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十字架)
윤동주(尹東柱)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尖塔)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 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시어, 시구 풀이]
십자가 : 기독교의 상징. 1연의 십자가는 작자가 도달하기 어렵지만 동경하는 종교적 도덕적 목표를 상징하며, 4연의 십자가는 자기 희생이라는 의미를 표현한다.
첨탑(尖塔) : 뾰족한 탑. 높은 첨탑만큼 광복 길이 멀리 있음을 암시
쫓아오던 햇빛인데 / 지금 교회당 꼭대기 /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1연) :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 상황에서 ‘햇빛’은 ‘광복’을 의미하는데 교회 꼭대기에 걸렸다는 것은 식민지의 속박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첨탑(尖塔)이 저렇게도 높은데 /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2연) : 현실 세계의 어려움이나 장애가 많아 쉽게 이루고자 하는 바를 이룩할 수 없는 시적 화자의 처지를 표현하고 있다. 자신이 추구하는 세계가 높음
종소리도 들려 오지 않는데 : 신의 은총을 찾을 길 없는 상황, 절망적 상태이다. 광복의 희망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괴로웠던 사나이, /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 처럼 : 앞 행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살아온 자신에 대한 자책이 나타나 있다. 희생의 고통이라는 괴로움에 처했으나 가치 있는 희생을 통한 인류 구원이라는 의미에서 행복임. 역설적인 표현으로 자신의 삶의 의지를 제시한다. ‘처럼’을 독립된 행으로 처리하여 그에게 ‘십자가’의 의미가 예수의 경우와는 다를 수 있음을 나타낸 표현이다.
꽃처럼 피어나는 피 : 가치 있는 피는 자신이 추구한 삶의 실체와 같기 때문에 꽃처럼 순결하고 숭고하게 여긴다.
어두워 가는 하늘 밑 /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 암담한 현실에 희생양이 되겠다는 의지적 표현이다. ‘조용히’란 내면적 자아에 대한 다짐이다.
[핵심 정리]
지은이 : 윤동주(尹東柱, 1917-1945) 시인. 아명(兒名) 해환. 만주 북간도 출생. 일본 유학 항일 민족 운동으로 수감.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함. 일제 강점기에 식민지의 슬픔과 자아 의식을 표현한 저항시인. 유고시집으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이 있다.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상징시
율격 : 내재율
성격 : 결의적. 상징적. 독백적. 저항적
표현 : 상징어의 사용. 역설적인 표현. 결의적 자세가 드러남
구성 :
1연 십자가의 제시(희생적인 삶)
2연 험난한 현실(자기 염원과의 거리)
3연 암담한 현실 상황(구원의 길이 없음)
4연 자기 희생의 필요(조국의 광복을 염원)
5연 자기 희생의 각오(절연한 의지)
제재 :
주제 : 자기 희생의 의지
출전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
▶ 작품 해설
이 시에서의 ‘십자가’에는 종교적 의미보다 조국 광복을 위한 고귀한 희생이라는 상징적 의미가 담겨 있다.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린 햇빛은 순결과 광명의 상징이자 조국 광복의 빛으로, 십자가는 구원의 상징이자 고귀한 자기 희생으로 확대 해석할 수 있다. 시인은 ‘종소리도 들려 오지 않는’ 조국의 절망적 상황 앞에서 회의와 자책으로 서성댈 수밖에 없지만, 결국 예수의 고난을 ‘행복’으로, 수난 속에서 희생되는 사람의 피를 ‘피어나는 꽃’으로 인식함으로써 조국을 위한 자기 희생의 결의를 다짐한다. ‘꽃처럼 피어나는 피’야말로 조국 광복이라는 열매를 약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장(悲壯)하고 장렬한 최후를 황홀한 순간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숭고한 자기 희생 정신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이 시의 핵심은 수난 의식과 속죄양 의식에 놓여 있다. 그것은 기독교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것이다. 그러나 민족의 아픈 역사 속에서 조국 광복의 염원을 십자가라는 구원 및 자기 희생의 상징적인 이미지를 더하고 있다. 교회당의 꼭대기 십자가에 걸린 햇빛은 오갈 데 없는 조국의 현실을 암시하며 종소리조차 들려 오지 않는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 시적 자아는 자신의 무능력을 자책한다. 예수가 진 십자가의 구원처럼 자신에게 그 조국을 위한 희생이 요구된다면 주저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시이다.
덧붙여, 이 시에서 ‘십자가’는 문맥에 의하여 의미가 특수화되어 있다. 즉 시적 자아가 도달하기 어려움을 절실히 느끼면서도 동경하여 마지않는 종교적 또는 도덕적 생활의 목표를 상징하는 것이다. 첫째 연의 ‘십자가’는 문자 그대로의 뜻, 기독교의 상징인 십자가라는 대상 자체로 보아도 무방하다. 그러나 넷째 연의 ‘십자가’는 교회당 꼭대기에 걸린 물질적 차원의 것이 아니다. 이 ‘십자가’는 이 작품의 화자가 처한 정신적 상황을 나타낸다. 뿐만 아니라 그 함축적 의미는 기독교적 속죄와 희생에 그치지 않는다. 특히 ‘괴로웠던 사나이’라는 표현을 통하여 윤동주에게서 ‘십자가’가 예수의 경우와는 다르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것은 일제 강점기에 항일 저항의 마음 자세를 가다듬으면서, 이를 위하여 자기 희생을 감수하겠다는 결의를 다지는 것이다.
<참고> 윤동주 시에 나타난 속죄양 의식과 저항 의식
‘괴로움, 슬픔, 부끄러움, 욕됨’ 등으로 요약되는 윤동주 시의 소극적 부정적 정신과 시의식은 그가 자신의 분노와 비판 의식을 적극화하지 못한 데서 오는 자기 혐오와 자책적 저항 의식은 다시금 자기 희생 또는 속죄양 의식으로 연결되어 나타난다. 그러한 보기가 되는 시가 ‘십자가’이다. 이 시의 핵심은 수난 의식과 속죄양 의식에 놓여 있다. 그것은 기독교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보다 직접적인 동기가 되는 것은 무기력한 자신에 대한 자책감과 현실적인 괴로움에 연원한다. 현실에서는 고난과 역경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 모든 인류의 짐을 지고 괴로웠던 예수 그리스도, 그러나 모든 인류의 죄와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희생되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행복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양 의식은 윤동주의 그것과 통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윤동주의 생애와 시에 있어서 그의 유년부터 가족적 신앙인 기독교 정신은 그 정신적 기조를 형성해 왔던 것이다. 따라서 윤동주의 저항 의식에 있어서도 그리스도적 수난 의식과 속죄양 의식이 그 핵심으로 작용한 것이다. 이 점이 좀더 적극적, 전투적 저항 방식의 관점에서 볼 때는 한계적인 것으로 해석될 수 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