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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사(Histoire de la philosophie, 1926-1932)[3권 합본 1938]
브레이어(Emile Bréhier, 1876—1952)
제7권, 1850년후 19세기, 20세기,788-1021
제10장 관념론 L'idéalisme 914
헤겔에 영감을 받아 이 당시에 다시 태어난 관념론은 앵글로색슨 국가에서는 브래들리(Bradley, 1846-1924)와 보산케트(Bosanquet, 1848-1923)의 관념론이, 이탈리아에서는 크로체(Croce, 1866-1952)의 관념론이 있다. 여기에 [프랑스에서] 아믈랭(Hamelin, 1856-1907)을 덧보태야 한다. 이 관념론은 19세기 후반의 부정의 철학들에 대해 행동의 학설들[이 책 제9장]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였다.
1절. 앵글로색슨의 관념론: 브래들리, 보산케, 로이스 - L'idéalisme angls-saxon: Bradley, Bosanquet, Royce 914
그린(Thomas Hill Green, 1836-1882)에게서는 칸트의 통각의 종합적 통일이 형이상학적 원리가 되었고, 그리고 인식의 법칙, 존재의 법칙이 되었다. 옥스퍼드대학의 교수인 브래들리(Francis Herbert Bradley, 1846-1924)는 좀 복잡하다. 그는 자기 자신의 학설을 관념론이라 불리기를 거부했다. 그의 학설에 두 가지 주제가 지배한다: 하나는 절대적 실재성을 정의하기에는 모든 관계들의 불충분하다는 것인데, 즉 실체, 원인 등과 같은 범주들 또는 개념들의 불충분성이다. 다른 한편, 절대자(l'Absolu)는 감각 속에 사물들과 직접적인 접촉에 의해 도달된다는 것이다. 그 감각은 불가분이고 변화된 경험이며, 또한 하나이며 구체적으로 무한히 풍요로운 경험이라는 것인데, 사람들이 이 경험을 마치 조각들로 구성된 것과 같은 잡다한 것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 두 주제는 가끔은 복합된 방식으로 정의되기도 하고 또 서로 얽혀있다.
이 첫째 주제에 증명에는 용어(une notion)의 착각적 특성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 때 용어란, 흄(Hume, 1711-1776)과 칸트(Kant, 1724-1804)의 비판주의 이래로 거의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으로 보여졌지만, 그것은 외적 관계(relation externe)의 용어일 뿐이다. 인과성의 관계뿐만 아니라 다른 관계들처럼 공간적이고 시간적 관계도, 마치 일종의 거푸집처럼, 자체적으로 있다[현존한다]. 이런 관계는 이 관계들이 연관을 맺는 항들과는 외적으로 자체적으로 있다[현존한다]. 브래들리에 있어서는 내적 관계들만이 있다. 말하자면 그는 라이프니쯔(Leibniz, 1646-1716)의 관점으로 되돌아가서, 두 항들 사이에 모든 연관은 그 항들 자체 안에서 항들의 존재이유와 근거를 갖는다. [모나드들처럼] 그리고 만일 사람들이 그에게 기하학적 공간의 용어를 반대한다면, 즉 항들의 무차별적인 단순 병치일 뿐이라고 반대한다면, 그는 대꾸하기를, 이렇게 이해된 공간은 순수추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 순수추상은 실재성이 이루어지게 되는 내적 연관들의 직조[짜임]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외적 관계들에 대한 부정은 관계라는 관념 자체에 어떤 여지를 남겼는가? 사람들은 우선 그것에[외적 관계 부정] 대해 의심할 수 있을 것이고, 이때 사람들은 첫째 주제에서 둘째 주제로 옮겨가는 것을 본다. 흄이 말했듯이 관계들이란 없다. 따라서 실재성은 따로 떨어진 상태들의 부스러기로 되어버린다. 브래들리가 말하기를 외적 관계들이란 없다. 따라서 실재성은 어떤 전체적 응집(cohérent, 일관성)이며, 하나(un)이며, 불가분이다. 이것은 자료와 일치하고 또한 느껴지고 느끼는 경험과 일치한다. 이 경험은 주체와 객체 사이의 관계의 경험이 아니라 서술될 수 없을 정도이고 설명할 수 없을 정도의 사실들로서의 대상의 어떤 현전(présence)이다.
