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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제주 도보 순례 피정 열세 째 날
밤새 비가 그치지 않고 창문을 두드립니다.
비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소리가 점점 커져만 갑니다.
하느님께서는 도보 마지막 날까지도 우리를 사랑하시나 봅니다.
뜨거운 햇빛, 구름, 강한 바람, 쏟아지는 폭우까지도 맛보게 해 주십니다.
오전 7시 30분 미사
예수님은 착한 목자입니다. 착한 목자의 양들은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그가 인도해 주는 문으로 들어갑니다.
거짓 목자와 거짓 예언자를 식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들을 식별하려면, 사랑을 실천하는지 아닌지를 살펴보면 알게 됩니다.
또한 올바른 식별인지 알려면 기도를 통하여 판단할 수 있습니다.
오전 9시 40분, 오늘은 녹(초록)기사가 된 토마스님의 봉고를 타고
노형 오거리로 갑니다. 하늘은 먹구름으로 뒤덮여 있어 비가 그칠 것
같지 않습니다. 노란 우의를 챙기고, 비닐봉지로 발 토시를 만들어 끼우고,
단단히 무장을 합니다.
노형 오거리가 오늘의 도보 출발지점입니다.
앞이 잘 안 보일 정도로 갈수록 빗줄기가 거세집니다.
길도 막혀 40분 정도 걸릴 거리가 1시간이 지나서야 도착합니다.
‘제 시간에 잘 마무리될 수 있을까?’ 제 마음이 콩닥콩닥하며 초초해집니다.
노형 오거리에서 비를 좀 적게 맞고 내릴 장소를 찾아봅니다.
전자제품 판매점 주차장이 보입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집니다.
모두 각자의 배낭은 봉고차에 내려두었습니다.
노란 우의를 입고 한 줄로 나란히 신제주성당으로 향해 걸어갑니다.
노란 병아리들이 모여 걸어가는 것 같이 참 예쁩니다.
호우 경보로 사람들이 많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우산도 없이
값싼 비닐 노란 우의를 입고 여럿이 모여 장대비 속을 걸어가는
모습이 이상한지 힐끗힐끗 쳐다보며 지나갑니다.
바지가 젖고, 신발에 물이 스며들어 절벅절벅 발이 무거워지고,
물집을 터뜨리고 실로 묶어둔 발이 불어터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묵묵히 걷습니다. 30분 정도를 걸어서 삼무공원 담벼락을 지나
신제주성당에 도착했습니다. 성전에 들어가 기도하며 제대 아래를 보니
성인 김성우 안토니오의 유해가 모셔져 있네요.
비가 잦아들지 않습니다. 김기량성당까지는
1시간 정도 걸어가야 합니다. 호우경보에 상습침수,
외출자제등 메시지를 고려해 보고 빗속에서 도로를 걷는
위험성을 생각하여 폭우가 좀 잦아들 때까지
봉고를 타고 이동하기로 합니다.
도보 1시간 걸리는 김기량성당에 10분도 채 되지 않아 도착합니다.
어라? 가건물인 성당이 한창 신축공사중이네요.
잠시 다른 장소로 옮겨간 것은 아닐까? 스테파노님이 알아보러 갑니다.
다행히 성전에 들어갈 수 있네요.
성전에는 부활 예수님이 계시고 신자석은 간이 의자들이 놓여있습니다.
서둘러야하네요. 황사평 성지를 거쳐 동광성당으로 가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합니다. 황사평 성지에는 무명 순교자들의
무덤이 있습니다. 우리의 녹기사가 조금 헤맵니다. 길이 좁고
표지판이 명확하지 않아 막다른 길로 갔다 돌아 나와
겨우 도착하여 참배합니다. 순례성지인 황사평 성지에서
스템프를 찍고 동광성당으로 향합니다.
봉고를 타고 10분 정도 이동하여 동광성당에 도착하니
신부님이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네요. 스테인드글라스로
들어오는 아름다운 빛을 받으며 예수님이 우릴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렇게 퍼붓던 비가 점점 잦아지고 있습니다.
오후 1시, 동광성당을 나와 바로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점심을 먹으러 갑니다. 도보순례 마지막 날은 주먹밥을 준비하지 않고
신부님이 특별히 점심을 사 주십니다. 비가 오지 않고 날씨가 좋으면
김기량성당 근처 산방산 식당에서 밀냉면을 먹는데, 오늘은
전복해물뚝배기입니다. 푸짐하고, 뜨끈하고, 시원하게 참 맛있게 먹었습니다.
아직은 먹구름이 군데군데 보이기는 하지만 비가 거의 그쳤습니다.
혹시 대비해서 비옷은 손에 들고 광양성당으로 갑니다.
광양성당에도 부활 예수님이 계시네요.
신부님이 제게 성당 마당에 있는 꽃을 좀 딸 수 있으면
살짝 따라고 검은 비닐을 주셨습니다. 모두들 성전에서
기도하고 있을 때 혼자 살짝 마당 주변을 살펴봅니다.
