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와 꼬끼오, 그리고 이찬이
배 태종
손자 이찬이는 하버지 집을 좋아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하버지 집에는 제이와 꼬끼오가 있기 때문이다.
제이는 우리 집 진돗개이고, 꼬끼오는 닭이다. 사람에게는 그저 개 한 마리와 닭 몇 마리일지 모르지만, 이찬이에게는 그렇지 않다. 제이와 꼬끼오는 하버지 집에 가면 꼭 만나야 하는 친구들이다.
이찬이가 우리 집에 오면 제일 먼저 제이를 찾는다.
“제이 어디 있어?”
마당에 나가면 제이는 이찬이를 알아보고 꼬리를 흔든다. 이찬이도 반갑다며 제이에게 달려간다. 둘은 마당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논다. 이찬이가 공을 던지면 제이가 달려가 물어오고, 이찬이는 또 던진다. 제이는 지치지도 않는지 몇 번이고 공을 가져온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그런데 지난해에는 제이와 이찬이 때문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어느 날 이찬이가 마당에서 제이와 놀다가 닭장 쪽으로 갔다. 호기심 많은 아이와 본능에 충실한 개가 만나니 일이 커지고 말았다.
닭장 문이 열렸고, 제이는 기다렸다는 듯 닭들을 쫓기 시작했다. 이찬이도 신이 났는지 그 뒤를 따라갔다.
한바탕 소동이 끝난 뒤 닭장을 살펴보니 몇 마리가 죽어 있었다.
나는 어이가 없기도 하고 속이 상하기도 했다.
“이놈의 제이!”
제이를 나무랐지만 제이는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꼬리만 살랑살랑 흔들었다. 옆에 있던 이찬이는 눈이 동그래져서 제이를 바라봤다.
그때는 속상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이찬이와 제이가 함께 만든 하나의 추억이다. 아이가 자라고 제이가 늙어가면 언젠가는 그날의 소동도 웃으며 이야기할 날이 오지 않을까 싶다.
요즘은 이찬이가 멀리 있어 자주 만나지 못한다.
그래도 매일 저녁 영상통화를 하면 이찬이의 첫마디는 거의 정해져 있다.
“제이 보여줘! 꼬끼오 보여줘!”
그러면 나는 휴대폰을 들고 마당으로 나간다.
제이는 내가 휴대폰을 들고 오는 것만 봐도 이찬이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듯 꼬리를 흔들며 다가온다.
“이찬아!”
내가 휴대폰을 제이 앞으로 내밀면 화면 속 이찬이가 웃는다.
“제이!”
제이는 화면을 알아보는 것인지, 이찬이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것인지 꼬리를 더 세차게 흔든다.
그러면 나는 닭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꼬끼오도 보여줄게.”
꼬끼오는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고개를 내민다.
“꼬끼오!”
이찬이는 반갑게 이름을 부른다.
나는 휴대폰을 들고 마당을 오가며 제이도 보여주고 꼬끼오도 보여준다. 손자는 화면 너머에서 웃고, 나는 그 웃음소리를 들으며 함께 웃는다.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한 일이다.
손자와 할아버지가 나누는 이야기라고 해봐야
“제이 보여줘.”
“꼬끼오 보여줘.”
그게 전부다.
그런데 그 짧은 말 속에는 서로를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들어 있다.
이찬이가 우리 집에 오면 제이와 신나게 놀고 닭장도 기웃거린다. 나는 그 뒤를 따라다니며 혹시 또 무슨 사고를 칠까 살핀다.
그런데도 그 시간이 싫지 않다.
아마 시간이 지나면 이찬이는 자랄 것이고, 제이는 늙어갈 것이다. 꼬끼오도 언젠가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이런 평범한 순간들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저녁이면 제이는 내 곁에 와 앉고, 꼬끼오는 닭장 안에서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리고 전화기 속에서는 이찬이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하버지, 제이 또 보여줘.”
나는 다시 마당으로 나간다.
제이는 꼬리를 흔들고, 꼬끼오는 고개를 내민다.
오늘도 그렇게
이찬이와 제이와 꼬끼오가
멀리서 한자리에 모인다.
돌이켜보면 별것 아닌 하루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런 별것 아닌 하루들이 모여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따뜻한 기억이 된다는 것을.
오늘도 이찬이가 웃었고,
제이가 꼬리를 흔들었고,
꼬끼오가 고개를 내밀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조용히 감사한다.
참 고맙다.
내 곁에 이런 작은 생명들이 있고,
그 생명들을 함께 바라보며 웃어주는
손자가 있다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