이 자료 즉 경험의 무매개성은 외적 관계들에 대한 거부의 동기이라는 것, 이것은 우선은 분명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이 무매개적 경험을 겪을 때, 그것은 훨씬 덜 분명하게 된다. 이 무매개적 경험이 한편으로, 정신으로 향하는 헤겔의 변증법처럼, 경험자체로 향하는 변증법의 끝에 위치한다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 어떤 의미에서는 새로운 변증법의 출발점으로 쓰인다는 것이다. 우선 첫째 관점을 보자. 개념적 규정성(détermination), 즉 범주는 어떤 시각에서는 실재적인 것의 거짓 결정성이고, 다른 시각에서는 불완전한 결정성이다. 브래들리에 따르면, 모든 판단은 어떤 개념에 의한 실재성의 - 어떤 무엇(what)에 의한 저것(that)의 - 규정성이다. 그런데 이 규정성은 항상 실재성을 불충전적(inadéquate)으로 제시된다. 그리고 이 규정성은 완전하게 되기를 요구한다. 한 판단은 그 진리가 의존하는 모든 조건들을 포함하는 경우에만 진리일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점점 더 진리에 접근함에 따라, 모든 조건들이 총제적 경험이라는 것을 알게될 것이다. 경험 속에서만이 이타성(l’altérité)은 사라진다. 사유는 이타성을 항상 경험을 흡수하지도 못하면서 경험 앞에서 발견한다. 경험 속에서 거짓 규정성들은 일종의 변형방식에 의해 자신들의 진리를 가질 것이다. 따라서 현상과 실재 사이에 조각과 일체(le total)의 차이가 있다. 이런 조건에서 일체를 조각의 집합으로 생각하지 않아야 하며, 그러나 조각화 작업은 표면에 남아있는 추론적 이유의 출구로서 생각해야 한다. (44SKH)
그러나 이 판단의 이론은 보기에도 헤겔 사유에 물들어 있었다. 그 이론은 사유를 정신(un Geist)에로, 즉 구체적이고 보편적 실재성에로 향하게 한다. 따라서 그 이론은 실재성을 개별적인 구체적 경험으로 정의하는 주제에 부딪히게 되지 않는가? 왜냐하면, 그러한 경험은 유한하고, 실제적인 것으로 나타날 수 없다. 그 증거는 변화이며, 변화 속에서 우리가 경험을 계속적으로 잡다한 특성들로 가지게 됨을 보게 된다. 브래들리에 따르면, 사실의 변화는 불완전함의 징후이며, 그런 자격을 감안하면 개념들의 변증법이다. 이 총체적 실재성은 각각의 개인적 경험이 구성하는 “유한한 중심들”(centres finis) 그 위에 있지 않는가? 그러나 만일 사정이 그러하다면, 브래들리의 사상은 무엇인가? [그의 사상은] 실재를 진솔한 자료(un donné authentique)라고 정의하는 경험철학인가? 또는 실재를 모든 자료들 그 위에 자리차지 하게 하는 헤겔의 변증법인가?
헤겔적인 브래들리 사상은 일종의 변신론을, 그리고 가장 전통적인 것들을, 선과 악의 정당화를, 개별자를, 필요로 한다고 느끼는데, 이 사상은 이것들을 한 전체의 부분들로서 고려하며, 단지 이 부분들을 전체와 따로 구별하지도 않고 또 이 부분들을 추상적으로 고려하지도 않는다면, 이 부분들을 이것들이 풍부하게 한다. 그런데 브래들리는 절대자를 가지고 개체보다 더, 게다가 도덕보다 더, 전체적인 실재성을 만든다. 그러나 의심할 바 없이, 경험에 관한 브래들리적인 것(브래들리 분파)이란? 자아와 자아의 체계 속에서 “우리가 수유하는 가장 고양된 것”을 보면서, 하나의 유일한 시간에 매여 있지 않은 각 개인에게 개별적 시간들의 관념으로 기울어지게 하는 것인가? 또는 다양한 공간들의 관념으로 기울어지게 하는 것인가? 오히려 그렇지 않으면 몇몇 관념론 전통, 플로티누스 전통, 스피노자 전통, 헤겔 전통에 따라서, 이 분파도 절대자를 모든 개별적 규정작업들을 풍부하게 한다는 것만을 인정한다고, 그리고 또한 그 절대자가 영원한 양태로 변전한다고 말해야 하는가? 동일한 세대의 영국의 한 헤겔주의자인 라우리(Laurie, 1829–1909)은 종합(Synthetica 1906)을 썼는데, 그는 유한한 자아들 안에서 실재성이 자기 스스로 현실화 작용을 한다는 점에서 신적 실재성을 보았고, [따라서] 자연은 이 계시[신적 실재성의 자기 표현 또는 현시]의 매개(médium)이다.
보산케트(Bernard Bosanquet, 1848-1923)는 영국의 성 앤드류 대학 교수였다. (그의 작품으로는 논리학(Logic, 1888), 개인의 가치와 운명(The Value and Destiny of the Individual 1913, 종교란 무엇인가? (What Religion is, 1920) 등이 있다. 그의 장점은 특히 경험이 브래들리의 것과 같은 관념론에 검증을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을 돋보이게 하려 했다는 것이다. 즉 그 경험이란, 사회와 정치에서 공통의 삶에서 나온 경험, 물리적 공간의 통일성과 영속성의 경험[실험], 예술의 가치들이 우리 자신의 경험을 채워준다는 점에서 그 예술세계와 같은 다른 세계의 경험 등이다. 매우 많은 중요한 경험들, 특히 미학적이고 종교적인 경험들에 공통하는 요소가 있는데. 그것은 정신을 만족하게 하는 것이고, 나아가 이상적구축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실험된 실재성에 의해 정신이 모순을 피하게 하는 것이다. 보산케트에게서는 순수 사유도, 순수 논리도, 일반 술어일 뿐인 보편도 없다. 논리학은 사물들의 구조에 대한 인식이며, 그 인식은 사물들을 사유할 수 있게 하는 것이고, 보편(l'universel)이란 “세부 사항을 포함하는 한 체계의 조형적 단위(l'unité plastique)”이다.
