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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빛 되신 하나님! 믿음과 율법에 대한 내용을 같이 알아보는 세 번째 시간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무지하고 죄로 물든 인생! 조급하고 인내하지 못하는 인생을 길이 참으시고 참된 진리의 길로 인도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크신 은총을 세세토록 찬양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와 성령님의 늘 동행하심과 한량없으신 사랑으로 죄인이 누릴 수 없는 영적인 세계를 누리게 하심을 감사와 영광과 존귀를 돌리옵나이다. 주님의 뜻이 속히 이 세상에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어제는 직장에서 근무하는데 너무나 힘이 들었습니다. 집에 왔는데 제 아내가 어떤 권사님께서 주셨다는 김치를 꺼내서 먹어보라고 했는데 이 사건에 새로운 힘이 부쩍 났습니다. 주님께서 저보다 더 수고를 하신 날이었습니다. 잠을 잘 자고 이제 다시 힘을 내어서 성경의 해석에 대해서 주신 은혜를 같이 나누려고 합니다. 하나님! 세상의 법에도 질서가 있습니다. 헌법을 정점으로 법규와 그리고 명령과 규칙이 그 질서를 이루면서 상위법 우선의 법칙이 존재하고 어떤 법의 위법 여부는 상위법에 비추어서 결정하고 법을 해석을 할 때도 상위법에 맞게 해석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천국 백성의 법인 성경 속에도 많은 법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어떤 때는 이 말씀이 서로 다르게 말씀을 하시는 것 같아서 어떤 말씀을 따라서 가야 할지 어리둥절 할 때 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성경을 읽을 때 마다 지혜를 주시고, 그 말씀의 의미를 우리가 올바로 이해할 수 있게 우리에게 지혜를 주옵소서. 그래서 우리가 모두 정의롭게 살 수 있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샬롬! 손흥민 선수의 원더골에 모든 국민과 온 세상이 열광하고, 동남아에 있는 베트남의 멋진 선교사 박항서 감독의 베트남의 승리로 베트남이 흔들거리고 곧 류현진 선수의 큰 계약도 이루어질 것 같습니다. 신학도 예수님을 믿는 일도 성경을 이해하는 일도 우리 민족이 온 세상에서 최고가 되어야 할 것이고 우리의 이런 시도도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성경은 많은 율법과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들이 있습니다. 66권의 책이 예수님으로 통일이 되어 있지만 어떤 일에 대해선 서로 다르게 말씀을 하시는 것 같은 경우도 있는데 우리가 지금 논하는 믿음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모두가 아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로마서의 말씀과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란 야고보서의 내용이 그렇고 율법에 있어서도 예수님의 율법에 대한 가르침과 바울의 율법에 대한 가르침이 있는 로마서의 내용이 다른 것과 같이 보입니다. 그래서 신학적인 논쟁이 있습니다. 구원에 대해서도 그렇고, 교회의 설립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행위로 구원을 받나 믿음으로 구원을 받나 하는 논쟁이 있고 베드로의 신앙고백이냐 혹은 베드로 자신이냐 하는 논쟁이 있는데, 이 논쟁으로 교파가 나누어지기도 합니다. 같이 예수님을 믿지만 같이 성경을 믿지만 천주교, 개신교, 그리고 정교회가 나누어져 있는 것은 교리가 다르기 때문인데 이는 성경의 해석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도 사실 쉽게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는데 로마서와 야고보서의 믿음 부분은 구원을 받을 때 믿음으로 받고 구원을 받은 사람이 행하지 않으면즉 사랑을 실천하지 않으면 그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고 이해를 하면 두 성경이 다르지 않고, 교회론에서 베드로냐 혹은 베드로의 신앙의 고백이냐를 다투지 말고 교회는 예수님께서 세우시는 것을 알면 이도 다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직접 성경을 보시겠습니다.
