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우리 시회가 저지른 살처분은 정말 옳은 선택이었을까? /풀꽃평화목소리 제475호

[남궁효]

그때, 우리 시회가 저지른 살처분은 정말 옳은 선택이었을까?

 글쓴이 : 풀꽃평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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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우리 시회가 저지른 살처분은 정말 옳은 선택이었을까?	제475호
	2012년7월19일

  지난 주에 한권의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이진경'이라는 젊은 철학자가 쓴 책인데, 우리 현실의 구체적인 문제들에 대해 너무나 시원스러운 깨달음을 주는 글들로 묶여 있었습니다.
  시사평론가나 시민운동가, 직업적인 논객들의 글과 달리, 그분의 글은 철학하는 분이라 그런지 읽는 이에게 깊이 생각할 거리를 주고 있었으며, 특히 제게는 구제역 소동 이후 방역을 위해 대규모의 살처분을 감행했던 일에 대한 비판이 공감을 자아냈습니다. 저자는 방역이 생명을 살리기 위해 나라세금과 국민적 합의로 실시했던 일인데, 실제 일어난 일은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역을 위해 대대적인 살육이 일어났다며, 이 일은 반드시 다시 생각해 볼 일이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랬었지요. 살린다는 미명으로 우리 사회는 꼭 죽이지 않아도 될 목숨들을 죽였었지요.
  특히 그 대목이 제 마음을 친 까닭은 아마도 최근에 저희가 시골에서 길을 잃은 개들과 도로에 나와 비틀거리던 새끼고라니 사건을 겪어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철학하는 사람이나 작가들의 존재가치는 사람들이 미처 생각지 못하고 그냥 지나친 일들을 꼼꼼하게 밝히고 의문을 제기해, 전과는 다른 눈으로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데 있을 것입니다.

  지금 태풍이 나라 전체에 피해를 끼치고 있고, 늘 그렇지만 우리 사회에는 여러 사건들이 쉴새없이 터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한때 집단적으로 저지른 사건, 그리고 앞으로도 그와같은 일이 터졌을 때, 여전히 전과 같은 방식으로 대응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 다시금 살펴보는 일도 무의미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어떤 문제를 만약 제대로 이해하기만 한다면, 나쁜 제도를 고칠 수도 있을 것이고, 어리석은 선택을 덜 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정상명

 
병에 걸린다는 것이야말로 생명체의 본질 아닌가?

