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중반 소개된 김태곤의 음반이며 판은 연식이 되고 투박하지만 소리는 정겹다. 김태곤 혼자 이름으로 나온 듯 하지만 자세히 보면 외돌괴라는 팀이름이 있다.
국악을 대중음악에 접목하고 특정종교의 느낌이 나지만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70년대 중후반과 80년대 초반은 지금보면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지만 변화의 느낌이 다르고 흑백시대와 컬러시대라는 차이가 있다고 보는데 그냥 확 바뀌었다고 보기 보다는 70년대 말 그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하긴 70년대말에도 지하철역에는 커피자판기(커피 말고 다른 차나 전지분유가 들어간 우유도 있었다.)가 있었고 가게에 파는 과자나 음료수도 고급제품이 많았다.
그러함에도 오래된 느낌을 지울수 없고 김태곤 아저씨가 삿갓쓰고 ' 간밤에 울던 제비~ '하고 분위기를 확 띄우다가 목소리를 가다듬고 ' 산모퉁이 ~-'하고 송학사를 한번 해주면 이건 한마디로 '들었다 놨다' 였다.
시간을 거슬러 80년대 말 군대의 어느 여름...
자대에 배치되어 회식을 하는데 난 나의 전입을 축하해 준다는 생각을 했는데 착각이었고 당시 오래 왕고참을 한 일반하사 '박XX'하사의 전역을 축하한다며 부대원들이 동네가게에 내려가서 술도 사오고 인근 기지나 거점에 파견나간 병력들도 부르고 분위기가 살아나고 있었다.
당시 비가 내리고 해안선의 근무자들이 철수를 한 상황이라 회식이 가능했고 상황근무자와 필수 근무자를 제외한 사람들이 모였으며 지휘관은 일찍 퇴근을 했었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같은 곳에 자리한 소총중대의 소초장인 '소위 한명'이 병장 한명을 데리고 와서 참여(아니 병장이 소위를 모셔온 )를 했는데 부대원들은 평상시 잘 알고 지냈던 것 같았고 장교였지만 직속상관이 아니다 보니 편안한 분위기였고 대부분 병장들이 자리하고 있었고 말호봉에 가까운 상병 한명 신병들은 세명(나와 동기 그리고 한달 후임) 밖에 없었다.
당시 병장들의 느낌은 실제 나이가 많은 이도 있었지만 겉 늙은 아저씨들 같았다.
12개월 이상을 왕고참 하던 박하사(원래 하사로 입대한 이가 아니며 중간 관리자가 부재한 상황 때문에 압력 비슷하게 지원을 하게 하고 교육받고 하사로 임용한 사람)는 사실 독재자에 가까운 군생활을 했으나 그건 겉에서 본 느낌이었으며 대위급 장교 아래서 중간에 하사관이 한명도 없고 병장들도 다 나가 버린 상황에서 당시 하사라는 계급을 달게하여 무거운 책임을 지게한 것이었다.
나완 26개월 차... 그가 나가면서 이제 병장들이 하나 둘 나가는 것이 었고 그 첫 테입을 박하사가 끊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오래간만에 하는 전역회식이었다.
'제대하지 말고 장기복무하면 안되냐? '고 설득을 했지만 30개월만 딱하고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아무튼 당시 분위기를 살리라고 신병들에게 노래를 시켰는데 먼저 전입 온 동기녀석은 '벗님들'의 노래 '잃어버린 계절'을 잔잔히 시작하자 마자 '때려치' 라는 말과 함께 반합 뚜껑이 날라가고 바로 옆에 있던 나에게 기회가 아닌 압박?이 왔으나 살벌한 분위기에 노래는 커녕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기다려주는 것도 없었고 욕설로 이어졌고
"두 새끼가 똑같이 분위기 조지네"
하면서 상황만 이상하게 만들었다.
하긴 그 상황에 벗님들의 '잃어버린 계절'을 불러 안 그래도 박탈감을 느끼는 청춘들에게 기분을 잡치게 한 죄로 그 이후 동기였던 '권이병'에겐 노래를 시키는 건 전혀 없었고
옆에 있던 옆 부대 '병장' 한명이 '살리고 살리고 ' 하더니 오래된 전통가요를 하면서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술도 적당히 들어가고 노래도 악을 쓰며 부르고 시간이 다할 무렵 험악한 인상의 병력들 사이에서 깔끔하게 머리를 다듬고 쫄병들의 두꺼운 전투복과는 달리 잘 다려진 간부용 전투복을 입은 소위가 '소초장님!'이라는 환호에 의해 일어나 노래를 시작했다.
나이가 많아 봤자? 나보다 한살 많거나 아니면 동갑이거나 했을 그 소위분은 정신없고 때에 따라서는 저질 '노가바: 가사를 바꾼 노래' 와 군가 또는 어른들이 부르던 전통가요사이에서 일어나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노래를 시작했다.
크고 힘찬 노래나 최신 유행가도 아니었고 그 나이와 어울리지 않는 어른 스럽고 고급진 느낌의 노래를 천천히 하기 시작했다.
당시 말년병장들이나 제대하는 박하사 보다 어렸지만 그의 노래는 품위를 잃지 않았고 멋지게 마지막을 장식했다.
요란했던 박수는 딱 끊어지고 분위기는 잠잠했지만 실망스럽거나 허탈하지 않았다.
"산모퉁이 바로 돌아 송학사 있거늘~~~"
시작은 조용했으나 마지막엔 박수가 쏟아지고 그 날의 피날레는 품위있고 나이답지 않게 송학사라는 노래를 불렀던 '소위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