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명하는 혼 (이케다 SGI 회장 대담록)
제17회 브라질 문학아카데미아타이드 총재
‘나는 싸웠다’
그렇기 때문에 이케다 SGI회장의 가치를 안다
‘언론의 사자(獅子)’가 있었다.
얼굴에 깊이 패인 주름과 길게 늘어뜨린 흰머리, 무엇보다 작은 몸집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엄이 땅 위를 달리는 동물의 왕, 사자 같았다.
1993년 2월 9일 오후9시, 브라질문학아카데미의 아타이드 총재가 귀빈실에서 두 시간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이케다 SGI 회장이 27년 만에 리우데자네이루 갈레온 국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총재는 94세였다. 두뇌는 명석했지만 역시 다리와 허리가 쇠약해져 평소 걸을 때는 두 사람이 양옆에서 부축했다. 측근들이 의자에 앉아 있는 총재의 건강을 염려해 별실에서 쉴 것을 권했다.
그러나 총재가 이렇게 말했다.
“나는 94년 동안이나 이케다 SGI 회장을 기다렸습니다. 한두 시간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SGI 회장이 탄 여객기가 도착했다. 총재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혼자서 문 쪽으로 갔다.
문이 열렸다. SGI 회장이 양손을 크게 벌리고 다가와 총재의 양 팔을 밑에서 잡고 부축했다.
“‘세계의 보배’입니다. 제가 총재의 투쟁을 세계에 영원히 남기겠습니다.”
총재가 이렇게 답했다.
“보고 싶은 사람과 드디어 만났습니다. SGI 회장은 이 세기를 결정한 분입니다. 싸웁시다. 둘이 힘을 모아 인류의 역사를 바꿉시다!”
총재는 1898년에 태어났다. 1900년에 태어난 도다 조세이(戶田城聖) 제2대 회장과 거의 같은 시대다.
SGI 회장은 총재에게서 은사의 모습을 보았다. 총재를 보자마자 “불가사의한 분이다. 도다 선생님이 맞아주시는 듯한 기분이었다” 하고 말했다.
이틀 뒤인 2월 11일, 제2대 도다 회장의 탄생일에 은사의 생애를 쓴 소설 ‘인간혁명’ 총 12권을 완결하고 ‘후기’를 썼다.
이튿날인 12일, SGI 회장은 문학아카데미의 권위 있는 ‘재외회원’에 취임했다.
◇
브라질문학아카데미 본관. 1897년 창립. 세계적인 작가 마차도 데 아시스 씨가 초대 총재를 역임. 국내회원 40명과 재외회원 20명으로 구성되어 프랑스 학사원과 나란히 격식과 전통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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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문학아카데미는 1897년에 창립한 전통을 자랑하는, 남미에서 으뜸가는 지성의 전당이다. 아타이드 총재가 1959년에 취임한 뒤, 30년 동안 이끌었다.
톨스토이와 에밀 졸라 그리고 앙드레 말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재외회원’은 현 회원의 추천으로 뽑는데, 총재는 34년 만에 처음으로 SGI 회장을 추천했다.
브라질 대표로 유엔에서 ‘세계 인권선언’의 기초(起草)에 힘쓴 총재는 기초자인 프랑스의 르네 카생 박사(노벨 평화상 수상자)를 통해 SGI 회장을 알았다.
토인비 대담 등 저작을 독파하는 속에 그의 평화와 교육 사상에 깊이 공감했다.
총재는 ‘만나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신문 기고란에도 SGI 회장에 관해 썼다.
1992년 1월,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브라질SGI의 ‘에코문화제’에 초대받은 총재가 자리에서 몸을 내밀어 연기를 바라보았다.
“연기하는 청년은 모두 리우데자네이루 출신인가요” 하고 몇 번이나 물었다. 스승을 구도해 열연하는 모습을 보고 SGI 회장의 철학은 관념이 아니라 실제 청년 안에 맥동하고 있다고 새롭게 깨달았다.
총재는 30대와 40대 시절, 독재정권을 정면으로 비판해 세 번 투옥되고 3년 동안 해외로 추방당했다.
70년 동안 쓴 기고는 5만회에 이른다. 텔레비전에는 20년 동안, 라디오에는 30년 동안 매주 출연해 인권을 옹호하는 ‘소리의 탄환’을 계속 발사했다.
그 이름은 강인한 ‘리버럴리스트(자유주의자)’로 총재와 SGI 회장이 나눈 대담집을 번역한 니노미야 마사토 상파울루대학교 교수가 ‘브라질에서는 전설적인 인물’이라고 말했다.
말을 할 때는 특히 신중했다. SGI 회장과 아직 만나지 않았는데도 SGI의 진행 요원에게 일부러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이케다 SGI 회장의 위대함을 알고 있습니다.”
