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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시인 김삿갓 (181)
이인동심 기리단금, 동심지언 기취여란
二人同心 其利斷金 , 同心之言 其臭如蘭
김삿갓은 추월의 집에서 북쪽의 매섭고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추월과 이런 저런 애기를 나누다가 문득 이렇게 물어 본 말이 있었다.
"자네 <변대성>이라는 사람을 잘 알고 있지?
그 사람은 전에 무얼 해먹던 사람인가?"
추월은 <변대성>이라는 말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어마! 선생님은 그런 엉터리같은 인간을 어떻게 아세요? "
"엉터리라니?
변대성은 자네 형부가 아니던가?"
추월은 <형부>란 소리에 더욱 놀라며,
"언니와 함께 살고 있는 남자니까 촌수로야 형부임에는 틀림 없지만 저는 그런 철면피 같은 사람은 사람으로 여기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그런 사람을 어찌 아시옵니까?"
김삿갓은 <만호재>라는 서당에서 변대성을 처음 알게 된 사정과 훈장치고는 너무도 무식하더라는 말을 대강 들려주고 끝으로 이렇게 물어 보았다.
"내가 보기에도 그 사람은 형편없는 사람이던데
어쩌다가 자네 언니는 그런 사람과 혼인을 하게 되었나?
그 점이 몹시 궁금하구먼."
추월은 기가 막히는 듯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누가 아니랍니까?
제 입으로 이런 말씀을 드리기가 거북하지만 저의 언니는 비록 기생이기는 했을 망정 몸만은 무척 깨끗하게 하며 살아왔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에 언니가 돈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변대성이란 작자가 담장을 넘어와, 곤히 자고 있던 언니를 겁탈했지 뭡니까?"
"저런 ....!
그렇다고 한 번쯤 겁탈을 당했다고 마음에도 없는 사내와 혼인까지 할 건 없지 않은가?"
"언니도 처음에는 미친개에게 물린 셈쳤지요.
그래서 당시에는 혼인 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몇 달 지나고 보니, 배가 점점 불러 오지 뭡니까?
몸을 빼앗긴 것은 단 한번 뿐이었지만, 그날 밤에 애기가 든 것이에요.
일이 그렇게 되니까,
언니의 생각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답니다.
배 안에 들어 있는 애기를 위해서라도 이제는 싫든 좋든 간에 변대성이라는 사내와 살림을 하겠다는 거예요."
"음 ~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던가 보구먼."
"운명이나마나 저 같았으면 차라리 죽어 버렸을거예요.
그런 철면피 같은 사내와 어떻게 결혼을 하겠어요.
비록 뱃 속에 들어 있는 애기를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무엇 때문에 귀중한 일생을 그런 자에게 바치느냐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가치관의 차이겠지."
"아무리 그래도 저같으면 죽으면 죽었지,
그런 철면피하고는 결혼을 안 하겠어요."
추월과 그녀의 언니는
비록 같은 부모 밑에서 태어난 형제지간이지만
두 사람의 인생관은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하루를 살다 죽어도 마음이 통하는 사내가 아니면 몸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추월을 <낭만파>여인이라고 한다면,
뱃속에 들어 있는 애기를 위해서는 자신의 일생을 희생시켜도 좋다는 여인은 <현실파>여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김삿갓은 어느편이 옳고, 그르다고 단정할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사람의 인생이란 이처럼 복잡다단한 것이 아니던가!
그러나 한편, 남자들이 생각하는 애인으로는 현실파 여인보다는 낭만파 여인에게 마음이 끌리게 될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김삿갓은 다음 날부터 추월의 안내를 받으며
강계 부근에 있는 명승고적을 모두 둘러보았다.
그리하여 읍내에 있는
관덕정觀德亭, 영파정暎波亭, 진변루鎭邊樓를 비롯,
압록강변에 있는 수강정受降亭과 태수정太守亭까지 모두 구경하였다.
이렇게 추월과 함께 즐거운 나날을 보내는 동안 겨울이 가고 봄이 돌아왔다.
봄은 만인이 고대하는 계절이다.
더구나 강계처럼 겨울이 길고 혹독한 추위에 시달리는
북방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봄을 기다리는 법이다.
그러나 추월은 즐거워야 할 봄이 오자,
마음은 오히려 불안하기만 하였다.
그것은 마치 나뭇가지에 앉아 있던 한 마리의 새가
언제 훌쩍 날아가 버릴지 모르는 것처럼
김삿갓이 언제 자기 곁에서 떠나갈지 모르겠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어느 날 밤에는
김삿갓과 운우의 정을 즐겁게 나누다가
문득 언제 헤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슬픔이 복받쳐 올라, 김삿갓의 어깨를 움켜 잡으며 이렇게 속삭였다.
"저는 선생께 소원이 하나 있습니다."
"이 사람아! 잠자리를 하다 말고 별안간 소원이 무슨 소원이란 말인가?"
"선생하고 저와는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사는
비익조가 될 수는 없겠습니까?"
실로 애절하기 짝이 없는 소원이었다.
헤어지고 싶지 않아 하는 추월의 심정을 김삿갓도 모르지는 않았다.
그러나 만나고 헤어지는 것도 자연의 섭리의 하나다.
그런 자연의 섭리를 사람의 바람으로 어찌 할 수가 있겠는가?
그러기에 김삿갓은 두루뭉슬로 이렇게 대답했다.
"인간의 생사봉별生死逢別은 자연의 섭리대로 되는 것이네. 그러니 어찌 사람의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인가?"
추월은 그래도 이별이 두려운지 다시 말했다.
"'옛글에 이인동심二人同心이면 기리단금其利斷金이요,
동심지언同心之言은 기취여란其臭如蘭'이라는 말이 있지 않사옵니까? 바라건대 빈말이라도 좋으니 헤어지지 말자는 말씀을 한마디만 들려주시옵소서."
방랑시인 김삿갓 (182)
추월과의 이별
추월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김삿갓에게 헤어지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싶어했다.
그러나 김삿갓은 이치에 어긋나는 맹세를 할 수는 없었기에 얼른 이렇게 둘러댔다.
"이 사람아! 말로 맹세한다고 모든 일이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닐세. 옛글에 '학명재음鶴鳴在陰하면 기자화지其子和之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어미학이 그늘에서 울면 멀리 떨어져 있던 새끼학들이
그 소리를 듣고 모두가 어미한테로 달려온다>는 뜻이지.
그런 것처럼 우리가 비록 떨어져 있다 하기로,
마음만 통하면 얼마든지 즐거울 게 아닌가.
천명天命을 깨닫고 거기에 안주하면 봉별逢別 같은 것은 문제가 아닐 걸세."
추월은 그 말을 듣고서야 마음이 놓이는 듯,
다시 품에 안기며 말했다.
"귀하신 그 말씀, 가슴 깊이 새겨 두겠사옵니다."
백세지후 귀간기거百歲之後 歸干其居라는 말이 있다.
한 사람의 아내가 된 여인은 죽은지 백 년이 지나도 남편과 한 무덤속에 묻히고 싶어한다는 소리다.
추월은 노류장화의 몸인지라 차마 그런 소원까지는 말하지 못했지만 김삿갓과 헤어지고 싶지 않은 소망이 그렇게도 간절했던 것이다.
그도 그럴밖에 없는 것이,
진심으로 존경할 수 있는 남자를 처음 만났기 때문이었다.
물론 김삿갓도 추월을 진심으로 좋아했다.
그러나 추월을 좋아한다고 해서 <사랑의노예>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구름처럼 바람처럼 자유분망하게 떠돌아다니는
자신의 습성을 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봄이 한창 무르익어 마을마다 복사꽃이 화사하게 피어나는 어느 이른 날 아침이었다.
김삿갓은 자다 말고 벌떡 일어나 않더니
몹시 우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거 참, 꿈이 몹시 고약한걸 ....
여보게! 나 오늘 홍성에 좀 가봐야 하겠네."
추월은 그 말을 듣는 순간
놀란 가슴을하고 김삿갓을 바라 보았다.
자다 일어나 별안간 홍성으로 떠나겠다니,
이게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리인가!
"홍성이란 어느 지방에 있는 곳이옵니까?"
"홍성은 충청도 땅이지.