롬 3: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약 2: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마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두 가지의 예를 보았습니다. 두 본문만 보고서 바로 해석을 하지 말고 다른 본문의 내용도 전후 관계를 살펴서 잘 보면서 이해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경 속에도 반드시 지켜야 할 질서가 있음을 믿습니다. 예를 들면 전도를 하다 보면 어떤 분은 전도는 먼저 내가 다른 사람이 나를 보고서 스스로 믿을 수 있게 내 행동을 먼저 잘 하고 내가 남이 부러워할 수 있게 잘 산 후에 전도를 해야 한다. 네가 사는 것이 그 모양인데 무슨 전도가 되냐 너 문제부터 먼저 해결을 해라 하고 핀잔을 주는 분도 있고 그리고 또 전도를 하다 보면 다른 중요한 일이 있는데 전도는 나중에 하라는 분도 있고 그리고 성경 말씀에도 모든 일은 그때를 따라서 적절하게 해야 된다고 전도서에 말씀을 하시고 있고 그리고 전도에 대해서 직접 디모데 후서 4장 2절에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에 힘써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보시겠습니다.
전 3:1.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2.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3.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4.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5.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6.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7.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8.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딤후 4: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자 이제 우리는 전도를 위해서 위에서 본 먼저 내가 다른 사람이 믿을 수 있을 때까지 모든 면에서 성공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가? 혹은 전도서의 주장과 같이 범사에 때가 있으니 이때를 기다려야 하는가 혹은 전도와 일의 순서를 정해서 전도를 미루어야 하는가? 혹은 딤후 4장 2절의 말씀을 좇아서 다른 사람이 이상하게 생각을 할 정도로 전도를 해야 하는가를 결정을 해야 합니다. 이 말씀들만 보면서 해석을 하려고 말고 전도는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먼저 알아야 하는데 전도는 사도행전 1장 8절과 같이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수님의 증인이 된다고 하셨으니 성령을 받고서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서 하면 가장 정확합니다. 성령께서 어디에 가서 누구에게 전해라 말아라 정확하게 말씀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도 저희도 인간이기에 어떤 때는 성령의 인도를 잘 알기 어려울 때가 있는데 이때는 내 고집이 나를 주장할 수가 있습니다. 이럴 때 딤후 4장 2절의 말씀을 보면서 열심히 전하면 된다고 봅니다. 먹는 문제, 잘 사는 문제보다 내 사랑하는 이웃과 가족의 생명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전도는 절대로 미룰 수가 없고 욕을 먹고 또 이상하게 세상이 생각을 해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딤섬을 먹은 후에 직장에 복귀하기 전에 그 사이 즉 잠시 쉬는 시간에 전도의 기회가 있는데 이것이 디모데 후서 4장 2절을 외우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를 하라는 말씀이 가장 때에 있어서는 우위의 말씀이고 전도서의 말씀은 전도를 할 때는 잠시 접어두고 전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논하는 율법이나 믿음이냐 하는 부분도 로마서나 바울의 서신서만 보면 믿음이 가장 중요하고 행위나 율법은 그다음이다 혹은 더 나아가서 믿으면 만사가 다 해결이 되는 것과 같이 설명을 하고 이런 신학이 오랫동안 개신교를 지배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을 중심으로 이렇게 하다 보니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바울의 제자가 되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등한시하는 결과를 가져온 약 5백 년을 되돌아보면서 아니다 이렇게 하면 바울 즉 예수님을 전하는 바울이 예수님을 그의 서신서로 무시하게 하니 이것이 과연 올바른 일인가 생각하게 되고 정신이 든 사람이 비로소 사복음서의 내용을 바울의 서신서를 해석할 때 먼저 살피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바울의 서신서에 정신이 너무 나가서 바울이 진작 자신의 서신서를 통해서 전하고자 했던 예수님을 멀리 하게 하는 즉 예수님의 가르침을 무시하게 하는 경향이 아주 농후하니, 입으로는 말만 열면 예수님를 외치는데 정신이 나갈 정도이면서, 실상은 세상에서 예수님께서 하라는 사랑은 참으로 잘 하지 않는 분들이 너무나 많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 되었습니다. 가정을 나서면 세상이 싸울 세상이 기다리고 있고 지하철을 타도, 버스를 타도, 직장에 가도,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기가 참으로 쉽지가 않고 그 오늘 만나는 사람의 약 30%는 천주교인이거나 개신교인인데 그렇습니다. 모두가 세상이 되어서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난 세상에서 살고 있는데, 목자는 이런 세상에 계시지 않고 높은 성전에서 모든 성도에게 명령만 하고 있습니다. 전도하세요! 사랑하세요! 그렇게 마시고 먼저 사랑하고 전도하려 이 낮은 세상으로 오세요. 청소도 하시고 경비도 하시고 사람으로부터 심한 모욕과 멸시를 당하시면서 전도하고 사랑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울의 서신을 잘못 이해를 해서 그렇게 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살라고 한 번도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왜 바울의 서신을 잘못 이해를 해서 지옥에 가게 살고 지옥에 가도록 가르치고 있습니까? 모두가 행함이 없는 신학자 목사의 잘못이 큽니다. 미국에서 정신이 들어서 예수님께로 이동이 일어나고 있는데 속히 우리도 미국보다 먼저 정신이 들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의 해석에 대한 논의는 신학자의 몫이기도 하지만 목사도 성경을 해석을 해야 하고, 성도도 또 성경을 읽으면서 해석을 해야 하니 기준이나 질서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행시를 하면서 헌법과 다른 법을 배우고 그리고 성경을 읽고서 정리하고 전도를 하면서 이해된 질서를 나누고자 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한량없으신 은혜로 이루어졌음을 굳게 믿습니다. 성경의 말씀을 보시겠는데 먼저는 예수님께서 율법학자가 물을 때 하신 대답이 있습니다. 보시겠습니다.
