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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도론 3권
17.3. 12연기법의 상세한 주석[5]
[6입처에서 죽음까지]
17.3.6.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있다
228. ‘감각접촉(觸)을 조건으로 느낌(受)이 있다’는 구절에서,
문에 따라 느낌은 눈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것 등
오직 여섯이라 설했는데 분류에 따라서는 89가지이다.
229. 이 구절에 대해 『위방가』에서는
“눈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 귀 ··· 코 ··· 혀 ··· 몸 ··· 마노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Vbh.136)”이라고,
이와 같이 문에 따라 느낌은 오직 여섯 가지라고 설하셨다.
그러나 분류에 따라 그들은 89가지 마음과 관련되어있기 때문에 89가지이다.
230. 이 느낌들 가운데서 32가지는
과보로 나타난 마음과 관련되어있나니
오직 그들이 여기서 뜻하는 것이다.
오문(五門)에서 감각접촉은 다섯 가지에게 여덟 가지로
의문(意門)에서도 그와 같다.
231. 이 중에서 오문에서 눈의 감각접촉 등의 감각접촉은 눈의 감성 등의 토대를 가진 다섯 가지 느낌들에게 함께 생긴 조건, 서로 지탱하는 조건, 의지하는 조건,과보의 조건, 음식의 조건, 서로 관련된 조건, 존재하는 조건, 떠나가버리지 않은 조건의 여덟 가지로 조건이 된다.
그 눈의 감각접촉 등의 감각접촉은 나머지 욕계의 과보로 나타난 느낌들에게 한 가지 강하게 의지하는 조건으로 조건이 된다.
나머지 욕계 과보로 나타난 느낌은 각각의 문에서 받아들이는 마음과 조사하는 마음과 등록하는 마음으로 일어난다.
232. 의문에서도 그와 같다.
의문에서는 함께 생긴 마노의 감각접촉이라고 하는 감각접촉은 등록으로 일어나는 욕계 과보로 나타난 느낌들에게 그와 같이 여덟 가지로 조건이 된다.
재생연결과 잠재의식과 죽음으로 일어나는 삼계의 과보로 나타난 느낌들에게도 그와 같다.
의문에서 의문전향과 관련된 마노의 감각접촉은 등록으로 일어나는 욕계의 느낌들에게 한 가지 강하게 의지하는 조건으로 조건이 된다.
이것이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있다’라는 구절에 대한 상세한 주석이다.
17.3.7.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있다
233. ’느낌(受)을 조건으로 갈애(愛)가 있다’라는 구절에서,
형상에 대한 갈애 등의 분류로
여섯 가지 갈애를 설했나니
일어나는 형태에 따라
각각 세 가지가 있다.
234. 이 구절레서
‘장자의 아들, 바라문의 아들’이라고 아버지 따라 이름불리는 아들처럼,
“색에 대한 갈애, 소리·냄새·맛·감촉·법에 대한 갈애(Vbh.136)”라고,
『위방가』에서는 대상에 따라 이름하여 여섯 가지 갈애를 설하셨다.
그 갈애 가운데서 각각의 갈애가 일어나는 형태에 따라
①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kāma-taṇhā,慾愛)
② 존재에 대한 갈애(bhava-taṇhā 有愛)
③ 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갈애(vibhava-taṇhā, 無有愛)의 세 가지가 있다.
235.
① 눈의 시야에 들어온 형상의 대상을 감각적 욕망으로 즐기면서 형상에 대한 갈애가 일어날 때 그것을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라 한다.
② 그 대상은 항상하고 영원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상견과 함께 갈애가 일어날 때 그것을 존재에 대한 갈애라 한다. 상견과 함께한 탐욕을 존재에 대한 갈애라 하기 때문이다.
③ 그 대상은 끊어지고 멸한다고 생각하는 단견과 함께 갈애가 일어날 때 그것을 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갈애라 한다. 단견과 함께한 탐욕을 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갈애라 하기 때문이다.
이 방법은 소리에 대한 갈애 등에도 적용된다.
