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實相)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證據)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히브리서 11:1-3)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에베소서 2:8-9)
1. 데카르트의 후예들 : '자기 암시'와 '신념'이라는 철학적 환상
근대 철학의 아버지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유명한 명제를 남겼습니다. 이 선언 이후, 인류는 모든 진리와 확실성의 근거를 신(God)이 아닌 '인간의 내면(이성과 자아)'에서 찾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철학적 사조는 오늘날 현대 사회를 지배하는 '긍정적 사고방식(Positive Thinking)'과 '자기 계발서'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속삭입니다. "네 안에 잠든 거인을 깨워라", "간절히 바라면 우주가 돕는다", "할 수 있다고 믿으면 이루어진다."
문제는 이 세속적인 철학이 교회의 강단과 성도들의 신앙생활 깊숙한 곳까지 침투해 들어왔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이 말하는 '믿음(Faith)'을 심리학적인 '신념(Conviction)'이나 '자기 암시(Autosuggestion)'와 혼동하며 살아갑니다. 내가 강렬하게 원하고, 마인드 컨트롤을 통해 의심을 억누르며, 긍정적인 생각으로 내 내면의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행위를 믿음이라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직하게 우리의 실존을 대면해 보십시오. 내 안에서 스스로 쥐어짜 낸 이 '자가 발전(自家發電)'의 신념이, 인생의 거대한 파도 앞에서 얼마나 무기력하게 박살 나는지를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의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서도 긍정적 사고가 작동합니까? 평생을 바친 사업이 하루아침에 부도로 날아갈 때, 내 육신에 암세포가 퍼져나간다는 선고를 들을 때, "나는 잘 될 거야"라는 얄팍한 자기 암시가 우리 영혼을 지탱해 줄 수 있습니까? 결코 불가능합니다. 인간의 내면은 근원적으로 부패하고 텅 비어 있는 밑빠진 독이기에, 그 안에서는 세상을 이길 어떤 진짜 능력도 생산해 낼 수 없습니다. 신념은 상황이 나빠지면 곧바로 두려움과 절망으로 변질되는 휘발성 강한 기체에 불과합니다.
2. 피스티스(Pistis) : 밖으로부터 맹렬하게 주입되는 객관적 실체
이 캄캄한 절망과 인간 이성의 한계 한복판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우주를 뒤흔드는 위대한 선언을 벼락처럼 내리꽂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實相)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證據)니!"
성경이 말하는 믿음, 헬라어 **‘피스티스(Pistis)’**는 내 안에서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주관적인 감정이나 낙관주의가 아닙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 쓰인 '실상'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휘포스타시스(Hupostasis)’**입니다. 이 단어는 고대 사회에서 땅문서나 권리증서를 의미하는 법적 용어이자, 건물을 떠받치는 '견고한 기초(Foundation)'를 뜻하는 건축 용어였습니다. 즉, 믿음은 허공에 떠 있는 막연한 기대감이 아니라, 내 영혼의 두 발을 굳게 디딜 수 있는 '압도적이고 객관적인 실체(Substance)'라는 뜻입니다.
또한 '증거'로 번역된 **‘엘렝코스(Elenchos)’**는 법정에서 죄수의 유죄나 무죄를 확정 짓는 '반박할 수 없는 결정적 증거물'을 의미합니다. 내가 그것을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내 기분이 좋든 우울하든 상관없이 이미 법적으로 완벽하게 확정되어버린 기정사실, 그것이 바로 엘렝코스입니다.
그렇다면 이 '휘포스타시스(실상)'와 '엘렝코스(증거)'는 어디에서 옵니까? 결코 우리 내면에서 솟아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밖으로부터(From outside)' 주어집니다. 영원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역사적으로 완성해 내신 구원의 객관적 사실이, 성령 하나님을 통해 굳어버린 나의 심장 속으로 뚫고 들어오는 사건입니다. 다시 말해, 참된 믿음이란 내가 하나님을 꽉 붙잡는 나의 악전고투가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진리가 나를 덮치고 나를 장악하여 내 존재의 기초를 완전히 갈아엎는 우주적 기적인 것입니다.
3.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하늘의 선물 : 종교적 노동의 종식
이 거룩한 기적을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2장 8절에서 이토록 찬란하게 선포합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Gift)이라!"
우리의 영적 무지와 교만은 늘 무언가를 내 힘으로 쟁취하려 듭니다. 심지어 구원조차도 '내가 열심히 믿었기 때문에' 그 대가로 주어졌다고 착각하여,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서 나의 '믿음 좋음'을 자랑하고 증명하려 듭니다. 그러나 바울은 우리의 그 모든 종교적 자만을 산산조각 냅니다.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다! 누구도 자랑하지 못한다!"