마 22:35. 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36.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예수님께서 정확하게 계명 중에서 가장 큰 계명을 이렇게 정해 주셨으니 큰 문제가 해결이 되었습니다. 성경을 해석할 때 이 말씀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해석을 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일반법에도 법의 정신이나 원리나 하는 것이 있어서 조문을 잘 해석하기 어려울 때 이 정신이나 원리를 중심으로 해석을 하고 또 헌법을 최 상위에 두고서 이 법을 기본으로 모든 법규를 만들고 또 해석을 합니다. 최근에 헌법 재판소에 위헌 여부를 묻는 일이 있었는데 어떤 법이 만들어져서 시행이 되고 있었는데 일부의 사람들이 이 법이 옳지 않다고 헌법 재판소에 재소를 해서 재판소가 이를 심사하고 위헌 여부를 결정했습니다. 이와 같이 위의 두 조항은 모든 성경해석의 기본이 되는 말씀입니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의 말씀을 반박해서 아니다 이보다 더 나은 다른 말씀이 있다라고 할 사람은 없는 줄로 믿습니다.
그다음은 모두가 아는 십계명입니다. 십계명은 믿는 이는 대부분 잘 아시는데 우선 4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이고 또 나머지 6계명은 이웃 즉 부모님과 부부와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을 사랑하는 말씀입니다. 너무나 흠이 없고 아름답고 너무나 정의롭고 공평하며 귀한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법으로서 모든 인간이 행복하게 사는 법인데,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에게 주신 법으로서 모든 인류가 반드시 지켜야 할 각국의 국법에 우선해서 지켜야 할 법입니다.
이제 이를 영어로 보겠습니다. 먼저 가장 큰 계명은 36. "Teacher, which is the greatest commandment in the Law?"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그리고 십계명은 모두가 아시는 바와 같이 Ten Commandments입니다. 그리고 영어의 Law는 법, 혹은 율법입니다. 그 아래에 규칙 Regulation이 있고 그다음에 명령 즉 Order가 차례로 있습니다. 이를 우리말 성경은 법규, 율법, 계명, 규례, 명령 등으로 번역을 했습니다. 그리고 미국 사회에는 직접 현장에서 따라야 할 규정 혹은 매뉴얼인 SOP((Standard Operating Procedure)가 있는데 이도 법과 명령에 의거해서 이 범위 안에서 구체적인 표준 운영 절차를 정한 것입니다.