여기서는 아무리 줄잡아도 천 리가 넘을걸세."
추월은 <천리>라는 말에 까무라칠 듯이 놀랐다.
"그렇게나 먼 곳에 갑작스럽게 무슨 일로 가신다는 말씀입니까?"
헤어질 때 헤어지더라도 이유나 말고 작별하고 싶었던 것이다.
"홍성에는 내 외가가 있네.
어머니가 지금 친정에 가 계시거든."
"집을 떠나신 지 여러 십 년이 되셨다면서,
어머니께서 지금 홍성에 계시는 것을 어찌 아시옵니까?"
김삿갓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실상인즉, 조금 전에 나는 이상한 꿈을 꾸었네,
외가에 계시는 어머니가 하얀 소복차림으로 꿈에 나타나시더니
"병연아! 나는 곧 죽게 되겠다.
죽기 전에 너를 꼭 한 번 만나 보고 싶구나.
지금이라도 나를 찾아올 수 없겠느냐?"하고 말씀하시는 거야.
눈물까지 흘리며 그렇게 애원하시던
어머니 음성이 지금도 귀에 쟁쟁하거든.
나는 평소에 꿈이란 것을 전연 모르고 살아오다가,
어젯밤에는 그런 꿈을 꾸었으니 안 가볼 수가 없지 않은가?"
김삿갓의 결심은 확고부동해 보였다.
추월은 김삿갓을 붙잡힐 가능성이 없어 보이자, 눈물이 복받쳤다.
언젠가는 이별의 날이 있을 것을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그 날이 이렇게나 빨리 닥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아무리 바쁘셔도 조반은 잡숫고 떠나셔야 할 것이 아니옵니까?"
추월은 부엌에 내려가 아침밥을 짓는 동안에도 눈물을 걷잡을 수가 없었다.
김삿갓은 조반을 먹는 둥 마는 둥, 집을 나서며 말했다.
"꿈이 하도 이상해 급작스럽게 떠나게 되었으니,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게.
나는 어머니에게 너무도 불효가 막심한 놈이야.
돌아가시기 전에 꼭 용서를 빌고 싶어 그러는 것이네."
"말씀 잘 알아들었사옵니다.
저는 따라가지는 못할망정,
독로강 나룻터까지만이라도 전송을 나가겠사옵니다."
추월은 부랴부랴 옷을 갈아입고 김삿갓을 따라 나섰다.
추월은 먼 길을 떠나는 사람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쓰기는 했으나, 걷잡을 수 없이 솟구쳐 오르는 눈물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뒤돌아보면, 존경하는 남자와 참된 사랑을 나눈 것은 몇 달이나 되었던 것인가!
그렇게나 짧은 기간이었지만, 추월은 일생을 통해 지금 같은 행복이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이윽고 나루터에 도착하자
김삿갓은 배를 기다리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자네한테 오랫동안 신세가 너무도 많았네.
우리가 다시 만나기는 어렵겠지만,
자네 이름이 추월인지라
나는 달을 볼 때면 언제나 자네를 생각하게 될 걸세."
추월은 대답을 못하고, 가슴속으로 흐느껴 울기만 하였다.
나룻배를 기다리며 두 사람은
마치 벙어리처럼 모래밭에서 서성거리기만 하였다.
가슴에 사무쳐 오르는 이별의 아픔을 차마 말로는 표현할 길이 없어 숫제 입을 다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무심코 고개를 들어보니,
여기저기에 만발해 있는 복사꽃이 시야에 들어왔다.
복사꽃은 먼 산에도 마을 곳곳에도 피어 있어,
마치 강계 고을 전체가 도원경桃園境 같았다.
"이렇게도 아름다운 계절에
우리들은 어째서 헤어져야만 하는 것일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메어져 오는 이별이었다.
나룻배가 기슭에 도착하였다. 김삿갓이 배에 오르자,
추월은 정중히 허리를 굽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하였다.
"머나먼 길에 부디 몸조심하시옵소서."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다음과 같은 시 한 수를 구슬프게 읊었다.
[독로장제방초향禿魯長堤芳草香
독로강 긴 둑에 풀 내음 향긋한데
유정무어사무정有情無語似無情
정은 있으나 말이 없어 무정한 듯 하구나
송군천리벽산외送君千里碧山外
정든 님 머나먼 천 리 밖에 보내자니
하시재봉이사장何時再逢離思長
언제 또 만나 뵐까 그리움은 한이 없네.]
그야말로, 대장부의 간장을 녹여내는 추월의 애절한 시였다.
김삿갓은 추월이 구슬프게 읊는 시를 듣자 가슴이 울컥했다. 그리하여 나룻배 위에서 추월을 건너다 보며,
큰 소리로 이렇게 화답하였다.
춘풍도화만산향春風桃花滿山香
봄바람에 꽃향기가 온 산에 가득한데
추월송객별루정秋月送客別淚情
님 보내는 그대의 정은 한이 없구나
별한여군수단장別恨與君誰短長
내 이제 배 위에서 그대에게 묻노니
아금주상일문지我今舟上一問之
그대와 나의 슬픔은 과연 누가 더할꼬!]
추월은 추월대로 김삿갓은 김삿갓대로,
이별의 슬픔이 더 할나위 없었던 것이다.
김삿갓은 이내 추월을 다시 보지 않으려고
뒤로 돌아서며 뱃사공에게 뱃길을 재촉했다.
"이보소, 사공 양반!
갈 길이 바쁘니 어서 강을 건넙시다."
뱃사공은 무슨 낌새를 알아챘는지
노를 젖기 시작하며 한 마디를 건넨다.
"정든 님을 뒤에 두고 먼 길을 떠나시는가 보구려!"
김삿갓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먼 산만 바라보고 있었다. 무심한 뱃사공은 노를 저어 나가며 뱃노래 한 곡을 구성지게 불러댔다.
방랑시인 김삿갓 (183)
만사개유정萬事皆有定 부생공자망浮生空自忙
(세상만사는 정해져 있는데 ,부질없는 인생은 바쁘기만 하구나!)
김삿갓은 독로강을 건너자,
홍성으로 홍성으로 걸음을 재촉하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만나 뵙고 용서를 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꿈을 꾸기 전까지는
어머니를 완전히 잊고 살았던 김삿갓이었다.
영월에서 어머니께 작별을 고하고
다시 방랑의 길을 오른지가 어언, 20 년이 다되었다.
그런 어머니가 꿈속에 소복차림을 나타나
"내가 죽기 전에 너를 한 번 만나보고 싶다"고 하였으니
제아무리 몰인정한 김삿갓도
이번만은 어머니를 찾아가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전에는 꿈에 나타나는 일이 한 번도 없었던 어머니가,
이번에는 하필, 소복을 입고 나를 만나자고 하셨을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불길하기 짝이 없는 꿈이었다.
소복을 입었던 것으로 보아 어쩌면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나 버리시고,
혼령이 꿈에 찾아오셨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불쌍하기 짝이 없는 어머니였다.
시집온 지 10년도 채 되기 전에
시아버님이 역적 홍경래에게 항복을 하는 바람에,
철없는 자식들을 등에 업고
황해도 곡산, 경기도 양주, 광주, 그리고 강원도 영월에 이르기 까지
줄곧 숨어 다니며 무진 고생을 겪어 온 어머니였다.
가문의 운명이 급전직하로 몰락한데다가
남편마저 일찍 세상을 떠나 버리는 바람에,
여자 혼자의 몸으로 어린 자식을 키우며
몰락한 가문을 일으켜 보려고 애써 왔던 어머니였다.
그런 어머니를 돌보지 않고
무작정 방랑의 길에 올랐던 김삿갓으로서는
꿈속에 나타난 어머니를 뵌 순간,
자식된 마직막 도리로 어머니의 간곡한 요청을 뿌리칠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김삿갓은 어머니의 마지막 소원이라도 풀어 드리고자
밤낮을 가리지 않고 홍성으로의 길을 재촉하였다.
김삿갓은 발이 부르트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강행군을 계속하여,
강계를 떠난 지 보름만에 드디어 홍성 읍내에 닿았다.
그러나 외가에는 어렸을 때에 한 번 가보았을 뿐이어서,
외가가 있는 <고암리>는 읍내에서 얼마나 되는지도 몰랐다.
