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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대종말과 소종말>의 줄거리:
소우주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해와 달과 별이 운행하고 있는 천체를 대우주로 본다면 인간은 소우주라는 말이지요. 대우주가 운행되는 원리가 인간자체에도 비슷하게 적용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와같이 신앙에도 대종말과 소종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대종말에 대한 신앙은 반드시 소종말의 경험을 통해 온전할 수 있습니다
대종말과 소종말
(마24:32~41)
32.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33.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3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35.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36.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37.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39.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40.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41.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 중심으로 <대종말과 소종말>이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 합니다.
여러분, 대우주와 소우주라는 말을 아마 들어보셨을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소우주라고 하는 말은 쉽게 인간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근데 인간 안에 70조개에 달하는 세포가 있고 그리고 1천억 개가 넘는 세균이나 미생물이 이 70조개로 이루어진 세포의 집합체인 인간 안에서 공존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모습을, 인간의 신체를 들여다 볼 때, 해와 달이 있고 수금지화목토천해명이라는 태양계가 있고 은하계가 있고 한 것처럼, 우주가 돌아가는 무한한 별들이 떠 있으면서 운행되는 것처럼 우주와 많이 비슷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음양오행설도 나온 것이지요.
해와 달이 있다, 음과 양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땅 위에는 남자와 여자가 있다.
그리고 다섯 가지 목성과 화성과 토성과 금성과 수성이라고 하는 별로 우주에 있는 많은 별들의 성질을 상징적으로 대표할 수 있는데, 인간에게도 오장이 있고 오부가 있고 인간 세계에 다섯 가지 맛이 있고, 다섯 가지 음이 있다. 다섯 가지 음이 뭡니까? 그게 바로 궁상각치우입니다.
다섯 가지 색깔이 있다, 색깔별로 음식을 먹으면 그것이 오장 별로 오장마다 색깔이 정해져 있고 다섯 가지 색깔이, 그 다섯 가지 색깔에 맞는 녹색이면 녹색, 백색이면 백색, 흑색이면 흑색. 백색은 예를 들어 파나 양파 같은 거 마늘 같은 거, 또 흑색은 검은 콩 같은 거 이런 식으로 또 검은색에 해당되는 장기는 무엇이고.
이게 우주의 천체가 돌아가는 모습과 인간 세상의 돌아가는 모습이 너무나 유비적인 상응관계가 성립한다, 이래서 소우주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 소우주의 세계는, 이렇게 눈에 보이는 거시적인 세계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원자의 세계, 원자를 쪼개보니까 원자핵이 있어서 핵 안에 중성자가 뭉쳐져 있고, 중성자 개수와 똑같은 전자가 그 핵 주변을 돌고 있다, 마치 지구를 중심으로 달이 돌고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와 다른 별들이 도는 것처럼 그렇게 돌고 있다.
이게 소우주의 세계라 이겁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에는 대종말이 있고 소종말이 있습니다.
대종말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일어나는 이 우주적인 종말입니다.
그야말로 어제 우리가 함께 말씀 나눈 것처럼, 해와 달과 별들이 사라집니다.
지구까지 포함하는 이 우주의 천체가 사라져 버립니다.
마치 종이 한 장에 그려져 있던 천체가 찢어져 없어지듯이 찢어져 버릴 것입니다.
그걸 물리학적으로 말하면 시공간의 세계가 찢어져 없어져 버립니다.
마치 연극이 끝나면서 그 연극에 사용되었던 무대장치들이 다 사라져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공간이라고 하는 이 시간과 공간의 제약에 의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삶의 이 차원이 다 찢어져 없어져 버리고 말 것입니다, 예수님의 종말이 임하게 되면.
그리고 그러한 종말이 임하면서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고 우리 앞에 나타나시게 됩니다, 우리와 만나지시게 됩니다.
이게 대종말이라면, 신앙은 이 대종말을 향해서 가는 것인데 그 대종말을 향해서 가는 마음 가짐이 바로 소종말을 경험해야 된다는 겁니다.
소종말을 경험하지 않은 채로 신앙은 성립할 수가 없습니다.
대종말일 때에는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 대종말을 기다리며 사는 사람의 바른 자세가 소종말의 상태가 경험되어야 되는 것인데, 소종말에서는 재림하는 예수님 대신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만나게 됩니다.
승천하신 예수님을 우리 마음이 성령에 이끌림을 받아 만나게 됩니다.
이렇게 부활하신 예수님, 승천하신 예수님을 우리가 마음의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만나지 않은 채로 대종말을 맞이하면 그 사람은 불신앙인이고, 그 사람이 바로 심판과 지옥으로 떨어져 갈 사람이라는 겁니다.
