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2차 전남 여수 거문도, 백도(2022.3-4)
1박2일로 전남 여수의 거문도와 백도를 다녀왔습니다. 거문도는 여수시 삼산면에 속해 있는 세 개의 섬(동도, 서도, 고도)과 주변의 백도를 포함한 무인도를 일컫는다고 합니다.
새벽 2시 반에 체육관에서 출발했습니다. 아침으로 차 안에서 모시떡과 김밥이 나왔습니다. 모두 잠도 자지 못했지만, 여행의 들뜬 마음은 피곤한 기색을 날려버린 듯했습니다. 4시간을 넘게 달려와서 7시에 여수 녹도 신항에서 배를 탔습니다. 배는 녹도에서 거문도를 연락하는 여객선인데 생각보다 큰 배였습니다. 잔잔하게 일렁이는 파도에 반사되는 아침 햇살과 그 햇살이 녹도 항의 건물들과 섬들의 바위에 비취는 신비한 모습이 여행을 시작하는 사람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배는 초도항에 잠시 들렸다가 거문도로 향했습니다. 3시간이 넘게 걸렸습니다. 녹도 항이 멀어지니 무인도들이 여기저기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아침 햇살 속의 무인도들이 마치 망망대해에서 무엇을 기다리는 망부석처럼 보였습니다. 남해의 다도해인 이 조그마한 바다도 망망대해처럼 넓은데, 저 태평양은 얼마나 클지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이렇게 큰 바다가 오염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니 이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 쓰레기를 쏟아내는지 그것도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거문도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고 바로 작은 배를 타고 백도 관광에 들어갔습니다. 백도는 거문도 바로 옆에 있는 섬이라고 하지만 백도까지 배로 약 1시간이 걸리는 거리였습니다. 옅은 해무가 깔려 있어서 멀리서는 백도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배 안에서 한웅동 전 회장님이 백도를 평하면서, 홍도, 백령도가 아름답다고 하지만 백도가 그중 최고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홍도도 보았고 백령도도 가 보았는데, 특히 백령도의 기암괴석이 잊히지 않던 터라 좀 과장이려니 했습니다. 그런데 백도에 도착하자마자 한 회장님의 말씀이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안내자가 설명하는 바위의 이름들을 다 모으면 아마도 이 지구에 사는 모든 동물과 새들이 다 들어가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독수리, 매, 원숭이, 거북이, 물개는 기본이고, 망부석, 사내 바위, 성모마리아 같은 사람 모습도 가지가지고, 시루바위, 병풍바위 또 무슨 무슨 바위, 다 기억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기암괴석 보다 백도의 묘미는 크고 작은 바위기둥들이 섬 주변에 흩어져서 만들어내는 풍경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백령도의 기암괴석이 여백이 없는 풍경이라면 백도는 여백이 있는 풍경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백령도의 바위들은 대부분 모(母) 섬에 거의 붙어 있는 것들이었지만 백도의 바위기둥들은 섬에서 가깝게 또는 멀게 흩어져 있어서 더욱 운치를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큰 바위기둥 사이에 작은 바위기둥이 있어야 큰 바위도 큰 바위의 멋이 살고, 작은 바위도 작은 바위 멋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요? 경치는 어느 하나의 독특한 모양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모양들이 전체적으로 만들어내는 맥락적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백도는 상백도와 하백도로 이루어져 있고 상백도가 좀 여성적이라면 하백도는 섬 3개로 이루어져 있는데 좀 남성적인 인상을 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금강산과 설악산의 차이라고나 할까요?
백도 관광을 마치고 돌아오는 배에서 나는 백도 관광의 감동을 좀 더 길게 이어가고 싶은 마음에서 배의 뒤편에서 멀어지는 백도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옅은 해무가 멀어지는 백도를 더욱 신비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여기저기 솟아 있던 바위기둥들은 어느새 뉴욕 맨해튼의 마천루들처럼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해무 속에 가려져 있는 백도는 무인도가 아니라 마치 거대한 도시처럼 보이고, 저는 그 속에 거대한 문명사회가 있을 것 같은 상상에 빠지고 있었습니다. 인간이 없는 문명,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상상이지만, 그 속에 살고 있을 새와 다람쥐, 따개비와 이끼들, 그리고 가끔 방문하는 물개와 고기들이 대도시의 인간들보다 더 생존을 위해 치열한 투쟁을 하는 곳이 아닐까요? 그러니 그들이 만든 생태계에 ‘문명’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 그렇게 잘못된 것은 아닐지 모릅니다.
