유유 가 진(晉) 의 공제로 부터 선양(?)을 받아 유송(劉宋) 을 세웁니다.

3대 문제는 귀족정치를 선용하여 30년에 걸친 “원가(元嘉)의 치(治)”를 실현하고 문학과
불교가 융성하였으며 화폐경제도 부흥했는데 송(劉宋)서 이만전(夷蠻傳) 에 보면...
왜국왕 찬(讚)- 진(珍)- 사이(제 濟)- 고오(흥 興)- 부(무 武)는 잇달아 사신을 보내옵니다.

송나라 는 왜국왕인 사이(濟) 에게 왜, 신라, 임나, 가라, 진한, 마한왕, 안동장군 칭호를
제수하는데 478년 부(무 武 ) 는 진동대장군을 거쳐 정동대장군 을 제수 받습니다만,
고구려 장수왕은 거기대장군 개부의동삼사 정동장군 에 백제 전지왕은 진동장군 책봉이라?

광개토대왕은 북조 후연에서 "평주목요동대방이국왕" 에 책봉되지만 장수왕은 남북조 양쪽
에서 모두 받은 것이니 북위로 부터는 거기대장군 태부요동군개국공 고구려왕을 받으니
406년 후연의 침입후에 598년 수나라의 공격까지 200년간 오랜 평화 를 유지했던 것입니다.

이후 유송 은 북위 태무제에게 침공을 당한데다 호적을 속여서 부역을 기피하는 서민이
많아지고 내분이 생겨 양주의 장군 소도성 빼앗아 나라를 세우니 南齊(남제) 인데,
제2대 무제는 세제를 정비하고 문학, 불교가 성행했으며 선비 탁발부 북위와도 수교합니다.

덕분에 평화를 구가하였으나 방계가 제위를 찬탈하니 24년간 7대나 황제가
교체되는데 서기 500년 동족 무장인 소연 이 그 틈을 타서 거병하여
502년 선양의 형식으로 화제로부터 제위를 물려받으니 바로 양(梁) 나라입니다!

이른바 남북조 시대 니 북쪽은 호족(胡族)의 국가로 유목사회 특유의 부락제도로 호족을
묶어놓았으나 한족에게는 군현제를 적용하여 이른바 호한 2중체제 를 실시하였습니다.

548년 북조 동위의 무장이었던 후경 이 양나라에 투항해 왔다가 반란을 일으켜서는
수도인 건강으로 진격하고 정권을 탈취해 황제에 올라 건강에서 즉위하는데....
그러자 형주자사 소역이 후경을 죽이고는 수도를 옮기고 황제가 되니 그가 원제 입니다.

요즘 한국인들을 사로잡는 중드 는 양나라 시대를 배경으로 만든 54부작 ”랑야방(琅琊榜)“
이니 여행사들은 저장성 샹산(象山) 촬영장을 찾는 한국인 단체 관광객을 모집했으니
이들은 2,015년 9, 10월 케이블 중화TV에서 방영된 중국 드라마 랑야방의 팬 70명 입니다.

“랑야방” 은 중국 양(梁)나라를 배경으로 역모를 꾸몄다는 누명을쓴 주인공 매장소의 복수를
다룬 사극으로 중화TV 역대 최고 시청률에 스트리밍 사이트 ‘티빙’ 에서 회당 최고
1만5000회 조회수를 기록하는등 인기를 누리자 110만원짜리 여행상품까지 출시된 것이지요.

이때 북조의 서위 는 무릉왕이 지키던 촉(蜀) 을 점령했으며 투항해온 양양의 소찰을
이용하여 554년 강릉을 함락하고 원제를 죽인뒤 주민을 관중으로 이주 시켰는데
왕승변을 제압한 진패선에 의해 옹립된 원제의 아들 경제는 557년에 이르러 망합니다.

양나라 경제는 진패선 에게 제위를 선양하니 나라는 멸망하고 진(陳) 나라가 건국되는데
6조의 문인 으로는 동진의 도연명, 유송때 7언시를 시작한 포조, 남제때
오언체를 개척한 사조, 양나라에서 훗날 당나라때 율시의 선구자가 되는 유신 이 있습니다.

6조의 마지막 진(陳) 나라는 도읍을 건강으로 옮기고 반대파를 숙청하며 북주(北周)의
군대를 물리치는 등 통치력을 강화하는 데 힘썼으나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으니....

뒤를 이은 진숙보 는 사치와 방탕한 유희에 빠져 정치를 소홀히 했으니 결국 진나라는
589년에 수(隋) 나라에 의해 멸망하여 중국이 통일되니 6조 시대는 막을 내립니다.

生者必滅(생자필멸) 이요, 會者定離(회자정리) 라고 했던가요?
태어난 자는 반드시 죽으며 만남이 있으면 반드시 헤어지게(죽음) 된다는 말이지요!

원래는 불교에서 온 용어이나... 나라라는 것도 사람처럼 생명 이 있는 것이라 태어나서
흥하다가 부정부패로 어지러워져서 결국에는 망하는 것이니 그 수명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중국은 하나라와 은나라 주나라와 한나라 시대부터 황하강 유역인 장안과 낙양이
중심인데 변방이던 양자강 이남에 6조 가 세워짐으로써
자원과 인재가 개발되어 오늘날 처럼 중국의 경제와 문화가 넓어진 것이네요!


그러고는 시간이 너무 지난지라 빠른 걸음으로 하산해 큰 도로로
나와서는 49路 버스를 타고 3산의 마지막인
진산 金山(금산) 을 보러 갑니다. 나의홈페이지 : cafe.daum.net/baikal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