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청운서예전각연구실
 
 
 
 

자주가는 링크

 
 
 

회원 알림

 

회원 알림

다음
 
  • 방문
  • 가입
    1. 방준형
    2. 무용
    3. ㅇㅇ66
    4. 볏가리
    5. 라파누이
    1. 쏘쏘
    2. 쑥대머리
    3. 만드래
    4. 김인숙
    5. 윈창
 
 

친구 카페

 
 
카페 게시글
논문 및 자료실 스크랩 50. `대학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청운 추천 0 조회 53 09.08.14 15:4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대학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학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국서예비평학회 제4회 학술대회 발표 논문과 이에 대한 토론문을 싣습니다.

  

 

 

大學派와 新尙象의 서예문화 탐색

-6개 대학교 서예과 출신 청년작가전을 보고-

 

 

道下 조민환(춘천교대) 

 

1. 들어가는 말

 

乾卦, 九二, “見龍在田, 利見大人”

乾卦, 九三, “君子, 終日乾乾, 夕?若, ?, 無咎”

 

이상은 ????周易?????乾卦?의 九二爻와 九三爻의 爻辭인데, 내가 생물학적 나이인 45세로 참여작가(?)를 한정한 대학파 전시회를 보자마자 떠오른 생각이다. ‘신진작가’ 뭐 이렇다면 몰라도 그것도 참으로 개념이 모호한 ‘청년작가’전을 보고 말이다.

요즘 몇 개의 서예잡지를 보다보면 우리나라는 더 이상 어떤 타이틀을 걸고도 열 수 없는, 마치 서예와 관련하여 개최할 수 있는 것은 다 개최하는, 참으로 기발한 모든 행태의 모든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揚州八怪’와 같이 8자가 갖는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 작가군에 들지 않으면 마치 저급한 예술가처럼 느끼게 하는 ‘X인전’이란 해괴한 전시회부터 시작하여 공모전, 초대전, 회원전, 작품전, 작가전, 졸업전 등이 지역, 성별, 서체 등의 다양한 구분과 인간 관계를 통해 열리고 있다. 바야흐로 그것의 질적 여하를 떠나서 말한다면 서예와 관련된 백화쟁명의 시대가 우리나라에서 열리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도 우리나라처럼 다양한 전시회와 공모전이 있는 나라, 그런 다양한 공모전을 통하여 ‘허울’뿐이라고 말해지는, 제대로 초대받지 못하는 초대작가가 1,500여명이 넘는서예문화 강국인 나라는 더욱 없을 것이다.

기존의 한국서단에 이처럼 다양한 행태의 전시회가 있었지만 이제 그것도 모자라 최근 2009년 4월 8일 ‘대학파’라는 타이틀을 내건 전시회가 열렸다. 수없이 많은 서예관련 전시회가 열렸지만 ‘xx’파라는 이름하에 열린 전시회는 처음이 아닌가 한다. 물론 대학에서 서예를 전공한 작가들이 관련 학교의 관계를 통한 전시회가 열린 적은 많았다. 하지만 대학파라는 전시회는 그것과 다른 성격을 갖는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대학’파에서 ‘대학’이란 말과 ‘파’가 갖는 의미이다.

인생 나이 60을 ????주역???? ?건괘?의 六爻에 적용하면 이번 대학파전에 참여한 청년작가들은 대학을 졸업한지 20년 정도, 또는 대학에서 서예를 전공하고 그 이후 꾸준히 20여년의 서예의 학습과정을 거친 것이라면 ????주역???? ?건괘?의 九二에 해당하거나 혹은 막 九三의 단계에 들어간 셈이다. 그리고 45세라는 생물학적 나이나 서력을 보면 유학에서 말하는 ‘下學而上達’식의 사유를 적용했을 때 아직은 下學의 단계에 속하는 때이다.