이렇게 만 성경의 해석의 질서를 세워도 많은 해석의 문제가 해결이 됩니다. 믿음이나 율법이냐를 따질 때 먼저 예수님의 말씀을 즉 사복음서의 내용을 먼저 살피는 것이 모든 면에서 서신서의 내용을 속히 홀로 해석을 하는 것과 비교를 해서 너무나 옳은 일입니다. 어떻게 같은 성경의 말씀이지만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을 무시하고 그분의 제자 혹은 종의 말을 홀로 해석을 하고자 합니까? 성령의 감동이라 절대로 잘못된 부분은 없지만 반드시 이 질서를 세워야 합니다. 먼저는 가장 큰 두 계명, 그다음은 십계명, 그다음은 예수님의 모든 말씀, 그리고 서신서의 순서로 성경 해석의 질서를 세워야 합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구원받고 천국이 보장된다는 우리의 지금의 가르침을 이 원리에 놓고 보면 참으로 황당한 내용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언제 하나 사랑은 어디에 있지 사랑이 없이 실천이 없이 믿음 하나만으로 의롭게 되고 천국이 보장이 되고 구원을 받구나 어떻게 이런 주장을 쉽게 받아들입니까? 그리고 성경에 믿기만 하면 천국 보장이란 말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한 번도 없고, 바울 사도도 한 번도 하신 이야기가 절대로 아닙니다. 천국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대단히 단호합니다. 절대로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음을 말씀하셨는데 모든 성도가 이를 잘 압니다. 그런데 왜 이런 주장에 정신이 나갑니까? 절대로 믿음 하나 만으로 천국이 보장이 되지 않습니다. 이제부터는 이렇게 믿고 바로 작은 사랑이라도 실천을 하셔야 합니다.
이제 다시 세 번째 시간으로 돌아갑니다. 권사님의 맛있는 김치 한 포기가 이렇게 한 지친 인간에게 힘을 줍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모든 진을 다 빼놓는 사람을 만나기도 합니다. 하루 종일 참으며 사랑을 해 주어도 그 사랑 알지 못합니다. 내 진이 다 빠지게 참고 사랑을 해도 또 덤빕니다. 그래도 사랑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믿는 이의 격려는 이렇게 새 힘을 줍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격려하고 그리고 힘을 주고 살아야 합니다. 제 글의 어떤 부분에 대한 지적은 이 시대의 잘못된 목자나 신학에 대한 부분이 많고 일반 성도에 대한 내용을 많지가 않습니다. 성도는 힘들게 세상에 살고 돈을 벌어서 교회에 헌금 내고 목사님을 섬기면서 삽니다. 너무나 힘들게 살고 있고 저도 그렇게 오랫동안 살았습니다. 불의한 세상에 분노를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교회의 모습에 때로는 분노하고 마음 아파하며 살고 있습니다. 과연 예수님께서는 어떤 교인을 꿈꾸시며 그 무겁고 무서운 십자가를 지셨겠습니까? 저는 성경의 순서 즉 사복음서와 사도행전과 그리고 로마서를 보면서 그동안의 예수님의 깨닫게 해 주심과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그리고 직접 성령을 받고서 오랫동안 복음을 전한 체험에 따라서 아래와 같이 정리를 해 보았습니다. 보시겠습니다.
모든 분이 도표를 보시면 바로 이해가 될 것입니다. 성경의 순서를 그대로 표시를 했고 베드로와 사도와 당시의 성도가 그대로 체험하고 지키면서 살았던 내용이며 바울 사도는 구약만 알고 있다가 예수님을 직접 만나서 회개하고 그리고 그다음의 순서로 살았습니다. 베드로 등은 예수님께 직접 배웠지만 바울은 구약을 당시의 누구보다도 잘 배우고 직접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서 회개하고 그리고 아니니아를 통해서 세례와 성령의 세례를 받고 예수님에 대해서 잘 배우고 구약의 예수님에 대한 부분도 잘 이해를 해서 복음의 증인이 되고 로마서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이 단계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비로소 로마서의 믿음과 율법의 내용이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절대로 순서를 건너 뛰거나 빠지면 문제가 생깁니다. 이런 체험이 없이 신학도 했지만 바로 로마서의 이해로 직행하면 절대로 수백 년이 지나도 로마서를 올바로 이해하기 어려운데 500년 동안 우리는 어떻게 믿고 살았는지 보시기 바라며, 또 남이 전해주는 신학을 그대로 믿으면 또 수백 년이 갈 수가 있습니다. 이제 이 시대에 이를 올바로 잡고 모든 이가 올바른 믿음과 행함을 해야 하니 이런 일이 이 한국에서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회개는 이미 말씀을 드렸지만 가장 중요한 단추입니다. 이 단추가 없거나 잘못 끼워지면 나중에 모든 것이 틀어지고 회개가 없으면 나중의 과정을 시작해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선물, 즉 죄의 용서와 성령의 선물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지켜야 할 절차는 반드시 세상의 모든 일에 앞서서 지켜야 하고 또 성령의 인도를 반드시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면 죄와 사망의 법을 이기게 됩니다. 천국에 반드시 들어갑니다. 율법을 완성하게 됩니다. 이렇게 살면 됩니다. 성령의 선물은 성도에게 가장 중요하고 시급하고 가장 좋은 선물입니다. 능력이 옵니다. 성경이 깨달아집니다. 그리고 전도가 쉬워지고 신앙생활이 즐거움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주안에서 늘 새롭고 늘 소망이 넘칩니다. 세상의 유혹을 이기게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성령의 선물은 반드시 꼭 100%(고넬료의 예- 성령을 받고 나중에 세례를 받은 경우)는 아니지만 베드로의 사도행전 2장 38절의 절차를 지켜야 합니다. 위의 그림은 그 내용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니 성경의 말씀 그대로입니다.
