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고후 4:16-18
제목/순간과 영원
인생을 나그네, 항해, 도박, 일장춘몽 등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모두가 인생을 함축하는데 적절하다고 생각됩니다.
그 중에서도 인생을 도박으로 표현한 것은 의미심장한 표현입니다. 도박용어인 올인(all in)은 모든 것을 집어넣는다라는 의미로서 판돈 전체를 걸고 한판승부를 가릴 때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라스베가스나 우리 나라 폐광을 카지노관광단지로 만든 태백에는 한판에 인생을 거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인생은 도박적 본능을 처음부터 가지고 있는 존재입니다. 도박(賭博)의 사전적 의미는 금전이나 물품을 걸고 승부를 다투는 것이라고 되어있습니다. 동. 서양을 막론하고 도박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비례하고 있습니다. 종류도 다양하여 고스톱부터 시작해서 정부가 관장하는 복권에 이르기까지 사실 수를 셀 수조차 없을 지경입니다. 경마, 경륜, 경정, 화투, 포커, 장기, 바둑, 윷, 투우, 투견, 투계 등도 있습니다.
그럴 능력이 없을 때 친구들끼리 어릴 때 했던 재미난 놀이는 이를 잡아서 경주를 시키는 것입니다. 그 재미가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크고 작은 승부에 집착하고싶은 것이 인간이라면 인생은 도박이다라고 했을 때 그 정의는 틀리지 않다고 봅니다.
오늘 본문 17절에 아주 재미난 표현이 나옵니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그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라는 표현입니다. 輕(가벼울 경)한 것이 重(무거울 중)한 것을 이루게 한다는 것은 도박적 성격을 잘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도박하는 사람의 심리는 작은 판돈으로 큰돈을 따겠다는 마음이 공통적으로 깔려있습니다. 그렇다면 신앙인 들이야말로 찰나의 인생을 걸고 영원을 보장 받으려한다는 점에서 최대의 도박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그런데 묘한 것은 성경이 그런 승부수를 지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상품 선전에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는 가전제품의 선전문구가 있지만 신앙은 순간의 선택이 영원을 좌우한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인간은 선택하는 실존입니다. 물론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어진 숙명도 있지만 주어진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선택권도 분명히 있습니다.
이것을 철학자 하이덱거는 피투성과 기투성이라고 하였습니다. 피투성이란 운명적인 것들입니다. 예컨대, 국적, 부모와의 관계, 성같은 것입니다. 이런 요소들은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주어진 것들입니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던져진 존재입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기투성이있습니다. 이것은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것입니다. 주어진 환경을 극복해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이럴 능력이 인간에게 있습니다.
이런 피투성과 기투성에 대해서 라인홀드 니버는 다음과 같은 기도를 했습니다.
나의 하나님이시여!
나에게
내가 변화시킬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주옵소서
나에게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일에 대해서는
그것을 고칠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그리고
이 두 가지의 차이를 깨달아 알 수 있는
지혜로운 마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내가 변화시킬 수 없는 것들, 조국, 가문, 신체적 조건, 기후, 겹쳐지는 불행 이런 것들로 더 이상 고민하지 말고 수용하고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내가 고칠 수 있는 것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과감히 고쳐 운명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생각을 바꾸면, 말이 바뀌고, 말을 바꾸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운명이 바뀝니다. 작은 것부터 실행하십시오.
인생은 도박입니다. 순간을 영원으로, 차안을 피안으로, 불 신앙을 신앙으로, 유한을 무한으로,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부정을 긍정으로, 죽음을 생명으로, 슴픔을 기쁨으로, 양을 질로, 바꾸려는 엄청난 도박사들입니다. 도박사들에게 요구되는 것,
첫째-두둑한 배짱입니다.
이것을 성경적 용어로 말한다면 「믿음」입니다. 인간이 사는 한 경쟁이 있고 경쟁이 있는 한 승부가 있습니다. 스포츠 경기에도 감독은 매경기마다 도박을 하는 셈입니다. 도박을 하는 감독은 배짱(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
한일 월드컵 때 히딩크가 4강까지 이끈 데에는 뚜렷한 목표, 실력위주의인재등용, 실전훈련, 지속적인 경쟁유도, 멀티플레이어훈련, 선수들에 대한 믿음 등이었습니다.
실수한 선수일지라도 끝까지 만회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안정환 선수가 페널티킥을 실패했어도 마지막까지 믿어주었기에 만회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믿음이 중요한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왜 성경에서 믿음이 그렇게 중요하게 강조되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와있는 믿음의 선진들의 공통점은 배짱이 두둑했다는 사실입니다. 왕 앞에서도 담대했고, 자연의 위협 앞에서도 굴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성경은 믿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둘째-도박사들은 혜안이 있습니다.
혜안이란 두 가지를 포함합니다. 통찰력(insight)과 예견력(foresight)을 말합니다. 시험 문제를 이미 알고 있는 사람에게 시험은 이미 시험이 아닙니다. 결과를 이미 알고 있는 사람에게 과정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부활을 모르는 자들에게 십자가는 두려움이요 절망입니다. 그러나 부활을 알고 믿고 있는 자들에게는 죽음은 과정일 뿐 두려움이 될 수없습니다. 그래서 앎은 중요합니다. 앎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시 한편을 소개하겠습니다.
지금 알고 있는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류시화-
지금 알고 있는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무엇보다 내 가슴이 말하는 것에 더 귀 기울였으리라
더 즐겁게 살고
고민에 무게는 훨씬 줄었으리라
이제 학교를 졸업하면 곧 사회로 나아가 직업을 가지고
살아갈 삶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았으리라
다른 사람들이 내게 대하여 말하는 것에는 신경 쓰지 않고
오히려 나의 생명력과 나의 건강한 육체를
더욱 가치 있다는 걸 알았으리라
그리하여 더 많이 더 열심히 놀고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초조해하지 않았으리라
진정한 아름다움은 내가 나다운 삶을 사는 데 있음을 알았으리라
또한 나의 부모님 얼마나 나를 사랑하는지
나를 위하여 얼마나 기도하는지 알았으리라
더욱 많이 더욱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그 결과에 대하여 염려하지 않았으리라
설령 그 사랑이 실패로 끝맺음하더라도
더 좋은 것이 더 큰 깨달음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아, 철없다는 말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리라
더 많은 용기 더 신선한 창조력을 가졌으리라
내가 만나는 사람들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들과 기쁨을 나누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