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은어낚시인 김채원 씨가 은어를 낚아올리고 있다. 비린내가 없고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인 은어는 '민물의 여왕'이라고도 불린다.
- 9m짜리 낚싯대 선호, 씨은어 준비해야
- 포말 잘 생기는 여울 포인트 중 하나
- 자리 잡고 적어도 30분 기다려야 입질
- 씨은어 몰고 가는 능력 등 갖춰야
'수박향 혹은 오이향이 나는 물고기'. '민물의 여왕'. 모두 은어를 꾸며주는 말입니다. 은어는 잡을 수 있는 기간이 정해져 있습니다. 1년생이라 매년 5월 15일부터 8월 31일까지만 잡을 수 있습니다. 이는 경남과 전라도를 기준으로 하는 기간입니다. 9월부터는 은어 산란기라 포획할 수 없습니다. 올해 며칠 남지 않은 은어 낚시를 보러 경남 하동군 적량면 횡천강으로 향했습니다.
은어도 연어처럼 회귀하는 어종입니다. 강에서 태어났지만 바다로 가 성장해 고향으로 돌아온답니다. 이렇게 바다로 나갔다 온 은어는 해산 은어라 합니다. 바다로 가지 못하고 강가에서만 머무른 은어는 육봉형 은어라 합니다. 경남 산청군 경호강에도 은어가 많이 산답니다. 이 은어들은 바다로 나갈 길이 없습니다. 대신 수심이 깊은 진양호 댐에서 지내다가 고향 경호강으로 돌아옵니다.
은어 낚시의 묘미는 뭐니 뭐니 해도 손맛입니다. 은어 낚시엔 살아있는 은어가 미끼로 필요합니다. 이 은어를 씨은어라 합니다. 은어는 물속에 평균 0.3평의 공간을 자신의 영역으로 구축해 살아갑니다. 이 영역에 다른 은어가 들어오는 꼴을 못 봅니다. 바로 쫓아내려고 공격태세를 잡습니다. 이런 은어의 습성을 이용해 은어 낚시를 합니다. 이를 은어 놀림 낚시라고 하지요.
살아있는 은어의 콧구멍에 링처럼 생긴 바늘을 꽂고 거기에 줄을 연결해 아래 꼬리지느러미 쪽 피부에 낚싯바늘을 연결해 둡니다. 이 씨은어가 다른 은어의 영역에 들어가면 이 녀석을 쫓아내려고 꼬리 쪽을 들이받는 은어가 꼬리 쪽 바늘에 걸립니다. 씨은어와 잡힌 은어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려 애를 씁니다. 낚시꾼 입장에선 두 마리의 움직임을 한 손에 느끼게 되는 셈입니다. 그 손맛의 짜릿함을 한 번 느껴본 사람은 잊을 수가 없답니다.
공격성이 강한 은어일수록 쉽게 잡히게 되는 셈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육봉형 은어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해산 은어보다 자신의 영역을 지키고자 하는 습성이 더 강해 낚시꾼에게는 손맛을 더 강하게 느끼게 해준답니다. 그래서 꾼들은 육봉형 은어를 더 선호한다네요.
은어는 비린내가 참으로 없습니다. 신기할 정돕니다. 민물고기 특유의 흙내도 없습니다. 이런 깨끗함은 은어의 식생활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은어는 강바닥의 돌멩이에 끼는 푸른 이끼, 청태를 먹고 삽니다. 청태를 갉아 먹는 방법도 특이합니다. 얌전히 붙어서 먹는 게 아니라 꼭 돌멩이를 향해 돌진하듯 접근해 배를 수면과 평행하게 누운 뒤 쓱쓱 갉아 먹습니다. 그래서 은어가 있을 만한 포인트를 찾는 데도 은어의 이런 습성을 이용합니다. 이끼 위로 대나무 모양처럼 지나간 자국이 있는 것을 은어 먹자리라 부릅니다. 이것을 발견하면 그 주변에 은어가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꾼들은 강 위 저만치서부터 은어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다고 합니다. 강 수면을 보다 보면 '버언쩍' 하고 지나가는 게 있답니다. 편광 선글라스를 끼고 보면 더 잘 보이는데 은어가 이끼를 먹느라 몸을 평평하게 뉘일 때 상대적으로 흰 배가 드러나게 되고 그게 수면에 번쩍하고 비치는 거지요. 반짝반짝하는 건 피래미라서 버언쩍하고 상대적으로 보이는 시간이 긴 은어와는 구분이 된답니다.
