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화. 추락하는 건 날개가 있다.
신성한 매실 758
최림은 이를 악물고 그때 상황을 밝혔다.
“아주 오래전, 지리산 시골 마을의 중년 부부를 무참하게 살해했지.”
“…….”
“그것도 겨우 다섯 살 난 아들이 보는 앞에서.”
놈은 최림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선량의 두 분의 이마에 ‘666’이라는 짐승의 표식도 새겼지.”
그제야 놈은 기억이 난 모양이었다.
“오, 그래, 기억이 나. 그때 살려준 꼬맹이가 바로 너던가?”
“그렇다. 이 악령아!”
우하하하하하, 어하하하하하하하하!!!
놈이 또 한바탕 기괴하게 웃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넌 내 관할에 있던 네 신도 부부를 무참히 살해했어.”
“누구? 나를 배신한 그 얼빠진 부부?”
“그렇다.”
“그런데 넌 그 부부와 어떤 사인데?”
“그분들은 내가 사랑하는 여자의 부모님이다.”
“그래? 그렇다면 네가 수애의 애인이란 말이냐?”
“닥쳐!”
최림은 바로 권총을 뽑았다.
여차하면 체포고 뭐고, 쏘아 죽일 심산이었다.
그런데 놈은 또 웃었다.
“병신, 선수끼리 왜 그래? 그따위 총으로 날 죽일 수 있을 것 같아?”
놈의 말에 화가 난 최림은 곧바로 장전했다.
철컥!
“두 손을 위로 하고 엎드려라. 안 그러면 발포하겠다.”
“미친놈.”
놈이 불복하자 격분한 최림은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탕!
그런데 놈의 말이 맞았다.
전두태는 이리저리 몸을 움직였다.
당연히 총알은 빗나갔다.
하지만 네 번째 총알은 정확하게 놈의 이마 쪽으로 날아갔다.
헐!
순간 놈의 형상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리곤 곧 사람 형상으로 나타났다.
‘완전체라 총알이 소용없구나.’
최림은 문득 무림 거사가 한 말이 떠올랐다.
‘악령을 잡으려면 멱을 따든지, 대가리를 격파하라.’
그렇게 피할 수 없는 싸움이 시작되었다.
최림은 윗옷을 벗었다.
그리곤 손에 경찰봉을 쥔 채로 공격할 기회를 노리며 반 바퀴를 돌았다.
그리곤 다시 한 바퀴를 돌았다.
놈도 어디선가 구했는지 각목을 쥐고 있었다.
태양이 아득하게 내리쬐나 싶더니 이내 구름이 하늘을 가렸다.
최림이 기합 소리와 함께 재빠르게 놈을 공격했다.
합!
최림이 놈의 어깨를 후려쳤으나, 빗맞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놈이 최림의 어깨를 타격했다.
퍽! 악!
이에 최림이 비명을 지르며 한발 물러섰다.
다시 최림이 온 힘을 다해 다시 공격했다.
놈의 각목이 부러지면서 율도는 기회를 잡았다.
놈이 뒤로 물러서는 척 했다.
그러다 율도를 향해 잽싸게 돌진하여 오른손으로 턱을 후려쳤다.
헉!
휘청하던 최림이 경찰봉을 놓치지 않고 뒷걸음쳤다.
그러자 놈은 오른쪽 다리로 최림의 다리를 걸었다.
오랜 싸움을 경험한 달인다운 기술이었다.
그리곤 스프링이 튀듯 유연하게 최림의 공격 거리 밖으로 빠져나갔다.
하지만 최림은 그 틈을 이용해 경찰봉을 놈에게 던지면서 몸을 날렸다.
공중에 붕 뜬 몸의 무게를 이용하여 그대로 놈의 면상에 머리를 박은 것이다. ‘퍽’, 하는 육중한 소리와 함께 놈이 뒤로 자빠졌다.
‘이때다!’