이진경 

  1340년 유럽에서 페스트가 처음 창궐했을 때 페스트로 인한 사망률은 약 30퍼센트 정도였다고 한다. 물론 지역에 따라 달라서 북부 독일이나 영국에서는 20퍼센트 정도였던 반면, 이탈리아나 프랑스 남부 지역 등에선 80퍼센트에 이르는 곳도 있었다고 한다. 구제역으로 죽은 가축에 40만 마리를 더 죽여서 390만 마리를 죽이게 된다면, 30퍼센트의 사망률이라는, 이 페스트와 맞먹는 비율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이번 구제역 사태가 페스트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페스트가 세균에 의해 인간이 죽어간 것이라면 이번 구제역의 경우는 세균이 아니라 인간에 의해서 그 거대한 수의 동물이 죽어갔다는 것이다. 여기에 페스트가 세균의 직접적인 '공격'에 의해 인간이 죽어갔다면, 이번 구제역에서는 세균에 의한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가축이 죽어갔다는 점 또한 덧붙여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전자가 자연적인 사태였음에 반해 후자는 '인간적인' 사태였고, 전자가 의학적 지식의 부재로 인해 죽음이 그처럼 거대하게 확대되어 간 것이라면, 후자는 바로 의학적 지식에 인해 죽음이 그렇게 거대하게 확대되어간 것이다.
  방역을 위한 조치 또한 페스트의 경우와 비교할 만하다. 페스트의 경우 전염을 저지하기 위해, 무엇보다 감염자인 인간을 집에 가두고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이는 감염자가 있는 마을 전체를 가두고 감시하는 체제를 통해 가동되었다. 마을의 출입을 금지한 것은 물론, 감염자가 있는 마을에선 각자를 집에서 나오지 못하게 했고, 감시자가 집의 창문으로 얼굴을 드러내게 하여 '점호'를 하면서 사망자가 있는지 새로운 감염자가 있는지 아침저녁으로 확인했다. 즉 전염의 이유는 모르는 채 오직 '전염되는 것'같다는 추측만이 있었기에, 출입이나 이동을 차단하고 살아남을 때까지, 아니 죽을 때까지 가두어두고 감시하는 통제의 방식을 사용한 것이다.
  구제역 또한 기본적으로 가축은 물론 사람들의 이동이나 출입을 차단하는 방법을 사용했다는 점에서는 페스트의 통제체제와 유사했다. 물론 병원균에 대한 의학적 지식이 있었기에, 소독과 백신접종 등 의학적 조치가 더해지긴 했지만, 백신접종은 '경제적 이유'(수출에 유리한 '청정국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로 제때에 사용하지 않았고, 소독은 전염의 실질적인 매개자인 인간이 대상이었기에 대강했을 뿐이다. 대신에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가축을 방역조치의 대상으로 삼았다.
  가축은 어차피 사람처럼 움직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람과 달리 감염된 개체는 물론 아직 감염되지 않은 개체도 죽이는 것을 포함해 모든 '처분'을 행할 수 있다. 그리하여 전염을 막기 위해 감염체가 있는 곳 '인근'에 있는, 즉 감염의 위험이 있는 모든 가축을 죽이는 것으로 전염을 저지하고자 했다. 처음에는 감염체의 주변 반경 3킬로미터에 있는 모든 가축을 살해함으로써 바이러스의 이동을 저지하려 했다. 반경 3킬로미터, 지금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지점에서 반경 300미터 정도의 원을 그리면 내가 있는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전체가 그 안에 들어온다. 가축을 사람으로 치환해서 말하면, 내가 감염되었다는 게 알려지는 즉시, 이 학교 안에 있는 사람은 전부 죽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3킬로미터가 아니라 300미터다. 반경이 10배로 늘면 면적은 100배 늘어난다. 아마도 노원구 전체가 그 반경 안에 들어가지 않을까. 내가 감염자임이 판명된 순간, 노원구 주민 전체가 이른바 살처분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서울의 각 구마다 두세 명의 감염자가 발견되었다면, 서울 시민 전체를 살처분하게 되는 방식, 그것이 초기에 방역당국이 구제역을 '저지'하기 위해 행한 방법이었다!
  이렇게 죽이는 가축의 수가 너무 많아지면서 "이러다간 가축 다 죽이겠다"는 비판의 소리가 높아지자, 나중에 그 반경을 500미터로 줄이기는 했다. 그렇다고 해도 반경 500미터다! 감염자 한 사람이 한두 개 동에 있는 사람 전체를 죽이기에 충분한 거리인 것이다! 결과는 페스트와 동일했다. 전염은 저지하지 못했다. 하지만 또 하나 다른 것은 페스트가 감염된 환자만 죽었다면, 구제역은 감염되지 않았지만 죽어야 했던 것이 감염된 가축의 몇 천, 몇 만 배에 이른다는 점이다.