"여기서 고암리라는 마을은 얼마나 됩니까?"
주막에 들려 막걸리로 요기를 하면서, 옆에 있는 노인에게 물어 보았다.
"여기서 고암리는 줄잡아 30리가 되지요.
나는 마침 고암리에 사는 늙은이오.
그런데 고암리에는 누구를 찾아가는 길이오?"
"고암리에 <이길원>이라는 분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노인장께서는 혹시 이길원이라는 분을 아시는지요?"
김삿갓은 외삼촌의 이름을 알려 주며 물어 보았다.
"이길원이라면 알다뿐이겠소, 나는 그 와는 절친한 장기 친구라오.
그런데 이길원하고는 어떤사이이시오?"
"네, 먼 친척입니다."
김삿갓은 숙질간이라고 말하기가 면구스러워 적당히 얼버무려 버렸다.
그러자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면 그 댁에 문상을 가는 모양이구려.
그런데 문상치고는 좀 늦으셨소이다."
김삿갓은 <문상>이라는 말을 듣고
어머니가 생각나 눈앞이 아찔해왔다.
"네? 문상이라뇨?
그 댁에서 누가 세상을 떠나셨다는 말씀입니까?"
노인은 그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노형은 그 댁에 상사喪事가 있었던 것을 모르고 오시는 길인가요?"
"저는 아무 것도 모르옵니다.
그 댁에서 누가 돌아가셨습니까?"
김삿갓의 음성은 자신도 모르게 떨려 나왔다.
노인은 몹시 민망한 듯 잠시 머뭇거리더니,
"실상인즉, 그 댁에는 오래 전부터
강원도 영월에서 누님 한 분이 와 계셨는데,
얼마 전에 그분이 세상을 떠나셨다오.
장사를 치른지가 10여 일밖에 안 됬지요."하고 알려 주는 것이 아닌가!
그 말에 김삿갓은 눈앞이 캄캄해 왔다.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났음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김삿갓은 눈물을 씹어 삼키며 다시 이렇게 물어 보았다.
"그 분이 어느 날 세상을 떠나셨는지 아시옵니까?"
"가만있자 그 분이 세상을 떠나신 것은...
4월 초이튼날 새벽이었을 것이오."
김삿갓은 그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4월 초이튿날 새벽이라면
자기가 어머니 꿈을 꾼 그 날 그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시면서,
혼령이 되어 아들을 찾아 오셨던 것이 분명하였다.
방랑시인 김삿갓 (184)
홍성땅을 떠나며
김삿갓은 외가에는 가지도 않고
날마다 객줏집에서 술만 마시고 있었다.
외가에 가지도 않을 것이라면
차라리 홍성 땅을 떠나는 편이 좋으련만
무엇인가 마음을 끌어당기는 것이 있어
홍성 땅을 쉽게 떠날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로부터 4~5일을 보낸 뒤,
김삿갓은 취중에 문득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홍성을 떠나기 전에 어머니 무덤이라도 한번 찾아보고 떠나자."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어느 날 술을 한 병 들고 어머니의 무덤을 찾아 나섰다. 고암리의 공동묘지를 찾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묘지기에게 물어 보니,
"이길원 노인의 누님 무덤은 바로 이 무덤이라오."하고 말하며 산기슭에 있는 조그만 무덤을 가리켜 주었다.
아직 흙도 마르지 않은 초라한 무덤이었다.
그러나 김삿갓은 그 무덤 속에 어머니가 들어 있다고 생각되자, 설움이 복받쳐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무덤 앞에 꿇어앉아 술을 한 잔 부어 놓고,
"어머니! 불효막심한 병연이가 찾아왔사옵니다."하고 목을 놓아 통곡을 하였다.
울어도 울어도 설움은 가시지를 않았다.
그러나 땅을 치고 무덤을 두드리며 울어 본들 대답이 있을 턱이 없는 어머니였다.
김삿갓은 한없이 울다가 지쳐 눈물을 거두며,
무덤을 향해 넋두리를 하였다.
"어머니! 불초자 병연도
언젠가는 황천으로 어머니를 꼭 찾아 갈 것이옵니다."
실로 허망하기 짝이 없는 넋두리였다. 이때 쯤 문득 깨닫고 보니, 어느덧 날이 저물어 산속에는 노을이 짙어오고 있었다.
산속은 어찌나 적막한지, 들려오는 것이라고는 오직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소리 뿐이었다.
김삿갓은 소나무 사이로 지나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어머니의 무덤을 그윽히 바라보고 있다가
문득 자기도 모르게 즉흥시 한 수를 읊었다.
[북망산하 신분영北邙山下 新墳塋
북망산 기슭에 새로운 무덤 하나
천호만환 무반향千呼萬喚 無反響
천 만번 불러도 대답이 없구나
서산낙일 심적막西山落日 心寂寞
해는 저물어 마음조차 적막한데
산상유문 송백성山上唯聞 松柏聲
들려 오는 소리라고는 솔바람 소리 밖에 없구나!]
사자불가부생死者不可不生
옛날 부터 한번 죽은 사람은 다시 살아 돌아올 수 없다고 했다.
아들인 김삿갓이 왔다고 이미 세상을 떠나 무덤 속에 묻혀버린 어머니가 다시 살아 돌아올 수는 없는 것이다.
아무리 무덤 앞에서 곡을 하고 몸부림을 쳐도
이제는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알량하나마 성묘를 마친 김삿갓은 이제는 산을 내려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제는 홍성 땅을 떠날 생각이었다.
지난 보름여를 오로지 어머니를 만나려고 천릿길을 달려왔다가 어머니를 뵙지 못하고 또다시 방랑길에 오르자니 이번에 밀려드는 고독감은 이전의 것과 크게 달랐다.
노을에 짙어진 자신의 그림자를 동행하며
"결국 죽는 날까지 나의 유일한 친구는
오직 나의 그림자가 있을 뿐인가 보구나!"
하고 생각하며 9산골길을 쓸쓸히 걸어가며 자기 자신의 그림자를 바라 보았다.
김삿갓은 금강 곰나루를 건너, 밤이 깊어서야 부여에 닿았다.
부여는 그 옛날 백제의 도읍지였던지라,
이곳을 처음으로 찾아 온 김삿갓은 감개가 무량하였다.
객줏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나니,
다음날 아침에는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김삿갓은 백제가 멸망할 때
삼천궁녀들이 꽃잎처럼 백마강에 뛰어들었다는
낙화암落花岩을 빨리 구경하고 싶어,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무릅쓰고 부소산扶蘇山에 올라가 보았다.
(보탬 : 삼천궁녀? 의도적 부풀리기?
실은 궁녀의 수도 적지 않았을 테지만,
대부분이 귀족들과 장수 등 지배층 집안의 여인들이었을 것.)
또 정복전쟁 시대에 전쟁에서 패한
망국의 여인들의 삶이란 게 치욕의 삶
(비녀나 남정네들의 노리개)일 수밖에 없고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신분의 추락은
도저히 상상도 견뎌낼 수도 없는 삶이었기에
죽음으로서 치욕의 삶을 피하고자 한 선택이었을 것.
또 그랬었다 한들 어찌 그 많은 여인들(3천)이 그곳에서 몸을 던질 수 있었을까? 한 마디로 불가능한 소리다.
정복군들에게 쫓겨 몸을 던지려(투신자살)
낙화암 쪽으로 몰려갔을 백제여인들의 수가 과연 몇이나 되었을까? 또 낙화암은 그런 여인들이 몇이나 모여들 공간이었을까?
몇백 명이라 해도 어려울 공간임을
그곳을 가본 사람들이라면 짐작하리라.
누군가가 여인들을 낙화암 벼랑으로 몰아부치고 떠밀었다면 모를까 정복군들이 과연 그리 몰아부치고 벼랑으로 그 여인들을 떠밀었을까?
아니면 정복군들의 절대 우세 앞에서
옥쇄되거나 절대 열세이던 백제군들이 병력을 빼내어
백제여인들의 곧은 절개를 지켜주려 그리했을까?
다분히 부풀려 쓴 기록이라 봐야 하리라.