이렇게 하여 갈애는 18가지가 있다.
이것은 안의 형상 등으로 18가지이고 밖의 형상 등으로 18가지가 되어 모두 36가지가 있다.
이와 같이 과거의 갈애 36가지, 미래의 갈애 36가지, 현재의 갈애 36가지로 108가지의 갈애가 있다.
다시 그들을 요약하면 형상 등 대상으로 여섯이고,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 등으로 셋이라고 알아야 한다.
236. 마치 아들을 좋아한 나머지, 아들에게 깊은 애정을 가지고 [길러준] 보모를 [크게 존중하는 것]처럼,
중생들은 형상 등의 대상에서 일어나는 느낌을 맛들인 뒤,
느낌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그런 느낌을 일으키는] 형상 등의 대상을 공급하는 화가, 음악가, 향수를 만드는 자, 요리사, 베 짜는 자, 연금술사, 의사 등을 크게 존중한다.
그러므로 이 갈애는 느낌을 조건한 것이라고 알아야 한다.
237.
여기서는 과보로 나타난 행복한 느낌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 하나가 한 가지로 갈애에게 조건이 된다.
한 가지라고 한 것은 강하게 의지하는 조건으로 조건이 된다는 [뜻이다.]
238. 혹은,
괴로운 자는 행복을 원하고
행복한 자는 행복을 더 많이 원한다
평온은 고요하기 때문에 행복이라고 설하셨다
이 세 가지 느낌은 갈애의 조건이기 때문에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있다고 대성인께서 설하셨다
느낌을 조건하지만 잠재성향이 없이는 갈애가 없다
그러므로 청정범행을 닦은 범천에게는 그것이 없다
이것이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있다’라는 구절에 대한 상세한 주석이다.
17.3.8. 갈애를 조건으로 취착이 있다
239. ‘갈애(愛)를 조건으로 취착(取)이 있다’는 구절에서,
취착은 넷이다.
① 뜻을 분석함으로써
② 법을 간략하고 상세하게
③ 순서에 따라,
그들을 설명해야 한다.
240. 이것이 설명이다.
감각적 욕망에 대한 취착(kāma-upādāna,慾取),
견해에 대한 취착(diṭṭhi-upādāna, 見取),
계율과 의식에 대한 취착(sīla-bbata-upādāna, 戒禁取),
자아의 교리에 대한 취착(atta-vāda-upādāna, 我語取),
이것이 네 가지 취착이다.
(1) 뜻을 분석함으로써
241.
① 뜻을 분석함으로써:
대상(vatthu)이라 불리는 감각적 욕망을 취착하기 때문에 감각적 욕망에 대한 취착(慾取)이라 한다. 감각적 욕망 그 자체가 취착이기 때문에도 감각적 욕망에 대한 취착이라고 한다.
취착(upādāna)이라는 것은 강하게 거머쥐는 것(daḷha-ggahaṇa)이다.
‘우빠(upa)’라는 단어는 강하다는 뜻이 있다.
우빠야사(upāyāsa, 깊은 근심 즉 절망)와 우빠꿋타(upakuṭṭha, 강한 비난 즉 책망)의 우빠가 강하다는 뜻을 가진 것처럼.
마찬가지로 견해 그 자체가 취착이기 때문에 견해에 대한 취착(見取)이다.
혹은 견해를 취착하기 대문에 견해에 대한 취착이라고 한다.
“자아와 세상은 영원하다(D.i.14)”라는 데서는 뒤의 견해가 앞의 견해를 취착한다.
마찬가지로 계와 의식을 취착하기 때문에 계율과 의식에 대한 취착(戒禁取)이라 한다.
게와 의식 그 자체가 취착이기 때문에 계율과 의식에 대한 취착이라고도 한다.
소처럼 행동하고 소처럼 사는 것이 청정이라고 국집하기 때문에 그 자체가 취착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것을 통해 주장하기 때문에 교리(vāda)라 한다.
이것을 통해 취착하기 때문에 취착이다.
무엇을 주장하거나 취착하는가?
자아이다.