절대주의의 기원은 개인주의에 대한 반동에서 온 것이다. 브래들리에서 이 반동은 플로티누스처럼 개인도, 나아가 개인의 시대적 삶과 일상적 노력까지도, 게다가 진실한 실재성 전체도 부인하기에 이른다. 플로티누스는 영원한 지성[nous] 속에서만 개인의 진실한 실재성을 보았고, 실천적 노력은 헛되이 영원한 지성을 모방하려 시도했다. 그러면 절대주의는 개인의 고통들, 투쟁들, 행동들 등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모든 우주적 관점과 양립할 수 없는가? 사변적 사유가 요청하는 것은 실천적 삶의 확실함을 단죄하는가? 여기서 [사변적 사유와 실천적 삶] 이 양자의 통합을 미국에서 조시아 로이스(Josiah Royce, 1855-1916)가 관념론을 통해 시도했다. [그는 하버드대 교수 였다] (그의 작품으로는 근대철학의 정신(The Spirit of modern philosophy, 1896), 세계와 개인(The World and the Individual (1899-1901) 등이 있다) 로이스가 지닌 근본적 주제는 미국의 종교적 정신(mentalité)의 매우 특징적인 생각이다. 이 생각은 “자유로운 인간이 스스로 바르고 진보적이라고 여기는 그 세계는, 인간 자신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신의 세계이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완전히 개별화되었다는 점에서, 그 생각은 실천적 가치를 지니며, 어떤 다른 생각과 닮지 않았다. 일반성은 결함의 기호(signe)이다. 만일 절대적 자아가 각자가 자유롭게 자신들의 숙명을 만드는 다양한 개인들에 의해 표현되지 않는다면, 그 절대적 자아는 결핍의 일반성일 것이다. 로이스는 일원론자인데, 왜냐하면 모든 사유는 일원론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대상을 생각한다는 것, 그것은 대상의 이미지를 갖는 것이다. 따라서 대상은 사유의 외부에 남아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유는 이미지 속에 있지 않다. 사유는 대상의 의미화하는[기호화하는] 판단 속에 있거나 또는 그것을 의미하는 판단 속에 있다. 이 판단이 가치가 있다는 것은 만일 우리가 우리들 자신보다 더 완전한 사유를 가정하고 그 대상을 소유하는 경우이다. 그 완전한 사유에서는 의문도 의심도 더 이상 없다는 경우이다. 또 진리가 있다는 것은 한 유일한 자아(un seul moi)가 모든 사유와 모든 대상을 포함하는 경우에서만 그러하다. 이 절대자아의 생명은 여러 개별자들의 인식이며, 이 여러 개별자들 속에서 그 자아는 스스로를 실현한다. 따라서 이 절대자는 항상 덜 채워져 있다. (44RLD)
로이스는 자기의 시도에서 성공했던가? 그 시도는 아마도 그의 선배들의 사상과 이 선배들 모두에게 선동자로서 헤겔의 사상에서 나타나는 것과 별반 멀리 있지 않았을 것이다. 이들 모든 사람들은 풍요로운 우주를 생각하고자 원했다고, 메마르고 추상적이지 않은 그 사상은 우주를 구체적 실재성 속에서 정당화하려했다. 핼던(Richard Burdon Haldane, 1st Viscount Haldane, 1856-1928)은 [정치 인물이기도 하고] 영국 고위직 인사로서 알려져 있는데, 실재성으로 진로(The Pathway to reality, 1903)를 쓰기도 했다. 일반 사람들은 핼던같은 관념론자에게서 근본적인 생각[관념]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 관념에서 인식은 한 실체와 다른 실체의 관계가 아니라, 오히려 근본적 실재성이다. 근본적 실재성이라 할 때 그 조건은 다음과 같은데, 인식이란 “논리적 일반성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우리에게 의미작용으로 느껴진 것으로 주어진 모든 것”이고, 이런 인식을 통해 이해되는 조건을 말한다.
버밍험 대학 교수인 뮈르해드(John Henry Muirhead, 1855-1940)는 (당대 영국 철학(Contemporary british philosphy, 1924)을 썼다. 그는 브래들리 철학의 원리들을 수용하였고, 공격할 채비가 되어 있는 브래들이 철학이 유한자로부터 분리된 실재성을 부인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철학의 진보란 유한자의 긍정적 가치를 증명하기를 탐구하는 것으로 보았다.
[영국 도덕철학자] 베일리(James Black Baillie 1872-1940)는 경험의 관념적 구축(The idealistic construction of experience 1906)을 썼는데, 그가 서로 서로 환원할 수 없는 수 많은 경험들을 인정할 때, [앞과] 매우 유사한(analogue) 선입견을 가졌다. 즉 감각적 경험과 같이, 몇몇 경험들은 거의 완성된 것처럼 나타나고, 과학적 경험과 같은 다른 경험들은 증가하고 있고, 마찬가지로 개인도 경험에 의해 증가한다. 그런데 그 경험들[감각적 경험과 과학적 경험]에 의해서 개인은 완성되기도 덜 완성되기도 하는 점에서, 개인은 그것들에게 매우 다른 가치를 부여한다. 따라서 통일성을 향한 노력은 조건상으로 큰 변이[변종]를 겪는다. (44RLE)
구체적 개인의 의미는 결국에는 구체적 보편의 이론에 대립된다. 진리의 본성(The Nature of Truth, 1906)을 쓴 [영국 관념론 철학자] 죠아킴(Harold Joachim 1868-1938)이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고백한다: 전체이며 정합적인 쩔대자가 자기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하여, 어떻게 우리의 인식과 같은 유한한 인식을 요구하는 지. 여기서 우리의 인식은 불완전한 논리적 체계이며, 무엇(what)에 의해 저것(that)의 불안정된 규정이며, 우리 자신의 인식은 “여행하는 형용사”(un adjectif voyageur)이다.