최림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달려들어 두 손으로 놈의 목을 졸랐다.
“죽어!”
하지만 놈은 싸움의 고수였다.
벌떡!
놈은 순간적으로 엉덩이 반동을 이용하여 최림의 손에서 벗어났다.
다시 싸움은 원위치였다.
최림과 놈은 서로 공격할 기회를 노리며 반 바퀴를 돌았다.
그리곤 다시 한 바퀴를 돌았다.
최림이 주먹과 발로 공격했지만, 놈은 슬쩍슬쩍 비키며 물러서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최림의 공격 리듬이 흐트러졌다.
순간 놈은 정확한 발차기로 최림의 복부를 찼다.
이에 최림은 마지막 승부를 내기로 마음먹었다.
무림 거사에서 배운 순간이동과 장력이었다.
그동안 별로 써먹지 못한 기술이었지만, 오늘은 왠지 가능할 것 같았다.
최림은 긴 호흡 끝에 뒷발로 땅을 차며 날아오를 준비를 마쳤다.
순식간이었다.
하늘로 날아오른 최림은 놈의 뒤에 서 있었다.
‘헉! 뭐야?’
그리곤 장력을 이용하여 놈의 등을 쳤다.
퍽!
그러자 놈은 옥상 펜스까지 날아갔다.
이게 결정적인 한 방이었다.
이제 놈은 피를 토하며 건물 벽 쪽에 널브러져 있었다.
최림은 얼른 단도를 꺼냈다.
이참에 끝장을 내고 싶었다.
상부엔 정당방위라고 주장하면 되었다.
놈은 체포 대상이 아니라, 멸절 대상이었다.
쓰윽!
칼날이 태양에 비쳐 반짝거렸다.
그런데 그때였다.
하늘에서 시끄러운 굉음과 함께 헬기가 나타났다.
크렁크렁크렁, 두두두두두두.
거기에다 헬기에서 무차별 사격도 진행되었다.
드르럭, 드르럭, 드르럭.
‘이런 하필 이 순간에.’
최림은 별수 없이 옥상 출입구 쪽으로 몸을 피했다.
마침, 계단으로 미오가 올라오고 있었다.
“어떻게 되었어? 최림.”
“다 잡았는데, 헬기가 왔어. 사격이 심해.”
“무슨 소리야? 전두태는 무조건 잡아야지.”
미오는 사격이 진행됨에도 밖으로 튀어 나갔다.
그리곤 놈을 태워 공중으로 뜨는 헬기에 밧줄을 걸었다.
“안돼! 위험해!”
“시끄러워, 빨리 이거나 당겨.”
미오가 밧줄 끝을 주자 최림은 계단 난간에 줄을 걸었다.
그 와중에도 사격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미오 역시 선수였다.
이리저리 몸을 돌려 사격을 피하고 있었다.
“최림! 줄을 당겨!”
최림은 죽을힘을 다해 줄을 당겼다.
헬기가 굉음을 내며 위로 솟구쳤으나 역시 밧줄의 힘은 세었다.
공중에서 빙빙 돌기만 할 뿐 상승하지 못하였다.
크렁크렁크렁, 크러렁.
그런데 갑자기 줄을 당기던 최림이 뒤로 자빠졌다.
놈이 불 장풍으로 줄을 끊어버린 것이다.
순식간에 줄을 타고 오는 불 장풍으로 최림은 난간 밑으로 떨어졌다.
“최림, 괜찮아?”
그러나 최림의 귀엔 미오의 외침이 들리지 않았다.
오롯이 그의 귀엔 놈의 웃음소리만 들렸다.
우하하하하하, 어하하하하하하하하!!!
그런데 반전이었다.
최림이 24층으로 떨어지자, 헬기는 창문 쪽으로 하강해 있었다.
행여 남은 무리를 마저 태워 가려는 속셈인 것 같았다.
하지만 24층에 있던 무리는 B조에 의해 모조리 제거된 상태였다.
