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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로서 신부님이 탈출기를 크게 여섯부분으로 나누셨는데, 그중에 두번째 부분이 오늘 끝날것 같습니다.
나중에 성경에 보면 '남은자들' 이라는 개념이 나오는데..
남은자들이란,
바빌론 유배 후 돌아온 사람들 중 하느님을 향한 신앙을 지켜낸 사람들 로서 그 남은 자들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새로운 이스라엘을 이루실 것이다. 라는 것을 이사야서 라던지 다른 예언서 안에서 자주 등장해 만날 수 있는 그와 같은 사상입니다.
우리들도 적어도 탈출기의 남은자들인 것 같습니다.
신부님은 이게 재미있을리가 없는데 '언제쯤이면 재밌어지나 보자..라는 영화를 보면서도 지루해, 지루해 하면서도 끝까지 보게되는 그런 마음이시지 않을까? 라 죄송한 마음에서 강의를 하시는데 앞으로도 쭈우욱~~ 이러실 거라고 ....^^
전세계적으로 인류가 가장 많이 하고 있는 운동....너무 간단한 운동이래서 축구는 공만 하나만 있으면 맨발로도 하면 되니까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함께 즐기는 운동입니다.
그래도 생각해 볼만한 거리도 있고 어두운 부분도 있습니다.
매번 월드컵 경기때 마다 공인구가 있습니다. 그 공인구 몇천만 개를 만들어서 월드컵때도 쓰고 전세계적으로 뿌리는 것 같은데요.
그 공인구를 주로 만드는 곳이 인도 파키스탄 지역입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공인구는 150불 정도에 팔립니다. 그런데 인도나 파키스탄에서 공인구를 만드는 노동력이 대부분 젊은 청소년들이거나, 어린 아이들인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아이들의 섬세하고 축구공의 바느질은 인간이 다 하고 또 그렇게 해서 검사를 받고 하나씩을 만들게 되는데 하나가 150불정도...되니까? 우리나라 돈으로 17만원~18만원 정도 되는 거겠죠..
그 축구공을 한 아이가 하나를 만들면 그아이는 파키스탄에서 얼마를 받을 까요?
100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걸 보면서도 축구공이 참.... 그 축구공 가격이 더 올라서라도 노동자들이 합당한 보수를 받았으면 좋겠다..라는 의미에서
전세계적으로 특히 선진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운동중에 하나가 좋은 기업 운동입니다. 내가 어느 회사의 제품을 살 때 그 회사가 정말 노동자들에게 올바로 임금을 지급하는지, 공장에 안전은 잘지키고 있는지 또 환경적인 것들을 잘 대비하고 있는지, 또 그런 의식은 있는지..
사회적으로 기여하고 있는지 이런 것들을 평가해서 좋은 기업에서 만든 상품을 팔아주자..라는 운동이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들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런일들이 더 사람들에게 인식이 깊어져서 좋은기업에 상품을 사는 그와 같은 운동 한번쯤 일어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셨다고 합니다.
탈출 13,9
이것을 너희는 너희 손에 감은 표징과 너희 이마에 붙인 기념의 표지로 여겨, 주님의 가르침을 되뇔 수 있게 하여라. 주님께서 강한 손으로 너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기 때문이다.
이게 도대체 뭘까? 9절에서 말하는 이 내용이 실제로 유다의 종교적인 전통안에 오늘날까지 살아있습니다.
방송매체를 통해서 ,
테필린(tefillin) - 양피지에 쓴 성구를 넣은 작고 검은 가죽 함. 유다인들이 이 성구함을 머리나 팔에 맨다.
유다인들이 테필린을 매고서 성구갑 안에는 성경 구절이, 유다인들의 토라에 한 구절이 그안에 쓰여져 있는 겁니다.(말씀 사탕과 비슷하게)
성구갑은 유다인들이 아침 기도를 할때 사용하는, 머리에 띠를 매고..경건한 모습으로..
조금더 자세한 그림으로도 볼수 있습니다.