서예는 동양 여타 예술도 마찬가지지만 무엇보다도 精熟과 純熟을 요구하는데, 45세 이하라는 나이는 서예의 역사성이나 품격 등에서 볼 때 크게 논의할 가치가 있는 단계가 아니다. 회화는 그래도 조형성을 통한 천재적 측면을 거론할 수 있지만 서예는 철저하게 ‘하학이상달’이 적용되는 예술이기 때문에 이런 점에서는 아쉽게도 매우 제한적이다. 즉 청년작가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법고창신 가운데 아직은 법고에 치중해야 할 단계에 속한다. 그런데 九三의 단계에도 들어가지 못한 상태에서 벌써 九四의 “或躍在淵, 無咎”의 경지를 꿈꾸고, 이번 전시회를 기획한 몇몇은 ‘나는 당신들과 달라’ 혹은 ‘자신이 천재임네’ 하고 은근히 九五의 ‘飛龍在天’을 꿈꾸기까지 하는 느낌도 든다. 이번 대학파의 전시회가 최소한 九四 정도에 해당하는 때에 한 것이었다면 내가 이처럼 문제를 삼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도리어 이제는 ‘혹약재연’할 때라고 부추겼을 것이다.

나는 이번 전시회가 어떤 기준에 의해 작가를 선정하고 또 어떤 작품식의 작품을 하라고 요구했는지 잘 모른다. 혹 전시회 주제를 설정했는데, 그 주제를 제대로 소화할 수 없다는 한계성 때문에 주제를 설정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하는 것도 모른다. 기존 서단과 다를 바가 없는 밀실행정식의 전시계획 때문에, 또는 소통 부재인지 모르지만 대학서예과를 졸업한 제대로된 작가가 이번 전시회에 불참했다든지, 혹은 붓도 제대로 놀리지 못하는, 서예가 무엇인지도 제대로 모르는 풋내기들이 작품을 출품하는 통에 잡탕식의 전시회가 되었다든지 식의 전시회의 형식적 측면을 거론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즉 이번 대학파에 출품한 작가들의 수준이나 작품의 기교적 수준 등과 같은 형식적인 면을 논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대학교의 스승이 있고 또 개인적으로 서단에 스승이 있는 묘한 구조속에서 그들이 기존의 제도권 서예에서 벗어난 무엇인가의 차별성과 탈출구를 모색하고 그것을 통하여 ‘알맹이가 있는 신화를 창조’하고자 한 것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문제는 진정한 알맹이가 없이 ‘뭔가 보여 드리겠습니다’라고 하는 식의 전시행정식 전시회였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대학파의 이번 전시회는 한국서단에 무엇인가 해결해야할 화두를 던진 것이 아니라 그냥 대학에서 서예를 전공한 학생들이 모여서 스스로 벌린 어설픈 잔치한 것에 불과한 면이 있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이렇게 할 것이었다면 그냥 ‘6개 대학 서예과 졸업생 교류전 혹은 모임전’ 정도의 명칭으로 전시회를 열어도 되었을 것이다. 즉 이제까지 각 대학교 서예과마다 졸업전, 동문전 등 다양한 형식으로 전시회가 열렸던 점을 감안하면, ‘왜 이 시대에 대학파라고 하는 타이틀을 걸고 전시회를 여는가’에 대한 필연성을 담보할 수 있는 실질적인 내용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이 시대에 ‘왜 서예가 필요한지’ 그리고 서구예술에 밀려난 동양예술 가운데 서예적 측면에서 ‘기존 서예와 달라야 할 것은 무엇인지’ 등과 관련된 일종의 ‘신서예문화선언’이라도 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

결국 여기서 내가 중점적으로 문제 삼고자 하는 것은 ‘대학파’라는 명칭을 사용했을 때 갖추고 있어야 할 내용이다. 아울러 그들이 행한 뭔가 보여주겠다는 행태 속에 잠재되어 있는 부정적인 의식 등이다. 이런 문제점을 해소하는 방안의 하나로 ‘新尙象 서예문화’를 탐색할 것을 제창하고자 한다.

 

 

2. ‘下學而上達’로서의 서예와 조급증

 

대학파라는 이름을 걸고 행한 전시회는 한국서예사에서 볼 때 일정 정도 역사성은 있다. 문제는 왜 하필 ‘대학’파라는 이름을 걸고 전시회를 했느냐 하는 것이다. 이런 사유에는 무엇인가 대학의 서예과를 나온 서예가들은 대학을 나왔지만 서예과를 나오지 않은 기존 서예가나 혹은 대학을 나오지 않은 기존 서예가들과는 무엇인가 차별화된 것이 있음을 반영되어 있다.

