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입법 절차와 행정 장관의 항복(?)의 의미>
홍콩은 정부가 입법 발의하는 경우, 즉, 정부가 법안 개정을 요구하는 경우, 법안을 관보에 게재한 후, 입법회 (의회와 같은 입법기관) 의장에게 심의와 의결을 요청할 수 있음.
입법회는 이 법안에 대해 3 차례 심의 과정을 거쳐 투표를 통해 의결하게 됨.
이번에 문제가 된 '범죄자 인도법'은 사실은 법이 아니라 지방 자치 기구의 조례가 맞지만, 홍콩 조례는 타국의 법과 같은 지위에 있으므로 법이라고 표현해도 크게 문제는 없음.
이번 대규모 시위는 범죄자 인도법 2차 심의를 앞두고 벌어졌는데, 1차 심의를 마치자, 홍콩 주민들이 이에 자극받아 각성하고 대거 시위에 참석하게 된 것으로 보임.
왜냐면 의결하려면 형식상 3차 심의를 해야 해 2번의 기회가 더 있을 것 같지만 2 차 심의 종료 즉시 3차 심의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에 2차 심의를 막는 게 중요했음.
결국 이번 대규모 시위로 2차 심의가 열리지 않았고, 이 법 개정을 추진한 홍콩 정부가 2차 심의를 무기한 연기함으로써 사실상 백기를 든 것.
참고로, 입법회에는 의원이 있고, 의원들이 투표를 통해 결정할텐데, 왜 시위대는 의회가 아니라 정부를 상대로 시위를 했을까?
이를 이해하려면 입법회의 구성에 대해 알아야 함.
원래 홍콩은 영국의 식민지였기때문에, 영국 법의 지배를 받았음.
영국은 식민지의 자치권을 인정하지 않았으므로 처음에는 영국 정부가 의원을 임명했음.
최초 3명의 의원을 임명한 후 서서히 그 수가 늘어나 홍콩이 반환되는 시점에는 60명까지 늘어남. 그 와중에 홍콩의 민주화 요구에 의해 85년부터는 정원의 절반을 간접선거 방식으로 뽑다가 91년부터는 직접 선거로 뽑게 됨.
그런데, 이 직접 선거 선출 방식은 당시 홍콩 총독이었던 크리스 패튼이 민주 개혁을 한다며, 입법국(현 입법회 전신)의 의원 전원을 직선제 선출로 바꿔 중국에 넘겨주려고 한 것이었음.
그러나 중국은 지역 주민의 직선으로 뽑은 의원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고, 이 문제로 영-중간 격론이 펼쳐졌음.
영국이 지배할 때는 절반은 직선, 절반은 간선으로 뽑았는데 반환하면서 모두 직선으로 바꾸는 건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었음.
중국은 150년 동안 비 민주적으로 지배한 영국이 염치가 없다며 절반 직선, 절반 간선으로 회귀시켜 버림.
현재는 70 의석이 있고, 이 중 절반은 지역에서 직접 선거로, 나머지 절반은 간접 선거로 선출함.
간선이란 건 사실상 지배국이 임의로 의원을 지명한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음.
그래서 지금은 70 석 중 절반인 35석은 지역에서 주민 직선으로, 나머지 35석은 중국 정부가 사실상 임명하고 있음.
이러다보니 입법회는 친중 의원이 절대 다수로, 홍콩의 우파 즉, 친중파가 43 석, 좌파 즉, 홍콩 독립파가 24 석임. (나머지 3의석은 본토파, 무소속, 공석임)
구성이 이러니 '범죄인 인도법 (조례)' 처럼 행정 장관이 미는 법안은 당연히 통과될 수 밖에 없음.
"중국 공산당 (중국 지배기구) = 전인대 (중국 입법기구) = 홍콩 행정회 (행정기구) = 홍콩 입법회 (입법기구)"
그러니 위 4 기구는 사실상 한 몸인 셈.
이게 무슨 의미냐.
행정 장관이 심의를 연기했다는 건, 사실상 중국 공산당이 홍콩 주민 100만명의 시위에 물러섰다는 의미라는 것.
행정 장관은 중공의 지시없이 결코 법안 심의 연기를 결정할 수 없음.
홍콩에서 발생한 시위가 전세계의 이목을 끌자 중공도 어쩔 수 없었던 것.
그러나, 이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임.
이는 성난 시위대의 김을 빼고, 숨고르기를 하는 것일 뿐 중공은 결코 여기서 물러나지 않을 것임.
그러나 이미, 홍콩 주민들의 시위와 법안 심의 연기는 중국내 소수 민족, 심지어 북한에 까지 생생히 전달되었거나 될 것이며, 그들의 머리 속에 인민이 사회주의 국가를 이겨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각인시킬 것임.
그것의 나비 효과가 미래를 어떻게 바꿀 지는 아무도 알 수 없음.
전철우(페이스북)
첫댓글 좋은 정보 알게되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