머리를 가리는 작은 모자를 쓰고 팔에 감는 것도 손에 감은 표징과 너의 이마에 붙인 표지로 여겨...로 되어있는데,
나중에는 율법들이 시간이 지나가면서 좀 이상한 것도 따지기 시작합니다.
천주교 전통 안에서도 굉장히 법적으로 강화되는 것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전통안에서 이상한 형태로 남는 것이 있고....
신부님이 어렸을 때도 첫영성체 할 때 수녀님께서 성체를 모시고 나서 성체가 입천장에 붙으면은 큰일 나는 것처럼 가르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항상 성체를 모시기전에 입천장에다가 침을 좀 바르고 성체를 모셔야 한다. 라는 말씀에 그거 안하면 고백 성사를 봐야 한다고 생각 하셨다고 합니다.
나중에 신학을 공부하시면서 그런 교회법은 없으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성체를 모실 때 꼭 왼손이 올라와야 한다. 그것도 교회법에 없습니다.
오른 손이 올라와 있던, 왼손이 올라와 있던 그런 것들에 관한 교회법이 없다는..
손으로 하는 영성체는 지역에 따라서 사목적으로 주교님들이 손으로 영성체를 할 수 있게 허락해 주십시오. 라고 하셔서 교황님께서 그런것을 허락해 주시는 형태입니다.
따라서 아직도 교회가 전통적으로 알고 있는 영성체를 하는 법은 뭡니까??
입으로 하는 것입니다.
옛날 성당들 보면은 제대와 신자들 사이에 난간 같은게 있습니다. 지금도 명동성당 가셔서 보시면은 ...있는데, 거기에 무릎을 꿇고 손을 모으고 그 앞에 사제가 와서
'그리스도의 몸' 하면은 '아멘' 하고 입을 벌리고 혀를 내는 그와 같이 모시는게 교회가 얘기하고 있는 전통적이고 가장 전례에 합당한 영성체의 모습입니다.
단지 그러다보니까,
여러가지고로 불편한 사목적인 문제가 생기니까 신부님들이 손으로 하는 것을 얘기하시고 또 신자인지 아닌지 구별하기 어려우니까 왼손으로 하는 것을 정해놓고 합니다만, 법적인 내용은 아니라고 합니다.
이 줄을 감는 것도, 나중에 유다인들 사이에서 토론이 생겼습니다. 북유럽쪽에 사는 사람들( 독일을 중심으로 아슈케 나짐)과 남유럽쪽에 스페인을 중심으로 해서 일어난 사람들(세파르딤), 우리도 제사 지낼때 집안마다 다르 둣이, 여기서도 지역적으로 차이가 생긴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은 저희 성경이 조금 의역이 되어있고 직역을 한다면은,
"너희 손에 감은 표징" - 너의 손 위의 표징(직역)
"너희 이마에 붙인 기념의 표지" - 너의 두 눈 사이의 기념물(직역)
이런 성구갑을 히브리 말에서 영어에서 그대로 받아 들여서...테필린 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손에 있는 성구갑은 핸드 테필린
이마에 붙이는 성구갑은 헤드 테필린 또는 필락 테리스, 쉘야드, 이런식의 라틴말 표현이라던지 아니면은 히브리 말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성구갑
º 신명 6,8 : 또한 이 말을 너희 손에 표징으로 묶고 이마에 표지로 붙여라.
º 신명 11,18 : 그러므로 너희는 나의 이 말을 너희 마음과 너희 정신에 새기고 너희손에 표징으로 묶고 이마에 표지로 붙여라.
º 마태 23,5 :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성구갑을 넓게 만들고 옷자락 술을 길게 늘인다.
마태 23,5에서 그들은 ? 율법학자 또는 바리사이들 일것입니다. 그래서 성구갑을 넓게 만들고 옷자락 술을 길게 늘인다. 라는 것도 옷자락술도 율법과 관련이 있습니다.. 겉옷을 만들 때 겉옷에 술을 붙이게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율법을 기억하는 그런 어떤 전통이 있습니다. 성구갑을 넓게 만듭니다. 그래서 다른이들이 '저 사람은 참 경건한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할 수 이도록..
