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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 여는 새해-Ⅱ) 성전 청결
성경본문 : 느헤미야 13: 1-9
1. 그 날에 모세의 책을 낭독하여 백성에게 들렸는데 그 책에 기록하기를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영영히 하나님의 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2. 이는 저희가 양식과 물로 이스라엘 자손을 영접지 아니하고 도리어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저주하게 하였음이라 그러나 우리 하나님이 그 저주를 돌이켜 복이 되게 하셨다 하였는지라
3. 백성이 이 율법을 듣고 곧 섞인 무리를 이스라엘 가운데서 몰수히 분리케 하였느니라
4. 이전에 우리 하나님의 전 골방을 맡은 제사장 엘리아십이 도비야와 연락이 있었으므로
5. 도비야를 위하여 한 큰 방을 갖추었으니 그 방은 원래 소제물과 유향과 기명과 또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에게 십일조로 주는 곡물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또 제사장들에게 주는 거제물을 두는 곳이라
6. 그 때에는 내가 예루살렘에 있지 아니하였었느니라 바벨론 왕 아닥사스다 삼십 이년에 내가 왕에게 나아갔다가 며칠 후에 왕에게 말미를 청하고 느5:14
7. 예루살렘에 이르러서야 엘리아십이 도비야를 위하여 하나님의 전 뜰에 방을 갖춘 악한 일을 안지라
8. 내가 심히 근심하여 도비야의 세간을 그 방 밖으로 다 내어 던지고
9. 명하여 그 방을 정결케 하고 하나님의 전의 기명과 소제물과 유향을 다시 그리로 들여 놓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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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해 둘째 주일을 맞이하면서 우리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들과 제 자신이 늘 하나님의 은총 속에 거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총 속에 살려면 성전이 청결해야 합니다. 성전청결은 오늘 말씀의 주제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도제목이 많고 해야할 일이 많이 있지만 먼저 우리 마음에 정결함이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귀한 복을 주실 줄을 믿습니다.
우리가 다른 어떤 것보다도 먼저 받아야 할 은혜가 심령의 청결, 성전 청결이라고 성경은 말씀해 주십니다. 최근에 한 신학자가 교회의 유수한 목회자들에게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우리 한국교회가 제일 먼저 회복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그 질문에 대해서 이구동성으로 이런 대답을 합니다. "믿음과 행위가 일치해야 합니다." 신앙과 생활이 분리되어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신앙의 고백처럼 삶의 고백도 연장선에 서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교회 성도들의 삶에서 회복되어야 할 것이 우리의 신앙의 고백처럼 삶의 고백도 이어지기를 원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올 한해도 새로남교회가 신앙의 고백이 있는만큼 생활의 고백이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삶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공허하기 마련입니다.
또 한가지 설문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한국교회가 신앙의 고백과 삶의 고백이 일치되지 않는가?
그 이유가 무엇인가?
많은 지도자가 가슴을 치면서 하는 말이 목회자의 책임이 큽니다.
영적 지도자의 책임이 크다고 자기 고백적인 선언을 했습니다. 새로남교회가 뭔가 부족하다면, 1차적으로 저의 책임이 있는 줄을 압니다. 저의 올 한해 소원은 제 심령 가운데 예수 향기가 많이 나는 목사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새로남교회는 모든 성도들이 예수 닮기 원하는 것, 예수 향기가 넘쳐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라면 우리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이것은 아주 복된 소원입니다. 집안의 가장이 은혜를 받을 때 자녀들이 소망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영적지도자 한 사람의 타락이 얼마나 많은 폐해를 가져오는지를 보기 원합니다. 또한 어떻게 치유함을 받을 수 있는지를 붙잡기 원합니다.
먼저 4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던 제사장의 세속화 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 8장 이후에 놀라운 영적체험을 했고 시간이 10년정도 지났습니다.
"이전에 우리 하나님의 전 골방을 맡은 제사장 엘리아십이 도비야와 연락이 있었으므로(느13:4)"
이 말씀 속에 제사장이 등장합니다.
이 사람은 느헤미야 3:1절에 보면 대제사장입니다. 제사장 중의 제사장, 지도자 중의 지도자가 바로 엘리아십이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출발은 처음에 너무나 좋았습니다. "때에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그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양문을 건축하여 성별하고 문짝을 달고 또 성벽을 건축하여 함메아 망대에서부터 하나넬 망대까지 성별하였고"(느3:1).
성별했다는 것은 거룩하게 구별했다는 것입니다.
