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에 국제전화를 걸어 무엇 때문에 파리에 대기하라는 지 목적을 알아 보야야 할 터인데 호텔 전화비는 부담스럽고 늘 국제전화를 걸 때는 세심본사에서 했는데 세심에 귀국한다고 인사까지 하고 나온 마당이라 난감했다. 그러던 중 세심 시니어 매니저에게서 전화가 왔다. Mr. Ahn, 포철 외자부에서 ‘르 아브르(Le Havre)를 안내하라는 데 섭외를 해서 일정을 잡아야 하니 좀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그 시간이란 게 몇시간인지 며칠인지 되물었더니 하루가 될지 며칠이 될지 모른다고 했다. 날짜가 잡히면 연락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왜 르 아브로로 가라는 지 그 목적을 알아야 되어 비싼 국제전화도 쓸 겸 세심으로 갔다. 우선 시니어 매니저에게 ‘르 아브르가 어떤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이냐’고 물었더니 그는 웃으며 ‘르 아브르는 도시 이름이고 그곳에 항만(Habor)이 있다’라고 했다. 항만? 왜 토목을 전공한 것도 아닌데 왜 전기전공을 한 사람보고 항만을 가라는 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뒤셀돌프 소장의 말 대로 본사에 직접 알아보아야 할 처지였다. 체면 불구하고 세심의 전화기로 비서실에 전화를 걸었더니 회장님은 안 계시고 비서들은 자기들도 모른다는 거다. 단지 며칠 파리에 체류하면 세심이 안내할 것이다 라 고만 했다. 비서실도 어디를 가는지 몰랐다. 시니어 매니저는 르 아브로가 관청이라 섭외시간이 하루 이틀에 될지 모르겠다며 쥬몽에서 열심히 한걸 들었는지 그 사이 일 하느라 못 본 파리나 투어하라고 웃으며 말했다. 어디나 관은 어려운것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좀 더 르 아브르로 가는 목적을 알아야 해서 회장님과 통화하려고 회장님이 들어오시면 연락해달라고 비서실에 부탁을 해 놓고 세심의 조그마한 회의실에서 기다릴수 밖에 없었다. 세심 구내식당에서 중식을 하고 돌아와서도 한참을 기다려 전화가 왔다. 회장님과 연결되었다. '회장님, 저는 르 아브르가 항만이 있는 도시 란거는 알지만 토목전공도 아니고 전혀 선입감이 없는데가 제가 무얼 보아야 하는지?' 여쭈었더니 ‘선입감이 없는 게 보는 목적이야’ 라시며 ‘야, 안군, 유럽 가기가 그렇게 쉬워, 그러니 더 보고 시야를 넓히라고 그러는 거야, 토목 출신은 선입감이 있어 선입감이 전혀 없는 네가 보는 대로 보고 와서 솔직히 보고하면 돼’하며 끊으셨다. 항만을 보는 대로 봐라, 네 눈에 보이는 대로 보고 와서 보고하라는 것이다. 막연했다. 막연하기 보다 황당했다. 세심은 르 아브르 섭외가 이번 주는 안되니 주말을 지나고 보자고 했다. 파리에서 죽 치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로마투어나 갈까 싶었는데 비행기표가 문제였다. 아무리 오픈 티켓이라도 한곳에 두 번은 갈수 없어 파리-로마-파리 행 왕복항공권을 구입해야 했다. 그만한 여유는 없었다. 그러잖아도 시골 호텔에서 머물며 조금씩 저축한 걸로 4성급호텔에 겨우 머무르고 있었는데 더욱이 로마관광에 상당한 비용이 투입되어 이제는 출장비를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숙식비, 식사비, 교통비 중에서 축소할 곳은 숙박비 밖에 없었다. 가장 줄일 수 있는 게 호텔 비이지만 명색이 GM이라고 그들이 처음 소개했던 투스타호텔을 박차고 나왔는데 다시 그런 곳으로 찾아갈 수도 없었다. 한국인이 경영하는 스리 스타 한국호텔로 옮길까 생각했지만 이곳은 '르 서울(한식집)'의 사장이 특별 활인을 해서 얻은 방이라 금액차이가 별로 나지 않았다 차라리 쥬몽의 시골 호텔로 다시 옮기고 싶었지만 하루가 급하다고 공정을 재촉해 놓고 프랑스에 아직까지 머문다는 것도 쥬몽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이런 저런 궁리 끝에 그럴 바에는 세심에 대한 포스코의 체면도 세우고 생활비도 줄일 수 있는 방 법으로 세심에게 외출이나 관광중이라 연락이 닿지않으면 호텔 프론트에 메시지를 남겨 달라고 부탁하고 연락이 올 수 있는 월 화 수 목과 금 오전까지는 기존호텔을 쓰고 금요일 오후부터 주말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여행가방은 프론트에 맡겨 놓고 일요일 아침까지 투스타급 호텔에 투숙하고 월요일 일찍 기존호텔로 돌아오면 금,토,일 숙박비가 반으로 줄어 부족한 출장비를 메꿀수 있을 것으로 생각을 했다. 