뿐만 아니라 혼자서는 몸을 던질 수 있어도
앞 사람이 몸을 던지는 모습을 보고는 공포에 질려 쉬 몸을 던지지도 못한다. 비록 백제여인들의 절개가 유달리 곧고 강하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역사는 승자의 편에서 쓴 기록이기에
자결을 택한 여인들을 모두 궁녀(삼천궁녀)라 한것은
의자왕의 실정을 부각시키려는 뜻으로 과장한 것이라고 보는 게 옳을 것
몇십 명만 돼도 몇백 명, 몇백 명이 되면 수천 명이라 하고,
몇천 명만 돼도 수만 명이니, 수십만 명이니, 수백만 명이니 하며 과장하고 또 그게 통하는 우리 사람들의 표현 습성도 인정하자 )
부소산 정상에는 백제의 세력이 왕성할 때,
임금이 아침마다 올라 동해에서 떠오르는 아침 해를 맞이하며 나라의 태평을 빌었다는 영일루迎日樓가 있었고
달이 뜰 때면 임금이 눈아래 백마강을 굽어보며
나라의 태평을 빌었다는 송월루送月樓가 있었다.
영일루에서 북쪽으로 잠시 걸어 내려오면,
백마강의 푸른 물줄기가 굽어보이는 절벽이 있는데,
절벽 끝에 커다란 바위들이 한데 뭉쳐 있는 곳에
백제가 망할 때에 삼천궁녀들이 강으로 뛰어들었다는 낙화암이 있었다.
그곳에서는
김삿갓보다 먼저 와 있던 어떤 시인이
읊조리는 시가 가느다랗게 들려오는데,
그 소리가 세상사 허무함을 새삼 느끼게 하는 것 같았다.
방랑시인 김삿갓 (185)
백마강에 얽힌 전설.
낙화암에서 비탈길을 북쪽으로 걸어 내려오면, 강물이 눈앞에 굽어 보이는 곳에 절벽을 배경으로 한 고란사皐蘭寺라는 절이 있다.
백제 때에 창건된 절로, 원래는 '高蘭寺'라고 불렀는데,
절 뒤에 절벽 바위 틈에 '고란초皐蘭草'가 있다고 해서,
절의 이름이 숫제 '皐蘭寺'로 불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고란초는 난초의 일종이나 잎이 적은 기이한 난초이다.
포자胞子가 1년에 하나밖에 생겨나지 않아,
번식하기가 매우 어려운 음화陰花식물이라는 것이다.
양지도,음지도 아닌 바위 틈의 습지에서만 자라는데,
우리나라 에서는 오직 고란사 뒤의 절벽에서만 있다.
김삿갓은 고란사 주지 스님으로 부터 이와 같은 설명을 듣고,
"그렇다면 고란초는 삼천궁녀의 원한이 식물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요?"하고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고란사에서 백마강을 굽어보면, 강 기슭에 조룡대釣龍臺라는 바위 하나가 물 위에 솟아나와 있는데
그 바위에는 백제가 망하던 때의 슬픈 전설이 얽혀 있다.
백제를 치러 당나라에서 온 소정방蘇定方이 금강을 건너오는데, 때마침 모진 바람이 불어 강물이 세차게 출렁이는 까닭에 강을 건널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강가에 있는 노인에게
"풍랑이 왜 이다지도 심하냐"고 물었더니,
그 노인은 대답하기를
"백제의 선왕이신 무왕武王께서 이 나라를 구하시고자
물 속에서 용으로 변해 조화를 부리시고 계시기 때문 입니다."
"무왕은 생전에 어떤 물건을 좋아했느냐?"
"무왕께서는 생전에 당신이 타고 다니시던 백마를 가장 사랑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소정방은 백마 한 필을 구해다가
한 칼로 백마의 목을 벤 뒤 그 머리를 미끼로 삼아
조룡대 바위에 걸터 앉아 커다란 용 한 마리를 낚아 올렸다.
그러자 풍랑이 잦아 들었고, 소정방은 강을 무사히 건너가 백제를 멸망시킬 수가 있었고 그때부터 사람들은 그 바위를 <조룡대>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금강의 무명지류無名支流에 지나지 않았던 그 강을 그때부터는 <백마강>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김삿갓은 어디선가 구슬프게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귀가 번쩍 틔였다. 노랫소리가 들린 곳을 유심히 살펴 보니,
조룡대 옆에 떠 있는 나룻배에서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김삿갓은 나룻배 사공을 향해 소리쳤다.
"노형 ,노랫소리가 기가 막히는구료!
그나저나 내가 배가 몹시 고픈데, 이 근처에 주막이 없을까요?"
그러자 뱃사공은 나룻배를 가까이 갖다 대며 말했다.
"어서 타시지요.
이 배를 타고 낙화암 절벽 밑을 감돌아가면 <구두레>라는 나룻터가 나오지요.
거기에 가면 퇴물 기생이 열고있는
몽중몽(夢中夢)이라는 주막이 있다오."
"주막이름이 <몽중몽>이라...?
그것 참, 이름부터가 멋있는 주막이구려.
그렇다면 나를 구두레 나룻터까지 데려다 주시오."
김삿갓은 백마강 물위에 둥실 떠서 낙화암을 돌아다보니
고란사는 물안개 속에 잠겨 아스라히 보였다.
그리하여 김삿갓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홍양호洪良浩의 주중망 고란사舟中望 皐蘭寺라는 시가 읊조려졌다.
비는 나룻배에 부슬부슬 내리고
백제의 왕기는 연기 속에 사라졌네
슬프다 천 년 동안 질탕하게 놀던 곳
희미한 등불 아래 중은 졸고 있네.
방랑시인 김삿갓 (186)
술집 '몽중몽'
부슬부슬 내리는 가랑비와 함께, 자욱한 물안개를 뚫고
나룻배가 <구두레> 나루터에 도착하자,
김삿갓은 <몽중몽>이라는 술집을 찾아 나섰다.
퇴물 기생이 운영한다는 몽중몽이라는 술집은
노인산老人山 기슭에 있었다.
뜰에는 조그만 연못이 있고
주위에는 복숭이나무도 몇그루 있어서 제법 운치가 있는 술집이었다.
40 가까이 되어 보이는 주모는 성품이 서글서글 하여 김삿갓에게 술을 따라 주며 익살까지 부렸다.
"옛날부터 "못난 색시가 달밤에 삿갓을 쓰고 다닌다"는 속담이 있는데, 손님은 멀쩡한 양반이 어째서 삿갓을 쓰고 다니신다오?"
그러자 김삿갓은 술을 마셔가며 주모를 이렇게 나무라 주었다.
"이 사람아!
이 삿갓은 내게는 둘도 없는 소중한 물건이네.
그러니 남의 삿갓을 함부로 깔보지 말게."
"아따! 다 해진 삿갓이
소중하기는 뭐가 소중하다고 그러시오?"
"모르는 소리 그만 하게!
이 삿갓은 오늘처럼 비가 올 때는 도롱이 구실도 하고,
해가 쨍쨍 내리쬘 때는 차양노릇도 해주지,
어디 그 뿐인줄 아는가?
길에서 보기 싫은 사람을 만났을 때는
눈을 가리는 가리개 구실도 해주는, 내게는 친구 같은 것이라네."
그러자 주모는 손을 휘휘 내젓으며,
"그만 했으면 됬어요.
삿갓 자랑은 그만 하시고 어서 술이나 드세요."
"기왕 말이 나왔으니 자네가 아무리 듣기 싫어해도,
이 삿갓이 소중한 이유를 하나만 더 말해야겠네."
"그처럼 소중한 이유가 무엇인지
그 하나만 더 들어보기로 하지요."
"내가 이 삿갓을 쓰고 다니는 가장 중요한 이유인데,
주모가 알게 되면 섭섭할걸?"
주모는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시다면 그 중요한 이유가 무엇인지 한 번 들어 볼 까요?"
"내가, 오늘처럼 돈이 떨어져 공짜술을 마시고 도망갈 때는 무엇보다 소중한 게 이 삿갓이란 말일세.
무전취식無錢取食을 한 뒤에
삿갓을 깊숙이 눌러쓰고 도망을 가면
얼굴이 가려져서 누가 누군지 알아볼 수가 없단 말일세!
안 그렇겠나? 하하하~"
김삿갓이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는 바람에
방안에는 한바탕 웃음판이 벌어졌다.