이런 점은 추진위원장인 손동준이 쓴 ?껍데기의 역사가 아닌 알맹이의 신화를 위하여?라는 전시회 서문에 잘 나와 있다. 하나는 한국서단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권력과 계파간의 ‘나눠먹기’ 식의 결과로 나타난, 새로운 패러다임이 없이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초대작가들의 한심한 행태를 비판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통한 변화를 모색함으로써 ‘세계를 향한 열린 사고를 갖춘 전문서예인’도 양성하고 현대예술이 지향하는 현대성을 서예를 통해 담아내고자 한다. 이런 작업을 통하여 ‘서예종주국의 위상’을 확보하고자 하며, 아울러 자신들이 예술행위의 뿌리가 되는 대학의 서예교육의 활성화 방안 등을 모색하여 궁극적으로는 한국서예의 세계성 해석을 위한 보편적 미적세계를 확보하고자 한 거창한 선언이 그것이다.

사실 이번 전시회는 두 번째에 그 실질적인 본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첫 번째 지적에 눈이 자꾸 가는 것은 최근 서예잡지 ????묵가????에 실린 ‘정말 부끄럽습니다’라는 ?대한민국서예대전 심사유감?의 내용처럼 한국서단에 너무나 문제가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일단 서예과 출신들이 이런 문제를 제기하고 집단적으로 무엇인가를 보여주고자 했다는 것에 대해 기존 한국서단의 문화권력자들은 일단 반성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 대학파들이 행한 이번 전시회가 별다른 것이 없다는 식으로 폄하하기 전에 말이다.

회화분야에서는 중국 海上派 등과 같이 활동한 지역이나 작품경향, 양식 등에 의한 파의 구분은 있다. 하지만 서예에서는 ‘누구누구 서체’라는 말은 많이 들어보았지만 - 물론 중국서예계에 ‘학원파’가 있기는 하지만 낯 ‘무슨무슨파’라고 하는 것은 낯설기만 하다. 왜 그럴까? 최근에 와서 서예계에서 중국의 학원 혹은 한국의 대학을 묶음으로 하여 하나의 파로 말하는 경우는 圖畵署나 혹은 일찍부터 관련 전문기관이 있었던 회화와 달리 그런 형태의 기관이 없었던 서예에만 나타나는 독특한 현상이 아닌가 한다. 물론 이런 점 때문에 기존의 餘技적 차원에서 접근한 서예가 아닌 ‘무엇인가 차별화된 서예창작’을 하고자 한 점에서 대학파나 학원파라는 명칭이 가능한 점도 없지는 않지만 말이다.

문제는 대학파라고 할 때 그 이름에 걸맞는 내용이나 형식적 측면에서 무엇인가 차별화된 것이 없으면 자칫하면 ‘알맹이 없는 이름뿐인 전시회’가 열릴 수밖에 없고, 그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사실 우리 대학의 서예과 현실을 보면 그럴 수밖에 점이 없지는 않다. 왜냐하면 ‘파’라는 말을 사용하려면 무엇인가 내용으로서 공통된 이념과 형식이 있어야 하고, 아울러 그 ‘파’를 이끌어나갈 중심인물이 있어야 하는데, 대학의 서예과마다 커리큘럼이 다르고, 교수들이 지향하는 것도 다르기 때문이다. 또 이번 전시회가 6개대학 서예과에 공통될 수 있는 무슨 일관된 주제를 가지고 개최된 것이 아니라는 점도 있다.

경영학에서의 '마케팅 전략'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어떻게 차별성을 인정받느냐'의 문제라고 하는데, 마케팅 관점에서 차별성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그 차별점이 바람직(desirable)하고, 지속 가능(durable)하며, 독특(distinctive)해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차별성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남들이 갖지 못한 '최초(the first)'이거나 '유일(the only)'하거나 '최고(the best)'라는 점을 독특한 점을 부각시켜야 한다고 한다. 이런 점이 바로 대학파에게 요구된다고 본다.