오직 대종말 때에 예수님의 재림을 신랑과 신부의 관계로 맞이할 수 있는 사람들이 누구냐?
소종말을 경험한 사람들이고 소종말을 경험함을 통하여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자들이 바로 재림예수님을 신랑과 신부의 관계로 맞이할 수 있다 이거지요.
여러분 그러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어떻게 해야 만납니까?
오늘 본문에 바로 그 이야기를 하고 계시는 거예요.
본문을 읽다 보면 누구나 다 의문점이 생깁니다.
자~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여기까지는 쉽게 이해할 수 있어요.
이스라엘 땅에 심겨진 무화과나무들이 겨울을 지나서 물을 빨아 올려서 가지가 촉촉해지고 연하게 되면, 이제 곧 여름이 닥치고 여름에 수확을 하게 됩니다.
열매들이 맺히게 되요, 계절이 좀 달라서.
그러니까 ‘가지가 연하게 되면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알라’하는 것처럼 주님께서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이 모든 일이라는 것은, 바로 앞에 나온 그 그날 29절에 ‘환난 날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빛을 내지 않고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이 일을 보게 되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온 줄로 알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 그러면 이 말까지는 그렇게 이해를 하겠어요.
재림예수님께서 오실 때, 분명히 그 앞서서 하늘의 별들이 떨어지고 하는 난리가 임하게 될 것이다.
근데 그 다음 구절이 어려워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그리고 못까지 박으십니다.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에요, 이 세대라고 하는 것은 30~40년 세대를 말해요, 1 Generation 이 30년 40년 이렇게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말씀하신 뒤에 35절에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그러니까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해와 달과 별이 떨어지는 일들이 눈에 보이게 될 텐데 내가 하는 이 말은, 천지가 없어질지언정 없어지지 아니 하리라.
하지만 이천년이 지나도록 지금 대종말은 오지 않았습니다.
여기에서 필연적으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의도가 무엇이었느냐? 전하시려는 메시지가 무엇이었나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 소종말이 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예요.
주님의 말씀은 틀림없다 그랬어요, 틀림없는 거지요.
근데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해와 달과 별이 떨어지는 것, 해와 달과 별이 빛을 잃어버리는, 천체가 사라져 버리는 일을 보는 자들이 있게 될 거라는 이야기 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고 나서야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나게 된다는 얘깁니다.
자, 이게 그럼 무슨 말일까요 여러분. 33절에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이라는 말뜻이 있어요. 보거든!
그리고 그 앞에 ‘보거든’이라고 번역된 말이 15절에 나왔습니다.
‘멸망하게 하는 가증한 것들이 황폐케 하는 혐오스러운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이때 우리가 ‘보거든’ 이라고 하는 말에 액센트가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 사랑하라는 그 계명에 비추어 볼 때, 우리 마음이 하나님 말고 다른 것을 사랑하고 좋아해서 우리 마음 안에 다른 것이 우뚝 서게 되면, 하나님 이외의 그게 우뚝 서게 되면 그것이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 사랑하라는 계명에서 어긋나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죄악이고 그것이 바로 멸망하게 되는 거고 황폐하게 된다는 사실을 봐야 됩니다.
그래야 십자가를 향할 수가 있는 거예요.
이 사실을 못 보면 모르는 겁니다, 그래서 ‘보거든’, 아! 내가 지금 자식을 좋아해서 자식의 문제로 마음이 가득 차 있구나, 그러면 자식이 가증한 것도 혐오스러운 것도 아니지마는, 그것이 마음 안에 들어올 때는 가증한 것이고, 황폐케 하는 것이고, 멸망케 하는 혐오스러운 것이 된다는 거야, 내 마음에 들어올 때는.
하나님이 내 자식을 사랑하십니다, 나도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자식에게 당신의 사랑을 표현해 내야 될 대상이지, 내가 좋아해야 할 대상이 아니에요.
나는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해야 될 사람입니다.
이게 보이면 십자가로 도망을 가야 된다 이겁니다.
그래서 ‘주검이 있는 곳에 독수리들이 모일 것이다’ 택한 자들은 어디로 가느냐? ‘하나님 이외에 내 마음에 다른 것이 서 있는 것은 망하는 것이다’라는 것을 아는 자들이 택한 자들이고, 그들은 자식이, 돈이, 사업이, 내 인생에 무슨 명예나 결혼문제 이 모든 것들에 마음이 뺏기지 않으려고 십자가로 도망가는 자들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십자가로 도망가는 것이 반복되다 보면, 십자가에 서서, 십자가에서 주님과 함께 연합해서 있는 동안에 보이는 것들이 있게 됩니다.
뭐가 보이는 줄 아십니까? 참 이상한 거예요.