주모는 웃으면서
김삿갓의 농담을 응숙하게 받아 넘긴다.
"제가 사람 하나만은 제법 잘 알아본답니다.
손님은 삿갓이나 쓰고 다니면서 무전취식 할 분으로 보이지 않네요. 그런 느낌이 손님의 말과 행동에서 느껴지는 걸요."
"사람, 모르는 소리 그만 하게.
유전강산有錢江山에 다호걸多豪傑이요,
무전천지無錢天地에 무영웅無英雄이라고,
무전취식을 하는 종자가 따로 있는 줄 아는가?"
"손님이 정말로 돈이 없으시다면
제가 얼마든지 대접할 테니 안심하고 드세요. 호호호..."
"그거 참, 고마운 말일세그려."
"그건 그렇고, 자네집 옥호가 '몽중몽'이던데,
그 이름은 누가 지어 준 이름인가?"
김삿갓은 이곳에 오기 전부터 궁금했던 일을 기어코 물어 보았다.
"'몽중몽'이라는 이름은 제가 직접 지은 이름이랍니다."
주모는 정색을 하고 대답했다.
"허어 ...'몽중몽'이라는 이름을 자네가 직접 지은 이름이라고? 그렇다면 자네는 책을 많이 읽은 모양이네 그려."
"그건 또 무슨 말씀이세요?
"夢中夢이라는 말은 '夢中占夢'이라는 말의 준말이 아닌가?
이 말의 본 뜻은 꿈속에서 꿈을 점쳐보는
또 하나의 꿈을 꾸고 있다는 말이라네.
"夢中占夢"이라는 말에는 아주 흥미로운 유래가 있지."
김삿갓이 그렇게 말을 하자 주모는 술상 앞으로 바싹 다가서며 매우 흥미로운 듯 말했다.
"저는 그런 유래가 있는 말인 줄 모르고,
내 멋대로 '몽중몽'이라고 지은 것입니다.
어떤 유래가 있었다면 제게 꼭 좀 말씀해 주세요."
"자네가 꼭 알고 싶다면 말해 줌세.
옛날에 왕적王積이라는 시인이 길을 가다 보니,
길가에 '몽중몽'이라는 술집이 있었네.
그러나 그는 그 술집에 들르지 않고 그냥 지나쳐 버렸다네.
그리곤 잠시 뒤에 나무 그늘에 누워 낮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는데 꿈 속에서 점을 쳐보았더니,
'몽중몽'이라는 술집에 꼭 들르라는 점쾌가 나왔다고 하는게야. 그래서 꿈에서 깨어난 왕적은 '몽중몽'이라는 술집을 다시 찾아 오면서 이런 시를 지었다네.
[몽중점몽파夢中占夢罷
꿈속에서 꿈을 점쳐 보는 꿈을 꾸고
환향주가래還向酒家來
그 술집을 다시 찾아 오노라.]
"이렇게 꿈속에서 꿈을 점쳐 보고
그 술집을 찾아온다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인가."
주모도 고개를 끄덕이며,
"옛날에도 우리 집처럼 '몽중몽'이라는 술집이 있었던 모양이군요. 그렇지만 제가 우리 집 이름을 '몽중몽'으로 지은 데도 근거가 전혀 없지는 않아요."
"자네는 어떤 연유로 그런 이름을 지었는가?
이왕이면 그 얘기도 한번 들어 보세그려."
그러자 주모는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지금으로 부터 15~6년 전 주모가 '연월娟月'이라는 기명으로 기생 노릇을 하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그때 연월에게는
그녀를 짝사랑하는 칠십객 부자 노인이 한 사람 있었다.
물론 연월은 거들떠 보지도 않던 늙은이였다.
그런데 그 늙은이가 어느 날 밤 꿈속에 나타나더니
잠자리를 같이 하자고 치마끈을 부여 잡고 성화같이 졸라대는 것이 아닌가!
연월은 거절을 하다 못해, 늙은이 소원을 들어 주는셈 치고, 꿈속에서 늙은이에게 깨알 같은 재미를 안겨 주면서 몸을 허락하고 말았다.
그러고 잠에서 깨어나 보니 그것은 다름아닌 꿈이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을 하여 보니, 비록 꿈속이었지만 늙은이에게 몸을 허락한 것은 명확한 사실이아니었던가!
그러자 연월은 그 날로 그 부자 늙은이를 일부러 찾아가,
지난 밤의 꿈이야기를 들려주며 스스로 몸을 허락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게 된 이유는 꿈속의 일이었지만
신의를 꼭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었단다.
이렇듯 꿈이 인연이 되어
연월은 노인에게 많은 돈을 받아 술집을 시작하게 되었고,
그때 문을 열게 된 술집 이름은 꿈때문에 시작하게 되었다는 뜻으로 '몽중몽'으로 했다는 것이었다.
"음 ~ 기가막힌 인연이군 그래.
그럼 자네에게 술집 밑천을 대 준 노인은 아직도 생존해 계신가?"
그러자, 주모는 얼굴에 슬픈 빛을 띠며 이렇게 대답하였다.
방랑시인 김삿갓 (187)
몽중몽 주모 연월이(상)
"그 어른은 5년 전에 이미 세상을 떠나셨답니다."
"저런 ...5년 전에 세상을 떠나셨다구?
그렇다면 자네에게 술집을 차릴수 있는 돈을 내어주신
그 은혜를 생각해서라도 그 노인이 돌아가셨을 때
상喪을 입어 드리는 도리였을 텐데 자네는 어찌하였나?"
"그야 물론이죠.
그 어른은 양기가 워낙 신통치 않으셔서
우리가 육체 관계를 가진 것은 단 한 번 뿐이었지요.
그러나 제게는 바깥 어른이나 다름없는 어른이셨기에
돌아가신 뒤에는 3년상을 치르느라고 저는 술장사도 하지 않았답니다."
화류계 여성으로 일을 하면서도
노인에 대한 은혜와 도리를 생각해
3년 동안이나 절개를 지켰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음, 요즘 세상에 자네처럼 의리와 은공을 제대로 지키는 사람이 있다는 게 정말 놀라운 일인걸!"
"사람이 동물과 다른 건
서로가 신의를 소중히 여기는 데 있다고 저는 생각해요.
옛 글에
"<사내는 자기를 알아 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사위지기자사士爲知己者死),
여인은 자기를 기쁘게 해 주는 사람을 위해 얼굴을 가꾼다
(여위설기자용女爲說己者容)>는 말이 있지 않아요 ?"
김삿갓은 그 말을 듣고 또 한번 놀랐다.
"지금 자네가 한 말은 '예양전豫讓傳>에 나오는 말인데,
자네는 그런 책도 읽었는가?"
"저는 그런 책은 읽어 보지 못했어요. 그러나 기생질을 오래 하다 보니 귀동냥으로 못 들어 본 말이 없답니다."
"기생 노릇을 오래 했다면 돈도 많이 벌었겠군그래?"
"저는 돈에 대해서는 별로 욕심이 없어요. 사람이 죽고 나면 그만인데 무슨 돈이 많이 필요하겠어요."
"허어 ... 자네는 금과옥조 같은 말만 하고 있네 그려.
대단허이, 하긴 시인이었던 백낙천도 이렇게 말한적이 있었다네."
[신후퇴금 계북두身後堆金 桂北斗
죽은 뒤에 돈을 하늘까지 쌓아 보아도
불여생전 일배주不如生前 一杯酒
살아 생전에 술 한 잔만도 못하니라]라고
그러나 그처럼 간단한 진리를 아는 사람이 별로 없거든."
"그렇게도 어리석은 것이 인생이 아니겠어요.
그러기에 옛날부터 <미자불문로迷者不問路
(길을 잃은 자가 어리석게도 길을 물어 보려고 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 않아요."
한다는 소리가 모두 도통道通한 소리 뿐이었다.
"여보게! 이런 시골에서 자네같이 도통한 여인을 만날 줄은 정말 몰랐네. 기분이 매우 좋으니 오늘은 술을 마음껏 마시기로 하세!"
