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31:1-29, 너보다 먼저 건너가사, 21.3.31, 박홍섭 목사
31장은 모세에서 여호수아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교체되는 장면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을 인도해오셨지만 모세의 역할은 여기 요단 동편 모압 땅 까지라고 하시고 이제 요단을 건너 가나안에 입성하는 것은 여호수아가 감당하게 된다고 하십니다. 1-3이죠. “또 모세가 가서 온 이스라엘에게 이 말씀을 전하여 그들에게 이르되 이제 내 나이 120세라 내가 더 이상 출입하지 못하겠고 여호와께서도 내게 이르시기를 너는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이미 말씀하신 것과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보다 먼저 건너가사 이 민족들을 네 앞에서 멸하시고 네가 그 땅을 차지하게 할 것이며 여호수아는 네 앞에서 건너갈지라”
지도자가 바뀔 때 특별히 전임지도자가 탁월했을 때 후계자와 백성들이 불안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사람 지도자는 바뀌지만 실질적으로 이스라엘을 인도하시고 책임지시는 여호와 하나님은 바뀌지 않고 여전히 너희들과 함께 하며 너희보다 먼저 가나안으로 건너가사 광야에서 이미 하나님께서 멸하여 주신 아모리 왕 시흔과 바산 왕 옥처럼 가나안의 원주민들을 멸하고 그 땅을 너희들에게 차지하게 할 것이니 불안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게 하나님의 명령만 수행하면 된다고 하십니다.
4-6절입니다. “또한 여호와께서 이미 멸하신 아모리 왕 시흔과 옥과 및 그 땅에 행하신 것과 같이 그들에게도 행하실 것이라. 또한 여호와께서 그들을 너희 앞에 넘기시리니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명령대로 그들에게 행할 것이라.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하고”
백성들에게 이 말씀을 전한 뒤 모세는 따로 여호수아를 불러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두려워하지 말고 강하고 담대하도록 당부합니다. 7-8을 보십시오. “모세가 여호수아를 불러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그에게 이르되 너는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여호와께서 그들의 조상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들에게 그 땅을 차지하게 하라. 그리하면 여호와 그가 네 앞에서 가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여호수아가 강하고 담대해야 할 이유는 백성들과 똑같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먼저 앞서 가시사 떠나지 않고 버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라는 말은 마음을 단단하게 먹으라는 의미를 넘어 여호와를 믿으라는 뜻입니다. 그저 마음만 단단히 먹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여호와를 신뢰해야 합니다. 어떤 여호와입니까? 함께 하시는 하나님, 나보다 먼저 한발 앞서 행하시며 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아무리 마음을 단단히 먹어도 이런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지 않으면 금방 그 마음은 무너지고 맙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호수아와 백성들 모두에게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한편, 하나님을 신뢰하고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은 당부는 충분히 두려워할 만한 상황이 전개된다는 암시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14-23에서 모세와 여호수아를 따로 불러서 앞으로 이들이 보이는 불신앙의 반응, 이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이방 신들을 섬기고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어길 것을 예상하시면서 이들에게 노래를 지어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죄와 욕심을 향하여 달려갔을 때 받게 될 하나님의 진노와 재앙과 환난을 경고하라고 하십니다. 16절이죠. “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조상과 함께 누우려니와 이 백성은 그 땅으로 들어가 음란히 그 땅의 이방 신들을 따르며 일어날 것이요 나를 버리고 내가 그들과 맺은 언약을 어길 것이라” 20절입니다.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인 후에 그들이 먹어 배부르고 살찌면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나를 멸시하여 내 언약을 어기리니”
모세도 동일한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27절입니다. “내가 너희의 반역함과 목이 곧은 것을 아나니 오늘 내가 살아서 너희와 함께 있어도 너희가 여호와를 거역하였거늘 하물며 내가 죽은 후의 일이랴” 29절이죠. “내가 알거니와 내가 죽은 후에 너희가 스스로 부패하여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길을 떠나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너희의 손으로 하는 일로 그를 격노하게 하므로 너희가 후일에 재앙을 당하리라 하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자신의 사명을 다하고 여호수아에게 바톤을 이어주는 상황에서 모세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누구보다 이들의 반역과 반항과 패역함과 목이 곧음을 경험한 지도자가 모세입니다. 그런 백성들을 여호수아에게 넘겨주어야 합니다. 어찌 걱정이 안 되겠습니까? 여호수아도 동일합니다. 그는 모세 옆에서 백성들이 어떻게 패역함과 완악함으로 모세를 대하고 모세에게 행했는지를 똑똑히 보았습니다. 이제 그런 백성들을 자기가 맡아서 가나안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어찌 두렵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이 이들 모두를 불러 “내가 너희와 함께한다. 내가 너희보다 앞서간다. 내가 너희들을 붙들고 인도할 것이라고 거듭 확인해주시면서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고 담대하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지도자의 자세를 배웁니다. 영적 지도자는 비록 좋지 않은 상황이 너무나 분명하게 예견된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낙심하거나 불순종하는 회중들 때문에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정반대도 성립됩니다. 혹 너무나 좋은 회중들의 상태를 알고 충분히 좋은 상황이 예상된다 할지라도 마냥 기뻐하거나 흥분해서도 안 됩니다. 영적 지도자는 회중들의 반응 여부와 상관없이 그저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약속을 믿고 그분의 말씀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묵묵히 주의 말씀을 가르치고 말씀이 지시하는 약속과 경고대로 살면서 그들을 붙들어 주어야 합니다. 