맥타거트(John McTaggart 1866-1925)는 [영국 형이상학적 관념론자, 헤겔 전공자이며] 현존의 본성(The Nature of Existence, 1921, 1927(2권)을 썼다. 그는 심지어 헤겔주의 철학에 개인주의적 해석을 부여하기에 이르렀다. 그에 있어서는 실체들만이 자아들(des moi), 즉 자아의 부분들 또는 자아의 그룹들이다. 밀(Mill, 1806-1873)과 제임스(James, 1842-1910)에서처럼 신 그 자체는, 한정된 권능을 지닌 유한한 존재이다. 맥타거트에게서 관념론이란 학설이라기보다 훨씬 더 나아간 방법론이라고 고집하는 것 같다. 다음 두 경험적 전제들로부터, 즉 ‘어떤 것이 존재 한다, 또 어떤 것은 차별화되어(différencié) 있다는 두 전제로부터, 그는 모든 실재성의 범주들을 연역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위슨(George Holmes Howison 1834-1916)은 [미국 철학자, 미국에 헤겔 철학 도입한 자] 진화의 한계들(The Limits of Evolution, 1901)을 썼는데, 여기서 그는 쩔대자(Absolu) 속에서 특이한 자아보다는 자아의 공동체성(communauté)을 보았고, 그래서 솔직하게 다원론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그는 관념론자로서 또 칸트주의자로서 남았다. 즉 모든 현존(existence 존재)은 정신들의[개인들의] 현존으로 환원되고, 자연은 정신들의 공동적 현존으로 존재할 뿐이며, 또한 자연이 지성인들(les esprits)의 사회에 공통적이기 때문에 객관적이다. 그 사회는 어떤 씬(Dieu)의 품행 아래서 합리적 이상에 의해 움직이며, 그 씬은 절대주의의 관념론과 단호히 결별한 많은 이념들처럼 효과인으로서가 아니라 목적인으로써 작동한다.
이 지성인들(les esprits)의 사회의 이념은 [미국 철학자, 심리학자인] 래드(George Trumbull Ladd, 1842-1921)에서도 발견되고, 갤러웨이(Galloway, 1861–1933)도 또한 세계 안에서 일련의 위계적 모나드들 계열을 본다. 래드는 실재성의 이론(A Theory of Reality 1899)을, 갤러웨이는 종교 철학(Philosophy of Religion 1914)를 썼다. 유사한 특징이 미국에서 호킹(William Ernest Hocking, 1873-1966)에게서도 발견된다. 그는 인간경험에서 신의 의미(The Meaning of God in Human Experience, 1912)와 인간 자연(본성)과 그 자연(본성)의 재건(Human Nature and its Remaking 1918)을 썼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사회적 실재론”도, 인식의 필연성을 부여하기 위하여, 나의[자신의] 정신과 다른 정신과 관계의 필연성 위에 정초하였다. 이 다른 정신은 모든 사물을 인식하고 또한 자연에 독립적이며, 그리고 그 정신에 의해서, 나는 나와 유사한 지성인들[정신들]과 관계 맺을 수 있다. 개인들의 독립성, 인식 속에서 이원성, 시간적 과정의 실재성, 시간 속에서 진화하는 신 그 자체, 이러한 모든 것은 영국에서는 프링글 패티슨(Andrew Seth Pringle-Pattison, 1856-1931)에 귀착한다. 그는 헤겔주의와 인격성(Hegelianism and Personality 1887), 신의 관념(The Idea of God in the Light of Recent Philosophy (1917)을 썼는데, 그는 헤겔주의를 비판하였지만 그래도 경험에 대한 브래들리의 생각을 포기하지 않았다. 브래들리의 생각이란 모든 사물을 감싸면서, 이리하여 우리들의 경험에 대한 모순들을 해결한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영국에서 그리고 미국에서 특히 1900년 이래로, 사람들은 관념적 절대주의가 개인주의에 대해 항거하면서 그 척도를 넘어서는 데, 또 그 관념적 절대주의가 일련의 내적 해소(dissolution interne)의 길을 간다는 데 관여한다. 그러나 첨가해야 할 것은, 이런 파괴가 다른 학설들의 압력 아래서 작동되었다는 것이다. 이 학설들은 실재성의 문제에 보다 오히려 철학의 역할이 정당화했어야 할 몇 몇 인간적 가치들의 문제에 그 학설들의 중점들을 놓았다는 것이다. (44TKG)
이러한 것들이 이미 신앙의 이론들이었다. 이 이론들은 자연주의에 반대되고 동시에 절대주의에 반대된다. 이 두 주의(-isme)는 이론가들의 눈에는 동등한 것이었고, 왜냐하면 이 두 주의는 유한한 존재의 가치를 무화하기 때문이다. [영국 빅토리아 왕조의 계관시인] 테니슨(Alfred Tennyson, 1809-1892)의 시는 틀림없이 과학주의 학설들에게 호감을 갖지 못하는 정신 상태를 퍼트리는데 훨씬 더 많을 일을 했다. 왜냐하면 과학주의 학설은 종교의 신 대신에 비인격적 법칙을 대체했기 때문이다.