자아의 교리를 취착하는 것이 자아의 교리에 대한 취착이다.
혹은 단자 자아의 교리가 자아이고 그것을 통해 취착하기 때문에 자아의 교리에 대한 취착이다.
이것이 그들의 뜻에 대한 분석이다.
(2) 법을 간략하고 상세하게
242.
② 법을 간략하고 상세하게:
“무엇이 감각적 욕망에 대한 취착인가? 감
각적 욕망에 대한 간절한 욕망, 탐욕, 즐거움, 갈애, 애정, 열병, 홀림, 계박이 감각적 욕망에 대한 취착이다.(Dhs.212)”라고 가르침이 전승되어 왔기 때문에,
간략하게 [설하면] 우선 감각적 욕망에 대한 취착은 강하게 거머쥔 갈애를 뜻한다.
강하게 거머쥔 갈애란 이전의 갈애로 인해 더욱 강해진 그 다음의 갈애이다.
이전의 갈애는 강하게 의지하는 조건이다.
어떤 자들은 말한다.
‘얻지 못한 대상을 열망하는 것이 갈애이다.
마치 도둑이 어두운 곳에서 손을 뻗는 것처럼. 이미 얻은 대상을 쥐는 것이 취착이다.
마치 도둑이 목표물을 쥐는 것처럼. 이들은 소욕지족에 반대한다.
그렇게 찾고 보호가기 때문에 괴로움의 뿌리이다.’라고.
나머지 세 가지 취착은 간략히 [설하면] 사견일 뿐인다.
243. 상세하게 [설하면] 앞서 설한 형상 등에 대한 108가지 갈애의 강한 상태가 감각적 욕망에 대한 취착이다.
열 가지 삿된 견해가 견해에 대한 취착이다.
이와 같이 설하셨다.
“무엇이 견해에 대한 취착인가?
[보시도 없고,] 공양도 없고, 제사도 없다 ··· 스스로 초월지로 실현하여 드러내는 바른 도닦음을 구족한 사문 바라문들도 없다고 이러한 형태의 견해 ··· 전도된 억설을 일러 견해에 대한 취착이라 한다.(Dhs.212)”
계와 의식으로 청정해진다라는 견에 대한 집착이 계율과 의식에 대한 취착이다.
이처럼 말씀하셨다.
“무엇이 계율과 의식에 대한 취착인가? 계로 청정해지고 의식으로 청정해지고 계와 의식으로 청정해진다고 이러한 형태의 견해 ··· 전도된 억설을 일러 계율과 의식에 대한 취착이라 한다.(Dhs.212)”
20가지 유신견이 자아의 교리에 대한 취착이다.
이처럼 말씀하셨다.
“무엇이 자아의 교리에 대한 취착인가?
여기 배우지 못한 범부는 바른 사람의 법에 교육받지 못하여 물질을 자아라고 관찰한다.(Dhs.212-13)”
이것이 여기서 법을 간략하게 설한 것과 상세하게 [설한 것이다].
(3) 순서에 따라
244.
③ 순서에 따라: 세 가지 순서가 있다.
㉠ 일어나는 순서
㉡ 버리는 순서
㉢ 가르침의 순서이다.
㉠ 비롯함이 없은 윤회에서 이것이 처음 일어난 것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오염원이 일어나는 순서는 직접적으로 말한 것이 아니다.
간접적으로 대개 한 생에서 자아를 거머쥠이 상견과 단견을 국집하도록 먼저 유도한다.
그 다음에 이 자아를 영원한 것이라고 거머쥘 때 그 자아를 청정케 하고자 그에게 계율과 의식에 대한 취착이 일어난다.
단멸한다고 거머쥘 때 내생을 무시하면서 그에게 감각적 욕망에 대한 취착이 일어난다.
이와 같이 첫 번째로 자아의 교리에 대한 취착이,
그 다음에는 견해, 계율과 의식, 감각적 욕망에 대한 취착이 일어난다.
이것이 한생에서 이들이 일어나는 순서이다.
245.