“민중을 위해 싸우고 끝까지 괴로워한 사람만이 회장과 회장을 뒷받침한 가네코 여사의 심정을 알 수 있습니다” “박해를 받은 사람만이 이케다 SGI 회장의 가치를 압니다.”
총재는 SGI 회장이 리우데자네이루에 도착하자 날마다 신문에 SGI 회장의 업적을 상찬하는 기사를 실었다.
12일에 열린 취임식 때는 ‘다가올 천년’을 내다보며 인사했다.
“한 사람의 지도자가 길을 열면 모두 그 뒤를 따릅니다.”
“미래는 저절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인간이 스스로 열어야 합니다. 그중 한 사람이 이케다 SGI 회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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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대담집을 발간하려고 구술필기 등으로 계속해서 대화하자고 합의했다.
그러나 총재는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총재의비서는 솔직히 “구술필기도, 타자기로 원고를 치는 일도 힘듭니다. 요즘은 웃지도 않으십니다” 하고 말했다.
1993년 6월, SGI 회장이 총재에게 SGI의 진행 요원을 통해 “회복할 때까지 얼마가 걸리더라도 기다리겠습니다” 하는 전언을 보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총재가 웃었다.
“감사합니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시간이 없습니다. 바로 시작합시다. 말하고 또 말하고 끝까지 말하겠습니다. 인류의 미래를 위해, 21세기를 위해 이어서 대화합시다!”
그때부터 매주 토요일 리우데자네이루에 있는 총재 자택에서 구술했다. 총재는 SGI 회장이 편지로 한 질문에 매번 두 시간씩 사색을 거듭하면서 꼼짝도 하지 않고 계속 이야기했다.
SGI 회장은 그때마다 꽃다발을 보냈다. 총재는 늘 그것을 응접실의 순은으로 만든 꽃병에 꽂아 바라보았다.
마지막 ‘대담’은 8월 21일이었다. 주제는 ‘인류의 투사 만델라에게 배운다’였다.
그 후 6일 뒤, 총재가 입원했다. “나는 꼭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빨리 나가고 싶습니다. 나는 이케다 SGI 회장과 계속 대담해야 합니다” 하고 의사와 간호사에게 여러 번 말했다.
총재는 1993년 9월 13일, 서거했다. SGI 회장은 비보를 듣고 곧바로 조전(弔電)을 보냈다.
10월에는 문학아카데미의 강한 요청으로 두 사람의 만남을 그린 유채화 ‘아타이드 총재’를 문학아카데미에 보냈다.
총재의 딸 라우라 씨가 총재의 유품인 볼펜을 보냈다. 총재의 저서에는 총재가 직접 쓴 “커다란 존경의 마음을 담아” 라는 헌사가 씌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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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SGI 회장은 이듬해 8월, 나가노연수원에서 딸 라우라 씨와 사위 시세로 산드로니 씨 그리고 손자 로베르트 아타이드 씨를 맞았다.
“아버지가 날마다 사용하던 펜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라우라 씨가 SGI 회장에게 총재의 ‘무기’ 금색 볼펜을 건넸다. 우정은 가족과 아카데미 후계자들에게 이어지고 있다.
대담집 ‘21세기의 인권을 말한다’는 1995년에 일본어판, 2000년에 포르투갈어판을 발간했다.
대담은 미래를 내다본 총재의 ‘유언’으로 끝맺었다.
“이케다 SGI 회장의 존재는 인류 역사에 남아 그 운동이 시대와 함께 넓혀질 것입니다. 그리고 21세기는 새로운 휴머니즘이 실현된 시대로, 인류 역사에 깊이 새겨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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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우스트레제실로 드 아타이드
브라질문학아카데미 총재다. 1898년 9월, 브라질 페르남부쿠주에서 태어났다. 1993년 9월, 94세에 서거했다.
리우데자네이루연방대학교를 졸업한 뒤, 신문기자가 되었다. 1932년, 헌법을 제정하겠다는 약속을 어긴 바르가스 대통령에게 항의해 3년 동안 해외로 추방당하고 세번 투옥되었다.
1948년, 유엔총회 직속 제3위원회 위원 중 한 사람으로 ‘세계인권선언’의 기초에 힘썼다. 만년, 세계인권선언에 기초한 공적을 상찬해 프랑스의 법률가 르네 카생 박사가 노벨 평화상을 수상할 때 “이 명예로운 노벨상을 브라질의 사상가 아타이드 총재와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하고 말했다.
저서로는 ‘젊은 역사’와 ‘수국이 필 무렵’ 등이 있다.
공명하는 혼 (17) 브라질 문학아카데미아타이드 총재.hwp
첫댓글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