[영국 수상을 지내서] 정치가, 외교관로 잘 알려졌으며, [철학자이기도 한] 발포어(Arthur James Balfour, 1848-1930)는 신념의 토대들(The Foundations of Belief, being Notes introductory to the Study of Theology 1895)을 썼으며, 그는 어떻게 자연주의 철학이 인간이 부여한 예술, 도덕, 종교의 가치뿐만 아니라 진리에게 조차도 설명할 수 없는 지를 제시하였다. [저자의 견해로는] 왜냐하면, 진리를 믿는 우리 신념이 자연주의가 진리에게 부여하는 원인들을 갖는다면, 그 원인들(자연선택, 관념연합 등등)은 진리라는 단어에 연결된 객관적 가치를 재거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캠브리지 교수로서 윤리학에 관심이 많았던] 솔리(William Ritchie Sorley 1855-1935)는 자연주의의 윤리에 관하여(On the Ethics of Naturalism, 1885), 도덕가치와 신의 관념(Moral Values and the Idea of God, 1918)를 썼는데, 그가 견해로는 자연이 한 절대자이기는 커녕 우리의 가치들과 동일한 합리적 우주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고 보고, 심지어 자연은 자아를 완전하게 하는 가치들의 발견을 위한 도구일 뿐이라고 본다.
자연주의는 자연으로부터 의식과 정신이 태어나게 한다. 이에 대한 가장 일상적 반박의 하나는, 스토아학파들과 플로티누스에 의해 시작되었는데 다른 한 극단에서 출발하여, 자연적 힘들(les forces naturelles) 에서 정령들과 영혼들을 본다는 것이다. 비판적 관념론과 매우 다른 측면에 있는 이 학설은 자주 영국과 미국에서 현 시대에 자주 주장되었다.
[영국 외과의사이며 작가인] 힌튼(James Hinton, 1822–1875)은 자연 속에 생명(Life in Nature, 1862)을 썼는데, 그는 플로티누스처럼, 물질이 타성이라는 데 대한 확신은 단지 지각의 결함에서 온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예지적(l'intellect) 입장에서 보면, 도처에서 생명을 파악하기 위해서 정신적 인식의 기관들을 재정립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한다. 물질이 타성적이라는 관점(la vision)은 죄로부터 온다. 따라서 사랑이 부족한 곳에서는 물질이 있다.
또 [영국의 철학자이며 논리학자인] 리드(Carveth Read, 1848–1931)교수는 자연의 형이상학(The Metaphysics of Nature, 1905), 인간의 기원(The Origin of Man, 1920(원제: The origin of man and his superstitions and his superstitions)을 썼는데 그에 있어서 연속성의 원리란 범심리주의(le panpsychisme)의 진실한 증가이다. 의식이 기원에서부터 완전한 존재로서 있는 것이 아니었다하더라도, 의식은 태어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영국의 심리학자이며 철학자인 워드(James Ward, 1843-1925)는 당시 영국백과사전(1886, 9판)에 「심리학(Psychology)」 항목을 써서 유명한데, 그의 논조는 관념연합대신에 의지주의적 심리학을 대체하기 위해서 였다. 그는 과학 비판운동과 특히 제븐스(Stanley Jevons) [아마도, 경제학자 논리학자? 1835-1882]의 학설에 의지하여, 기계적 개념들에는 순수하게 가설적이이고 방법적인 특성이 있다고 제시하면서, 자연주의와 싸웠다. 그는 자연주의와 불가지론(Naturalism and Agnosticism, 1899), 종국의 왕국(The Realm of Ends 1911)을 썼다. 그는, 만일 사람들이 범심리주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영혼과 신체의 관계는 해결할 수 없다고 보았다. 신체의 모나드들은 중심 모나드에 하부로 종속되어 있고 또 이들은 중심 모나드들 덕분에 유용하게 되는데, 이것은 마치 시민이 국가의 공공복리에 의해 유용하게 하는 것과 거의 같다. 이런 단자론(monadologie)은 유신론에 이르게 된다. 사람들은 모나드들[시민]과 선의 최종적 승리[국가] 사이의 소통을 확신하기 위해, 신 안에서만 하나의 토대를 발견한다. (44TME)
2절 이탈리아 관념론 L'idéalisme italien 921
이탈리아에서 헤겔의 영향이 전개된 것은 이미 19세기 중반에서 시작되었다. 그 당시에 이런 전개는 이탈리아 해방과 통일을 향한 정치적 운동에 연결되어 있었다. 개인들이 승복해야만 하는 국가, 그 국가의 개념은 전체성이며 최종 목적이며, 따라서 또한 체계의 중심 개념으로서 나타난다. 그래서 헤겔의 번역들과 주석들이 급속도로 많아졌다. [이탈이아 정치가이며 애국자인] 스파벤타(Silvio Spaventa, 1822-1893)는 나폴리에서 활동하였는데, 그는 이런 생각들을 퍼뜨리는데 보다 잘 기여한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다. 20세기에는 헤겔의 정신은 [이탈리아 철학자이며 정치가인] 크로체(B. Croce, 1866-1952)와 [이탈리아 신헤겔주의자인] 젠틸레(Giovanni Gentile, 1875-1944)이다.