사복음서의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그대로 말씀을 배우고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세례를 받으면 죄의 용서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지금까지 지은 모든 죄의 용서가 옵니다. 하나님께서 죽을 죄를 지은 인생을 예수님의 보혈과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을 통해서 용서를 하시는 것입니다. 죄에 대해서 회개도 없이 그대로 있는 사람을 어떻게 용서를 하시겠습니까? 반드시 회개를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첫 번째 요구하는 말씀입니다. 반드시 회개를 해야 합니다. 성경을 읽으면 금방 내가 한 과거의 행동과 대조를 하면 죄를 깨닫게 되어 있습니다. 설교를 들으면 죄가 생각이 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잘못을 고하고 다시는 그런 죄를 지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회개를 했다고 하고 또 교회에 나오지만 다시 예전과 같이 살면서 죄를 지으면 어떻게 회개를 했다고 누가 인정을 하겠습니까? 그리고 다음 절차를 지키고 사도들과 같이 예수님의 제자들과 같이 말씀을 잘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도의 영의 양식이기도 하지만 성도의 이 세상을 살면서 모든 법에 우선해서 지켜야 하는 천국 백성의 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반드시 베드로와 같이 바울과 같이 다른 사도와 초대교회의 교인과 같이 선물로 주십니다. 그리고 권능을 받게 되고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됩니다. 세상은 어두운 밤과 같이 우리가 어디로 갈지 모르는 것으로 가득 찬 곳입니다. 빛 되신 주님의 인도 없이 지혜와 지식의 영이시며 능력의 영이신 성령의 인도함 없이 절대로 똑바로 살 수가 없는 곳이고 우리는 육은 늘 죄로 가려고 합니다. 이를 성령께서 내주하시며 제어하고 위로하시고 깨닫게 해 주시고 감동케하심으로 우리는 죄를 이기고 올바른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백 번 읽고 신학을 수백 번 해도 성령의 인도와 감동과 제어와 충만이 없이는 절대로 올바로 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절차를 지켜서 성령을 받는 일이 가장 중요하고 목사의 성도에 대한 가장 중요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이를 제쳐두고 구제를 백 번 하고 교회를 세우고 성도를 모아도 아직은 부족합니다. 목사는 성도가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내용을 잘 배우도록 하고 거룩하게 구별되게 해서 성령을 받도록 준비를 잘 하는 것이 가장 자신의 의무를 잘 이행를 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대부분 아직도 배울 것이 많지만 성령께서 그 사람의 주인이 되셔서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고 사랑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도우면 될 것입니다. 별도로 해줄 말이 필요 없는 분들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순서를 지키지 않는 성도를 보겠습니다. 로마교회에 있던 유대인 성도의 예가 됩니다. 바울이 로마서에서 율법이 아니고 믿음으로 살아라 하는 분들이 이분들입니다. 우리는 이분들이 아님을 반드시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로마서를 한국의 성도에게 바로 설명하면서 율법이 아니고 믿음이라 라고 가르치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가르침이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율법도 알지도 배우지도 않고 사는 분에게 율법을 논할 필요가 전혀 없는데 여전히 율법을 논하고 있는데 모든 로마서를 가르치는 분들이 그렇습니다. 그렇지 않은 분은 찾기가 어렵습니다. 재벌이 내가 아닌데 재벌의 삶이 아니고 보통 일반인을 삶을 살아라라고 나에게 가르치고, 내가 평범한 보통의 사람인데 누가 시도 때도 없이 계속 그렇게 가르친다면 내가 분통이 나야 옳습니다. 재벌한테나 가서 그렇게 외쳐요! 나는 이미 보통 평범한 사람의 삶을 잘 살고 있지 않습니까 할 것입니다. 성경에서 누가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분명히 알고 설명을 해야 합니다.