낚시꾼 중 후각이 예민한 사람은 은어가 많은 철, 강가에만 가까이 가도 수박향을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낚시꾼들의 허풍이라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습니다. 당일 잡은 은어를 얼음에 재었다가 요리하기 전 냄새를 맡았습니다. 정말 상큼한 향이 났습니다. 향기까지 갖춘 민물의 여왕, 은어를 알현했습니다. 손맛은 못 느꼈지만 은어 맛은 실컷 보고 돌아왔습니다. 이젠 한여름만 되면 시원한 강가에서 즐기는 은어 낚시가 생각날 듯 합니다.
부산 동래구 사직동에서 자동차로 새벽 4시에 출발해 오전 6시께 경남 산청군 경호강에 닿았다. 가는 차 안에서 김채원(여·54·부산시 동래구 온천동) 씨는 "은어낚시 전문가이면서 경남 산청군 금서면에서 은어요리 전문점 '은어가 오리다'를 운영하는 김태화(45) 대표가 포인트를 안내할 것"이라고 말했다. 채원 씨는 "본래 30대 초반부터 낚시를 좋아했다. 하지만 갯바위 낚시는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위험해서 나이가 들수록 가지 않게 되더라. 우연한 기회에 은어 낚시를 배웠는데 그 재미에 홀딱 빠졌다"며 입문기를 들려줬다. 채원 씨는 "막내 남동생도 나 때문에 은어 낚시에 빠졌다"며 웃었다. 채원 씨의 남동생 김진한(43·경남 김해시 외동) 씨도 동행했다.
산청군 금서면에서 태화 씨와 권순국(44·대구 수성구 지산동) 씨가 합류해 1시간 가량 떨어진 경남 하동군 적량면 횡천강에 닿았다. 네 명의 낚시꾼이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은어 낚시는 물 속에 서서 하게 되므로 피부 보호와 체온 유지를 위해 슈트를 입는다. 그리고 미끄러운 강바닥에서 중심을 잡기 위해 펠트화를 신는다. 조끼에는 낚싯바늘 등을 넣어둔다. 모자와 편광선글라스도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낚싯대는 9m짜리를 가장 많이 쓴다. 태화 씨는 "은어 낚시꾼들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500만 원가량 붙이고 강에 들어간다고들 한다"며 웃었다.
취미로 하던 은어낚시는 태화 씨의 본업도 바꾸었다. 그는 20년간 하던 건축일을 그만둘 정도로 은어낚시의 묘미에 빠졌다. 그는 은어 낚시의 매력에 대해 "살아있는 은어로 은어를 잡는다는 것 자체가 매력이 있다. 은어 낚시는 낚싯대만 드리운다고 되는 게 절대 아니다.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씨은어를 몰고 가는 능력, 포인트를 잡아내는 능력 등이 있어야 은어를 낚을 수 있다"고 말했다.
경남 하동군 횡천강에서 잡은 은어를 낚시꾼들이 보여주고 있다. 낚시꾼들이 4시간가량 잡은 은어는 24마리나 됐다.
■은어 낚시 손 맛볼까
오전 8시30분께 횡천강에 들어갔다. 더위가 싹 가실 정도로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다. 네 사람은 본격적으로 자신만의 포인트를 찾아 이동했다. 낮은 보로 형성돼 있는 곳을 지나다가 태화 씨가 손짓했다. "여기, 대나무 모양처럼 자국이 죽죽 나 있지요? 이런 게 은어 먹자리에요. 여기 은어가 제법 있다는 얘깁니다". 돌 위의 물이끼가 끼어있던 곳에 누가 쓱쓱 문지른 듯한 자국이 있었다.