“부분의 철학이란 모순의 개념이다. 사유란 전체 또는 전무를 생각한다. 만일 사유가 어떤 제한(une limite)이 있었다면, 그 사유는 생각되었고 게다가 넘어섰더라도 어떤 한계처럼(comme une limite) 제한되었을 것이다.”라고 크로체는 실천의 철학(Filosofia della Pratica 1909(tr.fr. Philosophie de la pratique 1911, p.274) 274쪽에서 썼다. 이 말은 헤겔류의 정식이며, 이 정식으로 베네데또 크로체(Benedetto Croce 1866-1952)가 칸트의 비판주의에 대항하여 절대적 관념론을 주장했다. 크로체는 이탈리아에서 헤겔의 백과사전(Encyclopédie)[철학강요(Encyklopädie der philosophishen Wissenschaften im Grundrisse, 1817)(47세)]를 번역했고, 그는 자연과 역사의 철학 속에서, 즉 이 거짓 과학들 속에서 헤겔학설의 “생뚱맞은 부분”(partie scabreuse)을 보았다. 그럼에도 그는 이로부터 “헤겔의 발견물” 즉 “콜럼버스의 달걀”을 찾았다. 이 발견물은 대립물들의 종합이었다. 그는 “대립물들은 착각(une illusion)이 아니며, 통일도 착각이 아니다. 대립물들은 서로 서로 반대되어 있으나, 통일성에 반대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진실하고 구체적인 통일성은 오직 대립물들의 통일성 즉 대립물들의 종합일 뿐이다.”라고 썼다. 크로체의 철학은 직접적으로 정신의 철학이다. 이 철학의 발전은 4가지 계기 즉 네 가지 단계(degrés)로 되어있다. 이것은 그의 정신철학(filosofia dello spirito)의 네부분에 해당한다. 1]정신은 우선 직관 즉 개인의 표상이며, 이것은 미학적 대상이다 미학(Estetica, 1902(tr.fr. 1904). 그리고 2]정신은 보편자의 의식이고 보편자와 개별자의 통일성이다 Logica come scienza del concetto puro 1909).이 [다음] 두 단계들은 이론 영역을 구성하고, 거기에는 실천적 영역, 즉 의지의 영역이 대립된다. 3]그 의지는 우선 특수자(particulier)의 의지이며, 경제적 활동을 의미한다. 경제적 활동은 인간이 처해있는 사실(fait)의 조건들에 단지 연관된 것[제작과 시장]을 원하고 그리고 실현한다 . 그리고 나서 4]그 의지는 보편자의 의지이며, 윤리적 활동이다. 윤리적 활동은 사태의 조건들에 연관되는 동시에 이들을 넘어서는 어떤 것과 연관되어 있는 것을 원하고 실현한다(실천철학(Filosofia della pratica).
1903년에 잡지 비판(La Critica)를 창간하였으며, 크로체는 현대 이탈리아에서 헤겔의 정치적 실재주의를 확산(보급)하는데 많은 힘을 썼다. 그의 실천철학(Filosofia della pratica의 제3부의 제3장에서, 그는 어떻게 법칙들이, 구체적인 것을 예측할 수 없는, 추상적 일반성일 뿐인지를 제시하고, 또 어떻게 법칙들이 실재적 의지들(volutions)의 단순한 보조물로서 고려되어야 하는지를 제시한다. 과학적 이론들의 방식에 따라서 보면, 그 법칙들은 그 자체로서 파악되지만 또한 구체적인 것의 해석적 기능을 벗어나는 사이비 개념(pseudo- concept)일 뿐이다. 그는 이와 유사한 생각에 따라, 최근의 논문(Revue de métaphysique, 1931, p.7) 속에서 반역사주의(antihistoricisme). 추상적 합리주의를 단되했다. [그 이유로] "이 추상적 합리주의는 인간적 삶의 구축을 권장하고, 그 구축된 것을 역사라는 동일한 삶으로 재단한다... 이 합리주의는 정신적 가치들을 물질화하고, 이 정신적 가치를 초월적인 것으로 만들면서 이 가치들을 타성적(무기력)으로 만든다. 이 구체적인 것으로 향하는 경향은(헤겔의 용어적 의미로는, 보편자로서) 크로체의 수많은 작업들을 미학으로, 문학비평으로, 역사서술(historiographie)로 확장되어 나갔다.