번뜩 정신이 든 최림은 무작정 창가로 뛰었다.
그제야 헬기에서 사격하던 놈의 부하가 그 모습을 보았다.
“저놈은 뭐야? 뭐야?”
최림은 바로 창문을 깨뜨리며 공중을 날았다.
그리곤 가까스로 헬기에 매달린 남은 줄을 잡았다.
그걸 본 놈의 부하가 최림을 정조준했다.
하지만 뒤따라온 미오가 칼을 던져버렸다.
으아악!
놈의 부하는 곧바로 24층 아래로 추락했다.
전두태가 당황하였는지, 최림이 잡은 줄을 재차 끊으려 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역시 미오가 미오했다.
깨진 창문으로 미오가 붕, 하고 나르더니 바로 놈의 손을 잘라버렸다.
허걱!
그리곤 낙하하면서 최림의 뒷다리를 잡았다.
헬기 안에선 전두태가 끊어진 손목 때문에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었다.
그러자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새 떼들이 주위로 모여들었다.
여전히 최림과 미오는 헬기 밑에 대롱대롱 달려 매우 위태한 상황이었다.
“최림! 힘을 내! 얼른 헬기 안으로 들어가.”
하지만 최림은 이미 부상당한 몸이었다.
몇 번이나 반동으로 헬기 안으로 들어가고자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휘리릭.
할 수 없이 미오가 난기류를 이용해 반동 끝에 헬기 난간을 잡았다.
그런데 여기까지였다.
헬기 조종사가 둘을 떨어뜨리기 위해 건물 밑으로 낙하하기 시작했다.
그때 몰려든 새 떼들과 충돌하기 시작했다.
찍찍!
퍽!
미오가 먼저 새들과 충돌하여 땅으로 낙하했다.
대략 15층 높이였다.
그 모습을 본 옥상의 B조 요원들이 스크럼을 짰다.
그리곤 바로 미오 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러더니 지상 3층 높이에서 그들은 극적으로 미오를 구출하였다.
이 모습을 본 경찰과 시민들은 입이 쫙, 하고 벌어졌다.
문제는 최림이었다.
아직 남은 줄에 의지하여 헬기가 가는 대로 매달려 있었다.
아까 전두태의 불 장풍으로 난간에 떨어질 때 상처도 깊은 상태였다.
그런데도 최림이 이를 악물고 있는 건 오로지 놈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아까 새 떼들이 헬기 프로펠라에도 들어간 모양이었다.
헬기 소리가 굉음을 내며 자꾸 아래로 추락하고 있었다.
이 틈을 이용하여 최림은 반동으로 급기야 헬기 안으로 들어갈 수가 있었다.
전두태가 잘린 손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다가 깜짝 놀랐다.
“살려줘. 살려주면 이 세상의 반을 줄게.”
놈은 어느새 비굴하게 변해있었다.
“아니, 필요 없어. 난 네놈의 목숨을 원해.”
그때 다급한 헬기 조종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추락, 추락 위험!”
과연 밖을 보니 헬기가 밑으로 급강하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곳이 한강과 가깝다는 거였다.
헬기 조종사는 있는 힘을 다해 헬기를 강 쪽으로 몰아갔다.
그런 와중에 최림은 있는 힘을 다해 놈의 목을 졸랐다.
그런데 그것도 거기까지였다.
쾅, 콰쾅!
헬기가 강으로 추락하면서 최림과 전두태는 물 밖으로 튕겨 나갔다.
최림은 깊은 물 속으로 자꾸만 가라앉았다.
부우우웅, 부웅우우웅 ~.
그런데 비몽사몽간에 이번엔 수상 보트 엔진소리가 마구 들렸다.
가까스로 최림이 물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그땐 이미 놈이 수상 보트를 타고 사라진 이후였다.
우하하하하하, 어하하하하하하하하!!!
잠시 뒤, 경찰 보트 소리가 들릴 때 최림은 의식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