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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예수님께 대접을 받고자 하면 너도 그같이 대접하라
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 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린 것이니라 9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10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7:6-12)
예수님께서 왜 이 본문의 말씀을 하셨는가?
그때 당시에 유대 백성, 메시아를 기다린 이 유대 백성들이 기다리던
그분이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을 배척한 겁니다.
개가 주인을 물려고 덤비듯이~
개가 주인을 물려고 하듯하는 그 광경을 저도 어려서 본 기억이 있어요!
그래서 거룩한 복음을 개에게 주지 말라는 것에 대해 이해가
되는 것이 되기도 했습니다만~
개가 먹고 있는 밥 그릇이 엎어질까봐 엎어지지 않게 하려고
옮겨 주려 하는데... 제 밥그릇 빼앗는 것으로 알고
자기 밥주는 주인인 데도 으르렁~ 으르렁거리며
덤비듯 하려는 것을 봤어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 밥그릇 빼앗는 줄 알고 물려고 덤비는
그런 개와 같은 자들이 바로 바리새인, 서기관 이들인 것을 그 같은
개로 비유하여 말씀하셨구나!하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고~
그러니까 바리새인 서기관 사두개인뿐만 아니라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그와 같이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제 주인을 물려고 덤비는 자들이 됐었단 말입니다.
쫓아다니면서 어떻게 하면 저걸 죽일 고~
물려고 덤비는 개처럼 행동을 했었어요.
그리고 새김질 되지 않는 돼지~ 돼지가 새김질 못하잖아요!
쪽 발은 쪽발이여! 유대인들과 똑같아~ 육체로 지음을 받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로 지음 받았다는 것을 알긴 알아!
인간이 육체와 영으로 지음 받았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 섬겨야 한다는 것을 알아~
그럼에도 이 선지자들의 말! 율법이 하는 일!
모세를 통해 주신 이 율법과 선지자들의 말에 대해 새김질이 안 됐어!
그 머리가 너무 높아 가지고
자기 머리를 말씀보다 더 위에 두었으니 하나님의 의도에 대해
도무지 새김질이 안 된 거야! 새김질 안 되니까~
예수님 오셨어도 예수님을 보지를 못한 거예요.
그러니까 유대 백성들 이들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오늘날 예수님 믿는다고 하는 모든 사람들의 문제입니다. 문제!
그래서 정말 우리 자신도 언제든지~ 이제는 우리 것을 다 내려놓고
예수님이 말씀하는 이 말씀 한 절 한 절을~ 마음과 뜻을 다해서
깨달아 자기의 믿음의 능력으로 받고자 하는 그런 간절함과
의지를 가지고~
성영님을 의지하고 의지하며 도우심을 구하면서
이 말씀을 깨달아 가는 거예요. 아멘!
그런데 또 성영님이 깨닫게 하신다 하더라도
성경 전체를 통해서 보는 하나님의 역사, 의도하신 뜻! 줄거리
이런 부분들의 확실한 지식이 없으면 깨닫게 해도 못 알아들어!
영적인 뜻을 알지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알게 하시고 그것을 전하게 하신 자의
말씀을 들으면(마5:19,13:52), 그때에 아~ 그렇구나!
그거였구나! 하고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열심히 성경이라도 읽어보라고 했잖아요! 열심히~
문자적으로 기록된 이 성경을 보고 읽으면 사건들이 하나하나
마음에 들어와 있게 되고 어느 때에 깨달은 자를 통해서
그 사건들의 뜻을 성영님이 들려주시니 아~ 이거구나! 맞습니다!
하고 받아들여 자기 것이 되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아멘!
하나님께서는 누구나 믿음의 능력을 얻도록 하시는 방법과
사랑을 그렇게 베푸신 거예요.
네가 못 깨달으면 끝나! 네 것은 없어! 이게 아니라
네가 못 깨달았어도 깨달은 자의 말을 듣고
그것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네 것이 된다.
네 구원이 되고 너의 복이 된다는
이런 놀라운 복까지 열어 놓으셨으니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아멘)
그러니까 오늘 본문 말씀도 그러잖아요.
12절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대접을 말씀하신 이것은 사실 예수님과 함께 이웃을 말하는 거예요.
대접하라는 것이 예수님이 우선이에요. 예수님이 먼저예요.