㉡ 견해에 대한 취착 등이 첫 번째로 버려진다. 왜냐하면 이들은 예류도로 제거되기 때문이다.
감각적 욕망에 대한 취착은 맨 나중에 버려진다. 왜냐하면 이것은 아라한도로 제거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들을 버리는 순서이다.
246.
㉢ 영역이 넓기 때문에, 그리고 분명하기 때문에 이 가운데서 감각적 욕망에 대한 취착을 첫 번째로 가르치셨다.
그것은 넓은 영역을 가졌다. 왜냐하면 여덟 가지 마음((22)-(29))과 관련되어있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영역이 좁다. 왜냐하면 네 가지 마음(22),(23),(26),(27)과 관련되어있기 때문이다.
대개 사람은 욕망(ālaya)을 좋아하기 때문에 감각적 욕망은 분명하지만 나머지는 그렇지 않다.
감각적 욕망을 취착하는 자는 감각적 욕망을 얻기 위해 갖가지 제전, 잔치 등을 베푼다.
이것이 그의 견해이기 때문에 감각적 욕망에 대한 취착 다음에 견해에 대한 취착이 일어난다.
그것은 계율과 의식에 대한 취착과 자아의 교리에 대한 취착,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그 두 가지 가운데 계율과 의식에 대한 취착은 소처럼 행동하고 개처럼 행동하는 형태를 보고서 알 수 있기 때문에 거칠다.
그래서 첫 번째로 설했고, 자아의 교리에 대한 취착은 미세하기 때문에 나중에 설하셨다.
이것이 이들을 가르친 순서이다.
247.
갈애는 첫 번째에게 한 가지로 조건이 되고
나머지 세 가지에게 일곱이나 여덟 가지로 조건이 된다.
248. 이와 같이 설한 네 가지 취착들 가운데서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는 첫 번째인 감각적 욕망에 대한 취착에게 강하게 의지하는 조건의 한 가지로 조건이 된다.
감각적 욕망에 대한 취착은 갈애가 즐거워하는 대상에러 일어나기 때문이다.
[갈애는] 나머지 세 가지에게 함께 생긴 조건, 서로 지탱하는 조건, 의지하는 조건, 서로 관련된 조건, 존재하는 조건, 떠나가버리지 않은 조건, 원인의 조건인 일곱 가지로, 혹은 강하게 의지하는 조건과 함께 여덟 가지로 조건이 된다.
갈애가 이들 [세 가지 취착들]에게 강하게 의지하는 조건으로 조건이 될 때에는 [갈애와 견해는] 절대로 함께 생기지 않는다.
이것이 갈애를 조건으로 취착이 있다는 구절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다.
17.3.9.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있다
249. ‘취착(取)을 조건으로 존재(有)가 있다’라는 구절에서,
① 뜻에 따라
② 법들에 따라
③ 목적에 따라
④ 분류와 종합에 따라
⑤ 어떤 것이 어떤 것에게 조건이 되는지 판별을 알아야 한다.
① 뜻에 따라
250.
[① 뜻에 따라]:
이중에서, 존재하기(bhavati)때문에 존재(bhava, 有)라 한다.
이것은 업으로서의 존재(kammabhava, 業有)와 재생으로서의 존재(upapatti-bhava, 生有)로 두 가지가 있다.
이처럼 말씀하셨다.
“존재는 두 가지이다. 업으로서의 존재가 있고 재생으로서의 존재가 있다.(Vbh.137)”
이 가운데서 업 그 자체가 존재이기 때문에 업으로서의 존재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재생 그 자체가 존재이기 때문에 재생으로서의 존재이다.
여기서 재생(upapatti)이란 것은 존재하기(bhavati) 때문에 존재(bhava)라 한다.
그러나 업은 존재의 원인(kāraṇa)이기 때문에 결과라는 일상적 표현으로 존재라 한다고 알아야 한다.
마치 부처님의 출현은 [중생들에게] 행복을 줄 원인이기 때문에
“부처님의 출현은 행복이다(Dhp.194)”라고 설한 것처럼.
이와 같이 뜻에 따라 판별을 알아야 한다.
