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화 사필귀정(事必歸正)
오클랜드 택시 회사. 보드멤버 회의실. 시간은 오전 10시. 징계위원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분위기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징계 대상인 사람 4명이 뒤쪽 의자에 나란히 앉아 대기하고 있었다. 타원형 테이블에 징계 위원들이 앉았다.
징계 위원장 석에 컴플레인 매니저 저스틴이 자리한 채 서류를 보고 있었다. 보드 멤버 5명이 징계위원으로 자리했다.
10시 정각. 징계 위원장이 나무망치로 징계 목판을 두드렸다. 드디어 징계 절차에 들어가는 신호였다.
보드 멤버 존이 일어나 좌중을 행해 정중하게 인사했다. 바로 이어 징계에 대한 간략 보고를 했다.
“오늘은 오틀랜드 택시 회사에서 불법 비리 행위를 저지른 자에 대한 징계를 하는 날입니다.
오랜 동안 독버섯처럼 자생한 나쁜 관행에 철퇴를 내리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700명 주주들이 모여 만든 회사에 이런 일들은 오늘 부로 종식되어야 합니다. 스푼 피딩. 불공정한 행위입니다.
그동안 내사를 통해 근거 자료와 증거를 바탕으로 결정한 결과입니다. 다들 내용을 익히 아는 것이라 최종 결과를 우선 발표합니다.
이의가 있다고 생각한 부분에 대해선 의견 듣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발표합니다.
징계 대상 인원은 총 4명입니다. 대상자는 다음과 같습니다. 콜 서비스 룸 스탭 티나. 운전사 할버트. 랜카. 알브레또.“
존이 호명한 4명을 보드 멤버들이 눈을 들어 쳐다봤다. 호명된 4명은 고개를 떨군 채 아무 말도 못했다.
다니엘 의장이 뭐라고 이야기하려는 참에 징계 위원장 저스틴이 발표에 들어갔다.
“집중해 주십시오. 징계 결과입니다.
티나-해고입니다. 물질적 변상. 1만 달러입니다.
할버트-해고입니다. 물질적 변상. 6천 달러입니다.
랜카-6개월 업무 정지입니다.
알브레또-3개월 업무 정지입니다.
이상입니다. 이의 있는 점에 대한 의견 듣겠습니다.“
징계 처벌결과 발표에 장내가 웅성댔다. 먼저 티나가 울먹이며 선처를 빌었다.
“제가 지은 잘못에 대해 진심으로 후회합니다. 용서를 빕니다. 선처해 주십시오.”
씨름 선수 같은 체구의 할버트가 소리쳤다.
“이건 너무 지나친 징계입니다. 이 회사 나가면 될 거 아닙니까?”
랜카는 머리를 수그린 채 아무 말도 못 했다. 알브레또는 침통한 얼굴로 한숨만 쉬어댔다.
“듣자듣자 하니. 정말 너무 지나친 징계를 하는군요. 회사 이래 이런 결정은 없었던 것 같은데요. 재고가 절대 필요합니다.”
다니엘 의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저스틴을 향해 소리쳤다. 토니 부의장이 이어서 발언했다.
“징계 결과를 적극적으로 찬성합니다. 스푼 피딩. 우리 회사에서 뿌리 뽑아야 할 최대 악폐입니다.
물질적 변상도 절대 필요합니다. 이번 징계 건을 두고 밤 잠 못 자고 수고한 컴플레인 매니저 저스틴.
보드 멤버 겸 경찰 청장 자문 위원 존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잘했습니다.
이번 징계를 시범 케이스 선례로 남겨서. 다시는 이런 독버섯 같은 암적 존재가 우리 회사에 발붙이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짝짝짝!”
“짝짝짝!”
부의장 토니의 박수에 보드 멤버 키란도 합세했다. 민재가 손을 들었다.
“잠시 조용들 하시고. 여기 녹취록을 듣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민재가 녹음기를 크게 틀자. 티나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스푼 피딩은 스스로 한 게 아니고요. 다니엘 의장님의 지시였어요. 저는 그저 협조만 했어요.
제가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라서 회사에 의존해야 했어요. 협조해 주면 다니엘 의장이 우호적으로 대해 줄 거라 기대 했어.