康有爲는 중국서예사에서 變法을 강조한 사상가이자 서예가인데, 서예를 잘하기 위한 기본 전제조건으로 바로 오랜 기간의 임모에 의한 熟을 말한다. 아울러 강유위는 서예가 담아내야 할 것으로 意態를 말하는데, 이 의태를 얻기 위한 과정을 先後本末論적 사유를 적용하여 논하고 있다. 이것을 유가 철학의 사유에 적용하면 일종의 ‘下學而上達’식의 이해이다. 강유위는 서예를 배워 이루는데 어려운 것으로 배움에 게으른 것과 학습의 순서가 없는 두가지를 말하는데, 결국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선후본말의 차례를 알지 못하고 배우는 태도이다. 그렇다면 어떤 순서를 취해 배워야 하는가? 강유위가 말한 것을 차례로 보자. 먼저 집필법을 배운다. 다음 글씨를 쓰는데 먼저 결구로부터 들어가 횡획은 평평함을 요구하고 붓을 바로 세워 글자체의 방정함을 구한 뒤에 글자체의 向背, 往來, 伸縮의 형세를 구한다. 그 다음 글자의 分行과 布局을 강구하는데, 이 때 고대의 碑拓을 보고 各家의 字體 구조와 章法을 배우고 소밀과 원근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 가를 안다. 그리고 ‘고대의 서론을 학습’하고 각 ‘유명서가의 비결’을 파악하여 提筆, 頓筆, 方筆, 圓筆의 묘용을 안다. 이 이후에 오랜 시간을 걸쳐 연습하여 익숙하게 된 뒤 작품의 골육이나 기혈, 정신 등이 모두 갖추어지게 되면 하나의 체를 이루게 되고, 이처럼 체를 이룬 이후에 작품의 풍격과 意態를 강구할 수 있다고 본다. 제대로 된 글자 하나 이루는 것이 그냥 붓 한번 휙 놀린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집필부터 시작하여 운필 등 관련된 여러 가지 기본적으로 습득해야 할 것이 있음을 말한다. 붓을 댄 이후의 결과물에 대한 품격이나 意態는 또 다른 차원에서 요구되는 사항이다.

동양예술은 ‘무엇을 그릴 것인가’보다 그 무엇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가 매우 중시한다. 이런 점에서 法古와 擬古에 바탕한 臨慕 전통이 있고, 또 得心應手에 의한 熟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제 九三에 막 진입한 대학파 작가는 조급증을 버리고 왜 동양예술에서 ‘食古而化’, ‘借古以開今’, ‘法古創新’ 등과 같이 그토록 古를 강조하는지 하는 것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서예를 창작하는 측면에서 古와 今이 문제가 된다고 해도 왜 선인들이 心同, 手同, 法同이란 관점에서 접근하여 시대를 초월한 서예에서의 心·手·法의 동일성을 강조하고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서예의 경우 새로운 패러다임의 확보나 전문서예인은 하루 아침에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이번 대학파 전시회는 어설픈 치기어린 조급증을 보인 전시회였다고 할 수밖에 없다. 서예종주국을 말로만 부르짖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무엇인가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되 하나하나 차근차근 순서를 밟아 그것에 걸맞는 내용을 창출할 것이 요구된다.

 

 

3. 新尙象의 서예문화 탐색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안하고 이전과 다른 변화를 모색하려면 그것에 걸맞는 자기 논리를 개발해야 한다. 서예역사상 치밀한 자기 논리 개발과 이론적 토대 없이 이전과 다른 서예세계를 펼친 서예가는 없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破破新을 비롯하여 신서예주의, 신속미주의 등을 주장한 송하경의 서예정신이나 六分半書를 창안한 鄭燮의 다음과 같은 말은 오늘날 대학파에게 주는 화두가 아닐까 한다. 

 

하늘을 번쩍 들고 땅을 짊어질 만한 글, 번개가 치고 우레가 울리는 듯한 글씨, 신령도 꾸짖고 귀신도 욕할 만한 이야기, 예전에도 없었고 지금도 볼 수 없는 그림은 원래 심상한 식견 중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기 이전에는 하나의 格을 세우지 않으며, 이미 그린 이후에도 하나의 격을 남기지 않는다.

 

정섭은 이제까지 있어 왔던 예술 세계와는 단절된 새로운 차원의 예술세계를 펼쳐가겠다는 것을 말한다. 대학파는 임모전통이 갖는 장점을 충분히 이해한 뒤 정섭이 말한 바와 같은 창신을 모색하는 예술정신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이에 나는 新象상의 서예문화를 고민할 것을 말하고자 한다.