② 법들에 따라
251.
② 법들에 따라:
업으로서의 존재는 간략하게 [설하면] 의도와 의도와 관련된 탐욕 등, 업이라고 불리는 법들을 말한다.
이처럼 말씀하셨다.
“무엇이 업으로서의 존재인가?
제한된 영역에 속하든 혹은 고귀한 영역에 속하든, 공덕이 되는 행위, 공덕이 되지 않는 행위, 흔들림 없는 행위를 일러 업으로서의 존재라 한다.
존재로 인도하는 업은 모두 업으로서의 존재이다.(Vbh.137)”
252. 여기서 공덕이 되는 행위는 13가지 의도이다.
공덕이 되지 않는 행위는 12가지 의도이다. 흔들림 없는 행위는 네 가지 의도이다.
이와 같이 제한된 영역에 속하든 혹은 고귀한 영역에 속하든이라고 한 것은 이 의도들의 과보가 작은 것과 큰 것을 설한 것이다.
존재로 인도하는 것은 모두라고 한 것은 의도와 관련된 탐욕 등을 설한 것이다.
253. 재생으로서의 존재는 간략하게 [설하면] 업에서 생긴 무더기(蘊)들이다.
분류하면 아홉 가지이다.
이처럼 말씀하셨다.
“무엇이 재생으로서의 존재인가?
욕계존재, 색계존재, 무색계존재, 인식을 가진 존재, 인식이 없는 존재, 비상비비상의 존재, 한가지 무더기를 가진 존재, 네 가지 무더기를 가진 존재, 다섯 가지 무더기를 가진 존재,
이것을 일러 재생으로서의 존재라 한다.(Vbh.137)”
254. 이 가운데서 감각적 욕망이라 부르는 존재가 욕계존재다.
이 방법은 색계와 무색계존재에도 적용된다.
인식을 가진 자의 존재이기 때문에, 혹은 이 존재에 인식이 있기 때문에 인식을 가진 존재이다.
이와 반대되는 것이 인식이 없는 존재이다.
거친 인식은 없고 미세한 것은 있기 때문에 이 존재에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인식이 없는 것도 아닌 존재가 비상비비상의 존재이다.
물질 무더기 한 가지로 구성된 존재가 한 가지 무더기를 가진 존재이다.
혹은 그 존재는 한 가지 무더기만 가지기 때문에 한 가지 무더기를 가진 존재이다.
이 방법은 네 가지 무더기를 가진 존재와 다섯 가지 무더기를 가진 존재에도 적용된다.
255. 이 가운데서 욕계존재는 업으로 받은 다섯 가지 무더기들이다.
색계존재도 그와 같다.
무색계존재는 네 가지 무더기들이다.
인식을 가진 존재는 다섯 가지 무더기들이다.
인식이 없는 존재는 업으로 받은 한 가지 무더기이다.
비상비비상의 존재는 에 가지이다.
한 가지 무더기를 가진 존재 등은 업으로 받은 한 가지, 네 가지, 다섯 가지 무더기들이다.
이와 같이 법들에 따라 판별을 알아야 한다.
③ 목적에 따라
256.
③ 목적에 따라:
존재의 해설에서처럼 상카라들의 해설에 서도 공덕이 되는 행위 등을 이미 설했다.
그렇지만 앞에서는 과거의 업이 이 존재에 재생연결의 조건이 되는 상태를 설했고,
여기서는 현재의 업이 미래의 재생연결의 조건이 되는 상태를 설하기 때문에 반복해서 설하는 것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혹은 앞에서 “무엇이 공덕이 되는 행위인가? 욕계의 선한 의도(Vbh.135)”라는 방법으로 의도가 상카라라고 설하셨다.
그러나 여기서는 ‘존재로 인도하는 것은 모두(Vbh)”whswofh 인도하는 것은 모두(VBH.137)”라는 말씀 때문에 의도와 관련된 법들까지도 포함된다.
또 앞에서는 오직 알음알이의 조건인 업을 상카라라 했고,
여기서는 인식이 없는 존재를 일으키는 것도 포함된다.