각각 자리를 잡고 서서 은어를 기다렸다. 15분이 넘게 아무도 입질이 없었다. 보는 사람은 슬슬 지겨워지려고 했지만 정작 꾼들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태화 씨는 "자리를 잡고 적어도 30분은 기다려야 해요. 사람이 들어오면 은어들이 숨는 게 당연하죠. 그러다가 움직임 없이 가만히 있으면 다시 돌아와요. 그 시간이 30분입니다. 그런데 초보들은 그걸 못 기다려요"하고 기자를 점잖게 나무랐다. 그러다 오전 8시50분께 첫 입질은 태화 씨에게 왔다. 보고 있던 주변에서 "왔다! 왔다!"하며 더 흥분했다.
유연하게 휘어진 낚싯대를 들어 올리자 은어 두 마리가 수면 위에서 빛났다. 한 마리는 씨은어고 씨은어의 꼬리 쪽 바늘에 은어가 걸렸다. 20㎝ 정도되는 예쁜 은어였다. 이렇게 잡은 은어는 다시 씨은어가 되고 이전의 씨은어는 살림통으로 넣는다. 새로 잡힌 은어가 활동성이 더 좋기 때문에 씨은어로 바꿔준다.
은어 낚시를 위해 처음 준비하는 게 미끼가 되는 씨은어다. 씨은어의 코에 링 모양의 바늘을 꿴다. 여기에 연결된 줄 끝에 갈고리 형태의 낚싯바늘로 은어 배지느러미 쪽 피부에 얇게 꿰어 고정을 한다. 그러면 은어의 꼬리 쪽에 꼬리바늘이 늘어뜨려지게 된다. 잡히는 은어들은 이 은어의 꼬리바늘에 걸리게 되는 셈이다.
막상 입질이 시작되니 허리 정도의 얕은 물에 서있던 채원 씨에게 은어가 계속 몰렸다. 주변에서 "은어가 다 수놈이라 미인을 알아보나"라며 농담들을 했다. 머리카락보다 더 가는 낚싯줄에 달린 4개의 형광색 눈표에 집중했다. 눈표가 물로 쑤욱 딸려 들어가면 은어가 잡혔다는 신호다. 은어가 걸리면 꾼은 허리벨트에 끼워뒀던 뜰채를 꺼내고 은어는 그 속에 빨려들듯 쏙 들어갔다. 채원 씨는 "은어 두 마리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가려고 힘을 써요. 20㎝ 정도만 돼도 힘이 좋아요. 그걸 두 마리씩 달고 있으니 손맛이 얼마나 짜릿한지 몰라요"라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태화 씨는 "은어는 물살이 제법 세서 포말이 잘 생기는 곳을 좋아해요. 그런 곳을 여울이라고 하는 데 은어 포인트 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러더니 자신만이 아는 포인트로 이동했다. 낮 12시 30분께 돌아온 태화 씨의 살림통은 묵직했다. 눈대중으로 가늠해봐도 15마리 정도 돼 보였다. 네 사람이 4시간 동안 잡은 은어는 총 24마리. 평균 25㎝ 정도로 제법 살이 올라 있었다.
# 은어 조림·매운탕·튀김…식객 유혹하는 '진수성찬'
■다양한 변주 가능한 은어의 맛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은어 조림, 은어 튀김, 은어 숯불구이
은어는 비린내가 없어 어떻게 요리해 먹어도 맛이 담백하고 고소하다. 태화 씨가 은어요리 전문점 대표답게 다양한 은어 요리를 맛보게 해줬다. 가장 먼저 나온 것은 은어조림. 달콤하면서 매콤한 맛이 좋은 조화를 이루었다. 한 마리를 덜어 살부터 발랐다. 가슴 쪽에 잔가시가 아주 많은 편이었는데도 깨끗하게 살이 발라졌다. 태화 씨는 "양식이 아닌 자연산이라 깨끗하게 분리가 돼요. 아주 싱싱해서 그렇기도 하구요"라고 말했다. 은어 살은 정말 부드러워서 씹을 것도 없을 정도였다. 자작하게 졸여진 양념과 은어살을 밥에 올리니 절로 한 숟갈 크게 떠서 먹기 바빴다.