중국서예는 전통적으로 法象으로서의 서예, 心學으로서의 서예, 그리고 形學으로서의 서예 등 서예에 대한 다양한 견해가 있다. 이 중에서도 항상 주목할 것은 형학으로서의 서예이다. 문자는 상형문자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하면서 서의 근원이 무엇인가를 밝히고 있는 康有爲는 ????廣藝舟雙楫?????原書?에서 문자는 비록 상황에 따라 상형문자에서 지사문자로, 회의문자로, 형성문자, 가차문자로, 전주 등으로 변화하기는 했지만 가장 근본은 상형문자라는 것을 말한다. 이런 강유위는 시대상황에 따라 서예가 변해야 함을 말한다. 이처럼 처한 상황에 따라 변화를 모색하는 것은 당연한데, 다만 ‘무엇을 통해, 어떻게 변해야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 경우 서예의 본원으로 돌아가 가장 근본적인 부분에서부터의 변화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중국서예사를 보면 은대의 일종의 尙象에서부터 시작하여 우리가 흔히 말하는 晉대의 尙韻, 당대의 尙法, 송대의 尙意, 명·청대의 尙態 등으로 변천해왔음을 알 수 있다. 이런 변화에는 기본적으로 ‘物極必返’의 논리가 서예에 적용된 점이 반영되어 있는데, 오늘날 입장에서 보면 서예가 더 이상 돌파구를 찾을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서예가 형성된 원형의 논리로 되돌아가면 오늘날에도 여전히 다시 무엇인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을 찾을 수 있다.

장자는 ?齊物論?에서 “도란 길을 가게되면 생기는 것(道行之以成)”을 말한다. 문제는 기존의 길을 그대로 밟아 가느냐 아니면 내가 가고 싶은 길을 만들어서 가느냐 하는 것이다. 이 경우 내가 가고 싶은 길을 가려면 기존에 길이라고 말해진 것을 부정하고 가지 않으면 된다. 이런 점을 문자형성과 관련하여 말한다면, 기존의 수없이 오랜 기간을 거쳐서 형성된 보편화된 문자는 이미 다른 사람이 길을 간 것에 해당한다. 따라서 나의 길을 가려면 어떤 길이 형성되기 전의 상태로 가면 된다. 문자가 구체적으로 ‘이렇게 쓰면 이런 의미를 지닌 것’이라는 식이 성립되기 이전으로 돌아가면 된다. 즉 문자의 원형 혹은 무엇이라 혹은 어떤 형태로 규정되기 이전의 다양한 부정형의 상을 찾아가서 그것에서부터 다시금 출발하여 나만의 해석이 깃든 예술창작행위인 ‘새로운 尙象 서예문화’를 창안할 것이 요청된다. 즉 대학에서 서예를 전공한 사람이라면 문자형성과 그 문자가 갖는 의미에 대한 본질적이며 근본적인 물음에서부터 서예를 접근하고 그것을 오늘날에 맞게 재해석하는 의식이 필요하다고 본다. 소동파는 자신의 서예세계 형성에 대해 無法과 無 사승관계를 통해 말한다. 그리고 尙意적 서풍을 창안하여 서예의 새로운 역사를 연다. 대학파에게는 오늘날에 맞는 소동파의 무법과 무 사승이란 정신이 요구된다. 물론 이것은 최소한 ‘혹약재연’ 이후의 일이다. 그것의 가능성은 얼마나 ‘신상상의 서예문화’를 펼쳐내느냐 하는 것에 있다고 본다. 동양에서의 진정한 창신은 원형으로 돌아가 그 원형을 자신만의 사유를 통해 오늘날에 맞게 새롭게 펼쳐내는데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새로운 상을 통한 새로운 서예문화를 만들어 내기 어려우면 기존에 있었던 것이라도 그것에 대한 창의적 해석이나 혹은 미학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보아야 한다. 생각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기존 서단과 차별화된 창작행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과 관련해 전통적으로 동양에서는 왜 임모를 표절로 여기지 않았는지를 고민해보아야 한다. 즉 동기창은 왕희지의 ?난정서?를 자신이 생각한 글씨로 씀으로써 일종의 임모를 통한 意態적 창작세계를 펼쳐낸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대학파들도 왕희지의 ?난정서?를 보고 자신이 느낀 바를 마음대로 표현하거나 혹은 한글의 다양한 서체로 써보는 사소한 예술행위에서도 ‘대학의 서예과를 나오지 않은’ 기존 서단의 서예가들과 차별화된 측면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인가 차별화된 고민과 생각을 담고자 한 전시회라면 기존 서단과 차별화된 대학파 나름의 전시회를 개최할 수 있다는 말이다.