257.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무명을 조건으로 상카라들이 있다’라는 구절에서는 유익한 법들과 해로운 법들만을 공덕이 되는 행위 등이라고 설했다.
그러나 여기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있다’라는 구절에서는 재생으로서의 존재도 포함되기 때문에 유익한 것과 해로운 것뿐만 아니라 결정할 수 없는(無記) 법들도 설했다.
그러므로 반복하는 것은 모든 곳에서 의미가 있다.
이와 같이 목적에 따라 판별을 알아야 한다.
④ 분류와 종합에 따라
258.
④ 분류와 종합에 따라:
취착을 조건한 존재(有)를 분류함과 종합함에 따라 [판별을 알아야 한다.]
[분류에 따라]
[분류에 따라]:
감각적 욕망에 대한 취착을 조건하여 욕계존재를 생기게 하는 업을 행하면 그것은 업으로서의 존재이다. 그것으로부터 생긴 무더기가 재생으로서의 존재이다.
이 방법은 색계와 무색계존재에서도 적용된다.
이와 같이 감각적 욕망에 대한 취착을 조건으로 두 가지 욕계존재가 있다. 인식을 가진 존재와 다섯 무더기를 가진 존재는 여기에 포함된다.
[감각적 욕망에 대한 취착을 조건으로] 두 가지 색계존재가 있다.
인식을 가진 존재, 인식이 없는 존재, 하나의 무더기를 가진 존재, 다섯 무더기를 가진 존재가 여기에 포함된다.
두 가지 무색계존재가 있다. 인식을 가진 존재, 비상비비상의 존재, 네 무더기를 가진 존재가 여기에 포함된다.
어떻게 해서 [감각적 욕망에 대한 취착을 조건한] 존재가 그들에 포함된 것과 함께 여섯 가지가 있다.
감각적 욕망에 대한 취착을 조건한 존재가 그들에 포함된 것과 함께 여섯이듯이 나머지 취착을 조건한 존재도 그들에 포함된 것과 함께 여섯이 있다.
이와 같이 분류에 따라 여기에 포함된 것과 더불어 24가지의 존재가 취착을 조건한 것이다.
[종합에 따라]
259. 종합에 따라:
업으로서의 존재와 재생으로서의 존재를 하나로 묶고 여기에 포함된 것까지 합하여 감각적 욕망에 대한 취착을 조건으로 오직 한 가지의 욕계존재가 있다.
색계존재와 무색계존재도 그와 같다.
그리하여 세 가지 존재가 있다. 나머지 취착을 조건으로 한 것도 그와 같다.
이와 같이 종합하면 그 안에 포함된 것까지 합하여 12가지의 존재가 취착을 조건으로 한 것이다.
260. 총괄하여 설하면 취착을 조건하고 욕계존재에 이르게 하는 업이 업으로서의 존재이고,
그것으로 생긴 무더기가 재생으로서의 존재이다.
이 방법은 색계존재와 무색계존재에도 적용된다.
이와 같이 그 안에 포함된 것까지 합하여 취착을 조건으로 두 가지 욕계존재, 두 가지 색계존재, 두 가지 무색계존재로 다른 방법으로 종합하면 여섯 가지 존재가 있다.
업으로서의 존재와 재생으로서의 존재를 분류하지 않고 그 안에 포함된 것까지 합하여 욕계존재 등으로 세 가지 존재가 있다.
욕계존재 등으로도 분류하지 않고 업으로서의 존재와 재생으로서의 존재로 두 가지 존재가 있다.
업으로서의 존재와 재생으로서의 존재로도 분류하지 않고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있다’는 그 존재로는 한 가지 존재가 있다.
이와 같이 여기서 취착을 조건한 존재를 분류함과 종합함에 따라 판별을 알아야 한다.
⑤ 어떤 것이 어떤 것에게 조건이 되는지
261.
⑤ 어떤 것이 어떤 것에게 조건이 되는지:
어떤 취착이 어떤 [존재]에게 조건이 되는지 이것에 대해서도 판별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무엇이 무엇에게 조건이 되는가?