김삿갓이 잔을 비워 주모에게 건네 술을 한 잔 따라주었다. 그러자 잔을 받은 주모가 또 한마디 하는데,
"'세사는 금삼척世事琴三尺이요,
인생은 주일배人生酒一杯'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저 또한 멋진 풍류 남아를 만나 여간 기쁘지 않습니다.
둘이 함께 마음껏 취해 보십시다."
그리고 주모는 술상을 새로 봐오는 것이었다.
김삿갓은 본시 두주를 불사斗酒不辭하는 호주가豪酒家가 아니던가. 그러나 주모, 연월이도 술에는 강호强豪인지, 아무리 마셔도 끄떡도 하지 않았다.
"여자로서 자네같이 술이 센 사람은 처음 보았네."
"술이라는 것은 상대방에 따라 주량이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까. 미운 사람을 상대하려면 첫 잔부터가 역겨운 것이지요."
"나 같은 걸객이 백마강 나루터에서 자네와 같은 미인과 더불어 인간사 진리를 논하고 호음豪飮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네. 아마도 이것도 우리 두 사람의 전생의 인연일 걸세."
이렇게 오가는 술잔에 정이 오가다 보니 방안의 취흥이 점점 도도해 왔다.
김삿갓은 활짝 열려 있는 방문으로 밖을 내다보니,
무심한 강물은 유유히 흘러가고 있는데,
풀밭에서는 누렁 송아지가 풀을 뜯다 말고
허공을 보고 "음~메~"하고 엄마를 부른다.
취기가 도도해진 김삿갓의 눈에는
그러한 전원 풍경이 아름답기 그지 없어 보였다.
더구나 강의 이름이 <백마강>인데
송아지의 빛깔은 누런 것이 무척 대조적이어서 무심결에,
[백마강두 황독명白馬江頭 黃犢鳴
백마강가에서 누렁 송아지가 울고 있네]
하고 한마디 씨부려보았다.
그러자 주모 연월이도 맞은편 노인산에 소년이 걸어가는 것을 보고,
[노인산하 소년행老人山下 少年行
노인산 밑으로 소년이 걸어가오]
하고 대뜸 댓구를 놓는 것이 아닌가!
김삿갓이 <白>과 <黃>을 대조적으로 표현하였는데
주모는 <老>와 <少>를 대조적으로 표현해 놓았던 것이다.
김삿갓은 주모의 절묘한 화답에 크게 감동되었다.
본인의 말로는 책을 많이 읽지 못하고 술자리에서 귀동냥만 많았을 뿐이라고 했지만,
화답을 응구첩대應口輒對로 멋지게 하는 것을 보니,
시재詩才가 비범한 것은 분명해 보였다.
그리하여 이번에는 뜰에 있는 연못을 내다보며,
[택리부용 심불견澤裡芙蓉 深不見
연못 속의 연꽃은 물이 깊어 보이지 않네.]
하고 또 한 구절 읇조렸다.
그러자 주모는 즉석에서 복사나무를 내다보며,
[원중도이 소무성園中桃李 笑無聲
뜰에 있는 복사꽃은 웃어도 소리가 없소.]
하고 또다시 멋들어진 대를 놓는 것이 아닌가!
"여보게!
자네는 술보다도 시를 더 잘하네그려!"
"마음이 통하면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김삿갓은 주모 연월의 그 대답이 더욱 멋이 있었다.
[느낌 보탬 : 참! 멋지다.
내게도 저런 벗이 몇 있으니
비록 그 벗들이 마음이 <대천같은 여인>은 아닐지라도
진중하면서도 벽이 없는 글벗들이기에
아~! 나는 진정 행복한 사람이로다.
방랑시인 김삿갓 (188)
몽중몽 주모 연월이(하)
김삿갓은 술을 마셔가며 연월에게 우스개소리를 하였다.
"시를 잘 짓는 여자는 공교롭게도 자네처럼
이름에 <월月>자가 들어간다네."
"그건 또 무슨 말씀이세요 ? "
"시를 잘 짓는 기생중에는
개성 기생 명월明月이가 있었고,
평양 기생 계월桂月이가 있다네,
게다가 얼마 전에는 강계에서 시를 잘 짓는
추월(秋月)이라는 기생을 만난 일이 있었는데,
지금 자네도 <연월>이란 이름으로
시를 이렇게 맛깔스레 잘 짓고 있으니,
이름 자에 달 월月 자가 들어 있는 기생은
시를 잘 짓는다고 봐야 할 게 아닌가?"
[보탬 : 그럼 시도 못 짓고 어벙벙하기만 해
얼굴마담 노릇도 제대로 못 해내면서
뭐만 차고는 나랏돈으로 뱅기타고
세상 구경만 다니면서 헤벌레 바보짓만 하고 있는
저 달(MOON)에게는 월月자를 붙여줄 가치도 없으리 ]
"아이, 선생님두!
명월과 계월은 소문난 시인이었지요.
저 같은 게 어찌 감히 그들 속에 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강계에서는
<추월>이라는 기생을 직접 만나셨던 모양이죠?"
"응, 그 여인도 시재가 보통이 아니었네."
김삿갓은 그렇게 대답하며 잠시 지난날의 추억에 잠겼다.
추월은 김삿갓의 인생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여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만약 어머니의 꿈을 꾸지 않았다면 김삿갓은 지금도 추월의 집에 머물러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눈 앞에서 술을 따라 주고 있는 연월도
결코 흔히 볼 수 있는 여인은 아니었다.
어느덧 밤이 깊었는지
새벽 종소리가 은은히 들려오고 있었다.
연월은 종소리를 듣자 김삿갓에게 은밀한 시선을 보내며
"강계에서는 언제 떠나셨습니까?"하고 물었다.
김삿갓은 대답 대신에,
[이가정초 금삼월離家正初 今三月
정초에 집을 떠났는데 어느새 삼월이 되었네.]
하고 시 한 수를 읊어 대답해 주었다.
연월은 그 소리를 듣더니 즉석에서 이렇게 화답을 한다.
[대객초경 복삼경對客初更 復三更
손님을 초저녁에 만났는데 어느새 삼경이오.]
김삿갓은 연월의 화답에 마음이 몹시 동요되었다.
그리하여,
[양소가흥 비난어良宵可興 比難於
이 밤의 흥겨움을 무엇에 비기리오.]하고
유혹의 시를 한마디 던졌더니,
연월은 대뜸 이렇게 화답하는 것이 아닌가!
[자오산두 월정명紫午山頭 月正明
자오산에 떠 있는 달이 무척 밝으옵니다.]
그 화답에는
김삿갓의 유혹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 들이겠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리하여 김삿갓은 마지막 술잔을 들며,
"이제 술은 그만 하고 잠이나 잘까?"하고 말하자,
연월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금침을 준비하겠으니 잠시만 기다려 주시옵소서."하고
속삭이는 것이었다.
두 사람의 이런 수작은 그야말로 이심전심으로 서로의 바람이 격의없이 상통된 탓이다.
김삿갓은 돈도 권세도 없는 따분한 신세다.
그럼에도 늘 명경지수와 같은 마음으로 살아오는 까닭에
어디를 가나 여자들은 대환영이었다.
마음 속에 추호의 사심邪心이 없음을 알고,
여자들은 안심을 하고 접근해 왔던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그런 사람을 염복가艶福家라고 부른다.
김삿갓은 이렇게 염복이 많은 덕분에
오랫동안 방랑생활을 계속해 오면서도
많은 여자들로부터 적지않은 도움을 받아 왔었다.
특히, 시를 좋아하고 음율을 숭상하는
노류장화의 여성들은 김삿갓을 각별히 좋아하였다.
뭇사내들의 멸시와 탐욕에 시달려야 하는 그들에게는
김삿갓처럼 허심탄회한 남성이 한없이 매력적이었던 것이다.
강계의 명기 추월이도 그래서 김삿갓을 좋아하였고,
부여의 '몽중몽'의 주모 연월이가 김삿갓을 좋아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던 것이다.
김삿갓은 연월이 안내하는대로
그녀의 안방으로 짐짓 취한 척 비틀거리며 따라 들어갔다.
그리곤 몸을 못 가누는 척하며
연월이 깔아놓은 금침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이불 속에서는 농염한 여인의 향기가 풍겨나왔다.