회중들이 말씀대로 살든지 그렇지 못하든지 부지런히 말씀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어야 합니다. 알아듣지 못하고 동의하지 않고 따라오지 않아도 하나님이 자신을 그 자리에 세웠으면 그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기고 자신이 해야 할 일, 너희들의 생사는 하나님의 말씀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하나님의 심정으로 백성들에게 가르치는 사람들이 영적지도자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서 여호수아로 리더쉽을 옮기면서 거듭 율법을 써서 보관하여 그 말씀을 백성들에게 낭독하여 듣게 하라고 당부하신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그것만이 이 백성들의 생사를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9-13이죠. “또 모세가 이 율법을 써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는 레위 자손 제사장들과 이스라엘 모든 장로에게 주고 모세가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매 칠 년 끝 곧 면제년의 초막절에 온 이스라엘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그가 택하신 곳에 모일 때에 이 율법을 낭독하여 온 이스라엘에게 듣게 할찌니 곧 백성의 남녀와 어린이와 네 성읍 안에 거류하는 타국인을 모으고 그들에게 듣고 배우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고”
24-26절도 같은 당부입니다. “모세가 이 율법의 말씀을 다 책에 써서 마친 후에 모세가 여호와의 언약궤를 매는 레위 사람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이 율법책을 가져다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곁에 두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 중요한 것은 인간 지도자인 모세나 여호수아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지키고 살아가는 한, 그 말씀을 후손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는 한, 지도자가 누구이든 그들은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하심 가운데 평안을 누릴 것입니다. 그러나 지도자가 누구이든 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고 자신들의 부패한 욕심을 따라 살면 하나님의 심판과 징계를 보게 될 것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태도가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이는 신약교회도 동일합니다. 행20:28-35을 보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단지 모세와 여호수아의 지도자 교체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 신약 백성들은 세상 앞에서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 앞에 그렇게 세우십니다. 저와 여러분은 세상을 향한 일종의 영적 지도자들입니다. 세상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모르고 짧은 인생 죽으면 그만이라 생각하고 여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욕심에 올-인하며 삽니다. 사람은 자기가 죽을 때까지 죽는다는 것을 직감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애통하고 슬퍼하면서도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는 잊어버립니다. 자식을 잃고 부모를 잃고 친구의 죽음을 보면서도 자기가 죽을 때까지는 죽음을 준비하지 않고 이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삽니다. 이처럼 미련하고 완악하고 어리석습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있으며 지금 여기서 어떻게 살아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아는 자는 오직 성도들 뿐입니다. 어찌 영적 지도자가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저들 앞에 우리의 책임은 무엇입니까? 전도지 나눠주고 예수 믿으라고 한번 이야기 건네는 것으로 우리의 책임을 다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더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알고 믿는 것을 저들과 다른 우리의 삶으로 보여야 합니다. 저들이 욕심을 향하여 갈 때 우리는 말씀을 향하여 가는 것으로 보여야 합니다. 저들이 알아듣던지 못 알아듣던지 그렇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진심을 기울여 믿음으로 살아도 아마 세상은 우리 앞에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목이 곧고 패역하고 끝없이 하나님을 반역했던 이스라엘 앞에서 끊임없이 말씀으로 권고하고 경고하며 안타깝게 일러주며 살았던 모세와 여호수아처럼 영적 지도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요즘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정치인들 때문에 밥맛이 없다는 소리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나라 걱정 안 하고 국민 생각 안 하고 자신들 배만 채우기 바쁜 저들 때문에 정말 밥맛이 달아나고 정치에 대한 혐오감만 늘어갑니다. 그러나 정치인들보다 더 밥맛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라 합니다. 이런 욕을 단지 세상이 우리를 핍박하고 미워하는 당연한 반응이라고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지금 우리는 이런 욕을 들어도 할 말이 없는 이기적이고 욕심으로 충만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모세가 있는 동안에 그래도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여호수아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래도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따르는 시늉이라도 했습니다. 우리도 그러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래도 우리가 사는 이 세상과 이 시대와 이 사회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교회의 권위를 무서워하는 태도를 보이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모세의 죽음 앞에 우리 모두가 여호수아가 된 입장으로 하나님 앞에 감당해야 할 우리의 책임이며 마땅한 자세입니다. 물론 세상은 언제나 그러했듯이 여전히 목이 곧고 패역하고 완악하게 우리와 하나님을 대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보다 먼저 앞서 행하시며 우리를 떠나지 않고 인도하실 하나님을 믿고 그 하나님을 전하며 그의 말씀에 붙들린 우리의 모습을 세상 앞에 보여야 합니다. 저들보다 잘사는 것으로 건강한 것으로 힘 있는 모습으로 무릎 꿇리려 하지 말고 저들과 다른 모습으로 서 있도록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 은혜를 구하며 기도의 자리로 나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