크로체의 옆에는[이탈리아 관념론 철학자이며 신헤겔주의자인] 젠틸레(Giovanni Gentile 1875-1944)가 있다. 그는 자기 사상을 이탈리아 전통에 결부시키면서 절대자(l'Absolu)를 모든 실재성에 내재하는 정신의 창조적 활동(acte)안에서 보았다(순수활돌응로서 정신의 일반 이론(Teoria generale dello spirito come atto puro (1916):tr.fr. L'acte pur 1925)). 그는 중세와 르네상스의 철학사가이며, 이탈리아 철학자 브루노(G. Bruno)의 편집자이다. 또 그는 역사와 연관하여 자신의 고유한 학설을 제시했다. 인데, 그는 역사를 발전(développement)이라 생각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위책 217쪽). “우리의 이론은 공간과 시간의 제한으로부터도 또한 외적 조건으로부터도 정신을 해방시키고, 그 이론은 역사 속에서 미리 가정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신적 활동의 실재적이고 구체적인 형식을 찾는다. 이리하여 그 이론은 정신활동으로 절대적 자유를 세운다. 이것을 두 개의 원리로 요약할 수 있다. 실재성의 유일한 개념은 자기의 개념이고. ... 정신적 활동 속에는 활동성인 한에서 형식 자체이외 다른 어떤 질료도 없다.” 이런 귀결로서 철학은 관조가 아니라, 오히려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삶을 통하여 창조적 활동에 참여(participation)이다. [젠틸레는 참여를 전체주의적이고 기술지배적 사회에 참여라 보면서, 그 속에서 창조적 활동으로 보았을 것이다. 해바라기처럼 박근혜의 낙점을 받으러 언론에 박의 심중을 퍼뜨리는 자들도 마찬가지이다. (44UKA)]
3절 아믈랑 - Octave Hamelin 1856-1907, 923
아믈랑(Octave Hamelin 1856-1907)의 학설은 표상의 주요 요소에 관한 시론(Essai sur les éléments principaux de la représentation, 1907(재판 1925)에 제시되어 있으며, 출발점으로는 르누비에(Charles Renouvier 1815-1903)의 신비판주의와 결부되어 있다. 그의 학설은 결국 범주들의 표를 작성하는 것인데, 그 첫째 범주는 관계이다. 범주들의 목록을 나열하면, 수, 시간, 공간, 운동, 성질, 변질(altération), 종별화(spécfication), 인과성, 인격성 등이며, 이것들은 르누비에의 목록의 반성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는 시간과 공간의 질서, 운동(르느비에에서는 생성)과 성질의 질서를 바꿨다. 그리고 그는 성질에 종별화를 첨가했으며, 운동에 변질을 첨가했다. 그러한 것은, 대상을 규정하는 추상관계들로부터 주체를 규정하는 구체 관계들로 이행하면서도, 목록표의 정신을 전혀 바꾸지 않았다. 게다가 각 범주는 정립과 반정립의 종합으로 표현되었다. 예를 들어 르누비에에서처럼 아믈랑에서도 수란 단일성(l'unité, 하나)과 다수성(la pluralité, 여럿)의 종합이다. 일반적으로 아믈랑은 이 결정작용들 안에서 르누비에를 따랐다. 결국 범주들은 르누비에에게서처럼 표상의 요소들이며, 헤겔의 관념처럼 절대자의 정의작용들(definitions)이 아니다.
그러나, 게다가 아믈랑은 르누비에에게 다음과 같이 언명들 속에서 제기되었던 문제를 해결하고자 원했다. “현상들의 일반관계의 체계를 구축하고, 건축물을 세우는 것, 이것은 과학의 문제이다. 알려졌거나 알려질 사실들은 모두 주목받거나 가정된 위치를 차지한다고 할지라도, 이 관계들은 이 건축물의 중요한 선들을 규정한다” (르누비에, Essais de critique générale(le premier en 1854, 재판 p. 323) 이 구축에서 범주들을 경험의 자료들로서 간주하는데, 르누비에는 구축을 완성하지 못했다. 그리고 아믈랭은 종합적 방법을 수단으로 그 구축을 시도했다. 다시 말하면, 이 종합적 방법은 어떤 개념도 따로 떼어놓지 않는 방법인데, 플라톤과 헤겔의 방법과 유사한 방법이다.
사람들은 다른 한편으로 헤겔의 체계와 아믈랭이 영감을 받은 르누비에의 체계 사이에 나타나는 심각한 충돌을 알고 있다. 헤겔의 변증법은 정신(Esprit)에, 즉 구체적 보편에 이른다. 이 구체적 보편은, 아믈랭이 보기에, [플로티누스와 같은] 알렉산드르 학파들의 절대적 일자와 다르지 않으며, 그학파들의 절대적 일자 안에서는 모든 개별성이 빠져[녹아]있다는 것이다. 아믈랭도 마찬가지이지만, 르누비에의 인격주의에 따르면, 최고 범주는 인격(la personne, 위격)이다. 따라서 종합적 방법은 이 결론들과 밀접한 관계를(solidaire 연대)맺지 못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결국 이러한 것이 아믈랭이 확립하려고 생각한 것이다. 즉 그를 헤겔과 구별하게 하는 것, 그것은 정립과 반정립의 연관을 생각하는 방식인데, 그것은 모순 항들이 배타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방식이 아니라, 대립항들이지만 서로 호출되는 연관방식이다. 이리하여 이 후자의 방식은 부정신학의 무(le néant)로 향하기는 것이라기보다, 서로 완성하는 긍정들로 향해 나가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아물랭 체계의 미묘한 부분은 마지막 장(章)에서 나오는데, 거기서 그는 어떻게 인격성이 원인성과 목적성의 종합으로부터 태어났으며, 변증법적 운동을 완성하는지를 제시한다. 사람들은 목적에 의해 인도되는 원인 계열들이, 아믈랭이 작동하는 체계(un système agissant)이라 부르는 그 무엇을 어떻게 형성하는지를 알게 된다. 이 작용하는 체계는 자신 속에 자기 활동성의 모든 조건들을 가지고 있어서 그 결과로 자기 독립성을 갖는다. [인간(생명체)이 “작동하는 체계”를 갖는 것은 자기에 의한 자기 과정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자치적이고 자립적이겠지 44VKC)] 그러나 이 작동하는 체계는 정확히, 예를 들어 세계 또는 우주(cosmos 질서), 또는 단순히 살아있는 유기체라기보다, 의식적이고 자유로운 인격이라 부르는 그 무엇이다. [그 때] 그것은 아직은 증명이 덜 된 상태로 나타나는 것 같다. 이점을 인정한다면, 아믈랭은 우리에게 우주에 대하여, 인격주의와 유사한 전망(la vision)을 제시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가 인간적 인격으로부터 (자유롭고, 창조적이고, 섭리적인) 신적 인격으로 나아가는 새로운 변증법적 진행방식(démarche)이 아니라, 오히려 완전함의 요청에 의해서 이다. 여기에서는 필연성이 없다. “결국 사람들은 사유(la pensée, 사상)이 현실화되는 것을 보고, 또 의지 속에서, 의지에 의해서만 현실화될 수 있다는 것을 본다. 첫째 순간은 정신이 그의 첫째 작용(le premeir acte)을 완성한는 순간이다. 첫째 원인은 정신이 처음으로 행한 원인이다.” 우리가 하등영역(열등영역)에서 승리한다고 보았던 필연성은 여기서는 더 이상 여지[자리]가 없으며, 그리고 동시에 우리는 이 필연성이 실재적인 것의 가장 피상적인 측면일 뿐이라는 것을 본다. (44VKC)
4절 독일 관념론
오이켄(Rudolf Christoph Eucken 1846-1926)은 현재의 정신적 흐름(Geistige Strömungen der Gegenwart, 1904; Les grands courants de la pensée contemporaine을 썼으며, 의 관념론은 개혁가의 관념론이다. 이것은 정신적 세상의 도덕적 예언이다. 이 예언은 행동과 사색 속에서 우리에게 계시된다. 그러나 1918년 이후로 헤겔의 진실할 재탄생(renaissance)에 대해 말할 수 있다. 이 재탄생은 1928년 국제헤겔학회의 창립으로 나타나며, 그 학회의 첫 학술회는 1930년 홀란드에서 개최되었다.