등잔불을 끈 연월이 바스락 소리를 내며 옷을 벗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김삿갓도 어둠속에서 급하게 옷을 벗었다.
이윽고 김삿갓의 이불속으로 연월이 살그머니 들어왔다.
두 사람은 말이 없이 서로를 껴안았다.
그리고 잠시 아무렇지도 않게 그대로 있었다.
누군가 먼저 어떻게 해주기를 기다리는 모양새였다.
그것은 이미, 서로 인생을 살아올 만큼 살아왔기에
함께하는 사람에 취향에 따라 능동적인 자세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삿갓은 이런 경우에 남자인 자신이 리드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먼저 손을 뻗어 풍만한 연월의 젖가슴을 더듬었다.
그리고 그녀의 입술을 훔쳤다.
두 사람이 같이 술을 마셔서인지 김삿갓은 가뜩이나 취한 술이 한 잔을 더 마시는것 같았다.
<쪽쪽>소리가 나도록 연월의 입속을 훔치던 그는 이번에는 자신의 혀를 연월에게 내주었다. 그랬더니 그녀도 그가 한 것처럼, 그의 입속을 달콤하게 훔쳐갔다.
9ㅐ
그는 그녀의 옥문을 더듬었다. 그러자 그녀는 짐짓 꿈틀거리며 손을 뻗어 김삿갓의 물건을 건드려왔다.
이렇게 전희를 끝낸 두 사람은 한테 엉켜 아낌 없이 서로를 나누었다.
방 안은 어제 이곳 '몽중몽'으로 올 때 거의 그쳤던
봄비가 다시 내리는지 고즈녁하고 등잔조차 꺼진 방안은 두 사람의 열기에 식을 줄 모르고 마냥 타오르고 있었다.
얼쑤! 쌕쌕쌕~, 씩씩씩씩~
타당타당 탕탕, 타당타당 탕탕.
타당타당 탕탕탕, 타당타당 탕탕탕탕,
타당타당 탕타탕, 타당타당타타타타~~
온몸엔 향기로을 육수가 흘러 미끈거리고,
옥문엔 하얀 거품이 꽃으로 피어나며
행복감에 빠진 연월은 용궁 속으로 용궁속으로
끝도 없이 빠져드는 황홀경에 정신을 잃고
불맞은 멧돼지처럼 가쁜 숨 몰아쉬며
끝도없이 내달리던 삿갓도
이제 더는 속도를 가하지 못하는 순간
앞으로 터져 나오는 온몸의 정기를 막을 수 없게 되고
그 좁은 옥문 안을 채우고 울컥울컥 넘쳐흐르건만
연월이도 삿갓도 연체동물인 양
늘어져 버렸으니...
저 두 사람 아침해가 중천에 뜬들
기력이나 되찾을 수나 있으려나!
방랑시인 김삿갓 (189)
몽중몽 주모 연월과의 이별
황홀한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어도 축축히 젖어버린 이불 속에서 일어날 줄 모르던 연월과 삿갓 둘은 비몽사몽의 순간을 즐기며 또 한 번 행복감을 느낀다.
그러던 연월이 먼저 몸을 일으켜 매무새를 갖추고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연월은 한번 관계를 맺고 나자 김삿갓이 더없이 좋아졌다.
돈은 한 푼도 필요치 않으니
얼마든지 오래만 있어 달라고 부탁까지 한다.
그녀는 돈보다도 참된 인정이 그리웠던 것이었다.
그러나 김삿갓은
오랫동안 연월에게 폐를 끼칠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애정과 원한은 서로 엇갈려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정에 이끌려 오래 머물다 보면 그 애정이 모르는 사이에 원한으로 변해 버리기 때문이었다.
'몽중몽'에서 열흘 가까이 편히 쉬고 난 김삿갓은
어느 날 아무런 예고도 없이 행장을 꾸리고 또 나섰다.
연월은 김삿갓의 마음을 대뜸 알아 본 듯 서글픈 얼굴로 물었다.
"저희 집을 떠나려고 하십니까?
불편하신 일이 많으셨던 모양이지요?"
"무슨 소리! 만나고 헤어지는 데는 때가 있는 법이네.
내가 예서 더 머무는 것은 자네를 괴롭힐 뿐이야.
적당한 때에 떠나려는 것일세!"
"언젠가는 이별의 날이 있을 줄은 알고있었으니
굳이 붙잡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어디로 가시려고 하옵니까 ?"
"나는 갈 곳을 정해 놓고 다니는 사람이 아닐세.
일단 나루터에 나가 강을 건너 놓고 생각해 보겠네."
"그러면 저도 나루터까지 전송을 나가겠습니다."
연월은 옷을 갈아입고 나루터로 따라 나오며,
"옛날이나 지금이나
나루터는 이별이 많은 곳인가 봅니다."
"나루터란 본시 많은 배들이 오고가는 곳인지라,
이별이 많을 수 밖에 없지 않겠나."
김삿갓은 거기까지 말을 하다가,
문득 연월에게 이렇게 물어 보았다.
"참, 내가 오늘 떠나려는 나루터의 이름을 뭐라고 했지?"
두 사람은 어느덧 나루터에 닿았다.
그러나 나룻배는 보이지 않았다.
연월은 모래사장에서 나룻배를 기다리며,
김삿갓의 질문에 대답했다.
"이 지방에서는 이 나루터를 '구두레 나루'라고 부릅니다."
"구두레 나루의 '구두레'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구두레'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그러나 백제가 멸망하게 되자,
많은 왕족들이 배를 타고 일본으로 망명을 떠난 곳이
바로 이 '구두레 나루'였다는 것을 보면,
이 나루를 옛날부터
'구두레'라고 불러왔던 것은 확실합니다."
[보탬 : 허! 예나 지금이나 나라가 망하면 하층민들이야 그럴 형편도 안 되니 죽으나 사나 그대로 살 수밖에 없지만
귀족, 지배층들은 제 살길을 찾아 고국,고향을 등지게 되나보다.
베트남 패망 뒤의 boat people들이 그랬고,
중동과 중남미의 독재국가들에서 그렇고
끝도 없이 이어지는 내전의 땅 아프리카가 그러하고,
배고픔과 전쟁의 두려움 속에 살아야 하는 북한이 그러하다
만에 하나 미국이 한국의 안보를 위한 노력을 포기하여
남북전쟁이 또 일어나면 대한민국의 국민들,
특히 부유층들은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를 상상해보자.
백제의 귀족 지배층들이 그랬듯
우리들 가운데 그런 길을 생각지 않은 이들이 얼마나 될까? 생각만 해도 끔찍스럽다 ]
김삿갓은 그 말을 듣고 눈을 커다랗게 뜨며 놀랐다.
"뭐야 ....?
백제가 망할 때(망할 기미가 보였을 때 부터)
수많은 왕족, 귀족들이 배를 타고 왜로 건너간 곳이
바로 이 나루터였다고...? 여보게, 그게 사실인가?"
"사실인지는 알 수없으나 지금도 일본 사람들은
백제를 '구다라'라고 부른다 들었습니다.
백제 왕족, 귀족들이 왜로 건너가기는 하였으나,
말이 전혀 통하지 않다 보니, 그들이 "어디서 온 사람들이냐" 묻자, 백제사람들은 "구두레에서 왔노라"고 대답했는데,
일본 사람들은 '구두레'가 나라 이름인 줄로 알고
그때부터 '구두레'를 일본식으로 읽어 "구다라"라고 부르게 된 게 '백제'를 뜻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얼마든지 수긍이 가는 이야기여서
김삿갓은 고개를 무겁게 끄덕였다.
"나라가 망하고 보니,
나라의 이름조차 엉뚱하게 변해버렸군 그래!"하고
자못 처량한 심정이 되었다.
그 옛날 부귀와 영화를 한몸에 누리던 백제 왕족들이
나라가 하루아침에 망하는 바람에
남부여대男負女戴를 하고 해로만리海路萬里,
왜의 땅으로 망명을 떠날 때 그들의 심정이 과연 어떠했을까? 생각을 하니, 김삿갓은 자기 자신의 일처럼 처량한 심정이 다시 밀려왔다.