세상의 이치는 거래와 계산에 기초합니다. 내가 공로를 세우면 그에 합당한 보상이 제한적으로 나누어집니다. 그러나 생명을 살리는 성경적 믿음은 그런 얄팍한 조건부의 원리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내 행위나 노력에 비례하여 찔끔찔끔 주어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영적으로 완전히 죽어 송장과 같았던 우리를 향해, 하늘의 보좌로부터 둑이 무너지듯 폭포수처럼 부어지는 압도적인 **‘공급과 충만’**입니다. 하나님은 자격 없는 우리에게 당신의 독생자를 내어주신 것도 모자라, 그 예수를 믿어 영생에 이를 수 있는 '믿음이라는 기능' 자체를 완전한 선물로 우리 영혼에 들이부어 주셨습니다.
이 놀라운 복음의 진리 앞에 설 때, 우리는 비로소 숨통이 트이는 영적 자유를 경험합니다. "내가 더 굳게 믿어야 하는데", "내 믿음이 약해서 기도가 안 이루어지나 봐"라며 스스로를 학대하던 모든 '종교적 노동'을 멈출 수 있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흔들리고 영적인 침체가 찾아올 때, 내 안의 텅 빈 웅덩이를 파고들며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믿음의 기원이 내가 아니라 하늘에 있음을 아는 자는, 즉시 시선을 들어 나에게 이 선물을 폭포수처럼 쏟아부어 주신 십자가의 주님을 향해 영혼의 팔을 벌리게 됩니다.
4. 스펄전의 통찰 : 영혼의 손아귀, 그리고 하나님의 밧줄
위대한 강해 설교자 찰스 스펄전(Charles H. Spurgeon)은 이 믿음의 이중적 신비를 가장 아름다운 문장으로 묘사했습니다. "믿음은 구걸하는 병자가 위대한 왕의 적선을 받기 위해 내미는 빈 손과 같습니다. 믿음은 우리 영혼이 하나님을 붙잡는 손인 동시에, 하나님이 무기력한 우리 영혼을 붙잡아 끌어올리시는 생명 밧줄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내미는 손입니다. 그 손 자체에는 아무런 가치나 공로가 없습니다. 병자가 금화를 받았다고 해서 자신이 금화를 만들었다고 자랑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단지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의 공급과 충만을 텅 빈 두 손으로 받아 누릴 뿐입니다.
더욱 감격스러운 사실은 무엇입니까? 인생의 거센 풍랑 속에서, 우리의 연약한 믿음의 손아귀에 힘이 빠져 그 생명줄을 놓쳐버릴 것만 같은 아찔한 순간이 찾아옵니다. 질병의 고통 속에서, 처절한 실패의 자리에서 "주님, 더 이상 믿음을 유지할 힘조차 없습니다"라고 탄식하며 손을 놓아버리는 바로 그 순간, 우리는 경이로운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내가 하나님의 밧줄을 꽉 붙잡고 있어서 안전했던 것이 아니라, 영원토록 변함없으신 하나님의 거대한 손이, 나침반을 잃고 요동치는 내 믿음의 작은 손을 처음부터 끝까지 피가 통하도록 꽉 틀어쥐고 계셨다는 이 압도적인 사실 말입니다!
우리가 여전히 타락한 본성을 지니고 수시로 넘어짐에도 불구하고, 오늘 이 거룩한 성도들의 무리 가운데 앉아 예배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내 신념이 강해서가 아니라 나를 붙드신 하나님의 '피스티스(신실하심)'가 단 한 번도 나를 놓으신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5. 결론 : 자아의 왕좌에서 내려와 하늘의 실체 앞에 엎드리라
존경하는 동역자 여러분, 그리고 믿음의 험난한 순례길을 묵묵히 걸어가시는 모든 세대의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삶을 지탱하고 있는 기초는 무엇입니까? 내 통장 잔고입니까, 내 건강입니까, 세상의 권력입니까? 아니면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얄팍한 자기 암시입니까? 그 모든 것들은 불꽃같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그리고 죽음이라는 절대 절망 앞에서 한 줌의 재로 흩어져 버릴 모래성(幻影)에 불과합니다.
이제 여러분 내면에서 구원의 근거를 찾으려는 피곤한 발버둥을 멈추십시오. 십자가의 빈 무덤이 증명해 낸 그 영광스러운 사실, 내 존재를 송두리째 떠받치는 가장 견고한 바위(휘포스타시스)요, 사망 권세를 깨뜨리신 결정적 증거(엘렝코스)이신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나아오십시오. 믿음은 내 안의 거인을 깨우는 것이 아니라, 자아의 왕좌에서 처절하게 내려와 온 우주의 창조주이신 거룩한 실체 앞에 완전히 엎드리는 영적 항복입니다.
우리가 이 절대적인 하늘의 선물을 의지할 때, 우리의 팍팍한 일상과 눈물겨운 삶의 한복판에 하늘의 무한한 능력이 마르지 않는 공급과 충만으로 밀려올 것입니다. 긍정의 힘을 숭배하는 거짓된 세상 한가운데서, 오직 창조주가 주입하신 이 맹렬하고 객관적인 '피스티스'의 믿음을 무기 삼아 어떤 절망 앞에서도 꺾이지 않는 영광스러운 승리자로 우뚝 서시기를,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