제게 주신 은혜대로 그 내용의 이해를 그림으로 표시를 했습니다. 유대인 성도가 참으로 많고 이들이 율법에 얼마나 빠져 있는지는 앞에서 설명을 했습니다. 이들이 율법을 따라서 성령의 인도를 받기를 거부하고 위의 절차를 무시하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 생활보다는 과거의 예수님께 책망을 받은 것과 같이 율법의 정신을 버리고 율법의 조문을 지켜서 의를 이루고자 하고, 또 장로의 유전을 따라서 율법 자체를 부정하는 삶을 산 율법학자나 바리새인과 같이 신앙생활을 하고, 또 나아가서 이들이 율법을 잘 안다고 율법을 모르는 이방인 성도에게 위의 절차와 같은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신앙생활을 하도록 인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율법을 배우고 율법을 따라서 사는 삶을 강요하기에, 이는 예수님의 믿음을 통한 죄 사함과 의롭게 됨을 무너뜨리고 성령을 받는 길을 금하고 마침내 성령의 삶이 아닌 육의 삶으로 인도할 수 있기에, 이는 예수님께서 오신 의미를 십자가의 의미를 저버리게 하는 너무나 잘못된 행위이기에, 로마서나 다른 서신서에서 율법이 아니고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고 그렇게 강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사도바울께서 예수님을 믿어서 죄를 용서를 받고, 의롭게 되고 그리고 성령을 받고, 그리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서 살라고 강하게 반복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바울께서는 절대로 율법을 버리라는 말씀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도, 또 세상에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반드시 따라야 하는 율법의 행위를 하지 말라는 말씀도 아니 하시고 있음을 굳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위의 절차를 어기고 처음부터 율법을 배우고 지킴을 통해서 구원을 얻음도 잘못이고, 위의 절차를 따라서 성령을 받은 자가 성령의 인도보다 율법의 행위를 추구하고 이를 지켜야 한다고 하면서 정작 율법의 정신인 의로움과 신의와 자비를 버리는 것도 잘못임을 지적하는 말씀입니다. 즉 위의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신앙의 순서에 따라서 신앙생활을 하라는 말씀이 로마서의 율법과 믿음의 논의의 본질입니다.
그런데 이런 의미를 제대로 배우지도 알지도 못하면서, 율법이 아니고 믿음이다 하면서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으니 구원을 받은 것이고, 이 구원은 절대로 취소가 없고, 따라서 천국이 보장이 되었고, 행위는 나중에 천국에 가서 받을 상급을 결정할 뿐이다라고 가르치는 것은 율법학자의 가르침보다 더 어이가 없고 이상하고 그리고 말도 아니 되는 가르침인데, 이런 가르침이 오랫동안 전해오고 또 우리나라에도 들어와 있습니다. 참으로 많이 듣고 산 가르침이요, 지금도 방송을 켜면 어디서든지 들을 수가 있는 가르침입니다.