아직 得心應手의 단계에 이르지 못해 기교적 측면도 문제가 되고, 회화도 아니고 서예도 아닌, 그렇다고 새로운 서체를 개발하는 것도 아닌, 잡탕식 예술행위는 아직은 하학의 단계에 속하는 아마추어적 청년작가에게는 독이 될 뿐이다.

 

4. 나오는 말

 

경제적인 측면, 교수·학습적인 측면 등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있는 상황에서 ‘서예’ 그것 하나에 미쳐 그것에 ‘올인’하면서 대학을 졸업한 그들은 한국서단에서 사실 용과 같은 존재임은 틀림없다. 문제는 한국서단에서 ‘대학’이란 것이 이처럼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인지가 의문이다. 그것이 오늘날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 모르지만 특히 讀五千卷할 것을 말하면서 인품론이 대세를 이루는 서예는 더욱 그렇다. ‘대학’이란 형식적인 틀이 의미가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출발점으로 해서 하나의 ‘파’를 만들었다면 그 이름에 걸맞는 내용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명실상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술분야에서 전시회와 관련 하여 대학이란 말이 사용된 경우를 보면, 회화에 예술창작 단계에서 하급단계에 속하는 공모전 성격의 대학미전이 있다. 이 경우 ‘대학’이라면 수준으로 볼 때 무엇인가 아마추어리즘을 연상시킨다. 즉 대학이란 말은 좋게 보면 진리탐구 등과 같은 거창한 의미도 있지만 예술적 측면에서는 아직은 어설픈 아마추어리즘 단계라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청년작가 혹은 45세 등으로 한정하여 전시회를 개최한 대학파는 이런 점을 말하려는 것은 아닌지 한다. 그런데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이런 점을 노출시키고 말았다는 것이다. 물론 이번 대학파에 참여한 일부 회원들은 자신들이 기존 서가들보다 훨씬 더 뛰어나다는 자부심도 있고, 또 그것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라면 개인전을 통하여 얼마든지 자신의 기량과 천재성(?)을 뽐낼 수 있다. 문제는 대학파라는 이름을 내걸었을 때에 내가 무엇을 어떤 식으로 그 내용으로 담아내야 할 것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단순히 대학서예과를 졸업한 사람들이 모여서 기존 서단에 뭔가 해서 보이겠다는 그 자체에만 의의를 두어서는 안된다.

특히 대학파 전시회를 기획한 혹은 참여한 사람들이 자신들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들은 기존 서단의 당신들과 다르다’는 예술적 측면의 순수한 자부심을 가지고 행한 행동이 도리어 자칫 집단 패거리주의, 또 다른 문화권력을 창출하기 위한, 서단의 권력이동 혹은 정권교체를 꿈꾸는 고도의 술수가 숨어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혐의 혹은 비판적 시각도 느껴야 한다. 특히 ‘바뀌어야 한다’ ‘변화해야 한다’고 말은 하지만 대학파 스스로 그런 매너리즘 혹은 제도권에서 행한 부정적인 면을 그대로 답습하고 이런 점이 이번 전시회에 그대로 반영된 것이 아닌가도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본 전시회가 특정인을 스타작가로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식의 전시회가 아니었나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이렇다면 이 전시회에 참여한 작가들은 전시회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그들을 위한 엑스트라로 전락한 것은 아니었는지 하는 반성도 있어야 한다.