예수님을 대접할 때 예수님이 누구신지? 우리가 성경 전체를 통해서
얼마든지 예수님에 대해서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에 대해 아는 것이지 않습니까? 말씀을 보니
아! 예수님은 창조주이시구나! 우리를 구원하신 구세주요.
그분은 왕으로 오셨고~ 그분이 하늘 성소 대제사장이시구나!
성소를 통해서, 성전 곧 구약 성전을 통해서 너무나 명확하게
보여주시잖아요. 가르쳐주시잖아요.
그래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화목제물이 되신 분이고~
그래서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이 된 것뿐 아니라~ 예수님이 피 흘리신 그 해산의 고통으로
나를 낳으셨다는 것이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를 낳으셨다니~
하나님이 아버지시라니~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이시구나!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속속히 알 수 있도록 하신,
말씀을 우리에게 주시고 또 우리를 가르치셨단 말입니다. 아멘!
그러니 예수님을 대접 못 해드릴 것이 뭐 있어요. 우리가!
그렇지요? 이 같으신 예수님을 대접해 드려야 하지요! (아멘)
맞습니다 예수님!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사람으로 오셨고
한 육체로 오셨지만은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며, 참사람이시며, 왕이시며,
나의 구주시니 이제 나의 주로서 영원하십니다. 아멘!
얼마나~ 대접해 드릴 수 있는 이 신앙! 고백의 말이
우리 속에 차고 넘치고 있지 않느냐고요!
그냥 이것만 해! 이것만~
그냥 누구 보면서 쟤는 왜 저래? 아이구! 믿음 좋다고 하던데,
뭐! 정말 믿음이 어디 있어? 아이고~ 저게 구원받았을까?
아니! 이 교회 성도들은 다 근접할 수 없을 만큼
거룩하고 너무나 신영한 사람들만 있는 줄 알았는데~
실제로 그렇지 않아 실망이 크다~
이같이 사람 만나려고 온 것처럼 사람에게 눈을 두고 마음을 두고
이런 판단하는 데에 있지 말고 말씀을 배워 예수님을 대접해
드리는 능력만 가지라는 말입니다! (아멘)
분명히 여러분에게 다시 한번 당부하는데 사람 통해 믿음을
배우려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관계를 너무 깊숙이 하려
하지 마세요. 성도들과의 관계를 너무 깊숙이 하려
하지 마세요! (아멘) 후에는 속속들이 알게 되어서 실망하고
비난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오고~
흉보고 싶고 이런 마음들로 커지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사람을 너무 가까이하다 보면 처음엔 좋지만 나중에는
관계가 피곤을 느끼게 될 수도 있는 거예요.
피곤한 존재가 될 수도 있는 거예요.
그리고 누구든지 집착하듯이 하는 행동들 하지 마십시오!
좋은 뜻이 되었든 나쁜 뜻이 되었든 자기 틀에 두고
관리하려는 듯이 하는 것, 그를 주관하듯이 하는 것들은
절대로 인격적이지 않습니다.
이것은 자기 관리를 해야 할, 자신을 위해서도 명심해야
하는 것이라는 것 알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미 사람에게 배우려고 하지 말라고 분명히 당부했습니다.
누가 날 이렇게 힘들게 해요! 너무 간섭받는 것 같아 힘들어요!
나중에 그런 말 하지마란 말예요.
교회에 하지 마! ‘그에게 분명히 말하세요! 싫다고’
그런 것에서는 자기를 자기가 지켜야 돼!
자기가 자기를 지키는 능력을 갖추고 나가야지
그런 정신적인 피해나 피곤을 느끼지 않는 것이지,
자기의 책임이지 다른 사람의 책임이 아니에요.
그냥 다 받아주고~ 차마 말 못하는 주관 없는 자기 성격에
그냥 거기에 시늉하면서 힘들어 하는 이것들~
이게 믿음이에요? 아닙니다!
아니죠? 똑~바로~ 말해요! 아니죠? (아닙니다!)
믿음에서 나는 것 아니야. 이것! 왜 끌려다니고 힘들다고 해!
이런 것 믿음의 능력도 아니요, 믿는 자의 덕도 아니요,
행실도 아닙니다. 너 구원이야. 너 구원!
이것은 또 성도와의 교제를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니
또 새겨듣기 바랍니다.
말씀을 나누는 교제를 하지 말라는 것도 아니니 오해로
듣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성도의 말씀 교제는
서로의 믿음을 돕는 매우 필요한 것으로써 마땅한 교제입니다만.
