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준골의 야망과 욕망
(관악산의 화기를 누가 꺾을 것인가)
삼각산을 떠난 한 마리의 용이 한강을 바라보며 용트림을 하고 있는 곳. 용산강 하류의 사수감(司水監)은 천혜의 수군 기지창이었다. 한강 물줄기를 가르는 노들섬이 강 중앙에 떡 버티고 서있고 유속은 완만했다.
울창하던 노들 섬 버드나무도 앙상한 가지만 드러내고 강 건너 검돌뫼(흑석동)가 유난히 검어 보인다. 서해안에 만조가 가까웠나? 불어난 강물이 뱃전을 때린다.
"강 건너 산이 송악산 못지않게 웅장하구려.“
"네, 관악산이 영(靈)산이긴 합니다만 기(氣)가 너무 세서 탈입니다."
"도통한 하대감께서 한번 잡아 보시구려. 하하하."
방원이 하륜의 술잔에 술을 쳤다.
하륜은 정통 성리학을 공부했지만 도참(圖讖)과 잡설에 능했다.
"도전이 해태상으로 잡으려 했지만 역부족입니다. 넘어야지요."
"넘다니요?“
"대전에 앉아있는 분이 기가 세면 잡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하륜의 답변이 의미심장하다. 백악을 등지고 대전(大殿)에 앉아있는 임금의 기가 세면 관악산의 기를 누를 수 있지만 임금의 기가 약하면 관악산의 정기에 눌린다는 뜻이다.
"저쪽에 있는 섬은 무슨 섬이오?"
방원이 서쪽에 있는 섬을 가리키며 물었다. 오늘날의 여의도다.
"우기에는 물에 잠기는 쓸모없는 땅입니다. 홍수 때는 양말산만 보이고 물에 잠기지요. 임화도라는 이름이 있지만 백성들이 서로 '너나 가져라' 하고 우스갯소리를 하는 섬입니다."
"쓸모없는 땅이 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위화도도 쓸모없다 했지만 우리가 가꾸어 놓으니 쓸모가 있지 않습니까?"
위화도는 버려진 땅이었다. 중국과 우리나라가 서로 팽개친 불모의 땅이었다. 의주 백성들이 배타고 건너다니며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관할권을 인정받았으며 압록강이 우리의 영역에 포함되었다.
"군사를 조련하면 좋겠습니다.“
"군사를 조련하려면 군막을 치고 부대가 주둔하여야 하는데 갑자기 큰 비라도 내리면 보통일이 아닙니다. 백성들을 들여보내 목축이나 하도록 해야지요."
하륜이 방원의 술잔에 술을 따랐다. 강바람에 향비파소리가 상큼하다. 향비파는 5줄이고 당비파는 4줄이다. 양수(陽數)를 좋아하는 방원을 위하여 이숙번이 향비파를 준비했다.
강태공은 기다리는 것이 본분입니다
"낚싯대를 드리우고 강태공 생활 5년이 지났는데 앞으로 2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니 지루하기 짝이 없소이다."
태조 이성계가 방석을 세자로 책봉했다는 소식을 듣고 실의와 절망감에 빠져있던 방원에게 7년만 기다리라고 했던 하륜이다.
"물고기가 먹이를 물었다고 고기를 잡은 것이 아닙니다. 잡았다고 자만하면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물고기를 낚아 올려 내 그물망 속에 담을 때까지는 한시도 긴장을 늦추어서는 아니 됩니다."
"물속에 뛰어 들어가 휘적휘적 내저으며 물고기를 보고 싶은 심정이오."
"당치않은 말씀입니다. 물고기가 물었다 싶으면 당겼다 놓았다를 반복하며 물고기가 지친 연후에 끌어올리는 것이 강태공의 수순입니다. 물고기가 먹이를 물었다고 성급하게 낚아채면 낚싯대가 부러지거나 낚싯줄이 끊어져 다 잡은 고기를 놓칠 수 있습니다. 조급해하며 물속에 들어가 고기를 잡으려는 우를 범하지 마시옵소서."
"저어기, 저기 좀 보시오, 정도전이 요동을 정벌하겠다고 군선을 짓다가 마무리하지 못하고 폐선이 되어버리지 않았소. 한대의 낚싯대에는 고기가 물어 찌가 움직이고 있지만 또 한 대의 낚싯대는 저 군선처럼 써보지도 못하고 강가에 방치하고 있으니 어느 때 쯤이나 쓸모가 있겠소이까?"