엘리아십은 처음 하나님께 은혜를 받고 나서 "오 하나님! 나에게 주신 은혜가 어인 은혜입니까?" 감사하는 마음으로 대제사장의 본분을 깨닫고 이 직분에 충성을 다했습니다. 그 헌신을 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었고 용기를 주었습니다. 특별히 그 당시의 개혁자였던 느헤미야나 에스라에게 얼마나 많은 용기와 힘을 주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나서 13장의 모습을 보면, 직업의식에 빠져, 세속화의 물결이 그의 영혼을 침범하고 말았습니다.
최고 영적지도자가 망가진 모습을 보게 됩니다. 도비야라는 사람과 연락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과 혼인관계를 맺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눈길이 변하여 사람들을 향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산발랏이라고 하는 사마리아 총독의 측근 실세였던 도비야라는 사람이 좋게 보여 혼인관계를 맺었던 것입니다.
이런 못된 마음이 싹트게 되었습니다. 도비야는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의 전이 완성되고 성벽이 이루어지게 될 때 느헤미야를 대적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하고 저주한 무리 가운데 으뜸가는 사람입니다. 그의 출신은 암몬 족속입니다.
"그 날에 모세의 책을 낭독하여 백성에게 들렸는데 그 책에 기록하기를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영영히 하나님의 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느13:1).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제사장은 그것을 알면서도 뭔가 마음에 세속적인 것과 하나님을 등지는 마음이 있어서 악습에 물들었습니다. 암몬 사람 도비야와 관계를 맺은 죄 뿐이 아닙니다.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도비야를 위하여 한 큰 방을 갖추었으니 그 방은 원래 소제물과 유향과 기명과 또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에게 십일조로 주는 곡물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또 제사장들에게 주는 거제물을 두는 곳이라. 그 때에는 내가 예루살렘에 있지 아니 하였었느니라 바벨론 왕 아닥사스다 삼십이년에 내가 왕에게 나아갔다가 며칠 후에 왕에게 말미를 청하고 예루살렘에 이르러서야 엘리아십이 도비야를 위하여 하나님의 전 뜰에 방을 갖춘 악한 일을 안지라"(느13:5∼7).
여러분! 하나님으로부터 부름받은 영적 지도자가 타락하는 것은 사람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좋게 하랴! 사람을 좋게 하랴! 내가 만일 사람의 환심만을 구하는 사람이라면 나는 하나님의 종이 아니로다!"
하나님의 사람인 성도들이 하나님을 먼저 마음속에 깊숙히 모시지 못할 때는 사람의 눈치를 보기 시작합니다. 사람의 눈치를 보게되면 그 마음에 순전함이 깨어집니다. 잘못됩니다. 망가집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누추한 인생으로 변질되고 마는 것입니다.
올 한 해 여러분에게 어떤 마음의 소원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도라고 말하는 거룩한 직분을 주셨습니다.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거룩한 직분을 이루는데 전력투구하지 않고서는 우리의 마음속에 도비야가 독사처럼 자리 잡을 수 있습니다.
6절 말씀에 도비야를 위해서 성전 방을 내주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마음의 도비야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위해서 예비하는 마음이 망가지고 세상에 점점 관심이 있고, 그것이 돈이나 자아나 허영심등이 내 마음의 방을 하나 둘 차지한다면,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주의 종으로 올바로 쓰임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엘리아십은 이 문제를 처음에는 소홀히 대했습니다.
여러분! 죄는 처음에는 소리없이 들어 옵니다. 그러나 처음에 작게 들어온 죄가 나중에는 나를 다스리고, 나를 지배하고, 나를 끌고 다니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이것이 죄의 속성입니다.
엘리아십에 대해서 13장 29절에 아픈 마음을 가지고 느헤미야는 이렇게 탄식합니다. "내 하나님이여 저희가 제사장의 직분을 더럽히고 제사장의 직분과 레위 사람에 대한 언약을 어기었사오니 저희를 기억하옵소서"
제사장의 직분을 소홀히 한 것 때문에 느헤미야는 가슴이 아파 탄식합니다. 레위 사람에 대한 언약, 율법을 행하지 않는 것에 대한 악한 마음이 있는 것을 알고 느헤미야는 마음의 손을 들고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여러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자식의 죄보다 부모의 죄를 하나님은 더 심하게 다루시고, 평신도의 죄보다 영적지도자의 죄를 더 호되게 다루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올 한 해 동안 부족한 저의 기도제목과 우리교회의 영적지도자들의 기도제목을 넣어주시기를 부탁합니다. 순장님들의 기도제목을 넣어 주실 것을 부탁합니다. 순장 한 사람의 영혼이 삐뚤어지면, 온 순원들의 영혼에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엘리아십이 그런 일을 감당했습니다.