그리하여 머리를 들어 강물을 바라보니,
무심한 강물은 넓고도 조용히 흘러가고 있는데,
여기저기 떠 있는 낚싯배에서는
구성진 노래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강물은 거울처럼 맑았으며
언덕에는 푸른 풀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고,
물 위에는 갈매기조차 훨훨 날고 있는 것이 한 폭의 그림같았다.
김삿갓은 눈앞의 아름다운 풍경을 그윽히 바라보다가
문득 연월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보게!
눈앞에 강상 풍경이 그림처럼 아름다워,
문득 홍우원洪宇遠의 시가 머리에 떠오르네그려.
그 시를 한번 읊어 볼 테니, 들어 보게나."
그리고 다음과 같은 시를 읊었다.
[평사여운 녹강회平沙如雲 綠江回
모래밭은 눈 인양 푸른 강을 굽이 돌고
백조비비 거복회白鳥飛飛 去復廻
흰 갈매기는 훨훨 날아 오고가고 하노나
홀유소선 가측과忽有小船 歌側過
지나가는 조각배 노랫소리 들려오니
경풍일도 랑화개輕風一棹 浪花開
가벼운 바람에 꽃물결이 일어나네.]
그러자 연월은 즉석에서 이렇게 대를 놓았다.
금강을 노래한 시에는 이런 시도 있습니다.
[강남강북 초처처江南江北 草萋萋
강언덕 좌우에는 방초만 무성하여
만목춘광 객의미滿目春光 客意迷
봄빛이 눈에 가득 나그네 맘 애달퍼라
수상목란 심고적愁上木蘭 尋古跡
조각배 비껴 타고 옛 자취를 찾으려니
청산무언 조공제靑山無言 鳥空啼
청산은 말이 없고 새만 홀로 우짖노나.]
비록 귀동냥으로 얻어들었다고는 하지만
연월의 시심詩心은 보통이 아니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나룻배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때마침 포구에서는 짐을 가득 실은 커다란 범선帆船
한 척이 먼길을 떠나려고 닺을 올리고 있었다.
"여보시오. 그 배는 어디로 가는 배지요?"
김삿갓이 가까이 다가가서 큰 소리로 물어 보니 뱃사공이,
"이 배는 곡식을 실으러 강경포江景浦로 가는 길이라오."
하고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김삿갓은 그 말을 듣자 불현듯 자기도 강경포까지 배를 타고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여보시오.
그러면 강경포까지 나도 좀 타고 갈 수 없겠소?"
"그러시구려!
이런 기회에 돈 안 받고 적선이나 한번 해보기로 하지요."
김삿갓은 동행해도 좋다는 승낙을 받자,
연월을 돌아 보며,
"나는 저 배를 타고 강경포로 갈 생각이니
자네는 어서 들어가 보게.
그동안 자네에게 너무도 신세가 많았네.
부디 잘 지내기를 바라네."하고 작별 인사를 하기 무섭게 배에 올랐다.
연월은 뱃전에서 눈물을 씹어 삼키며,
"어디를 가시거나 부디 몸 평안하시옵소서."하고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올 때와는 달리 혼자 쓸쓸히 돌아서면서
입속으로 신세 한탄조의 노래를 얼빠진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방랑시인 김삿갓 (190)
관촉사灌燭寺 미륵석불彌勒石佛에 얽힌 유사
이윽고 황포돛이 바람을 품고
강심江心으로 두둥실 떠나가기 시작하자,
뱃사공들은 갑판 위에 술상을 차려 놓고 김삿갓을 불렀다.
"출발 전에 고사를 지낸 술이 좀 남아 있으니
형씨도 우리와 함께 흠향歆響 합시다."
어떤 술이라도 사양할 김삿갓이 아니다.
김삿갓은 뱃꾼들과 함께 술잔을 나누며
풍경을 유심히 살펴 보았다.
배는 순풍에 돛을 달고 강물을 좌우로 가르며
앞으로 앞으로 미끄러져 나가고 있었다.
저 멀리 강가에는 갈매기와 백로들이
삼삼오오 너울너울 춤을 추듯 날아다니고 있었고
게다가 해는 저물기 시작해 서녘 하늘에는 노을이 짙어왔다.
그 풍경이 너무도 아름다워
김삿갓은 신용개申用漑의 시가 자기도 모르게 읊어졌다.
[수전추고 목엽비水田秋高 木葉飛
강마을 가을이 짙어 나뭇잎이 날리고
사한구예 정모의沙寒鷗예 淨毛衣
강가에 나는 갈매기 날게 더욱 희구나
서풍낙월 취유정西風落月 吹遊艇
저무는 바람결에 놀잇배 띄웠으니
취후강산 만재귀醉後江山 滿載歸
취하도록 마신 뒤에 강산 가득 싣고 가네.]
[■보탬 : 신용개의 "주하양화도舟下楊花渡"라는 시인데
이 시를 작가가 올리면서 ●잘 못 쓴 곳이 있어 바로잡는다.
●水國秋高를 水田秋高로
●沙寒鷗鷺를 沙寒鷗예로
●西風落日을 西風落月로 잘못 썼다.
<●원문은 아래와 같다>
수국추고 목엽비水國秋高 木葉飛
강마을 가을이 짙어 나뭇잎이 날리고
사한구로 정모의沙寒鷗鷺 淨毛衣
강가에 나는 갈매기 날개 더욱 희구나
서풍낙일 취유정西風落日 吹遊艇
저무는 바람결에 놀잇배 띄웠으니
취후강산 만재귀醉後江山 滿載歸
취하도록 마신 뒤에 강산 가득 싣고 가네.]
아래 블로그에서 시의 원본을 확인할 수 있다.
https://m.blog.naver.com/gjb8414/110117213812 ]
배는 부여의 '구두레'나루를 떠난 지
이틀 만에 강경포에 닿았다.
"선장 어른을 비롯하여
사공님들께 여러 날 동안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배가 강경포에 닿자
김삿갓은 행장을 갖추고 배에서 내렸다.
김삿갓은 관촉사灌燭寺를 가보려고
반야산般若山으로 걸음을 옮겼다.
관촉사에는 키가 어머어마하게 큰
미륵석불彌勒石拂이 있었다
고려 광종光宗때에 반야산 기슭에서
높이가 54척이나 되는 거대한 자연석이
"내가 온다 내가 온다"하는 소리를 내며
땅 위로 절로 솟아올랐는데,
혜명慧明선사가 그 돌을 정으로 쪼아 미륵불을 만들어 놓은 게 바로 그 돌부처님(은진미륵)이라는 것이었다.
그 불상은 괴이하기 이를 데가 없어서 나라에 무슨 변란이 일어날 때면 마치 살아 있는 부처님처럼 전신에 땀을 흘린다는 것이었다.
그 불상은 고려가 망할 때도 전신에 땀을 흘렸고, 임진 왜란과, 병자호란이 일어날 때도 전신에 땀을 흘렸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은진미륵이 한번 땀을 흘렸다 하면 조정의 군신君臣들은 말할 것도 없고, 백성들의 민심도 크게 흉흉해진다는 것이었다.
나라에 변란이 있을 때마다 은진미륵이 땀을 흘린다는 전설은 어제 오늘에 시작된 이야기가 아니다.
고려 말의 시인 이색李穡이 지은 시에도 이런 내용이 들어 있다.
[마읍지동 백여리馬邑之東 百餘里
부여에서 동쪽으로 백 리쯤 되는 곳
시진현중 관촉사市津縣中 灌燭寺
시진 고을에 관촉사라는 절이 있다
유대석상 미륵존有大石像 彌勒尊
돌로 된 커다란 미륵 부처가 있으니
아출아출 용종지我出我出 湧從地
"나온다 나온다"하며 땅에서 솟아올랐다.]
[위연설색 임대야魏然雪色 臨大野
하얀 불상이 들을 향해 우뚝 서 있어
농부예도 극단시農夫刈稻 克檀施
농부들이 벼를 베어 불공을 드린다.
시시류한 경군신時時流汗 驚君臣
때때로 땀을 흘려 국왕을 놀라게 한다는 일.
불독구전 장국사不獨口傳 藏國史
말로도 전해 오고 정사에도 실려 있다.]
이렇듯 나라에 변란이 있을 때마다
땀을 흘려 미리 알려주는 것이 사실이라면,
은진미륵이야말로
국가의 귀중한 보배라고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