주님의 십자가에서 주님의 죽으심을 내 죽음이라고 고백하는데, 그 고백은 주로 이 땅 위에서 보이고 들리는 것들이 좋아지고 마음을 빼앗는 것들이 되서 그것들로부터 도망가느라고 십자가를 고백한 겁니다.
‘내가 십자가에서 죽었다’ 이게 십자가로 도망가는 거거든요.
십자가에서 ‘죽었다, 죽었다’ 이 세상 것으로부터 도망가려고 ‘죽었다, 죽었다’ 하다 보니까, 갑자기 눈이 탁~ 트이면서 보입니다.
뭐가 보이느냐? 해와 달과 별이 떠있고 그 별 중에 하나인 이 지구, 시공간의 세계, 음양오행설로 설명하려 했던 이 세계가 음양오행의 이 세계가, 정말로 종이가 찢어지듯이 내 마음에서 내 마음에서 사라져 버립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는 진짜 실제로 하늘의 별과 달과 해가 다~ 빛을 잃고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시공간이 찢어지면서 그 동안 감추어져 있던 천국이 드러나고 지옥이 드러나게 될 것이에요.
다른 차원이 펼쳐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대종말이 오기 전에, 내가 이 땅 위에 있는 것들이 좋아지는 마음, 이것이 바로 망하는 길이라는 걸 알고, 그 좋아지는 것에 대해서 십자가를 기억하며 ‘십자가에서 죽은 자가 어찌 세상 것을 좋아할 수 있으리요, 세상 것을 마음에 담을 수 있으리요’ 하고 있는데, 갑자기 이 세상 전체의 차원이 시공간이 찢어져 없어져 버리는 그런 경험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 그게 느껴져요.
입체적으로 느끼잖아요, 산과 달과… 산이 있고 강이 흐르고 집이 있고 가정이 있고 가족이 있고 회사가 있고 직장이 있고…
이 모~든 일이 한 평면에 그려져 있는 것이고, 평면에 그려진 이 종이 한 장이 찢어져 나가는 것이, 마음에서 하나도 남김없이 사라지는 것이 느껴진다는 거예요.
그래서 찬송가 가사 중에 그런 말이 있잖아요?
‘세상과 나는 간 데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부활하신 주님, 승천하신 주님이 내 앞에 나타나고 그 분과 내가 만나는 일은 반드시 소종말이 경험 되어야 된다는 거예요.
내 마음에서 해와 달과 별로 이루어져있는 이 천체, 이 시공간의 세계가 다~ 찢어져서 사라져 버리는 경험이 없으면 부활하신 예수님 만날 수 없어요.
여러분, 부활하신 예수님을 우리가 어떻게 죽음의 단계를 통과하지 않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납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은 죽음의 강을 건넌 분이에요.
보세요! 부활하시고 나서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있지만, 제자들은 진짜 예수님을 만난 게 아닙니다, 그때도.
오순절 성령강림을 통해서 그들이 비로소 부활하신 예수님을 온전히 만나고, 부활하신 예수님, 승천하신 예수님과 온전히 연합할 수 있게 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 만나는 40일 동안에, 오순절 성령역사 이전까지는, 예수님이 승천하신다니까 그때도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는 때가 언제냐고 물어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자들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온전히 만나려면, 나라다 민족이다 민족의 식민지 상태라고 하는 것이 완~전히 찢어져 나가 버리고 관심 밖으로 사라져 버리는 종말이 마음 안에서, 이 지구의 종말이 임하지 않고서는 죽음을 통과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가 없었다는 겁니다.
죽음이라는 게 뭡니까? 이 세상이 끝이 나는 거예요.
이 시공간, 별도 못보고 해도 못보고 달도 못 보는 겁니다, 죽음이라는 것이 이루어지면.
완전히 상대적으로 끝나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사도 바울이 이렇게 역으로 얘기해요.
‘세상이 나에 대해 죽었다’ 이게 바로 곧, 내가 세상에 대해 죽었다는 겁니다.
대종말이 임하면 세상이 죽어버릴 겁니다, 이 천지가 죽어버릴 거예요.
그런데 그 대종말을 향해서 가고 있는 우리의 신앙자세는 소종말 상태가 되어야 되는데 그게 뭐냐 하면, 내가 세상에 대해 죽는 겁니다.
똑같은 효과라는 거예요, 똑같은 효과.
대종말의 효과가 이미 소종말의 효과를 통해서 나에게 나타나야 된다는 겁니다.
그게 신앙이고 그래야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야 승천하신 예수님과 연합해서 함께 가고, 승천하신 예수님과 연합해야 지금 천국에서 예수님이 아버지 하나님을 관계하는 그 자리에 서서 하나님 아버지와 관계할 수 있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세대가 지나기 전에,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다 이루어지는 거예요.
