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특별한 시간을 위하여-재활원 방문기
- 첫 만남
2023년 캘거리 한인 성당 야외 미사에서 고령 성요셉 재활원 친구들을 처음 만났다.
불편한 몸이지만 얼굴 가득 환한 웃음을 띠고 게임을 즐기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처음에는 그런 생각을 하였다.
얼마나 힘들까
이 거칠고 힘든 세상 헤쳐 나가기가
그 시간을 뒤로 하고 우리는이제 꿈결인 듯 그때의 친구들을 만나 대한민국 남녘 땅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재활원 식구들의 넘치는 환대에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방문 사 일차가 되어서야 지난 시간을 돌아본다.
더 특별한 성요셉 홈스테이 첫 날
김천 구미역에서 오래된 친구를 다시 만난 듯 감격으로 서로를 안아주며 반가운 인사를 나눈 후
직지사 바로 옆에 있는 사명대사 공원 내 한옥으로 향하였다.
직지사의 주지를 지낸 사명대사
임진왜란에서 승병을 일으켜 큰 업적을 세우신 분으로 김천시에서 체류형 테마공원 사명대사 공원을 건립하였다.
평화의 탑 야경은 감동이었다.
- 성요셉 마을과 성요셉 장애인 주간보호 센터에는
사십 여명의 장애인과 삼십 여명의 직원이 각자의 삶을 풍성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서로 함께 돕는 공동체라고 한다.
센터를 개방하여 우리들이 살펴볼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재활원에는 비교적 가벼운 장애를 가진 친구들이 있었고 요양원에 머무는 중증의 친구들을 바라보며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는 날이 하루 속히 찾아오기를 기도 드렸다.
-천주교 대구대교구 성모당과 옛 성유스티노 신학교
대구 대교구청 내에 위치한 성모당은 드망주 주교의 기도 지향--루르드의 성모를 대구 대교구의 주보 성인으로 먼저 정하고 주교관, 신학교, 성당짓기를 희망하였다.
희망이 이루어질 경우 루르드 성모의 장소인 마사비엘 동굴과 똑같은 동굴을 만들어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하겠다고 하느님께 약속하였다고 한다.
드망주 주교의 기도 지향이 이루어졌으며 성모 발현지인 마사비엘 동굴을 본따서 1917년에 착공 1918년 8월 15일 완공 되었다고한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에 미사는 벌써 진행 중이었다.
캘거리 본당 신부님의 안내로 옛 성유스티노 신학교를 돌아보았다.
드망즈 주교가 신학교 설립을 위하여 세계 각지에 원조를 구하였을 때 상하이에 거주하는 익명의 신자가 유스티노 성인을 주보로 모시는 조건으로 거액을 희사하여 성 유스티노 신학교가 되었다고 한다.
신학교 방문 중에 우리들의 두 눈을 크게 뜨게 한 특별한 사진은
두 분 신부님-임범종 프란치스코, 박재철 안토니오-의 졸업 사진이었다.
젊고 싱싱하던 두 분의 청춘 시절이 사진 속에서 환히 웃고 있었다.
또 다른 사진 속에서는 오래전 캘거리 본당 주임 사제이셨던 최환욱 베다 신부님이 부제의 모습으로 서있었다.
아들 부부 안드레아와 마리스텔라의 혼배성사를 집전해 주셨던 옛신부님 모습을 사진으로 뵈니 감개 무량이었다.
성직자 묘지도 방문하였다.
묘지 입구에는 (오늘은 내가, 내일은 네가)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잠시 생각에 잠겨본다.
지금은 군위군에 새롭게 설치된 군위 묘원을 사용한다고 한다.
-그리운 남쪽 바다와 윤이상 추모지
통영이 본격적으로 역사에 등장한 것은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때 통제영을 설치한 이후이고 통영이라는 이름도 통제영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한때는 이순신의 시호를 따서 충무가 되기도 하였고 오늘날의 통영시가 된 것은 1995년이라고 한다.
호텔 앞길을 산책하다가 국제 음악당과 윤이상 추모지를 보았다.
독일 유학중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고초를 치루다가 끝내 조국에 돌아오지 못한 윤이상
그의 생애를 돌아보는 산책길에 붉은 꽃 한송이 놓아드렸다.
이순신 장군의 얼이 서린 한산도 앞바다에서
요트를 타고 가며 환호성을 지르다가 거제대교가 나타나자 우리 부부가 신혼생활을 하던 장승포 대우 옥림 아파트가 떠올랐다.
지금은 대가야 박물관을 향하여 달리면서 로키를 떠올린다.
로키 산자락 동네인 캘거리에는 거대한 호수가 많다.
호숫가에는 바다처럼 파도가 밀려오고 백사장은 아니지만 걸을수 있는 길도 있다.
하지만 무언가 빠진듯, 고향 바닷가에서 느끼던 비릿한 내음은 없다.
금호 마리나 호텔 창가에서 보이던 장엄한 일출을 카메라에 담고 바닷가 길을 산책하였다.
아, 이 비릿한 그 냄새
무언가 가슴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앙금들이 소용돌이 치며 새로움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을거란 희망의 느낌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짝지 아델라
나의 짝지 아델라
배 아파,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그녀
첫날 보다는 둘째 날이
둘째 날 보다는 오늘 셋째 날이 훨씬 친해졌다.