당연히 대학에서 서예이론을 가르치는 나 자신을 포함하여 서예문화운동을 제대로 주도하지 못한 대학서예과 교수들도 반성해야 한다. 이번 대학파가 지향한 서예문화운동은 대학서예과 교수들이 앞장서서 주도했어야만 했다는 자기 반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서예과의 교수들도 ‘밭에 나타난 룡’ 그들이 찾고자한 大人이 아니라 결국 기존 서단의 서예가와 동일한 부류로 생각한 것은 아니었는지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제자들은 바로 대학교수 자신들의 또 다른 얼굴이기 때문이다. 즉 하학의 단계에서는 반드시 해야 할 것이 있고, 九二 단계를 넘어서 九三으로 가려면 ‘利見大人’이 필수적이듯이 제대로 된 스승을 만나야 하는데, 그런 스승이 우리 대학이나 서단에 없다고 보아 자신들만 모여서 행동을 한 것이라면 나를 포함한 대학에서 서예관련 지도에 종사했던 모든 사람들이 반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사실 이번 대학파 전시회에서 ‘대학 교육의 활성화’를 거론한 것은 대학의 서예과가 갖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복선으로 깔고 있는, 즉 대학서예과 교육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전시회라는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의도하는 바는 긍정적인 점이 있었지만 결국 미숙한 행위는 한번으로 족하다. 대학파는 일단 첫걸음을 내걸었지만 너무도 많은 것을 요구하는 ‘다양한 문화와 예술의 만남을 통한 열린 세계’를 향하기 전에 오늘날 현 시점에서 서예가 담아내야 할 바람직한 내용과 서예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먼저 있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대학에서 서예를 전공한, 앞으로의 한국서단을 짊어지고 나아갈 대학파들은 독자성과 차별성이 확보된 조형언어와 어법, 그리고 날이 선 자기논리를 개발해야 된다는 지적은 매우 유효하며, 나는 그 대안의 하나로 ‘新尙象 서예문화’를 탐색할 것을 제창하는 것이다. 대학에서는 당연히 이에 걸맞는 커리큘럼에 대한 고민을 하고, 그것에 맞는 적절한 강좌가 개설되어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대학은 여건이 안되는 측면이 있음을 인정하더라도, 전문서예가를 기르는 대학원에서는 서예미학 혹은 서예사에 대한 안목을 넓힐 수 있고 그것을 통하여 자기만의 서예세계를 창안할 수 있게 하는 강의가 강화될 필요가 있어야 할 것이다. 최소한 이런 식의 방안을 모색해야 ‘새로운 패러다임을 통한 변화를 모색함으로써 ‘세계를 향한 열린 사고를 갖춘 전문서예인’도 양성할 수 있고 또 ‘현대예술이 지향하는 현대성을 서예를 통해 담아낼 수 있게 된다’고 본다. 지금 당장으로는 서예의 가장 기본이 되는 문자학 강의를 강화한다든지 하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六分半書를 창안한 鄭燮에 대해서도 변화를 꾀했지만 제대로 변화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로 변화를 시도하고 새로운 것을 모색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포기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알맹이가 꽉찬 飛龍在天의 신화를 꿈꾸는 ‘대학파’니까.

 

 

.......................................................................................................................................... 

 

新尙象의 서예문화 탐색’에 대한 토론

 

곽노봉(동방대학원대학교 서화심미학과 교수) 

 

먼저 ‘대학파’가 한국 서단의 유일한 비평학회에서 논제로 등장했다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 하겠습니다. 사실 수많은 전시회가 열리지만 대부분 거론조차하지 않는 냉담한 한국 서단에서 조민환교수가 ‘대학파’전시를 주제로 삼아 논문을 쓴 것에 대해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조교수의 논문에 대하여 토론자는 ‘대학파’를 보는 시각의 차이점과 이에 대한 기대라는 두 가지 문제를 가지고 토론에 임하고자 합니다.

조교수의 ‘대학파’에 대한 관점을 크게 3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대학파’의 나이에 관한 것으로, “45세 이하라는 나이는 서예의 역사성이나 품격 등에서 볼 때 크게 논의할 가치가 있는 단계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둘째, 법고창신에 관한 것으로, “대학파는 임모전통이 갖는 장점을 충분히 이해한 뒤 창신을 모색하는 예술정신이 있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셋째, ‘대학파’의 정체성에 관한 것으로, “집단 패거리주의, 또 다른 문화 권력을 창출하기 위한, 서단의 권력이동 혹은 정권교체를 꿈꾸는 고도의 술수가 숨어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혐의 혹은 비판적 시각도 느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이에 대한 토론자의 견해를 피력하오니 답변해주시기 바랍니다.

첫째, 45세 이하라는 나이는 중국청년서법가의 나이를 45세 이하로 규정하는 데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조교수가 비중을 두고 예를 든 강유위(1858-1927)의 『광예주쌍즙』은 光緖 15년인 1889년, 즉 당시 31세에 탈고한 서론서입니다. 또한 유명 서예가와 작품을 예로 들면, ‘천하제일행서’라는 왕희지(321-379, 一作 303-361, 一作 307-365)의 <난정서>는 永和 9년(353) 작으로 32, 46, 50세에 썼고, ‘천하제이행서’라는 안진경(708-784, 一作 709-785)의 <제질고>는 至德 3년(757) 작으로 48, 49세에 썼으며, ‘천하제삼행서’라는 소식(1036-1101)의 <황주한식시첩>은 元豊 5년(1082) 46세에 썼습니다. 이를 보면, 모두가 50세 이전인 40대에 쓴 명작임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조교수가 말한 “45세 이하는 서예의 역사성이나 품격 등을 논의할 가치가 있는 단계가 아니다.”라는 관점은 매우 편견적인 견해라고 하겠습니다.

