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그냥 꽃인 거야 외 4편
이 정
옥
있는
그대로 봐
본연의
색으로
단단한
내공도 없이
꽃의
향기를 캔버스에 담는 것은
얼비치는
햇살을 바구니에 넣는 것
물감의
빛깔을 빚어 놓은 하늘에서
네 마음을
드려다 보렴
혼합은
탁한 색으로
네 마음이
보이지 않아
마르지
않는 우물을 가지고 싶다면
산과
들에서 자라는 색으로
물의
줄기를 찾아야 해
동굴을
두려워하지 마
석순에
맺힌 물을
가볍게
여기지 마
안드로메다가
빛을 띄우고
우리의
하늘로 비행이 잦아도
재잘거리는
시간을 엮어서
마음 안에
물을 주렴
어둠을
비집고 나오는 햇살처럼
자신의
색으로 빛나는
너는 그냥
꽃인 거야
바다
약국
바다약국에
가면 그리움의 처방이 있을까
바다에
가면 짭짜름한 처방이 있을 거야
오징어 배
신진도에 도착하는 날은
갈매기
수다가 하늘에서 와글와글거리고
비린내는
닻을 걸어 놓고 팔딱팔딱거렸다
파도 한
점 꺼내어 바다를 마시고
얼큰해진
초승달에게 배 태워 주면
바다는
그리움을 낳아 놓았다
파도가
뒤척이면
초승달은
자정을 걸어가고
바다를
재워주던 바람은
찰싹찰싹
새벽을 낳아 놓았다
넋두리
처방은
바다 한
재 파도 한 줌 이라지만
바다로도
잴 수 없는
마음
처방은 어디에 있을까
시의 집을
찾아서
햇살이
머무는 폐교 울타리에
분꽃이
나팔을 불고 있다
뿌리 깊은
시 한 줄 찾기 위해
폐교
운동장으로 들어갔다
허리 굽은
소나무가 시를 쓰고 있다
매미도
나무에 올라 시를 쓰고 있다
운동장에
풀꽃도 시를 쓰고 있다
삐그덕
거리는 계단에서 바람도 시를 쓰고 있다
하늘이
유리창으로 들어와 구름을 받아 적는다
포플러
나무 잎새는 벌레가 갉아먹어도 시를 쓴다
숲에서
나무 계단만 바라보는
도토리나무도
죽을 때까지 시를 쓴다
폐교
울타리를 쳐다보는 깻잎도
오죽하면
삼복에
푸른 시를 쓸까
나,
시의 집에
들어
은유 추를
달아
우물 같은
시 한 줄 길어 올려 봤으면 ...
토론토로
띄우는 편지
1
오징어잡이
배를 타는 이란 청년은 종이 편지 대신
손끝으로
안부를 묻고 지문으로 인사를 한다지
만선으로
깃발을 펄럭여도
바닷가
우체통은 비린내만 배달해 주웠다지
붉은
몸통으로 입을 벌리고 있는 우리 집 우체통은
다이어트를
하는지 늘 허기져 있으며
빈 바람만
먹었다 뱉어 내기 일 수였었지
나는
우체통이 생물이기를 기도해 본 적 있지
그리하여
싱싱하고 팔닥팔닥 뛰는 마음 하나쯤
배달되기를
기대하였지
2
스물두 살
청년으로만 기억에 남아있는 한 사람
청바지에
와인색 점퍼를 입은 빛바랜 사진
조그마한
여자의 아름다운 사람이고 싶다던 한 줄
토론토에서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러 간다는 너의 필체는
내가
사치라는 그리움을 내 안에 살게 하였지
마음을
동여 버스에 기차에 그리움을 태워 보내기도 하였지
그 하얀
겨울의 찻집에서 너의 목소리 너의 얼굴
세월은
갔어도 너는 마냥 하냥 그냥 스물두 살
만리포
백사장은 여전히 파도를 데리고 놀고 있지
하고 싶은
말이 아직 남은 이유겠지
그리고
마방에서 가슴에만 쌓아 둔 말 말 말
쇼핑센터에서