그것이 어떤 것이든 그것은 어떤 것에게 조건이 된다.
범부는 미친 사람과 같다. 그는 이것은 옳고 이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고 아무거나 취착하여 아무 존재라고 바라면서 아무 업이라도 짓는다.
그러므로 어떤 자들이 말하기를
‘계율과 의식에 대한 취착은 색계존재와 무색계존재를 불러오지 않는다’고 하는 것을 수긍해서는 안된다.
모든 것으로부터 모든 것이 있다고 알아야 한다.
262. 예를 들면, 여기 어떤 자가 소문을 듣거나 사견에 빠져
‘이 감각적 욕망은 인간계의 아주 부유한 끄샤뜨리야 가문 등이나 욕계의 여섯 신들 세상에 충만해있다’라고 생각한다.
그리고는 그들을 얻기 위해 삿된 법을 듣는 것 등으로 잘못 인도되어 이 업이 감각적 욕망을 충족시킨다고 생각하면서 감각적 욕망에 대한 취착으로 몸으로 짓는 나쁜 행위 등을 행한다.
그는 나쁜 행위를 가득 행하여 악처에 태어난다.
혹은 현세에서 감각적 욕망을 바라고 이미 얻은 것은 유지해나가면서 감각적 욕망에 대한 취착을 통하여 몸으로 짓는 나쁜 행위 등을 행한다.
그는 나쁜 행위를 가득 행하여 악처에 태어난다. 그곳에 태어날 원인이 되는 그의 업이 업으로서의 존재이고, 업으로부터 생긴 무더기들이 재생으로서의 존재이다.
인식을 가진 존재와 다섯 무더기를 가진 존재는 그 안에 포함된다.
263. 다른 사람은 정법을 들음 등으로 그의 지혜가 증장하여 이런 업이 감각적 욕망을 충족시킨다고 생각하면서 감각적 욕망에 대한 취착을 통하여 몸으로 좋은 행위 등을 행한다.
그는 좋은 행위를 가득 행하여 신이나 인간에 태어난다.
그것에 태어날 원인이 되는 그의 업이 업으로서의 존재이고, 업으로부터 생긴 무더기들이 재생으로서의 존재이다. 인식을 가진 존재와 다섯 무더기를 가진 존재는 이 안에 포함된다.
이와 같이 감각적 욕망에 대한 취착은, 그 종류를 분석하고 또 종합하여 [설명한] 욕계존재에게 조건이 된다.
264. 다른 사람은 색계와 무색계의 존재에는 욕계존재보다 감각적 욕망이 더 충족하다고 듣거나 상상하여 감각적 욕망에 대한 취착으로 색계와 무색계의 증득을 일으켜 그런 증득의 힘으로 색계, 무색계의 범천의 색계에 태어난다.
그곳에 태어날 원인이 되는 그의 업은 업으로서의 존재이고, 업으로부터 생긴 무더기들이 재생으로서의 존재이다.
인식을 가진 존재, 인식이 없는 존재, 비상비비상의 존재, 하나의 무더기를 가진 존재, 네 무더기를 가진 존재, 다섯 무더기를 가진 존재는 이 안에 포함된다.
감각적 욕망에 대한 취착은, 그 종류를 분설하고 또 종합하여 [설명한] 색계와 무색계존재에게 조건이 된다.
265. 다른 사람은 욕계의 행복한 존재나 색계와 무색계존재 가운데 어느 한 곳에서 이 자아라는 것이 끊어질 때 모든 것은 완전히 끊어진다는 단견을 가져 거기에 이르는 업을 짓는다.
그의 업이 업으로서의 존재이고, 업으로부터 생긴 무더기들이 제생으로서의 존재이다.
인식을 가진 존재 등은 이 안에 포함된다.
견해에 대한 취착은, 그 종류를 분석하고 또 종합하여 [설명한] 욕계, 색계, 무색계의 세 존재 모두에게 조건이 된다.