[자유 사회민주주의자인] 마르크(Siegfried Marck 1889-1957)는 최근에 현재 철학에서 변증법(Die Dialektik in der Philosophie der Gegenwart(2권, 1929, 1931)을 썼으며, 여기서 이 운동[관념론의 경향]을 설명한다. 특히 마르크는 크로네(Richard Kroner 1884-1974)의 두 작품, 칸트에서 헤겔까지(Von Kant bis Hegel, 1921-1924)(2권)와 문화철학 서설(Prolegomenen zur Kulturphilosophie, 1928) 속에서 크로네의 신헤겔 변증법을 연구 한다. (44WLD)
5절 고띠에의 관념론 Jules de Gaultier
칸트에서 니체로(De Kant à Nietzsche, 1900). 이 책의 제목이 고띠에(Jules de Gaultier 1858-1942)의 관념론의 본성을 잘 지적해 준다. 관념론의 다른 형식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작품에서는 자연주의에 반대하는 가치들을 회복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는 가치들의 문제가 소위 말하는 철학에 이방인(낯선 것이) 되어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했다. 즉, 도덕적 감성과 형이상학적 감성은 전적으로 구별되는 두 가지 세계관이며 두가지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한편에서 출발하면, 사람들은 세계를 표상하면서[이 세계관에 따르면] 자신의 품성, 운명, 행복 등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다. 그 세계관에는 목적성이 지배하고 있고, 그것을 통해 인식과 행동을 허락한다. 모든 철학이 구축되는 것은 이러한 요청에 의해서이며, 이 철학들은 일반적으로 행복한 목적으로 이끄는 메시아적 희망에 연결되어 있다. 다른 한편에서 출발하면, 세계에 대한 “사색적 세계관”을 갖는다. 이 세계관에서는 진실한 실재성이 어떤 주체와도 일치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주체는 사유 속에서 우주 속에 퍼져 있는 활동만을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대상들과 모든 추체들은 무한한 표상들의 실재성을 표상하는 수단들일 뿐이다. 그의 “보바리즘”(Le Bovarysme)이 한 학설이며, 이것은 이 두 관점 중에 전자 속에 감춰져 있는 착각들을 들춰낸 것이다. “현존하는 있는 그대로와는 필연적으로 다르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것이 그의 원리이다.” 그의 작품으로는 보바리즘(Le Bovarysme: essai sur le pouvoir d'imaginer, 1902), 보편적 허구(La Fiction universelle, 1903), 도덕의 의존과 품성의 독립(La Dépendance de la morale et l'indépendance des mœurs (1907), 형이상학적 감성(La Sensibilité métaphysique, 1924, nouv. éd. 1928) 등이 있다. [정리, 10:30, 57W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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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년(28살) 보드도 대학 대학교수, 1905년(45살)에 소르본 교수가 되었다. 그는 그리스철학, 특히 아리스토텔레스 전문가이다. 모스(Marcel Mauss, 1872-1950)의 스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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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5 겐틸레(Giovanni Gentile, 1875-1944) 이탈리아 관념론 철학자. 신헤겔주의자. 그는 1923년에 파시즘에 가담했다. 1934년에 그와 크로체의 작품은 교황청 교리성의 금서에 올랐다. 1943년에 무솔리니의 요청에 따라, 사회공화국의지지 성명을 냈고, 레지스탕스의 표적이되었다. 1944년 집에서 암살당했다. 저작으로는, Teoria generale dello spirito come atto puro (1916):tr.fr. L'acte pur 1925), Sistema di logica come teoria del conoscere (1917-1922), Origini e dottrina del fascismo (1929), Introduzione alla filosofia (1933). 연구서로는 시디 마마르(Nadia Allegri Sidi-Maamar ?-?), Entre philosophie et politique, Giovanni Gentile : un philosophie engagé sous le fascisme(Paris, l'Harmattan, 2001), 그레고르(Anthony James Gregor 1929-, 미국 정치학교수 맑스와 파시즘에 관한 연구자), Giovanni Gentile : philosopher of fascism(New Brunswick,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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