천주교 신자들은 경건함을 표현하기 위해서 어떻게 합니까??
묵주반지, 묵주 팔찌, 다행히 묵주가 목걸이로 발전하지 못해서 다행입니다.
가끔식 차를 타다보면, 백밀러 부분에다 걸어놓은 분들도 있습니다.
기도하는 물건이기에 부적처럼 사용되서는 안되고 표징이들이 우상화 되지 않도록 마음을 기울이는 것은 중요합니다,
"주님의 가르침을 되뇔수 있게하여라'
정확하게 번역하자면, 하느님의 토라가 네 입에 있기 위해서
입니다. 토라는 가르침으로 번역이 될 수가 있고, 율법으로도 번역이 될 수가 있는데...성경을 번역하시는 번역자는 가르침이라고 번역하셨습니다.
왜냐면 아직 율법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소개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번역하신것 같습니다.
하느님의 토라가 내 입에 있다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이 내 입에 있다는 것이고 무슨 말을 하더라도 인간의 말이 아니라 하느님에 토라에 관해서 이야기 하고 있는 경건한 태도를 여기서도 역시 예고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입에 있어야 할 내용이 뭐냐? 라는 것이 성경의 저자는 '주님께서의 강한 손으로 너희를 이집트에서 이끌었기 때문이다. 라고 인과 관계로 이야기 했는데?
신부님은 '주님의 가르침을 되뇔수 있게 하여라." 그런데 ? 내 앞에 있어야 할
성구갑 안에 들어갈 주님의 코라....다음과 같은 내용입니다.
"하느님께서 강한 손으로 너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다.. 라는 것으로 해석을 하시는데
여기서 이스라엘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느님께서 강한 손으로 너희를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셨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구갑으로 모자도 쓰고 해야하는데.... 그 사실을 잊지 않는다는 것이 중요하다.
탈출 13,10 너희는 이 규칙을 해마다 정해진 때에 따라서 지켜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규칙은? 무교절에 대한 규칙으로서 8절 9절을 조금은 생략하고 전체를 읽어 본다면
탈출 13,7.10
7. 이레 동안 누룩 없는 빵을 먹어야 한다. 그동안 너희 영토 어느 곳에서든 누룩 든 빵이 보여서도 안 되고, 누룩이 보여서도 안 된다.
10 너희는 이 규칙을 해마다 정해진 때에 지켜야 한다."
- 8절과 9절은 좀 삽입된 것으로, 테필린 전통을 설명하기 위해 삽입한 구절입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정해진 때' 라는 말은 '축제의 시기' 입니다.
반면에 여기서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할 것은 '정해진 때' 라는 것은 시간의 양적인 개념이 아리나 시간의 질적인 개념입니다.( 예: 지금은 ~ 할 때)
배가 고프니 밥 먹을 때, 한 참 싸웠지만 용서하고 화해해야 할 때, 더 미움과 증오가 깊어지면 안되는 지금은 기도해야 할 때....
그것을 바탕으로 유다의 축제라는 개념인 것이고,
정해진 때 는 축제로서 하느님과 하느님 백성이 만나야 될때
그리고 성경에서는 해마다 라고 번역을 했는데요... 직역 하자면은
'날들로부터 날들로' 그와 같은 개념입니다.
관용적으로 '해마다' 또는 '매년'을 뜻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고 판관기나 1사무엘에서도 똑같은 표현이 등장합니다.
매년, 정해진 그런 축제의 시기에...하지만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양적인 시기가 아니라 그런 질적인 시간에 우리들은 그 무교절을 지켜야 한다.
여기서 정해진 질적인 시간이라는 것은?
결국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는 탈출 사건을 기억하는 것,
전통적으로는 보리추수가 시작되는 그와 같은 시기 라는 것을 우리가 기억하면 됩니다.
무교절은 농경축제였습니다.