배에서 내리면서 “어땠느냐?”고 묻는 총무님의 말에 ‘내가 본 최고’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너무 지나친 나의 편견일지 모릅니다. 모든 경치는 그 나름의 독특한 면을 가지고 있어서 비교하여 결론을 내리는 것은 인간의 폭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은 우열의 비교 대상일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백도를 가장 최고라고 하는 것은 그 감동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은 될 수 있을지 모르나 올바른 평가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백도는 정말 아름다운 섬이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불탄봉과 유림해수욕장 산행에 나섰습니다. A코스는 불탄봉과 등대를 돌아 유림해수욕장으로 돌아오는 4시간 정도 코스고, B코스는 유림해수욕장을 거쳐 등대까지 다녀오는 코스였습니다. 저는 불탄봉을 생략하고 수월산으로 가는 코스를 택했습니다. 산을 오르는 길에는 대부분 동백나무 터널이 있어서 남쪽 섬을 실감케 했습니다. 산에서 보는 등대와 바다의 풍경도 좋았습니다. 맑은 공기와 아름다운 경치 탓인지 그렇게 피곤하지 않았습니다.
저녁은 싱싱한 자연산 회가 나왔습니다. 더구나 귀하디 귀하다는 갈치회까지 나왔는데, 충청도 분들이 갈치회의 맛을 몰라 갈치회 포식을 했습니다. 회를 먹으러 갈 때는 충청도 사람과 동행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회를 못 드시는 방석하 선생님이 걱정이었는데, 이번에는 맛있게 드셨다고 하셔서 다행이었습니다. 저도 하지 않던 소맥도 몇 잔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녁에 속이 좀 좋지 않아서 11시 쯤 저 혼자 밖에 나와 한 시간가량 고도 마을을 한 바퀴 돌고 와서 잠이 들었습니다. 한 방에 4-5명씩 들어갔는데 모텔이 깨끗하고 방도 따뜻하여 하룻밤을 지내기에는 아주 좋았습니다.
이튿날에는 인어 해양공원과 해밀턴 공원을 관광했습니다. 인어 해양공원의 인어를 보고 박은옥 권사님은 덴마크 코펜하겐의 인어상보다 훨씬 멋있다고 했습니다. 사실 그랬습니다. 하지만 거문도의 인어상과 덴마크의 그 인어상을 비교하는 것은 마치, 박물관에 있는 고흐의 그림과 고속도로 휴게소에 걸린 고흐의 그림을 비교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인어 공원에서 등대까지 갔다가 돌아와서 숙소가 있는 고도 뒤편의 영국군 묘지로 갔습니다. 영국군이 우리나라까지 먹을 속셈으로 이곳에 와서 2년이나 주둔했다고 하니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만들었다는 테니스장이 우리나라 최초의 테니스장이 되었고, 지금 그 자리에 테니스장을 만들어서 기념하고 있었습니다.
어제와 달리 오늘은 바람이 좀 있어서 배가 뜨니 마니 하더니 큰 문제 없이 배가 운행되었습니다. 어제 많은 사람이 배가 뜨지 못할까 걱정했는데 다행이었습니다. 회장님은 새벽에 거문교회에 나가서 헌금까지 하면서 한 새벽기도 제목이 배 뜨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는데, 장로 회장님의 기도라 하나님이 특별히 들어주신 걸까요? 하나님도 약간은 편파적이라는 생각이 살짝 들었습니다.
정말 이번 여행은 모든 것이 박자가 잘 맞은 교향곡 같았습니다. 1박 2일 동안 아무런 사고도 없었습니다. 날씨는 정말 더 바랄 것이 없이 좋았습니다. 거문도에 간다고 해서 백도를 언제나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가는 날 바로 백도 관광을 할 수 있었습니다. 여행사 사장님도 친절하고, 숙소며, 음식이며 나무랄 데가 없었습니다. 모든 일정을 하나의 차질도 없이 마칠 수 있었던 것은 회장님, 총무님, 여행사 사장님의 애쓰심과 하나님의 보살핌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1박 2일의 멋진 여행이었습니다.
첫댓글 갈색 가을에 떠났던 호사스러운 섬여행 거문도.
그 행복했던 여행길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철썩이는 푸른 파도소리와 기분좋은 바람결과 햇살고운 늦가을볕이 황홀했던 동백터널 능선길이 아직도 그곳에 서 있는 듯한 기분입니다.
더함이없이 만족했던 3박자의 여행길은 정말 행복이 였습니다.
3번째 도전으로 만날 수 있었던 백도의 감동도...흥분하게 했고...
이제껏 다녔던 섬 여행중 최고였습니다.
아름답고 행복한 가을여행을 할 수 있도록 모든 수고을 아끼지 않았던 천봉산악회 최고 최고~
품격있는 산행기에 감사를 드립니다. 총장님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회원님들 모두모두 무탈하게 잘 다녀오심에 감사합니다. 모두 한마음 되셔서 사랑과 존경으로 똘똘 뭉쳐진 우리 산악회 자랑스럽습니다. 총장님의 섬세한 일지는 우리의 아름다운 역사가 됩니다.
글을 읽으면서 여행했던 기억들이 새롭게 생각 납니다 어쩜 글을 그렇게 생생이 기억나게 쓰셨는지 내생에 인어공주를 다 안아보다니 목요천봉산앇회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