은어 매운탕도 일미 중 하나였다. 끓여낸 후 먹기 전에 방아잎과 산초가루를 넣어 먹으면 풍미가 더욱 살아난다. 칼칼하면서도 은어의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이 어우러져 다들 말없이 국물만 들이켰다. 은어의 단백질이 장어의 7배라고 하더니 고소한 맛이 대단했다.
이어 은어 튀김이 나왔다. 은어살은 포를 뜨고 나머지 뼈와 머리는 따로 튀겼다. 튀김옷이 얇아 겉은 바삭하면서 살은 입에서 포슬포슬했다. 너무 부드러워서 씹을 게 없을 정도였다. 머리부터 뼈까지 붙은 튀김도 별미였다. 은어 자체가 크지 않아, 통째로 씹어도 뼈가 아삭아삭했다. 다진 마늘을 넣은 양념장에 찍어서 먹으니 절로 술 한잔이 생각났다.
마지막은 은어 숯불구이. 잡자마자 반배만 딴 은어를 얼음에 재두었던 것으로 구워냈다. 굽기 전 냄새를 맡아 보니 정말 오이향이 물씬했다. 태화 씨는 "이렇게 그날 잡아 얼음에 재면 향기가 더 짙어진다. 비린내는 없고 청량한 향기만 나는 게 은어다"고 말했다. 은어를 하나하나 나무 꼬치에 꿰고 소금을 발라 복사열로 1시간가량 굽는다. 내장을 다 제거하지 않아 내장 속의 기름이 살에 스미면서 고소함을 더했다. '은어가 오리다'는 산청군 금서면 매촌리 165의 12에 있다. 산청 IC를 빠져 나오면 바로 보인다. 은어조림 3만 원·5만 원(각각 2인분, 4인분). (055)973-2200
# 은어 낚시 준비물
1. 낚싯대
은어 낚시 자체가 국내에서는 활성화되지 않아 주로 일본 제품을 쓴다. 200만~500만 원까지 다양하다. 더 고급 제품도 있지만 이 정도면 낚시하는 데 큰 문제는 없다.
2. 허리띠
뜰채를 끼워야 하고 은어 살림통을 매달고 다녀야 하므로 허리띠는 필수다. 두 손이 자유로워야 하기 때문이다.
3. 뜰채
낚싯바늘에 걸린 은어를 뜰채에 먼저 넣어야 한다. 그래야 낚싯바늘을 빼고 씨은어를 교체할 수 있다.
4. 펠트화
은어는 물이끼가 끼어있는 강에 산다. 이끼가 끼어있는 강바닥의 돌은 무척이나 미끄럽다. 강 속에서 걸어서 이동해야 하므로 미끄러지지 않는 신발은 필수.
5. 은어살림통
잡은 은어를 넣어둘 통은 반드시 필요하다. 은어는 한여름엔 물 밖으로 나오면 5~10초 안에 죽기 때문이다. 은어 살림통은 허리띠에 연결해 물 속에 잠겨있도록 해야 한다.
6. 편광 선글라스
물 속을 보려면 편광선글라스를 끼고 있어야 눈이 편안하다. 야외에 계속 있어야 하므로 필요하다.
7. 슈트
슈트는 한여름이라면 꼭 필요하지는 않다. 등산바지나 타이즈 등으로 대체할 수 있다. 하지만 8월 말 밤이면 추울 수도 있어 준비해 두면 쓰임새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