스푼 피딩, 가장 많은 혜택을 준 자는 할버트. 랜카. 알브레또예요. 다니엘 의장과 친분이 강한 라인이에요.
다니엘 의장의 계속된 지시에 따라서 협조 한 거예요. 스푼 피딩하면서도 양심에 가책은 느꼈어요.
지금 와 생각해 보면 잘 했다고 생각 안 해요. 회사 룰을 어긴 게 사실이니까요.
스푼 피딩. 제가 잘 못했어요. 저도 사실 혜택을 받았으니까요.“
민재가 녹음기를 껐다. 다니엘 의장을 똑바로 응시하며 강 직구를 날렸다.
“다니엘 의장님. 들으셨습니까? 의장님이 다 지시해서 한 건데요. 의장님 징계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징계 위원이 결정하기 전에 본인 입으로 말씀하시지요. 티나보다는 더 큰 징계를 받아야 할 사항 아닙니까?
이 건을 700명 주주 운전사 앞에서 공청회로 판결을 내릴까요? 결정하세요. 어서!“
다니엘 의장이 일어나 부르르 떠는 손을 어쩌질 못했다. 얼굴이 일그러진 채 그대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모든 보드 멤버와 징계 대상자들까지도 놀라움을 금치 못 했다. 민재가 추가로 녹취록을 틀었다.
할버트가 주눅 들린 목소리로 이야기 했다.
“스푼 피딩 99번은 아니고요. 한 60번 쯤 돼요. 다니엘 의장의 주선으로요. 다니엘 의장이 연임 될 때부터요. 그러니까 3년 전부터 했어요.
다니엘 의장한테 상납은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몇 번 술대접과 음식대접을 했어요.
티나한테 상납도 안 했어요. 몇 번 선물 사주고 밥 사줬어요. 잘못했어요. 티나가 주는 대로 받았어요.
큰 것 받을 땐, 바로 잊지 않고 답례를 했어요.
‘할버트. 당신. 당신이 남의 차례 큰 잡 빼 돌릴 때. 눈이 빠져라 기다린 동료 운전사는 안 보였나!
동료들은 바보들의 행진? 이나 하고 있다고 여긴 거지.
동료들도 똑같은 주주잖아. 700분의 1. 모두 공평한 기회를 가진 운전사잖아! 그래. 안 그래?‘
‘존 보드 멤버님. 경찰 자문 위원님. 제가 잘못 살았습니다. 감방만은 면해 주세요.
제 와이프가 우울증으로 오래 고생하고 있어요. 제가 제 정신이 아닙니다.‘ “
다니엘 의장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모든 시선이 다니엘 의장에게 쏠렸다.
보드 멤버 키란이 다니엘 의장을 향해 거센 말을 강하게 쏘았다.
“다니엘 의장님. 해도 해도 너무 했군요. 이제 그만 자리에서 내려올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증거가 이렇게 명백한데,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있습니까? 용퇴 할 때입니다. 의장 첫 임기 때까지는 잘 하셨어요.
연임, 또 연임하면서 방향이 완전 달라졌어요. 이 회사는 개인회사가 아닙니다. 700명의 주주 회사입니다.“
저스틴 징계위원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징계 최종 결과를 발표하려는 참이었다. 그때 전화 벨이 울렸다.
민재 휴대폰이었다. 민재가 휴대폰을 들며 저스틴 징계위원장에게 보여줬다. 저스틴이 하려던 발표를 잠시 연기했다.
민재가 전화를 받았다. 스피커 폰을 켠 채 통화했다.
“네. 오클랜드 택시 존입니다. 아. 덩컨 형사님. 수고 많습니다. 벌써 회사에 도착해서 계단으로 올라온다고요.
네. 2층으로 올라와 왼편에 있는 회의실로 오면 됩니다.“
회의실에 있는 모든 사람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잠시 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 2m 넘는 장신의 건장한 체구.
민재가 덩컨임을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덩컨 형사님. 고맙습니다. 지금 최종 징계 발표를 앞두고 있습니다.”
“네. 저는 오클랜드 경찰서 덩컨 형사입니다. 주로 불법 자금비리 추적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잠깐만요.”
덩컨 형사가 서류 뭉치를 들어 보여주었다.
“여기. 다니엘 의장 관련 은행계좌 추적, 자금 이동, 부동산에 쓰인 자금 내역입니다.