아마도 아침에 불러준 성가 찬미와 감사
그 노래 때문일까
기분이 좋은지 휴계실에 잠시 다녀오는 사이
너무 큰소리로 웃어서 얼른 차로 데리고 왔다.
그녀가 배 아파, 라고 반복해서 말하면 very good, 을 외치면서 응답해 주었다.
재미있는지 따라 하면서 웃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방문 첫날 보았던 직지사의 풍경이 다시 떠오른다.
말로만 듣던 직지사
직지인심이라는 해설사의 안내를 들으면서 마음의 소중함과 지금 여기의 귀함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사명대사 공원의 한옥과 평화의 탑 야경은 우리들의 고요한 힐링 시간
한옥 지붕에서 흘러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하였던 추억을 떠올렸다.
직지사 경내에 설치된 맨발걷기 길
비를 맞으며 마치 동심으로 돌아간 듯 걸었고
길가에 작은 들꽃들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비에 젖어도 피어나는 들꽃을 바라보며 지나온 길을 돌아본다.
받은 것에 감사하기 보다 남들과 비교하며 불평하지 않았던가
이제부터라도 마음을 내려놓고 살아야지
마치 살아온 인생 총고백을 하는 심정으로 젖은 길을 걷고 또 걸었다.
대웅전에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불경을 읽는 소리와 목탁소리가 들려왔다.
비바람에 잠시 커다란 파초 이파리가 흔들리는 듯 다시 제자리를 잡는 모습이 보였다.
-대가야의 고령,역사를 쓰다
대가야가 가야 후기 강력한 국가로 성장 할 수 있었던 기반은 유리한 교역로의 확보를 통한 철의 수출과 안정된 농업 기반에 있었다고 한다.
박물관 입구에서 바라다보이는 높은 산 위로 여러 개의 왕릉이 보였다.
가야 역사를 살펴 보면서 순장 제도는 자발적인 희생임도 알게 되었다.
캐나다 앨버타주 주도인 에드먼튼에서 유학하였다는 해설사님
열정어린 설명과 함께 대가야의 독특한 토기와 철기, 말갖춤을 비롯하여 왕이 쓰던 금동관과 금귀걸이 등을 감상하였다.
왕릉들 위로 저녁해가 저물고 우리는 무주 향로산 자연 휴양림으로 발길을 향하였다.
여행 나흘 째
세 분의 환자가 발생하였다.
흔들리는 요트 위에서 넘어지신 어르신
옥수수를 급하게 드시고 체하신 분
과식으로 설사하는 분 등
단톡방에 재활원 국장님의 안전 사고 안내문이 올라왔다.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 시간이다.
그분들의 쾌유를 위하여 기도 드렸다.
- 전야제
떠나기 전날 우리는 짝지들과 자유로운 시간을 가졌다.
공방에 가서 황토로 그릇 만들기 체험을 하였다.
아델라가 재미있게 그릇을 만드는 동안 우리는강사님이 만들었다는 황토 찜질기를 체험하였다.
역시 우리는 흙에서 왔음을 다시 생각하였다.
무주 구천동으로 가는 입구에서 다슬기 점심을 먹고
5명의 자매들이 의기투합하여 패러글라이딩에 도전하였다.
산으로 올라가는 길
여러가지 장비를 실은 짐트럭에 우리도 함께 올라탔다.
울퉁불퉁 흙길을 지그재그로 달리면서 패러글라이딩도 시작 하기 전에 우리는 벌써 하늘을 나는 느낌이 들었다.
- 야영장에서의 저녁
패러글라이딩을 마치고 돌아오자
야영장에서는 벌써 BBQ 연기가 피어 올랐다.
앞치마를 두른 임신부님과 캘거리 본당 자매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면서 바비큐를 준비하였다.
가리비와 삼겹살 그리고 꽁치등
각종 야채로 푸짐한 상이 차려졌다.
식사 후에는 모닥불을 피우고 들러앉아 돌아가며 노래를 불렀다.
어느 순간 반딧불이닷, 하는 외침이 들려왔다.
머리를 들어 숲을 바라보니 수많은 빛들이 숲에서 반짝거렸다.
개똥벌레, 너였구나
아쉬운 작별의 날이 깊어가고 있었다.
향로산에 깊고 신비로운 운무가 드리워졌다.
산책 길 단풍들이 더욱 붉어가는 날 우리는 송별회를 해야한다.
무주에서 고령 재활원으로 돌아와 충무김밥과 추억의 도시락을 나누면서 돌아갈 준비를 하였다.
내게는 마치 인생 총고백성사를 보는 느낌으로 다가왔던 특별한 시간 여행
재활원에서 근무하시는 모든 선생님들과 친구들, 그들의 얼굴에서 하늘나라의 평화를 읽을수 있었던 오박육일의 행복한 여행이었다.
-고정관념에서 해방되다
그런 생각을 하며 살아왔다.
장애를 가진 분들은 불행할거라고
이번 재활원 방문을 통하여 그들도 우리 비장애인처럼 행복을 추구할 당연한 권리가 있다고
그리고 눈으로 보았다.
너무나 행복하게 지내는그들의 모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