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라(תּוֹרָה, Torah), 즉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편집한 모세의 실존성은 늘 공격 받아 왔습니다. 하느님의 메신저인 그가 외부적 신화에서 차용해 온 것이란 주장은 무슨 근거에 의해 회자되는 걸까요?
아카드의 군주 사르곤
1. 모세의 탄생 설화는 BC 24세기 경의 아카드 군주인 사르곤의 설화를 차용한 것이라고 한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머니는 대제사장이셨고, 아버지는 내가 알지 못했다. 아버지의 형제들은 언덕을 사랑했다. 나의 도시는 유프라테스 강변에 위치한 아즈피라다. 나의 대제사장 어머니는 나를 잉태하셨고, 비밀리에 나를 낳아 주셨다. 그녀는 나를 덩굴 바구니에 담아, 역청으로 뚜껑을 봉했다. 그녀는 나를 강으로 던져주었고, 그 강은 나를 지치게 했고, 강물은 나를 '물을 끌어 당기는자'인 악키에게 데려다 주었다. 물을 끌어 당기는자 악키는 나를 자기 아들로 삼아 나를 키웠다. 물을 끌어 당기는 악키는 나를 그의 정원사로 임명했다. 내가 정원사였을 때, 이스타(이슈타르)여신이 나에게 그녀의 사랑을 허락했고, 4년 동안 그리고 ... 나는 왕권을 몇 년 동안 행사했다."
이 작품 즉 사르곤 탄생 설화의 가장 오래된 현존하는 버전은 신 아시리아 수도인 니네베(니느웨)의 아슈르바니팔 도서관에서 발굴된 '기원전 7세기 초'의 점토판인데, 수메르 전설과 기원전 8~7세기경 신아시리아 시기 때 정립된 사르곤 탄생 전설을 담고 있다.
"니네베(니느웨)를 1842년 프랑스 모술 영사인 폴 에밀 보타의 지시 하에 발굴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847년 영국의 고고학자 오스틴 헨리 레이어드(Austen Henry Layard)가 본격적으로 발굴을 진행했다 ... 특히 레이어드는 궁전 유적을 발굴하다가 도서관을 발견했는데, 그곳에는 아슈르바니팔이 수집한 점토판 3만여 점이 있었다 ... 이 유물들은 아시리아 뿐만 아니라 메소포타미아 문명 자체에서도 중요한 연구가 되었다." - [나무위키]
2. 이 작품의 가장 오래된 현존하는 버전은 아슈르바니팔 도서관의 기원전 7세기 초의 점토판인데, 이는 (아카드)사르곤의 생애보다 무려 1,700년이나 늦은 시기고, 모세의 탄생보다 800년이나 늦은 시기다. 그럼에도 왜 아카드의 사르곤으로 추정하는 이유는 뭘까?
` 대체로 성경의 이야기는 늦은 시기(BC 1,000년대 이후)로 가정하고, 비성경 이야기는 이른 시기(BC 2,000년대)로 가정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
"사르곤 전설은 그의 훌륭한 전임자(아카드의 사르곤)의 탄생을 재묘사하여 사르곤 2세의 정당성을 확립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신아시리아 작품이다" - (David Carr, Formation of the Hebrew Bible, 314)
데이비드 라이트도 'Inventing God’s Law(p.501n89)'에서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들의 공통된 의견은 ....
- 이 작품의 언어와 표기법은 표준 바빌로니아어로, 기원전 2천년기 중반부터 사용된 문학적 스타일이다.
- "해안 지역"을 언급하는 시대착오적인 부분이 있으며, 사르곤이 태어난 곳은 허구인 것 같다.
- 이 이야기는 사르곤이라는 인물을 제외하고는 고대 아카드 시대에 대한 내용을 전혀 포함하고 있지 않으며, 또한 이 이야기의 선구자는 없다.
` 고대 아카드 왕들은 기원전 1천년기에 재 작업된 역사 소설의 인기 있는 주제였다. 예를 들어, 마니슈투슈의 십자형 기념비, 나람-신의 쿠티안 전설, 사르곤 지리, 징조 문학 등이 있으며, 이들의 내용은 시대착오적인 부분과 동시대 상황과의 의심스러운 유사성을 통해 종종 늦은 제작 시기를 드러낸다.
` 사르곤 탄생 전설의 최신판은 J. G. Westenholz의 "아카드 왕들의 전설" 책에 있다.