이 가르침은 절대로 성경적인 가르침이 아닙니다. 이 가르침은 믿음으로 모든 것이 다 완성이 되었으니 이 세상에서 너 멋대로 살아라 그래도 천국은 보장이 된다라는 가르침으로 연결이 됩니다. 그리고 죄 문제도 다 해결이 되었으니 죄를 짓고도 회개만 하면 언제든지 용서를 받는다 그리고 어떤 이는 회개도 아주 필요가 없다고 가르치고 있는데 이런 가르침으로도 연결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래도 율법학자는 율법을 지키기나 했습니다. 율법은 모든 조항의 정의로우며 사랑을 실천하게 되어 있기에 정말로 사랑을 세상에서 사람들이 실천을 하고 사는데 필요한 법입니다. 그런데 이 법조차 율법학자는 그래도 배워서 너무나 조문에 치우친 바람에 예수님께 책망을 들었는데, 그 율법의 준수로 책망을 받은 것이 절대로 아니고 율법의 정신을 망각을 했기에 책망을 당한 것이고, 둘 다 지키라고 예수님께 꾸중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아예 율법도 알지도 못하고, 지키지도 말고, 그리고 믿음 하나만 가지고 모든 문제를 다 풀겠다? 잘 생각해 보면 이는 과거 예수님께 율법을 잘 지키면서도 사랑을 잃어버려서 책망을 받은 사람보다 더욱더 말로 비교가 불가하게 악하게 사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너희의 의가 바리새인 보다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했으니 율법도 없는 자가 어찌 바래새인의 의를 이길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면 믿으면 의롭게 된다고 또 할 수가 있는데, 이 믿으면 의롭게 된다는 의미를 초대교인의 수준에서 이해를 해야 되는데 초대 교인은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고 예수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그리고 죄 사함을 받고 그리고 성령을 받고서, 자신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서 사도의 발 앞에 가져다 두었던 신앙인이고 이들이 믿는 자라고 불리웠는데 이들과 같이 믿으면 의롭다 인정이 될 것입니다. 이도 저도 아니 되면서 믿는다고 모든 것이 해결이 되었다고 마음대로 살아라 그리고 천국이 보장이 된다. 죄는 지으면 또 용서가 된다고 가르치고 있는데 성경에는 그런 가르침은 절대로 없습니다. 절대로 없습니다.
반드시 순서를 지켜서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도표와 같은 신앙인의 모습으로 전진을 하시든지 아니면 고넬료와 같이 먼저 하나님께 구제와 의로운 삶이 인정을 받고 성령을 받고, 나중에 목자를 통한 세례를 받는 삶을 사셔야 할 것입니다. 제가 알기론 이 둘 말고 다른 삶은 성경에서 인정하지 않는 줄로 압니다. 깊이 생각해 보시고 생명의 길로 가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전하는 저도 처음 부터 이런 신앙의 길을 안 것이 아닙니다. 성령을 받은 것도 잘 이해를 못했고 그리고 올바로 살지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처음 나간 김해 장유 교회부터 선민교회 그리고 순복음 교회, 그리고 잠실교회의 목사님들 부목사님 그리고 성도님들께 너무나 많은 사람과 도움을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불순종해서 하나님께 매도 심하게 많이 맞았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모든 면에서 부족한 부분이 너무나 많고 잘못하는 것도 많습니다. 못나고 잘못된 길로 가는 풋내기 신자를 하나님께서 말로 다할 수 없는 인내와 자비로 참으시고 용서하심을 통해서 이렇게 글을 올리게 되었으니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인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드립니다
많은 분들이 부족한 저를 품고 사랑을 해주시고 참아주셨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런 신앙의 길도 알게 된 것입니다. 조금씩 조금씩 배우고 전도하면서 배웠습니다. 그리고 늘 부족했고 또 많은 분들이 도와 주셨고 도와 주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전하면서 2년 동안 제가 가장 많이 배우고 있는데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오천만의 로마서와 이곳에 오시는 분들에게 주시는 복인 줄 믿습니다. 부족한 저의 복음전파를 위해서 늘 기도해 주시기 부탁을 드립니다. 감사드립니다.
아!
큰 죄를 지은 인생에게 베푸신 자비의 놀라움이여!
패역한 자를 벌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자비를 베푸시고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전하게 하셨네!
그 자비와 은총의 말로 형용할 수 없음이여!
인생아!
무엇보다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자
그 발아래 무릎을 꾾고 은총을 구하자
혹시 나의 말못할 죄를 사하시고
은혜의 길로 인도하실지
나는 큰 죄를 짓고 이렇게 복음을 전하네
매일 근신함이 내 의무네
매일 낮아짐이 내 일인데
혹시 소문에 정신이 나가고 은혜를 잊지를 않을지
벗아! 날 훈계하고 날 위해 기도하고
날 날마다 책망하라!
정신이 쏙 나가도록 나를 혼을 내라
같이 오직 하나님의 이름만 높이자!!
참으로 필설로 형용할 수 없는 크신 은혜가 있습니다. 함께 온 몸과 힘을 다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에 매진합시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