레위기 21장 말씀을 보면 "제사장은 백성의 어른인즉 스스로 더럽혀 욕되게 하지 말지니라." "그 하나님께 대하여 거룩하고 그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지어다..."(레위기21:6)
주님께서 제사장을 왜 세우셨습니까? 영광스러운 주의 이름을 높여지기 위해서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까, 제사장이 앞장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주의 이름을 더럽히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하나님은 한국교회를 통해서 영광 받으시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한국교회를 추상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여러분 각자와 새로남교회와 우리 주위에 있는 많은 교회들과 한국교회 성도들을 통해서 주의 이름이 높아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게 될 때 대한민국은 소망이 있습니다.
엘리아십은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해서 부름을 받았으나 마음이 더러워졌기 때문에 인간적으로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이어서 느헤미야의 근심을 보십시다.
"내가 심히 근심하여 도비야의 세간을 그 방 밖으로 다 내어던지고"
여기서 핵심은 심히 근심했다는 것과 다 내어 던졌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보통문제가 아니라는 영적인 감동을 받고 마음이 찢어질 듯이 아팠습니다.
왜 근심했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이 더럽혀 지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전이 더럽혀 지기 때문에, 백성들에게 악영향을 주기 때문에 느헤미야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다 내어던졌습니다.
값어치 있는 것이 그 방에 가득찼을 것입니다.
경제논리로 볼때는 내어 버릴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논리로 볼 때, 주님의 거룩한 이름이 높임을 받아야 했던 것입니다. 어떤 것이라도 하나님 앞에 장애물이 되면 다 내어 던지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삶의 진정한 개혁은 잘못된 것, 죄된 것의 청산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내가 잘못된 것 청산하지 않고 아무리 복을 받으면 뭐합니까?
그 복이 내 영혼을 세우는 참된 복이 될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한 것입니다.
올 한 해를 출발할 때, 우리의 기도제목이 거창한 것을 자랑하지 마세요.
우리의 비젼과 꿈의 놀라운 것을 자랑하지 마세요.
오히려 우리는 '오 하나님! 다 내어 던지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데 있어서 장애물이 되는 것을 다 믿음으로 내어 던지는 역사가 나타나게 하옵소서!" 이것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베풀어 주십니다.
교회 내에서 예수를 오래 믿은 분들은 과거에 이렇게 했기 때문에 이렇게 산다라고 하는 영적인 관성의 법칙에 의해서 사는 분들이 있습니다. 기도하는 모습이나 관습이 바뀌지 않습니다. 그럴 때 주님이 우리 마음 속에 성령으로 일하십니다. "다 내어 버려라" "용납하지 말고 새롭게 살아라!" 과거를 답습하는 삶은 주님의 뜻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을 듣는 가운데 내어버릴 것을 깨달으신 분들은 지금 다 내어 버리시기 바랍니다. 유형의 것이든,무형의 것이든 다 내어 버리시기 바랍니다. 내 생각을 통제하지 못하는 일이 있다면, 주께 도움을 요청하여, 주앞에 기도하면, 주께서 오셔서 결단할 수 있는 용기를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결단하는 것입니다. 결단해야 개혁이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성전을 정결케 하라는 것입니다.
"명하여 그 방을 정결케하고 하나님의 전의 기명과 소제물과 유향을 다시 그리로 들여 놓았느니라"(느13:9).
내어 던진 자리에 채우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아버지의 말씀, 하나님의 약속, 성령의 은사로도 채움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9절 말씀에 그 자리에 기명과 소제물과 유향을 다시 들여 놓았다고 합니다. 이것은 다른 말씀으로 기도,말씀,선행,순종을 들여 놓는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될 때 우리는 온전한 개혁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신약시대 사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합니다.
디모데전서4:5절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7장에 보면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라고 했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진리의 말씀을 통해 거룩함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7:1절이 우리에게 도전합니다.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
주님이 도전해 주십니다. 정결의 제1번지는 나 자신입니다. 내가 주앞에 올바르게 설 때 올 한 해는 복된 하루가 될 줄 믿습니다. 어떤 일 이 있든지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내 마음이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차 있다면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의 자녀들을 인도해주실 줄 믿습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앞에 올바로 서는 것입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3:16∼17).
우리를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은총입니까?
이 은총이 우리의 삶에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거룩함의 은총! 이것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첫 번째 누려야 할 원천적인 은총인 것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 사랑의 하나님!
십자가의 사랑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성전 삼으심을 감사드립니다. 정결한 주님의 집이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