그러나 그같이 관계에서 마음의 불편을 겪는 일로 인해,
교회를 탓하고 심지어 교회 오는 것조차도 싫다는 이런 미련함은
없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제가 여러분이 이해하지
못할 말을 또 한 것은 아니지요?
말에 대해 어긋나게 듣는 묘함이 있어서 제가 그것이 염려되어
확인하는 버릇이 제게 생겼습니다.
예수님과 너와의 관계는 일대일의 관계지 그를 통해서가 아니에요.
(예수님과 나와의 관계에서 그 누구도 끼어들거나 끼면 안 돼요!)
그를 통해 구원 얻게 하신 거 아니에요. 아셨죠?
성경이 있어. 성경! 설교 말씀이 있어! 그리고 성영님이 계셔!
그러니까 사람간의 관계에서는 예수님을 높여드리는~
대접해 드리는 관계로서가 돼야 하는 것이지
사람에게서 믿음을 배우려 한다거나~
사람을 본받으려 하거나 하는 것 하지 마십시오. (아멘)
성경을 통해 바리새인 서기관 사두개인 누구냐?
본받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 여기 있구나! 가르치잖아요?
제자들의 신앙을 보고 본받는 거예요.
우리 신앙의 모델을 성경에 주셨잖아요?
성경에서 만나라는 말입니다. 신성엽 목사 본받을 것도 없어!
성경에 기록된 이 신앙의 선진들을 통해서~
자기 믿음을 본받고(히11장,살후3:7)
능력을 갖추란 말입니다. 제자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예수님께서 처음에 제자들을 부르셨을 땐 제자들은
자기들을 부르는 그 예수님이 메시아 인지도 몰라!
그럼에도 그들은 바른 정신의 메시아 관을 가지고 있었기에
마음에 그 메시아 사상을 갖고 있었기에
예수님이 지나시다 나를 따르라(마4:19,9:9) 하시니
모든 것을 버려두고 따라갔습니다! 이유가 없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따를 때 이같이 따르는 것입니다.
왜? 양은 자기 목자의 음성을 듣는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요10:27)고 하셨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양이면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다 하셨으니 그같이
예수님이 부르시니 제자들이 즉시 따른 것으로
예수님의 양이라는 것이 그대로 드러나 보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누구라도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따르는 그가 예수님의
양입니다. 그가 예수님의 양이면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하셨으니
여기서 무슨 말인지 새김질 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아멘!
제가 느낀 게 있습니다. 과거부터 참으로 느낀 것이 뭐냐?
세상에~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는 대접에 대한 뜻~
여러분이 여기 오시기 전 다른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으면~
이 대접의 말씀을 들었다고 한다면~
대접을 사람으로만 연결하는, (저는 그렇게 들었기 때문에)
사람끼리만 연결해서 얘기했지. 예수님으로 연결해준 목사나
가르침이 있었나요? (없었습니다!) 없었어요~ 없었어!
그런데 성영님이 내게 보게 하신 것은?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라고 이미 답을 주고 있었습니다.
율법이요 선지자! 그럼 율법이 뭐였어? 선지자가 뭐 한 거야?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이 뭐냐? 제가 알고 있기 때문에~
선지자는 누구냐? 제가 알고 있기 때문에, 답이 확 열렸습니다.
맞아~ 예수님을 말씀한 건데 예수님을 대접하라는 말씀이지!
하고 깨닫는 순간 마음이 크게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 이름의 뜻이 뭐예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1:21)
구원의 이름이잖아요? 구원의 이름!
그 구원의 이름으로 오신 그분이 우리의 주시잖아요!
우리의 주시며~ 하나님이시잖아요! 그러니까 맞아!
맞다! 예수님이 주시며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같이 대접 받으셔야 할 것 아니에요?
제게 확실히 깨달아져 버렸습니다. 깨달아져 버렸어!
그러니 깨달은 자가 이렇게 말씀을 전해드리니
말씀을 들은 심영이~ 같은 믿음으로 복창이 일어나야 되잖아요! (아멘)
그런데 이런 말씀 앞에 감동되어 응답하는 이들이 없더라고요.
신기하기도 했고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물론 저에게 찾아와서 말씀에 대한 받은 감동을 말한 사람들이
많이 있기도 했습니다만.
말씀을 듣고 마음에 지진이 일어났다.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말씀에 너무 놀래고 기뻣다.
밤에 잠 자는 것도 잊고 밤새도록 들었다.