파스카 사건과 연관되어 탈출 사건을 기념하는 축제로서 재해석 되었으며, 탈출기의 이야기는 그에 대한 신학적인 근거를 제공하는 원인담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일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이런 축제를 하게 되었다. 라는 그런 원인담에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누룩 없는 빵의 축제, 무교절은 본래 언제부터 거행되었을까? 그리고 언제 거행되었을까?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농경축제로서 어떤 기원을 갖고 있는지 정확하게 시간을 가늠하기는 어려울 것 같고, 아마도 가나안 전통이 아닐까? 아빕달이라는 그 달의 명칭이 사용되는 것으로 보아서 가나안 전통이 아닐까? 라고 짐작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그 축제가 있었던 본래 그 시간적인 개념은 언제일까?
아빕달, 보름달 부터 한 주동안에 축제였을 거라고 짐작하는 사람들도 있고, 또는 그렇게 어느 시간이 딱 정해진 것이 아니라 보리 추수를 전제로 하고 있고, 따라서
음력의 시간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대충 양력의 개념으로 3월, 4월 보리가 다 익으면 사람들이 보리를 보고서 추수를 해야 하는지, 하지 말아야 하는지 확인할 수 있으므로 ㅡ 그럼 그 보리 추수 시작을 하면서 무교절을 함께 시작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3월 4월에 어느 한 주간이 아니었을까? 라고 짐작을 하는 것도 역시 가능합니다.
여기 우리가 함께 읽은 단락에서,
아빕달이라는 달이 등장하는데 그 달에 관해서는 조금 재미있는 관찰을 해 볼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달력을 얘기하면서 흔히 세 가지를 씁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요? 우리나라는 1월을 1월이라 부르기도 하고, 정월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12월은 섣달 이라고 혹은 동짓달..이와 같은 명칭이 있듯이,
이스라엘도 각 달을 부르는 명칭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서수로 부릅니다. 첫째달, 둘째달, 셋째달....
그리고 두번째로는이스라엘 첫해를 얘기하면서 아빕달, 이라는 명칭을 쓰기도하고 또는 신약성경 공부하면서 '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가서 파스카 축제하셨는데 니산달,..' 이런 얘기 들어보셨습니다.
아빕달과 니산달은 같은 달입니다.
그래서 왜 이런게 생겼는지 보니까? 달들의 명칭에 가나안 전통도 있고 바빌론 전통도 히브리 말안에 들어온 것입니다.
그런데 유배 전에 쓰여진 것으로 보이는 신명기계 역사서에서는 주로 가나안 전통에 달의 이름들이 사용되었고,
유배 후에 쓰여진 것으로 보이는 역대기계 역사서나 구약 성경의 다른 문헌들 안에서는 주로 바빌론 전통의 달 이름이 자주 쓰이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다. 라는 학자들의 관찰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전체가 다 발견되는 것은 아닙니다.
가나안 전통에 달일 경우에는 아빕, 지우, 에타님, 불...네개의 명칭만이 발견됩니다.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이와 같은 명칭들이 사용되는 대표적인 경우가 솔로몬의 성전 건축과 관련된 그와 같은 텍스트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솔로몬의 성전 건축과 관련된 보도들을 얘기하면서 유난히 달력에 관한 이야기들이 나올 때 마다 첫째, 둘째 이렇게 사용하지 않고 가나안 전통 달들의 명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특징적으로 생각 해야 할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요즈음 3~4년전부터 신부님이, 언젠가 이걸 글로 쓰셔야 겠다!
라고 생각하고 있는 중요한 점 중에 하나가 솔로몬 내지는1열왕, 2열왕에 나오는 그런 이야기들, 신명기계 역사서에 후대에 왕국의 이야기들이 모세오경 안에 굉장히 많이 역으로 투영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경우입니다.
솔로몬이 예루살렘 성전을 짓기전에 자신이 왕이되고 기브온에 있는 산당에 가서 꿈을 꿉니다. 그 꿈에서 하느님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서 '니가 원하는게 뭐냐?' 라고 물으시는데.....