  구제역을 그냥 전염되도록 방치했다면 어땠을까? 수의학자들에 따르면 구제역에 감염된 가축 대부분은 죽지 않는다. 어린 새끼들의 경우에는 죽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성체는 죽지 않고 회복된다. 체중감소를 겪기도 하지만 그것도 몇 달 후면 회복된다. 따라서 구제역을 그대로 방치했다고 해도, 350만 마리가 감염되었을 가능성도 희박하지만, 감염되었다고 해도 실제로 죽는 가축의 수는 35만, 아니 3만 5천 마리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이번에 구제역으로 죽은 가축은 대부분이 '전염병'이 아니라 '방역'으로 죽은 것이다. 방역이야말로 구제역으로 인한 대대적인 죽음의 가장 중요한 이유였던 것이다!
  그대로 두었다면 구제역은 아마도 전국으로 확산되었을 거고, 많은 가축들이 병을 앓았을 것이며, 와중에 죽는 것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몇 달간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대부분은 병이 나았을 것이고, 줄어든 체중도 다시 원래대로 되돌아왔을 것이며, 부었던 고환도 멀쩡해졌을 것이며, 줄었던 젖소의 젖도 다시 되돌아왔을 것이다. '구제역에 감염된 적 있는 고기'라고 딱지 붙는 일 말고는 모두 제자리로 돌아왔을 것이다. 가축을 팔아먹는 데는 손해를 야기하지만, 소 돼지에겐 아무런 문제가 없는 딱지 하나. 사실 병에 걸려본 적 없는 인간이 어디 있으며, 병에 걸려본 적 없는 가축이, 그런 생물이 어디 있던가. 병에 걸린다는 것이야말로 생명체의 본질적인 특징 아닌가? 또한 병 없는 세상이 어디 있단 말인가? 구제역이든 무엇이든 병은 다시 발생하게 마련이다. 문제는 어디에나 있기 마련인 그 병과 함께 어떻게 살아가느냐 하는 것일 게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병에 걸리는 것이 역으로 다시 그 병이 돌아왔을 때 살아남는 길일 것이다. 병에, 구제역에 걸렸다 나으면, 거꾸로 그 병에 면역력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런 식으로 생명체들은 자신의 생명을 강화하고 지속해가는 것 아닌가?
  그러고 보면 병을 '막는다'는 방역이란 미명 아래 이처럼 병에 걸린 것, 걸리지 않은 것을 대대적으로 학살하는 것처럼 어이없고 반어적인 것도 없다. 이는 마치 병고를 견디며 자신의 생명력을 키워가는 생명체와 반대로, 병고를 방지하고 막겠다는 목적으로 생명 아닌 죽음을 선고하는 심술궂은 죽음의 신 같다. 그렇지만 우리는 방역이라는 말에 아무런 반감도 갖지 않는다. 방역의 실패, 방역의 부재에 대해 비판할 망정 방역이라는 관념에 대해서는 어떤 근본적인 이견도 갖고 있지 않다. 이는 구제역이나 조류독감 같은 동물들의 전염병만이 아니라 신종 인플루엔자나 최근 되돌아온 결핵과 같은 인간들의 질병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방치되었을 때 이상으로 대대적인 죽음을 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방역에 대한 발상이나 방역을 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근본적으로 다시 검토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아니, 오히려 제대로 된 방역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좌우를 막론하고 어디서나 하는 비판적 주문이다. 방역을 위해 가축을 죽이는 것, 즉 살처분이란 방법 자체에 대해서도 근본적으로 다시 검토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이미 타이완이나 영국 등에서 동물들의 처참한 살처분이 있었음에도 이번에 우리나라에서 다시 반복되었던 것처럼. 살기 위해 혹은 살리기 위해 방역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방역을 위해 대대적인 죽음(죽임!)마저 불사하는 이런 태도를 보면, 마치 '방역'이란 조치에 홀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방역이란 이름에 현혹되어, 생명과 죽음을 농단하는 어이없는 조치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법조차 잊어버린 것 같다.
  방역을 수행하는 '위생당국'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를 보면 더더욱 그렇다. 예전에 중국에서 사스(SARS)가 유행했을 때, 누군가 베이징의 한 유학생 얘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베이징대 기숙사에 살던 그 유학생은 어느 날 저녁, 친구와 저녁을 먹기 위해 운동복에 슬리퍼 차림으로 외출했다고 한다.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시고 나서 귀가했는데, 바로 그때 사스에 대한 경보가 발령되어 대학을 비롯한 모든 공공장소의 출입이 금지되었다고 한다. 그 유학생은 그날 기숙사에 들어갈 수 없었고, 이후 사스가 진정되어 경보가 해제될 때까지 2주가량을 운동복에 슬리퍼 차림으로 친구집에서 머물러야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운이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기숙사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꼬박 2주 동안 밖에 나오지 못하고 갇혀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 얘길 들으면서, 그동안 항의한 사람은 없었는지 물었다. 짐작하지 못했던 건 아니었지만, 역시 어리석은 물음이었다. 이유를 불문하고 모든 출입을 중단시킨 그 조치에 대해 항의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경찰이나 군대가 출입을 그처럼 봉쇄했다면, 항의와 저항이 없었을 리 없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람들의 항의는 늘어갈 것이고, 저항적인 행동이 시작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위생당국이 방역을 위해 취한 조치에 대해선 아마 어디서도 그런 저항과 항의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건 '나'의 생명, '나'의 건강을 위한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위생권력은 군대나 경찰 이상으로 사람들을 지배하고 복종시키는 권력임에 틀림없다. 저항조차 생각하지 못할 그런 권력.

* 이진경, 『뻔뻔한 시대, 한 줌의 정치- 구제역 사태와 방역의 생명정치학』, 문학동네, 2012년, 256~262

[남궁효]

마침 풀꽃평화목소리에서 이진경 선생 저서에 관한 안내글을 메일로 보내주셔서 초록교육 카페에 퍼 옮깁니다. 앞서 이진경 교수의 존재론 강의에 나온 내용인데, 좀더 자세히 면역과 방역의 문제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길래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