다음 말씀이 너무 궁금해서 계속 들었다. 등의 이야기들입니다.
어떤 택시 기사는 목사님 말씀을 듣느라고 며칠 째 일하러
가는 것도 잊어버렸다는 말도 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와서 그같은 감동을 말하긴 했는데
뒤에는 그들의 흔적을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었습니다.
아마도 육신의 삶에 눌려서 말씀으로 그 영혼을 부르신
성영님의 음성을 잃어버렸거나 자기가 떠나버린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마13;19-22)
제가 작년에 말씀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린 선진성도에게 부탁하기를
영상 말씀들에 달린 댓글들을 모아주라 하여 보게 되었습니다.
말씀에 대한 반응들에 궁금한 마음이 들었던 것입니다.
왜냐? 오늘 본문에 대접의 뜻과 같이 믿는다는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하여 잘못 듣고 잘못 알고 잘못 믿고 있는 것들로 넘쳐나
그 믿음의 과녁에서 빗나가 있는 것을 다 밝혀 말한 것이기 때문에
그 반응들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말씀에 대한 댓글들이 별로 없었어요.
그중에서 한 네다섯 분! 네다섯 분 정도만 감사를 올렸는데
그 외에는 없더라고~ 없어!
사람들이 올린 말씀마다 들으면서 어떻게 들었나? 자기가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른 성영님이 보내신 레마를 듣게 된 그 감동과 소감을 말하여
다른 이들에게 선교 차원의 역할들이 돼야 하는데 없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말씀(하나님)을 들은자에게서 나타나야 하는 말씀에 대한 예의,
그 말씀에 대한 응답, 하늘의 것으로 지식을 얻고 자기를 영생 얻게 하신 뜻으로
받았다면 또 그 말씀을 높일 줄 모르지는 않을 것인데
그런 댓글이 없다는 것이 크게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신성엽 목사를 높이지 않았다는 것이 절대 아니에요!)
말씀을 잘못 알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돼 있지 않은 영적
무지와 어둠에 있던 자기를 보고 알았다면 이 말씀으로
깨어난 믿음이 되었으면 누가 듣든지 아니듣든지 그것을 밝혀
하나님께 말해야 하는 것이지요.
성영님이 바른 뜻으로 믿음을 깨우치도록 주신 말씀을
자기가 예수님을 바로 믿는 말씀으로 감격하여 받았으면은,
그에 대한 응답들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믿음에 대한 능력을 갖추도록~ 말씀으로 세우는 그 믿음이 되도록
가르치신 이 말씀 앞에 응답의 말~ 응답이 없더란 말이에요.
응답하는 말이~ 그래서 참~ 이상했습니다. 제가 너무 이상했어요!
그 응답은 목사에게 할 필요 없고 말씀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해야 하는 것이 상식으로 모르진 않을 텐데~
물론 말씀을 듣고 받은 영혼이 그같이 너댓 사람밖에 안 된다는
것이 답이기 때문에 그렇겠지요.
그런데 여기 교회 성도들도 마찬가지로 똑같구나!를 계속
느껴왔습니다. 믿는다는 것이 진짜일까? 누군가가 자기를 불러도
다 대답할 줄은 알면서도 하나님께는 왜 그렇게 귀먹은 것처럼 입을
봉하고 있는 것인가? 그러니 제가 무슨 기대를 해 볼 수가 있겠습니까!
예배 때 아멘도 억지로 하듯 하는 데~
말씀에 응답하는 것을 기대한다는 것, 무리이겠지요.
이것은 목사를 위한 것도 아니요. 말씀 앞에 자기 신앙을 응답으로
올려드리는 것으로 영광을 돌리고 다른 사람을 말씀으로 들어올 수 있게 하는
역할도 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마5;14-16)
저의 이 말에 대해서 여러분 이해가 되나요? 알아 들어지기를 바랍니다. 아멘!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데 말씀에 응답으로 영광을 돌려야
하는데 (아멘) 그 뭐야! 정말 ‘피해야 할 말씀들’ 밑에는 어마어마하게
댓글들이 달려, 어마어마하게~ 목사가 지금 댓글들을 달라고 하는 말이
아니라, 말씀 앞에~ 말씀을 정말 듣고 영이 살았으면~ 말씀의 믿음이
되었으면~ 이 말씀에 대한 존귀와 경외함으로 말씀을 높여드려야
할 것 아니에요. 하나님을 높여드려야 할 것 아니겠느냐 말입니다?