솔로몬의 대답은??? 1열왕 3장 8-9절 中에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광야로 나갑니다. 그리고 시나이 산에서 계약을 맺고 떠나려고 하는데 이트로가 찾아옵니다. 이트로가 찾아 와 모세에게 '네가 지금 백성들의 모든 문제를 다 판단해 주는데, 이건 네게 일이 너무 많다...따라서 너희에게 백인 대장, 오십인 대장 들을 만들어 그 사람들이 판단하고 그 다음에 판결되지 않는 것들을 네게 갖고오게 하여라.'
그러면서 하는 이야기가 ' 그 수가 너무 많아서 헤아릴 수도 없는' 이라는 같은 표현이 등장합니다.
선과 악을 분별하는 것! 우리가 아담과 하와ㅡ 에덴 동산 이야기 안에서 선과 악을 분별하는 그런 나무와 열매에 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선과 악을 분별한다는 것은 지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탈출기 시작부분에서도 파라오가 이스라엘 백성이 자꾸 번성하고 늘어나니까 우리가 그들을 지혜롭게 대해야 된다..라는 이야기들을 했습니다.
히브리 말로 지혜는 호크마(חכמה) 입니다.
그런데 그런 비슷한 문학적인 표상들이 여기 1열왕 3장에서 등장합니다. '어느 누가 이렇게 큰 당신 백성을 통치할 수 있겠습니까?'
옳고 그름에 관한 판단은 ? 이런 것들이 성경 안에서 들어와서 어떻게 판단되는가? 어떻게 신학적으로 구분되는가?에 대한 문제는 ....하더라도 비슷한 문학적인 표현이 있다는 겁니다.
특히 신부님께,
이 부분을 읽으면서 굉장히 인상 깊었던 것은...
'당신 종에게 듣는 마음을 주시어 당신 백성을 통치하고 ...' 솔로몬이 칭찬받아야 될 내용인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왕으로서의 모든 권력을 갖였음에도 불구하고 "듣는 마음을 주시어 내 백성을 지혜롭게 통치하게 해 주십시오..." 라는,
여러분들의 본당 신부님들은, 신자들의 이야기를 자알 들어주십니까?
지도자로서 중요한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은 가정에서 자녀들의 이야기를 자알 들어주는 부모입니까?
또는 우리나라의 지도자들은 백성의 소리를 자알 들어주는 지도자들 입니까?
모든 틀에서 마찬가지입니다.
지도자든, 교회의 지도자든 아니면 가정의 지도자든 정말로 지혜로운 것은 "듣는 마음을 " 첫번째로는 나에게 맡겨진 사람들의 소리를 자알 듣는,
갖 태어난 아기가 울때 이유없이 울지 않는다고 합니다. 무언가를 알려주려는 메시지가 담겨있다는 겁니다.
심심해서 놀아달라는 소리일 수도 있고, 배고파서 우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은 무언가 무섭다는 소리일 수도 있는...우리가 그것을 알아 듣지를 못하는게 문제입니다.
아이는 우리에게 얘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두번째로는 어떤 것을 들어야 할까요?
백성들만 듣는 것은 사실은 이 틀에서 충분하지 않는 겁니다. 그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듣는 마음을 주시어..
신부님께서 주목하시는 것은 모세오경의 토라 그리고 신명기계 역사서라고 볼수 있는 1열왕기에서 이와 같은 내용이 겹친다. 비슷한 문학적 모티브들이 등장한다..라는 겁니다.
그리고 또 있습니다.
열왕기 전서 12장에 가면 솔로몬이 성전 건축을 하면서 왕국이 분열되는 그와 같은 이야기입니다. 솔로몬이 죽고 나서 르하브암이 왕이 됩니다.
그리고 나서 예로보암이 이 르하브암에게 가서 우리들에게 있는 노역이 너무 힘이드니까 좀 낮추어 달라고 얘기합니다.
그러자 솔로몬의 후계자인 르하브암이 1열왕 12,14절에서의 이야기를 합니다. 이것은 파라오가 한 짓과 비슷합니다.
따라서 탈출기를 쓰면서 그 저자는 그들이 당하는 왕궁에서의 억압, 타민족에게서 당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민족의 현재를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이야기로 역으로 투영해 놓았을 수도 있다...라는 생각들을 합니다.