3. 사르곤 전설(기원전 24세기에 아카드 왕국의 유명한 창건왕의 전기)의 작성을 그의 생애와 거의 일치하는 시기로 추정할 수 있는 증거는 있는걸까?
"사르곤 텍스트가 발견된 후, 그것이 사르곤 시대의 진본 텍스트의 사본, 아마도 조각상에서 복사된 것일 수 있다는 제안이 있었다. 그러나 사르곤 시대와 가까운 곳에서 복사된 사본은 남아 있지 않으므로 이제 훨씬 나중에 작성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 저작에 대한 가장 자연스러운 가정은 사르곤 2세의 궁정에서 나온 것인데, 그(사르곤 2세)는 (아카드의 왕)사르곤의 이름을 채택하여 그에 대한 전설을 전파하는 데 이해 관계가 있는 신아시리아 왕(BC 722–705)이었다."
- 이 말은 신아시리아의 사르곤 2세가 아카드의 왕 사르곤의 위업을 이었다는 뜻으로서, 아카드의 사르곤 이름을 빌려 자신의 위업을 나타냈다는 뜻이다.
4. Brian Lewis의 <The Sargon Legend: a Study of the Akkadian Text and the Tale of the Hero who was Exposed at Birth>는 꽤 오래된 주제에 대한 철저한 연구이며, 이후의 작품들이 이를 기반으로 구축되었다. (1970년대 후반-1980년대 초)
그는 pp97-107에서 늦은 연대(BC 1000년 기 이후) 모두에 대한 주장을 논의하며, 텍스트가 사르곤 2세 통치 말년에 작성되었을 가능성을 포함한다.
결론
"작성 가능한 날짜의 극단적인 한계만 확신을 가지고 결정할 수 있다. 사르곤 전설은 기원전 2039년 이후, 기원전 627년 이전에 작성되어야 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앙 및 신아시리아 왕의 왕실 비문에서 처음 증명된 관용적 표현의 사용과 같은 내부 증거를 바탕으로 13세기와 8세기 사이의 기원이 유력해 보인다."
학자들은 사르곤 탄생 설화가 대체로 BC 7세기에 기록됐음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그 설화의 주인공은 BC 24세기 경의 아카드의 군주 사르곤이 아닌, 신아시리아의 사르곤 2세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모세의 탄생 설화는 바로 이 사르곤 설화로부터 차용됐다고 추론 합니다. 왜 그럴까요?
북이스라엘이 신아시리아에 의해 멸망 후 포로로 잡혀 갔고, 후에 남유다 왕국은 신바빌론 제국에 의해 멸망돼 포로로 잡혀 갔을 때, 이스라엘 서기관들이 이 설화로부터 동기를 부여받아 모세의 설화를 만들었다는 겁니다. 식민지 복속민들은 통치국가의 영향을 받는다는 게 그 이유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모세의 존재를 빼 버리면 성경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이 간단한 원리를 무시하고, 그들은 이를 증명하기 위해 '문서가설'이란 것을 도입해 토라의 후대 작품설을 기정 사실화합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추론일 뿐입니다.
모세는 BC 1500년 대 인물입니다.
사르곤 2세는 BC 700년 대 인물입니다.
사르곤 2세는 아카드의 사르곤의 위업을 잇겠다는 인물로서, 자신을 영웅화하려는 위업 군주들의 절차를 따라 모세의 탄생 설화를 모방했다는 게 나의 생각이고, 이것이 가장 합리적인 해석이라고 봅니다. (우리나라의 박혁거세나 김수로왕 그리고 주몽은 모두 알에서 탄생했다는 설화처럼 ...)
첫댓글 😀🙂😗 위 설화 내용 중, 이스타(이슈타르 여신)와 사랑에 빠지는 부분이 나온다. 이스타는 이집트의 이시스, 님로드의 세미라미스, 수메르의 인안나, 로마의 비너스 그리고 성경 속 아스다롯이다.
😀🙂😗 사르곤 2세가 모세의 탄생설화를 도입한 이유는 - "사르곤 2세가 왕이 되기 전의 삶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그는 아마도 기원전 770년에 태어났을 것이고, 늦어도 기원전 760년 이후에는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 [위키백과]
(위키백과가 지적한 것처럼, 왕이 되기 전의 삶은 알려진 것이 없다는 데 있다. 따라서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선 '신비로운 탄생'에 대한 도입이 필요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