267. 다른 사람은 욕계의 행복한 존재나 색계와 무색계의 존재 가운데 어느 한 곳에서 계와 의식은 이것을 원만히 수행하는 자를 행복이 충만한 곳으로 인도한다고 생각하고 계율과 의식에 대한 취착으로 그곳에 이르는 업을 짓는다.
그의 업이 업으로서의 존재이고, 업으로부터 생긴 무더기들이 재생으로서의 존재이다.
인식을 가진 존재 등은 이 안에 포함된다.
계율과 의식에 대한 취착은, 그 종류를 분석하고 또 종합하여 [설명한] 세 존재에게 조건이 된다.
이와 같이 여기서 어떤 것이 어떤 것에게 조건이 되는 가를 통해서도 판별을 알아야 한다.
268. ‘어떤 것이 어떤 존재에게 어떻게 조건이 되는가’라고 만약 한다면,
[답한다.]
취착은 색계와 무색계존재에게
강하게 의지하는 존건으로 조건이 된다.
욕계존재에게는 함께 생긴 조건으로도
조건이 된다고 알아야 한다.
269. 네 가지 취착은 색계존재와 무색계존재에게, 그리고 욕계 존재에 포함되는 업으로서의 존재에서 유익한 업과, 재생으로서의 존재에게, 강하게 의지하는 조건 한 가지로 조건이 된다.
욕계존재에서 네 가지 취착은 자기와 관련된 해로운 업으로서의 존재에게 함께 생긴 조건 등의 조건으로 조건이 된다.
즉 함께 생긴 조건, 서로 지탱하는 조건, 의지하는 조건, 서로 관련된 조건, 존재하는 조건, 떠나가버리지 않은 조건, 원인의 조건으로 조건이 된다.
그러나 자기와 관련되지 않은 [해로운 업으로서의 존재에게는] 오직 강하게 의지하는 조건으로만 조건이 된다
이것이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있다는 구절에 대한 상세한 주석이다.
17.3.10.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있다
270. ‘존재(有)’를 조건으로 ‘태어남(生)이 있다’는 등의 구절에서 태어남 등의 판별은 진리의 해설에서 설한 방법대로 알아야 한다.(ⅩⅥ. §31이하)
그러나 존재라는 것은 업으로서의 존재가 여기서 뜻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이 태어남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재생으로서의 존재가 아니다.
이 [존재는] 업의 조건과 강하게 의지하는 조건, 이 두 가지로 조건이 된다.
271. 여기에 대해서 말하기를 ‘어떻게 존재가 태어남의 조건이 라고 알겠는가?’라고 만약 한다면,
[답한다.]
외부의 조건이 같더라도 천하고 고상한 등의 차이점을 보기 때문이다.
아버지, 어머니 정액, 피, 음식 등의 외부 조건이 같지만 쌍둥이들에게도 천하고 고상한 등의 차별이 본다.
그 [중생들의 차별은]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다른 원인을 가진, 다른 상속의 사람에게] 항상 모든 것이 함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직 업으로서의 존재이외에 다른 원인이 없다. 이렇게 태어난 중생들의 안의 상속에서 다른 원인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업이 중생을 천하고 고상하도록 구별짓는다(M.iii.203)”라고,
그로므로 존재(有)가 태어남의 조건이라고 알아야 한다.
17.3.11.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 · 죽음 등이 있다
272. 태어남이 없으면 늙음·죽음과 근심 등의 법도 없다.
태어남이 있을 때 늙음·죽음이 있다.
늙음·죽음이라 부르는 괴로운 법에 부딪힌 어리석은 사람에게 늙음·죽음과 연결된 근심 등의 법들이 있고, [늙음·죽음이 아닌] 다른 이런저런 괴로운 법들과 마주친 자에게는 늙음·죽음이 연결되지 않은 근심 등의 법들이 있다.
그러므로 이 태어남이 늙음·죽음과 근심 등의 조건이 된다고 알아야 한다.
이것은 강하게 의지하는 조건의 부분에 의해서 한 가지로 조건이 된다.
이것이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있다’는 등에 대한 상세한 주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