둘째, 법고창신과 임모에 관한 문제입니다. 법고, 즉 전통서예를 통한 창신은 서예가라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전통서예만 강조하지 정작 이에 대한 하한시기를 논의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혹자는 전통서예의 하한시기를 당나라, 혹은 청나라 말 또는 근현대의 유명 서예가까지 포괄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임모를 중시하면서도 임모의 목적과 임모의 방법 및 시기를 구체적으로 논의하지 않고 있습니다. 임모가 창작을 위한 전제라는 것은 누구나 동의하지만, 정작 임모를 위한 임모를 하거나 임모 지상주의를 펴기도 합니다. 그러나 임모가 창작의 전제가 되려면 서로 보완작용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즉, 창작은 문제를 발견하고 제시해야 하며, 임모는 문제를 해결하고 심화시키는 작용을 해야 합니다. 단순한 임모는 능동성을 잃게 되니 자신의 습기와 부족한 점을 교정하려면 임모를 통해 창작에서 생기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즉, 창작에서 필요한 능력, 기법원리와 논리, 그리고 기법과 지식을 전면적으로 제시하고 다시 임모로 돌아와 구체적으로 결실을 구할 수 있어야 진정 창작을 전제로 한 임모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서단의 일부 서예가들은 고법, 중봉, 임모, 전통서예만 중시하면서 20년이 넘도록 서예를 공부한 사람이 자신의 성정을 담은 창작을 시도하려면 “고법에 충실해야지, 아직 멀었어!”라고 대갈일성을 하여 기를 펴지도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는 서예의 올바른 교육법과 감상법 부재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국 서단은 지금까지 선배들이 강조하고 잘 닦여진 고법의 기초위에서 임모와 창작을 수없이 넘나들며 새로운 서예언어를 가지고 미흡하더라도 자신의 성정을 대담하게 표현할 창작형식을 모색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조교수는 논문에서 “대학파 전시는 아직 법고에 치중할 단계인데 한국서단에 무엇인가 해결해야할 화두를 던진 것이 아니라 어설픈 잔치에 불과하다.”라고 일축하고 있으니, 이러한 관점은 너무 진부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셋째, ‘대학파’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로, 이는 대학에서 정규적인 서예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모여 작품전을 열었고, 또한 일반 서숙전 또는 동호인들의 전시회와는 분명 차별성이 있으며, 비록 그 차별성이 확연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기존의 의식과는 다른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으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이상에서 밝힌 견해를 기초로 한 ‘대학파’에 거는 기대입니다.

‘대학파’의 본질은 이론과 실기를 겸비하여 새로운 창작을 하는 데에 있습니다. 그러나 창신은 말로 하기는 쉽지만 실제로 선천적 재질?학양?공력이라는 3가지 요소를 모두 갖추지 않으면 불가능하고, 우리가 전통서예를 유지하는 것은 그것이 반드시 좋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아직 그보다 더 좋은 방향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점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앞으로 ‘대학파’는 일반 서숙전 내지는 공모전과 분명히 차별성이 있어야 하고, 이론과 실기를 겸한 바탕위에서 자신의 성정을 마음껏 펼치며 새로운 창작에 몰두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실기를 선도할 수 있는 참신한 이론도 전개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일들이 쉬운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대학파’에게 거는 기대가 그만큼 크다고 하겠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대학파’는 하나의 시험무대가 될 것이고, 여기서 성공을 거둔다면 앞으로의 한국서단은 분명히 새로운 방향을 찾아 무한히 발전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를 위해서 대학의 교수들은 각성하고 서예의 새로운 교육법과 감상법을 개발하여 서예전공자들을 육성시켜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행위를 비판하기보다는 격려하면서 올바른 길로 인도하며 끊임없는 지도편달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조민환교수의 의향은 어떠한지 답변해주시기 바랍니다.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