하륜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짓다만 병선이 을씨년스럽게 서 있었다. 정도전이 요동정벌을 부르짖으며 심혈을 기울여 건조하던 병선이었다. 정도전은 요동을 정벌하자고 태조 이성계를 설득하는 한편 오진도에 의한 군사연습과 함께 병선을 건조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정도전의 꿈과 함께 사라진 요동정벌은 폐기의 대상이 되었으며 짓다만 병선은 강물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방치되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이방원의 두 대의 낚시대론이다. 한 대의 낚시로 한반도를 낚고 또 한 대의 낚시로 요동을 낚겠다는 야심이다.
이것은 그가 어렸을 때 접했던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와 맥이 닿아 있다. 우선 제가(齊家)의 바탕을 마련한 다음에 힘을 모아 치국평천하를 이룩하겠다는 야심에 찬 계획이 숨어있다.
방원의 이러한 생각에는 이율배반적인 요소가 있다. 형제들을 죽이고 어떻게 제가(齊家)를 말할 자격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하지만 방원의 생각은 달랐다.
가(家)를 두고 벌이는 이방원의 이율배반
수신제가에 목표점을 설정한 범부(凡夫)는 개나 걸이나 미운 형제도 모두 안고 가야 하지만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에 목표를 설정한 준골(俊骨)은 혈육 정도는 넘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이것은 군주는 만인의 어버이지만 만백성을 모두 다 사랑할 수 없다는 군주론과 일치한다.
갈 길이 먼 치국평천하의 고지를 향하여 가는 길목에 걸림돌이 되는 형제는 설득하여 동참시킬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방원은 제가에 나오는 가(家)의 의미를 넓게 해석했다. 가(家)란 지붕아래 한솥밥을 먹는 혈육을 뛰어넘어 이슬을 피할 수 있는 움막아래 돼지를 잡아놓고 나누어 먹을 수 있는 동지로 봤다. 즉, 뜻을 같이하는 조직으로 봤던 것이다.
"백년은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백년씩이나요?"
방원은 어이가 없었다. 백년이라면 생이 끝난 후란 말인가. 대륙의 황제 주원장을 사사(師事)한 주승(朱升)의 완칭왕(緩稱王) 이론보다도 더 속도가 느린 논리다. 태조 이성계에게 정도전이 있었다면 태종 이방원에게는 하륜이 있었다.
고속을 선호했던 정도전 때문에 이성계가 무너졌다면 완속을 주장한 하륜이 있었기에 방원은 치세를 완결할 수 있었다.
"중원을 평정한 황제께서는 대륙의 북방으로 밀린 원나라를 자신의 당대에 멸하려고 욕심을 부리지 않았습니다. 힘이 없어서도 능력이 없어서도 아닙니다. 무리한 욕심은 화(禍)를 부르고 화는 낭패를 불러오기 때문입니다."
방원이 약관 스무 한 살에 고려조의 사신으로 요동 땅을 처음 밟았을 때 반도는 좁고 대륙은 넓다는 것을 절감했다.
요동의 옛 주인이 고구려였다는 것에 가슴 뛰는 자부심을 느꼈다. 그 광활한 땅을 내주고 명나라의 압박을 받고 있는 현실이 치욕스러움과 함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분노로 다가왔다. 그 분노를 삼키며 잃어버린 영토를 회복하겠다고 다짐했다.
방원의 평천하에는 잃어버린 고토(故土)가 포함되어 있다. 실제로 그는 등극 후 국내정세를 안정시킨 다음에 철령 이북의 땅을 영토로 회복하는데 힘을 기울여 여진족의 일파인 모련위(毛憐衛) 파아손의 무리를 물리쳤다. 아버지 태종의 유업을 이어받아 세종이 김종서와 최윤덕으로 하여금 6진과 4군을 설치하게 하여 압록강과 두만강을 확보하게 했다. 이것이 오늘날의 국경이다.
"명나라 사신 길이 성공하기를 바라오.“
"지극정성으로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하륜의 사신 길은 성공이 담보된 여정이었다. 황제등극을 축하하고 아무런 대가없이 '요동정벌론'을 폐기하겠다는데 실패할 이유가 없었다.
오늘날에도 북이 아무런 대가없이 핵을 폐기하겠다면 실패할 확률은 제로에 가까울 것이다. 성공을 바란다는 방원의 말은 북경에 있는 연왕의 의중을 파악해오라는 명령이나 다름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