그리고 나서 그 예로보암이 독립을 해버립니다. 그래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갈리는 겁니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독립한 거기서 지도자가 된 예로보암이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1열왕 12,26-28 ..탈출기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금송아지 이야기입니다. 나중에 왕궁의 역사 안에서 실제로 일어난 많은 사건들이 탈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탈출기 사건안 에서 금송아지(부정적 평가)와 비슷하지만 긍정적으로 평가되었던 상징인 구리뱀입니다. 불뱀들이 와서 사람들을 죽이니까 백성들이 모세에게 와서 탄원합니다.
그래서 모세가 구리뱀을 드니까 그것을 본 사람은 살았다. 나중에 열왕기 하권에서 히즈키야가 성전 안에 있는 구리뱀을 치워버리는 이야기들도 등장합니다.(2열왕 18장)
따라서 이 모세오경 안에는 굉장히 많은 왕궁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역사적인 원인담 아니면 재해석 아니면 거기에 대한 신학적인 판단이 과거의 이야기 안으로 투영돼 들어가 있습니다.
그리고 달력의 얘기로 잠깐 넘어가자면은 가나안 식의 달려과 유배후에 유다가 사용한 바빌로니아 달력도 있는데, 탈출기I 책에 보시면은 영어로 써놓으신 니산우,아야루, 이와 같은 것들은 바빌로니아에서 쓰던 아카디아 말 명칭입니다.
반대로 오른쪽에 있는 것은 히브리 말 명칭인데, 이것도 열두 달이 다 아니라 구약성경에서 등장하는 것은 니산, 시완, 엘룰, 키스레우, 테벹, 셔밭, 아다르와 같은 몇몇 달의 명칭들만 구약성경에서 등장할 뿐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학자들이 오늘 날까지도 토론하는 것이 구약성경에 보면 두가지 방식으로 하루에 시작을 얘기합니다.
구약성경에 어떤 부분을 보면 일몰을 하루에 시작으로 계산하는 경우도 있고, 또 구약성경의 어떤 부분을 보면 일출을 하루에 시작으로 계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구약성경에 보면 한해의 시작으로 춘분을 얘기하는 경우도 있고, 또 어떤 부분에서는 추분으로 얘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것들을 놓고 오늘날에 학자들의 경향은?
유배를 전후해서 하루에 시작을 계산하는 방법과 또는 달의 이름을 정하는 방법, 또는 한해의 시작을 정하는 방법이 유배를 전후해서 많은 커다란 변화를 겪은 것이 아니냐?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에 각기 좀 다른 전통이 있었던 것이 아니냐? 지역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신부님께서도 시간의 문제에 관해서 굉장히 많은 생각을 하고 짧은 논문도 써보셨다고 합니다. 결론은 신부님도 잘 모르시겠다고....
토라가 내 입에 있기 위하여, 라는 표현은
구약 성경 다른 부분에서도 등장합니다. 먼저 신부님의 탈출기I 책에 340쪽에서 9절의 '네입에' 라는 표현에 신명기 30,4로 → 신명기 30,14절로 바꾸셔야 합니다.
네 입에(בפיך)
º 신명 30,14; 1열왕17,24; 이사 51,16 ; 59,21; 예레 1,9; 5,14 에서도 등장합니다.
특히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언이란? (성서적 정의) : 하느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 으로 '야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주님의 말씀이다.'라고 예언자들이 얘기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게 뭐냐하면 하느님께서 예언자들의 입에 말씀을 넣어 줍니다. 그러면 그 말씀을 입에 담고 있다가 백성들에 의해서 그대로 전하는 것!
그와 같은 개념입니다. 여기에서도 네 입에, 히브리적 사고 방식입니다.
나중에 이게 신약 성경까지 옮겨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서 예언자들의 입으로 세상에 전해졌던 그 말씀이 구약성경에서는 그것이 개체화 되는데,
신약성경에 와서는 그것이 의인화(personificatio)됩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 요한 복음에서 얘기하는 바로 " 한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그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그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이제 우리와 함께 계셨다...