마 5장에 예수님께서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하셨으니(16절)
말씀에 대한 믿음의 행함~
그 응답이 분명히 나와야 하지 않느냔 말이에요.
제가 오늘 이런 말을 하는 것, 말씀을 듣다 보니까
그게 생각이 확~ 났어요! 오늘 대접의 말씀을 듣다 보니까~~~
과연 이 말씀들을 이 성도들이 정말 중하게 듣는가?
정말 하나님 말씀 듣기 원하였나? 듣기 원하는 말씀이었나?
듣고자 하는 말씀이었나? 마음에서 이 의문이 올라오는 거야!
그런데 이것이 제 마음이 아닐 거란 말이에요.
이게 사람의 마음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 영상 말씀 중에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는 것을 말했는데.
성경에 그 말씀이 마6장 28-29절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솔로몬의 모든 영광이 뭐예요? 전무후무한 부와 명예 영화 그 영광을
얻었어도 그 영광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에 대해 여러분 깨달아져서 자기 것으로 받았습니까?
그 영광이 들의 백합화만도 못하다 하셨는데 솔로몬의 엄청난
그 영광이 왜? 들에 백합화만도 못합니까? 들의 백합화가 뭐예요?
아니, 예수님께서 솔로몬의 영광보다 들의 백합화를 더 높였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이 백합화는 ‘자기가 잘나 보이고 이뻐 보이고 자기 자신을 가꾸려고
힘들이지도 몸부림하지 않았어도~먹고 살려고 품을 팔러 다니지
않았어도 하나님은 그 백합화도 다 기르셨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께서 기르신 그 백합화 꽃을 볼 때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아! 참 예쁘다는 감탄이 절로 나잖습니까?
그 꽃이 예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예쁜 꽃에서 뭐가 나와? 향기!
그런데 솔로몬의 그 부귀와 그 영광은 똥내 나는 영광이야!
하나님이 주신 지혜는 빛이 나서 사람이 삶을 얻는 생명이 었지만~
그 부귀와 영광은 똥~내요! 피비린내 나는 영광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피비린내 나는 그런 영광! 백합화 하나만도 못하더라~
백합화 하나는 그 옆을 지나가면 그 향기를 얼마나 풍기는지 사람의
발 걸음을 멈추게 하고 마음이 행복해지게 하고 눈을 즐겁게 합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잖아요! 그 마음에 평안을 끼쳐주잖아요?
지나가다 다시 돌아와서 꽃과 향내를 맡아 보는 거예요.
향내가 얼마나 좋은지 그 백합화를 눈과 마음에 담는 것입니다.
자기가 길쌈도 안 하고 수고도 안 했지만은 백홥화의 영광이
솔로몬의 그 영광에 비교할 수 없음을 말씀하신 예수님의 의도를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잖아요?
솔로몬의 영광과 부귀! 그것이 그에게 무엇을 주었습니까?
하나님을 떠나게 하고 죄악에 빠저 살게 하는 피 비린네 나는
것으로 돌아오게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기에 땅에 것들을 자기 앞에 쌓고~ 땅의 것들을 이루려고
하지 말라는 얘기예요. 똥내 나고 피비린내 나는 것들이에요.
우리 필요를 아시는 하나님 아버지가 그날그날 주신 것에 만족하면서~
감사하면서~ 우리 예수님을 높여드리고~ 예수님을 대접해 드리는
것으로 믿음이 세워지므로~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께서 나를
대접해주시는~ 그런 향기 나는~ 예수님의 향기가 나는 그런 믿음이
되자는 말입니다. 어떤 것도 이유없습니다. 그렇죠?
제가 또 마음에 흥분된 것처럼 말씀을 드리게 되었는데
그것 제 마음이 아닌 것도 여러분이 알기 바랍니다. 아멘!
예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인격이 돼야 예수님의 인격을 본받은
것이요, 예수님의 인격으로 변화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으로 지정의의 인격이 돼서 예수님을 나타내는
우리 예수님의 교회 성도들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아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참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 우리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접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여기까지는 인간이 생각할 때 인간관계를 말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는데~ 그러나 그렇게 보지 않게 하시려고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고 분명히 우리가 누구를 말하는지를 눈을
열어 알 수 있도록 하여 주셨습니다.
