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흙돌담과 고택이 주는 편안함이 있는
함라의 삼부자집
11월 7일, 익산 둘레길을 걷기위해 나서면서 만난 함라면의 3부자의 고택입니다. 길 초입부터 붉은 토석담이 눈에 들어오는데요.
말끔하게 단장된 모습과 비교되는 푸근한 느낌의 돌담과 오랜 세월을 엿볼 수 있는 고택이 나타났습니다.익산 둘레길 중에서도 양반길에서 볼 수 있는 가옥이구요.
'양반길’은 함라면 소재지~함라산 탐방로까지 2km로 김안균, 조해영, 이배원 등 함라 전통가옥의 돌담길을 걸으며 옛 양반처럼 느리게 걸을 수 있는 길입니다. 길을 따라 걸어가 볼까요.
안채 누마루를 배경으로 커다란 나무 한그루가 가을을 넘어가고 있네요.
소나무도 그렇고 이렇게 큰나무가 집마당에 서 있다니..이 가난한 농부의 딸은 이해가 안가는거죠..^^ 부러울 따름...
조해영가옥을 다시 바라보며 대문을 나섭니다.
김안균 가옥으로 가는 길..
흙돌담과 함께 앙상한 나무위에 새둥지가 보는이의 시선에 중심을 잡아줍니다.
전통가옥의 가치를 생각하면 가옥이 어떤 모양으로 지어졌고, 몇년에..뭐 이런 설명도 좋지만, 개인적으론 이들의 삶의 이야기가 더 궁금했어요. 어떻게 부를 모았고,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었을까..후손들은 지금 이집을 어떻게 보존하고 있나..뭐 그런 가볍고 머리에 쏙~ 들어오는 얘기들요.. 그런것도 간략하게 적어줬음..하는 바람이죠.
가이드분이 설명을 곁들여 주시긴 했지만 담너머로 집구경하다 다 놓쳤습니다.^^
집은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아 문은 닫혀 있었구요. 그래서 외벽을 보면서 규모를 상상해봤습니다.
김안균 가옥
전북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 457번지 /지방민속자료 제23호
이 집의 건축년대는 오래되지 않으나 규모를 보면 대지가 2,318평에 건평만 188평이 되어 전북에서는 가장 큰 규모의 가옥(家屋)이다. 가옥의 구조는 안채, 사랑채, 행랑채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구조나 꾸밈 일부에 일본 건축 수법이 섞여 있는데 조선 후기 양반가 형식을 취하고 있는 집으로 당시 주택구조를 살필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또한 이 가옥이 1920년대에 지어진 만큼 우리나라의 전통적(傳統的)인 상류가옥이 이무렵에 어떻게 변천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면에서도 강릉의 선교장(船橋狀)과 더불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보존상태가 양호한편이라고 하구요.
김안균의 부친인 김병순이 1922년 지었다고 합니다. 김병순은 가난한 사람을 돕고 사회봉사 등 후한 인심덕에 장사와 농사가 아주 잘 되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인심도 넉넉해서 일대 백리안에 명성이 자자했다고 하네요. 과거 화려했던 부농의 명성은 사라지고 없지만, 고향의 정취로 남아 후대에까지 그 뜻을 전하고 있습니다.
행랑채 왼편에 있던 건물인데요...열려문으로 추정됩니다.
가옥에 쓰인 나무는 금강산에서 직접 나무를 베어봐서 만든 것이라고 하는데요. 역시 부자는 뭐가 달라도 다르죠...좋은 나무를 써서인지 지금도 아주 튼튼하다고 하네요....
이외에 이배원가옥이 있는데요..소개글을 함 보면..
이배원가옥李培源家屋 전북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 411-2번지 /익산시향토유적 제10호
이 집은 현 관리자의 조부인 이배원이 1917년에 지은 것으로 그는 함라면의 대표적인 부농 중 하나였다. 이씨집 외에도 당시 함라에는 소위 만석군으로 일컬어지는 두명의 부호 즉 김씨집(김안균가(家))과 조씨집(조해영가(家))이다. 이 집은 세 집중에서 가장 먼저 지은 집(1918년, 大正7)으로 김안균가(家)와 조해영가(家)의 모델로 작용하였으며 평면의 구성에서도 서로 연관성을 찾아 볼 수 있다.
건립당시에는 안채, 사랑채, 행랑채, 문간채, 곳간채 등 여러 채가 있었으나 현재는 안채와 사랑채, 그리고 주위의 토석 담장만이 남아있다. 사랑채는 내부가 개조되어 원불교 교당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안채는 입식부엌으로 개조하여 활용하는 안방 뒤쪽 공간을 제외하고 비교적 그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안채는 ㄱ자형 목조 와가로 장대석 두벌대 기단 위에 주좌를 높게 치석한 방형 초석을 놓고 기둥은 방주(方柱)를 사용했다. 기둥은 모서리를 둥글게 쇠시리 하여 모접기 하였다. 평면은 좌측부터 건넌방, 대청, 웃방으로 이어지며 웃방에서 전면으로 두 칸의 안방과 부엌이 돌출 된 ㄱ자집이다. 이 집은 평면상으로 전후 퇴집 구조이나 가구 구조는 1고주 5량가로 배면 평주에서 고주 중간에 대들보를 끼우고 고주 머리가 직접 종보와 중도리를 받게 했다.
함라면에 있는 3부자집의 이야기였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곳간을 열고 인심이 후했던 덕에 그 부도 계속 이어가지 않았나 싶어요. 이 일대 백리밖까지 그 명성이 자자했다고 하니.. 그래서 "인심은 함라..."라는 말도 생겼다고 하구요. 그들의 화려했던 시절은 희미한 옛이야기로 내려오지만 부자는 다 고집스럽고 독하다는 나의 인식을 바꿔진 3부자였습니다.^^ 역시 된사람들은 돈을 제대로 쓸줄 안다는거죠.. 익산 함라의 둘레길을 찾으면 이렇게 양반걸음으로 양반전통가옥도 함께 둘러볼 수 있답니다.^^
익산시 문화관광 http://www.iksan.go.kr/tour/
네이브블로그원문: http://blog.naver.com/anndam/100093112950
첫댓글 부농..!! 부러운 단어죠...
^^ 지금봐도 그 부의 정도를 짐작할정도니.그 당시엔 어마어마했겠죠.. 저도 마냥 부러울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