건네주던 꽃반지 눈을 감으면 향기가 보여
그때부터
내겐 돌아다니는 우체통이 있었지
3
피서에서
돌아온 바람이 창에 앉거나
은행잎이
가을을 토하거나
소나무가
눈꽃을 피우거나
수선화가
봄을 마중 나오거나
파란
하늘에 구름이 뭉글뭉글 시를 쓰거나
그럴
때마다 나의 우체통은 스물두 살 청년에게 편지를 보냈지
4
민들레가
피고 또 피고 피는 이유를 나는 알고 알지
산 까치가
마을로 내려오는 이유를 나는 알고 있지
뻐꾸기
울음 마을로 내려 보내는 이유 나는 알고 있지
아카시아가
향기를 날려 보내는 이유를 나는 알고 알지
5
내겐 꽃이
너로 인하여 피었고
인터넷에서
너의 이름자를 건져 올리던 날
나는
공연히 웃음을 흘리고 다녔지
조그마한
여자가 우체통을 서성이는 이유
망초꽃도
알고 저리 흔들리는 거겠지
선유도에서
대영
수산에서 멸치 시식을 하였다
말린
멸치를 찰지게 씹어 삼키고
간식으로
바다를 야금야금 먹었다
더부룩해진
바다가 출렁출렁인다
입에서
쫀득쫀득 바다향이 일렁인다
바다
가운데에서 집라인*
타고
갈매기가 된다
하늘과
바다의 중간에 잠시 끼워져
끼룩끼룩
입안에서 바다를 토한다
시퍼런
하늘 한 점
싱싱한
바다 한 점
선유도에서
씹어 먹고
바다 한
바가지 하늘에 훅 뿌렸다
저렇게
파아란 하늘이 또 있을까
*집라인:짚라인(zipline)은 양
편의 나무 또는 지주대 사이로 튼튼한 와이어를 설치하고 탑승자와 연결된 트롤리(trolley)일종
당선소감
이정옥
귀한 오늘 피었다
시계를 봤다. 새벽 4시 37분 잠을 더 청해 본다. 뒤척뒤척 잠이 오지 않는다. 어릴 적 새벽에 군불 지피던 아버지 어머니의 목소리 도란도란 귀에 걸리는 듯하다. 그 시절 어린아이처럼 기분이 좋다.
가끔 사람의 몸도 우주와 내통을 하는 모양이다.
현관문에 매달린 우유를 꺼내고 핸드폰을 연다.
당선 소식이 문자로 와 있다.
떨린다.
한편으로는 부끄럽고 무덤덤하고 두렵다. “시”는 눈물로 바위를 뚫는 작업이라는데, 그 엄청난 작업을 해 낼 수 있을까?
나는 어떤 위로가 필요할 때 어머니에게 간다. 어머니 집 가는 길, 은행나무가 우뚝 걸어와 내게 말을 거는 듯하다. 차 암 신기하다.
발견하지 못한 시력을 찾으려 노력해야겠다.
부족하기에 많이 노력해야겠다.
이 떨림을 안겨준 애지 심사위원님께 우선 깊은 감사를 드린다.
배우는 제자보다 더 열정을 보여 주시고 용기를 주신 선생님, 어지간히 말 안 듣던 제자의 당선 소식에 나보다 더 기뻐하시는 아버지 같은 김순일 선생님께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화요일마다 설렘으로 만나 합평을 찰지게 해 주던 서산여성문학 회원님들 고맙고 감사하다.
여기까지 오며 고마운 분들 떠 올려 본다.
그분들에게 누가 되지 않게 살아야겠다.
아울러 큰 밭에서 좋은 생각을 배달해주는 백 화 선생님께 무한한 감사와 신뢰를 표한다.
“시”라는 집, 하나 두고 두근두근 마음 평생을 가지고 살아도 좋겠다.
귀한 오늘 피었다.
약력 : 충남 서산 출생
서산 여성문학회원
이메일 : ljo604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