꽃이 거의 보이지 않아요. 저쪽 교리실 앞 구석에 조그만 화분에
분홍색 꽃이 있네요. 누가 보지 않을까 두리번거리며 화분을
가리고 쪼그려 앉아 그냥 구경하는 척하며 몇 송이를 슬쩍,
꽃 도둑(?)이 되어버렸습니다. 주님, 용서해 주세요!
도보 순례 마지막 성당인 서문성당으로 갑니다.
광양성당을 나와 KAL 사거리를 지나 서문성당으로
가는 길은 참 아름답습니다. 순례 내내 걸었던 해안로와는
또 다른 멋이 있습니다. 그리 넓지 않은 2차선 길가로
오래된 가로수가 마치 숲길을 걷는 것처럼 길게 뻗어 있습니다.
간간히 내리는 보슬비 속에 짙어가는 신록을 바라보며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사를 드립니다.
오후 3시 5분, 드디어 서문성당에 도착합니다.
서문성당에서는 성전에 들어가 예수님을 뵙고 성체 조배실로 갑니다.
성체 조배를 위해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예수님께 기도하고 대화를 해야 하는데 앉자마자 잠이 쏟아집니다.
눈을 부릅떠봅니다. 자꾸만 눈이 감기고, 성경 말씀을 읽는 세레나님,
레아님의 목소리가 아득히 멀리서 들려옵니다. 고개가 앞으로 갔다
옆으로 갔다 꾸벅꾸벅... 1시간이 까마득합니다.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요? 신부님이 성체 안에 살아 계신 예수님께
큰 절을 하라고 하십니다. 그냥 자비를 청하는 마음으로 깊은 절을 올립니다.
“주님, 아무 것도 모르는 저를 불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오후 4시 10분, 중앙성당으로 향합니다. 도보 순례 출발지요,
종착지입니다. 흩날리듯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20분 후 드디어
중앙성당으로 돌아왔습니다.
제5피 모두 감사하며 서로 깊은 포옹을 합니다.
감격의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무사히 끝까지 잘 해낸 자신이 자랑스럽습니다.
성전에 들어가 주님께 찬미와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저녁 8시 30분에 제5피 완주 인증식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샤워를 하기도 하고 짐 정리도 하면서 각자의 공간에서
쉬며 휴식을 합니다.
“엄마야! 어머! 어머!....”
갑자기 옆방에서 소리를 지릅니다. 깜짝 놀라 가보니 방문 틈에
뭔가 있는지 사비나님이 뒤로 피하며 앉아있고 레아님,
세레나님이 옆에 있었습니다. 사비나님이 지네에 물렸다네요.
방안에 지네가 있다니요!
지네를 잡아 없애야 하는데 모두 겁이나 머뭇거리고 있습니다.
지네가 문틈에 끼어있기는 한데 보이질 않습니다. 모기약이라도
찾아 뿌려야겠습니다. 지네를 죽이지는 못하겠지만 기절은 시켜
잡을 수 있지 않을까요? 모기약을 뿌리니 꿈틀대며 움직이는
것이 보입니다. 문틈에서 나온 것을 사비나님이 고무장갑을
끼고 잡고, 레아님이 비닐봉투 몇 개를 겹쳐 넣어 숨도 못 쉬게
꼭 묶어 쓰레기통에 버립니다.
일단 지네는 처리했는데 사비나님이 걱정입니다,
발바닥과 발가락 사이에 물렸는데 따끔거리고 발갛게 부어오릅니다.
근데 어떻게 지내한테 물렸을까요?
사비나님이 샤워 순서를 기다리며 방에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발에서 뭔가 따끔 하는 것 같더랍니다.
그래서 보니 지네가 수많은 다리로 방을 기어 지나가고 있어
놀라 소리를 지른 것이지요.
피곤한 상태로 비스듬히 다리를 꼬고 요염하게(?) 앉아 있어서
지네가 방에 있는 것을 보지 못 했다네요.
급한 대로 사비나님이 발에 모기약을 뿌리고 빨간약도 바릅니다.
근데 그렇게만 하면 아니 되옵니다. 지네 독이 퍼지면 통증이
심해지고 더 많이 부어오른다고 합니다. 암모니아수로 소독하고
항생제와 소염진통제를 먹어야 도움이 된다는 정보를 얻어서,
혹시 신부님은 그 약들을 좀 준비해 오셨는지 여쭈어 보니
가지고 계시지 않다고 하십니다. 우리의 봉사자 토마스님께
약국에서 좀 구해 올 수 없는지 부탁을 하니, 밤 9시 30분까지
진료를 하는 병원이 있다며 준비하고 밖으로 나오라고 하네요.
사비나님은 괜찮다며 병원에 안가겠다는 것을 함께 있는
우리를 위해서라도 가라고 권하여 진료를 받으러 갔습니다.