바로 예수님 사건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하느님의 말씀이었고 하느님의 지혜로움이었다. 라고 말하는 요한 복음의 고백 .
그 근본에는 '네 입에 내 말을 담아 준다.' 라는 구약 성경에 기본적인 말씀에 대한 그런 객체화가 그 전단계에서 발견된다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해 주신 대로, 유다교 신자들이 팔이나 이마에 매다는 성구갑(테필린,tefillin)은 오경의 구절들이 적힌 작은 양피지 두루마리가 그안에 들어있습니다. 이 외에도 유다교 신자들은 문설주나 대문에 성구갑을 달아 놓기도 하는데,
이것은 테필린이라고 부르지 않고(몸에 감을때만 테필린이라고 부르고),
메주자(mezuzah) 라고 부릅니다.
메주자 - '문설주'의 뜻 . 유다인들 집 문설주 위에 달아놓은 자그마한 함. 양피지에 적힌 성경말씀이 담겨있음. 신명6장에 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Tefillin과 Mezuzah
º 신명 6,6-9 :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말을 마음에 새겨 두어라. 너희는 잡에 앉아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누워 있을 때나 일어나 있을 때나, 이 말을 너희 자녀에게 거듭 들려주고 일럴 주어라. 또한 이 말을 너희 손에 표징으로 묶고 이마에 표지로 붙여라. 그리고 너희 집 문설주와 대문에도 써 놓아라.
º 신명 11,18-20 : 그러므로 너희는 나의 이 말을 너희 마음과 너희 정신에 새기고 너희 손에 표징으로 묶고 이마에 표지로 붙여라. 또 이 말씀을 너희 자녀에게 가르쳐 주어라. 너희가 집에 앉아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누워 있을 때나 일어나 있을 때나 이 말씀을 일러 주어라. 그리고 그것을 너희 집의 문설주와 대문에도 써 놓아라.
따라서 집을 나가거나 집을 들어가거나 또는 집에서 나올 때 항상 말씀과 함께 들어가고 말씀과 함께 나오라는 그와 같은 뜻입니다.
그리고 이제 11절, 조금은 테마가 변경됩니다.
누룩 없는 빵에 관한 그와 같은 이야기에서 맏아들과 맏배를 봉헌하는(탈출 13,11~)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어떻게 연결이 되는 겁니까?
탈출 13,1-2절에서 맏아들과 맏배의 봉헌을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나서, 탈출 13,3-10절에서 누룩 없는 빵에 관한 이야기가 있고 다시 탈출 13,11~ 에서 맏아들과 맏배의 이야기로 넘어오는 겁니다.
3절부터 10절을 우리가 들어낼 수 있습니다.1절, 2절을 붙여서 얘기한다면,
탈출 13,1-2; 11
1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2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에서 맏아들, 곧 태를 맨 먼저열고 나온 첫 아들은 모두 나에게 봉헌하여라. 사람뿐만 아니라 짐승의 맏배도 나의 것이다."
11 주님께서 너희와 너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너희를 가나안족의 땅으로 데려가서 그 땅을 너희에게 주시면,
이렇게 앞에와 바로 연결할 수 있는 그와 같은 대목이 등장합니다.
그럼 왜?? 누룩 없는 빵에 관한 세칙이 여기 껴있겠느냐? 하는 것은 조금 있다가 함께 설명해 주시겠습니다.
여기서 이 규정은
"가나안족의 땅으로 데려가서 그 땅을 너희에게 주시면"
→ 약속의 땅에 도착한 이후 지켜야 할 규정, 따라서 광야에서 지키는 규정이 아니라 이제 가나안 땅으로 가서 그들이 지켜야 할 그와 같은 규정입니다.
그러므로 조건은?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땅을 주시면, 그들은 하느님에게 맏이를 줘야 한다.
즉 약속의 땅과 맏아들, 맏배에 대한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계약..이게 일종의 계약관계에 있는 겁니다.
늘 감사합니다. 히브리어는 항상 최승정 신부님 탈출기I 책에서 참조합니다.^^
첫댓글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