제자들은 마가 다락방에서 기도하는 동안에 그들은 도망가는 겁니다, 이 세상으로부터 도망가는 거예요, 내 마음을 빼앗아 가는 세상으로부터 도망갑니다.
무서워서 문을 닫아걸고 도망갑니다.
주님이 돌아가셔서 하늘나라 올라가셨습니다.
여기서 죽음을 경험하는, 이 세상에 대해 죽음을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성령이 강림하면서 부활하신 예수님과 전격적인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이들에게 이제는 이들을 죽이려고 하는 사람도 없어져 버리고 마음에서, 나라와 민족이 식민지하에 있다는 생각도 없어져 버립니다.
세상에 대한 관심, 음양오행 이론을 가지고 세상을 풀어가려고 했던 그 관심이 없는 거예요, 그 관심이 없어져 버리는 거예요.
우리는 음양오행 대신에 자기계발서라든지, 회사 경영법이라든지 이런 여러 가지 것들로 이 세상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고 세상의 문제를 풀어나가려고 합니다.
이런 게 없어져 버려야 된다는 거예요.
이게 죽지 않으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가 없다는 거예요.
소종말이 경험되지 않는 한 불가능 합니다.
그래서 ‘두 사람이 밭에 있다가 한 사람만 데려감을 당하고, 두 사람이 맷돌을 갈다가 한 사람만 데려감을 당한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친척, 가족 아무 상관없어요.
이게 무슨 특별한 뭐 대단한 구속력이 있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구원의 문제와 연관 되서는.
두 사람이 맷돌 갈다 한 사람 데려간다, 왜 한 사람 데려갑니까?
소종말이 이루어져서 예수님을 만난 자가 대종말 때도 구원의 자리로 가고, 두 사람이 밭을 갈다가도 한 사람만 소종말이 이루어졌다 그러면 그 사람만 구원의 반열로 들어서게 된다는 얘기에요.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어디서 봅니까? 십자가에서 봅니다.
‘보거든’이 두 번 나와요, 두 단계의 ‘보거든’을 통해 신앙은 완성단계로 들어갑니다.
첫 번째 ‘보거든’은 뭐라고요?
내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 이외의 것들을 마음이 좋아해서 내 마음 안으로 그것들이 들어와 서있게 되면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선 것이고, 이것을 사람들은 못 봐요.
근데 이것이 보이는 사람, 선택 받은 백성이에요.
‘아! 내가 지금 사업을 잘해 보겠다고 해서 마음에 사업이 우뚝 서 있구나, 이거 죽을 일이고 멸망할 일이다’ 이게 보이는 거예요, 보이는 거.
보통사람은 안 보이고 당연하게 생각 되요.
아니 그럼 사업하는 사람이 사업을 마음에 두지 뭘 마음에 둬? 이렇게 생각하고 살아가는 겁니다.
보고, 보이면 십자가로 도망갈 수밖에 없어요.
‘아! 내가 죽은 자다, 주님과 함께 죽은 자가 무슨 사업에 대해 연연하리요’
그렇게 해서 사업 때문에, 자식 때문에, 애인 때문에, 직장문제 때문에 도망갔는데, 도망간 십자가가 반복돼서 내게 기억됨을 통해 십자가 안에 매달려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갑자기 해가 없어집니다, 달이 없어집니다, 별이 없어집니다, 이 세상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느낌이 듭니다.
아~무 무게감이 없는 거예요, 그냥 형상으로 보이는 것뿐이지 실제다운 현실의 무게가 거기서 하나도 안 느껴지는 겁니다, 다 사라져 버리는 거예요.
그러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임박해 계십니다.
언제? 오순절 역사와 같은 그러한 만남이 꼭 방언을 하지 않더라도, 방언 이라는 현상으로 나타나는 수면 밑에서 이루어진 천국과의 인카운터 천국과의 랑데부 이것이 이루어지는 때가 가까이 온 거라는 얘기에요.
부활하신, 승천하신 주님과 만나는 일, 그래서 승천하신 주님과 연합한 자리에서 아버지 하나님을 내 마음이 만나는 일은, 해와 달과 별이 사라져 버리는 내 마음에서 사라져 버리는 소종말이 있기 전까지는 요원한 일입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이 이 땅에 재림하실 것을 믿고, 재림하신 주님과 맞닥뜨릴 날이 올 것을 믿습니다.
그 사실을 믿는 자로서 가장 올바르게 살려면 소종말이 경험되어야 하고, 부활하신 주님을 내 마음이 만나야 합니다.
십자가에서 해와 달과 별과 지구가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