택시 모뎀 구입가 400만 달러에 대한 리베이트 40만 달러가 다니엘 은행구좌에 흘러들어간 자금 추적 내용입니다.
불법 자금 횡령 자는 끝까지 추적해 형사 처벌하고 불법 자금은 환수합니다.
존. 경찰 청장 자문 위원님. 하시던 대로 징계 발표하세요.“
덩컨의 단호한 음성에 다니엘 의장이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의자를 움직이다 그만 쿵하며 의자를 잡고 쓰러졌다.
옆에 앉아있던 보드 멤버 데이비드가 다니엘 의장을 일으켜 의자에 앉게 도와주었다.
징계위원장 저스틴이 정리한 징계 서류를 들고 최종 결과를 발표했다.
“오래 기다렸습니다. 오클랜드 택시 징계조항 2조 2항에 의거 징계를 발표합니다. 회사에 해당행위를 한 자에 대한 처벌입니다.
1. 티나. 콜 서비스 룸 스탭. 해고입니다. 물질적 변상은 없습니다.
2. 할버트. 운전사. 해고입니다. 물질적 변상 5천 달러 있습니다.
3. 랜카. 운전사. 업무 정지 2개월입니다. 물질적 변상 없습니다.
4. 알브레또. 운전사. 업무 정지 1개월입니다. 물질적 변상 없습니다.
5. 다니엘. 보드 멤버. 의장. 해고입니다. 물질적 변상. 자금 환수조치 있습니다. 이 사항은 경찰로 이첩합니다. 형사 처벌도 경찰 소관입니다.
이상 징계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것으로 오늘 징계위원회를 마칩니다.“
징계 위원장 저스틴이 일어나 회의실을 나갔다. 덩컨 형사가 형사 증을 다니엘 눈앞에 들이댔다.
우물쭈물하던 다니엘이 엉거주춤 일어섰다. 날카로운 눈매의 덩컨 형사가 다니엘을 노려봤다.
다니엘이 회의실을 두리번거리며 초점이 흐려졌다. 마지못해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덩컨 형사를 따라 나갔다.
‘입건인가. 구속인가.’
징계 대상자도 한 명씩 회의실을 빠져 나갔다. 보드 멤버 4명만 남았다. 토니 부의장이 입을 꼭 다물었다.
모두 침묵상태였다. 키란이 일어섰다. 비장한 얼굴이었다.
“네. 오랜 동안 오클랜드 택시에 고질적 병폐였던 스푼 피딩. 기득권자의 불법 행위. 이제 비로소 척결됐습니다.
이번 징계를 위해 관련자와 콜 서비스 룸 컴퓨터까지 파헤쳐. 결과물을 낸 저스틴 컴플레인 매니저 저스틴이 애쓰셨습니다.
보드 멤버이자 경찰 청장 자문위원인 존도. 수고 많았습니다. 이제 제대로 정상적이고 공정한 회사 운영을 할 때입니다.
오클랜드 택시 보드 멤버 운영 규정 3조 1항에 근거, 의장 해고 시 부의장이 자동으로 임기 2년을 맡게 되어있습니다.
토니 부의장께서 이 규정에 따라 의장직을 잘 수행해 주십시오. 부의장 빈 자리는 보드 멤버 추천으로 맡게 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번 일을 잘 수행한 존을 추천합니다. 다른 이의 사항 있습니까. 없으면, 의장과 부의장을 환영하는 의미로 격려의 박수 부탁합니다.“
“짝짝짝!”
최상의 서비스와 명성으로 쌓아올린 오클랜드 택시. 50년 전통이 얼마간 휘청거리는 가 싶었는데.
이제 다시 제대로 공정하게 운영하게 되었다. 토니 의장이 보드멤버와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존 부의장도 한 사람씩 손을 잡았다. 민재 가슴이 뜨거워졌다. 진한 눈물방울이 눈에 맺혔다.
창가로 들어온 햇살에 민재 눈물방울이 다이어몬드처럼 반짝였다. 민재의 머리에 떠오르는 고사성어도 빛을 발했다.
사필귀정(事必歸正)!
모든 일은 반드시 바른 데로 돌아간다. 선한 일을 하면 좋은 결과가 뒤따르고, 악한 일에는 악한 결과가 뒤따른다.*
80화끝(5,1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