율법도 예수님을 말씀하셨고~ 선지자들도 예수님만을 말씀
하셨습니다. 메시아 예수님을 보내주실 것에 대한 언약을 가지고~
기다리는 유대 백성들 앞에 그 메시아에 대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예수님이 아니면 영원 형벌밖에 없는
존재들인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이 놀라운 구원
그 형벌에서 구원받은 그 놀라운 일이 우리에게 일어 났으니
그러므로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예수님을 우리의 주로~
예수님을 우리의 하나님으로 우리의 왕으로 대접해 드려야 하는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사랑하는 성도들이 마음과 뜻과 삶을 다하여
예수님을 온전히 대접하는 관계의 믿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믿음을 갖고자 할 때에 아버지 하나님! 성영님으로 지혜를 주시고
진정으로 예수님을 대접하는 믿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그러므로 또 예수님의 사랑을 가지고 이웃 사람들을
하나님 아버지와 화목시키며 그 사랑으로 대접하는 관계가
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아멘!
아버지의 말씀의 뜻을 바로 깨달아서 깨달은 말씀으로 믿음을 세우고
나아가는 우리 예수님의 교회 성도들 되게 하심을 감사드리오며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기도드렸습니다.아멘!
첫댓글 '사람간에 관계에서는 예수님을 정말 높혀드리고 대접해 드리는 관계로서의
그런 관계가 돼야 하는 것이라'는 말씀에 아멘입니다. 예수님께서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하셨습니다. 내 안에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이 가득하다면 나에게서 예수님만이 보일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기르시는 백합화처럼 예수님의 향기가 날 것입니다. 내 안에 오직 예수님만
가득하여서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예수님만 높여드리기 원합니다. 진정
예수님은 나의 하나님이시며 나의 구주시며 나의 왕으로 대접해 드리는
예수님의 성도이기를 소원하고 소원합니다.
목사님의 권면의 말씀을 듣고...,
오래 믿었다고 타성에 젖어 나태한 믿음에서 이제는 정신을 차리고 내 안에
오신 성영님을 근심하시게 하지 않는 바른 믿음 되기를 소원합니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생명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행동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행함으로 나타나지 않고, 권면의 말씀을 들을 때는 다른 사람에게 방향을
돌리는 그런 어리석음이 있지 않았나 돌아봅니다. 내가 이 세상(땅)에서
취하고 싶고 쌓고 싶은 것이 있지 않고, 이 세상은 내가 머물 곳이 아니라는
높은 마음을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살아도 예수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예수님을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 예수님의 것이로라'(롬14:8) 아멘!
메시아를 기다리던 목마른 사마리아 수가성 여자처럼, 자기를 물에 넣어줄
자를 목마르게 기다리던 누운지 38년 된 그 베데스다 병자처럼, 길 잃어버린
새끼양처럼 갈 바를 몰라 이리저리 헤매며 방황하며 고통하던 저희를 불쌍히
여기시고, 저희를 살려주시려고 말씀을 맡은 천국의 서기관으로 불러 세우신
아버지의 사랑하시는 목사님을 통해서 날마다 생명수와 같은 복된 말씀으로
우리를 먹이시고 기르시고 책망도 하시며 가르치시니 아버지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이제 이 잔칫상 같이 베풀어주신 말씀으로 먹고 마시고 배부름을
얻게 하셨으니 내 영혼이 만족하여 기쁨과 행복을 누립니다,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망하게 하시는 아버지가 아니시고 우리를 사랑하여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아들로 낳아
주셨고 또 영원 영원히 하늘 아버지 집에서 살게 하시는 그 복에 들게 하셨으니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이 복을 받은 우리가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 일이 뭘까요? 어떻게 하면
아버지를 기쁘시게 해 드릴까요! 예수님께서 성영님으로 주신 레마의 말씀을
마음을 다해 듣고 새김질 하는 일입니까? 아멘! 하겠습니다! '삼위 하나님을
마음 다해 목숨 다해 사랑하고 주신 말씀을 사랑하여 듣고 읽고 말씀대로
행하라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하십니까, 아멘으로 순종하기
원합니다. 기꺼이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따르고 싶습니다. 성영님 도와주세요!
성영님께서 각 심영마다 깨닫게 하시고 오직 삼위 하나님을 높여 대접해 드리고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우리의 구주로 우리의 왕으로 대접해 드리는 심영들로
깨우쳐 주시고 인도하심을 믿고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 내 아버지와 내 구주 예수님과 내 안에 오셔서 내 영이신 성영님께
감사와 영광을 한 없이 한 없이 올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