저녁 8시 20분을 지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사비나님이
진료를 받고 돌아와야 행사를 진행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신부님께 말씀드리고 기다리기로 합니다. 별일이 없어야 할 텐데....
사비나님이 돌아옵니다. 크게 문제는 없을 것 같지만 만약 더 아프면
병원에 한 번 더 오라며 약 처방을 해 주었답니다. 사비나님은
자신 때문에 일찍 나눔을 못하게 되었다며 미안해합니다.
밤 10시가 지났습니다. 형제님들이 사용하는 방 가운데 물을 담은
대야가 놓여 있습니다. 아까 낮에 아무도 모르게 딴 꽃들이 대야
물위에 떠있고, 컵초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방안의 불을 모두 끄고 12일 동안 도보순례를 하면서
가진 각자의 생각을 돌아가며 나눔의 시간을 가집니다.
제5피 모두 이런 좋은 시간들을 허락하신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고, 초대해 주신 신부님께 감사하고, 각자 자신에게
큰 선물을 준 것에 감사했습니다.
제5회 제주 도보 순례 완주 증서와 12개의 노란 리본에
모두의 이름을 적어 넣어 하나씩 받습니다.
신부님은 순례 기간 동안 드린 미사예물로 성물들을 준비하여,
도보피정 참가자들에게 나누어 주십니다.
전례 담당 유수길 미카엘, 이양희 레지나, 운전 봉사 최경호 토마스,
길잡이 김미령 엘리사벳, 체조 봉사 이양희 레지나.
글쓰기 이숙현 세레나, 김미령 엘리사벳, 인기상 서영해 레아.
왕언니상 박영순 마리아, 순례상 서영해 레아,
제5피 한 명 한 명 모두다 12일 동안 걸었던 여정에 관한
문제들을 풀고 상을 받아 갑니다.
특별행사가 있습니다.
올해 칠순이 된 이상숙 율리엣다님의 축하식입니다.
배우자이신 유수길 미카엘님의 꽃 한 송이, 축하카드,
신부님께서 준비한 선물을 전합니다. 맛있는 케이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제4피 도보순례자이며, 성산포성당에
오셨던 윤미숙 알퐁시아 수녀님이 율리엣다님을 위해
서울에서부터 공수해 준 케이크입니다.
율리엣다님,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오래오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밤이 깊어갑니다. 서로 서로에게 힘이 되어 어려운 다리를 잘 넘어왔습니다.
새로운 날을 위해 오늘 밤만큼은 맘 편히 푹 쉬었으면 좋겠습니다.
언제나 저의 힘이신 하느님
감사합니다.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고
저를 당신께 온전히 바치지도 못하지만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열린 마음을 주소서.
아멘!
김미령(엘리사벳)님이 쓴 글을
제가 대신해서 올려드립니다.
첫댓글 드디어 완주하셨네요. 제5피 모든 분들께 뜨거운 박수 보내드립니다.
참으로 맛갈스런 순례기를 잘 읽었습니다...수고들 하셨습니다...^^*
비가오면 움츠려드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비옷을 입고 아픈 발 물집에 빗물로 소독을 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처럼 재미있게 잘 읽었는데 끝이났네요.
마음은 아쉽지만 돈주고도 못 살 고생 많이하셨어요.
순례단 모두와 봉사자 토마스님과 신부님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
물집이 잡히고 불어터진 발로 비를 뚫고 완주하신 모든분둘께 박수를 보냅니다.
따가운 햇볕과 비와 세찬 바람! 이 모든것을 이겨내고 난 후의 마음은 얼마나 알곡처럼 익어 있을까요?
모두들 넘 수고 하셨고 불편한 몸들이 빨리 회복되면 좋겠습니다.
진 사비나님도 얼른 나아지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칠순이 되신 율리엣따님!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달려가서 축하하고 싶지만
우선 글로써 축하드립니다.
그동안 한편의 드라마같은 글을 올려 주신 안젤로님 세레나님! 엘리사벳님! 감사드립니다.
드디어 완주!! 축하드립니다.
재미있는 순례기도 끝나고 시원섭섭합니다.
몸 추스리고 건강 회복하시길 바랍니다.^^*
변화무쌍한 날씨 속에서 순례 잘 마치심 축하드려요.
돌아온 최기사도 건강한 모습이어서 모두 그런 은총 속에 몸과 마음이 더 영글어지셨을 것 같아요.
차사랑 언니 뜻깊게칠순 맞으심 축하 드려요.
이끄시느라 애쓰신 신부님,
글쓰시느라 수고하신 작가님들 덕분에 즐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제5피님들 모두 푹 쉬시고 은총 속에 평화로우시길 빕니다.~^^
완주하신 모든 분들께 경의를 표하며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생동감 넘치는 순례기 정말 감사했습니다~^^💕
완주하신 모든 순례자님께 경의를 표합니다.^^
보람, 은총, 성찰
모든것을 한아름 안고
돌아오셨네요.
신부님, 기사님, 작가님께도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