인근에 투 스타 호텔을 찾아서 거의 최소비품만 갖고 이동했다. 하지만 투 스타 급 호텔은 TV는 물론 에어컨도 없고 천정 팬 뿐이어서 너무 더워 방에서 기다리기기가 힘들었다. 대기실엔 TV도 에어컨도 있었지만 파리에 온 분들은 관광에 정신이 없어 혼자 에어컨과 TV를 켜고 대기실에 앉아있기도 민망했다. 가이드 북에 '파리 일주일분 관광 코스'를 너무 열심히 발 품을 팔아 소르본느(The Sorbonne) 대학까지 다 본 게 너무 성급하기도 했던 것 같았다. 이미 파리의 주요관광지는 전부 보아서 하루 종일 호텔에서 기다려야 할 바에는 차라리 외부로 나와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피곤하면 샹제리제 거리(Champs-Jerry street)의 관광객이 쉴 수 있도록 비치된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게 나을 것 같아 길거리로 나왔다. 가다가 생각하니 몽마르트(Montmartre) 언덕의 샤크레쾨르(Sacred Heart Cathedral) 성당 내부를 일본인 화가와 이야기하느라 제대로 못 본 게 생각이 나서 일본인도 만날 겸 몽마르트로 가서 사원 내부를 둘러보고 김밥으로 이른 저녁을 떼우려고 일본인 화가를 찾았다. 그는 여전히 끼니때가 되어서인지 김밥을 만드느라고 바빴고 일본 학생들이 모여들어 식탁이 모자라 길거리에 주저앉아 김밥을 먹고 있었다. 그러니 그와 이야기할 처지도 안되어 간단한 인사만 하고 돌아오는데 내 바지 포켓 속으로 손이 쑤욱 들어왔다. 하복이라 손이 들어온 걸 느끼고 본능적으로 손을 잡았는데도 손도 빼지 않고 빤히 바라보며 웃었다. 키가 내머리만큼 더 큰 남자였고 머리는 파마를 했는지 곱슬머리였는지 모르지만 옷도 추해 보였다. 주변엔 떼거리도 있었다. 파리시내에는 쓰리(소매치기)가 많다고 들었지만 달아나지 않고 웃으며 똑 바로 바라보니 더 겁이 났다. 겁이 덜컥 났다. 손을 뿌리치니 돈을 달라는 시늉으로 손을 내밀었다. 돈을 주면 계속 달라고 한다는 그런 주의사항을 가이드북에서 읽었기 때문에 가이드북 안내대로 무조건 사람이 많은 쪽으로 달아났다. 그들은 계속 따라왔다.
파리에서 무슨 일을 당할 때는 자기한테 오라던 루우불 박물관 앞 모리야 스시(壽司) 사장생각이 나서 그 방향 지하철을 탔더니 이들도 따라 탔다. 겁이 나서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옮겼더니 이들도 거리를 두고 바라보았다. 루우불 박물관 역에 내려 바로 스시 집으로 들어가 사장에게 이야기를 했다. 사장은 걱정하지 말라면서 집시 족들이라고 한다. 여기서 좀 기다리라고 하고는 어딘가 전화를 했다. 반시간이 지나서 멀리 나가지 말고 경찰이 주변에 있으니 또 따라붙으면 경찰이 그들을 막을 거라 했다. 스시 집을 나와 100여m 움직였더니 다시 이들이 모여 들었다. 나는 다시 스시 집으로 돌아가려는 데 골목에서 경찰이 나타나자 이들은 혼비백산 달아났다. 그 다음날 침대에 누워 오전까지 르 아브르 섭외소식이 오기를 기다렸으나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이럴 때가 기회다 싶어 베르사이유(Versailles)나 보자고 가이드 북만 믿고 표지판을 따라 베르사이유 행 열차에 혼자 올랐다. 베르사이유만 보면 파리관광은 거의 다 하는 것이다. 그때만 해도 프랑스에 거의 세달을 머문 덕택에 전차나 기차 타는 게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베르사이유 궁 입구에 들어서며 루이 14세의 기마상에 압도되면서 내부로 들어가자 그 화려함에 기가 질렸다. 부로봉 왕조의 루이 13세의 사냥용 별장을 루이 14세가 이렇게 아름다운 궁전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프랑스의 루이 14세가 태양왕이라고 하지만 이런 호화판에 살았다 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 거울의 방 천정벽화나 벽면장식이나 전쟁의 방, 평화의 방, 마지막 황후 앙투아네트 (Marie Antoinette)의 침실에서는 시민혁명으로 단두대에서 죽음을 맞이한 슬픈 사연까지 일어 이어폰으로 들으면서 이런 호화도 3대를 넘기지 못하고 시민혁명에 무너졌다 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특히 정원은 너무 넓어서 다 볼 수도 없었다. 옛 사냥터였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늦어 정원은 아폴로 분수만 바라보고 돌아왔다. 그 다음날은 주말이었다. 투스타 호텔에 누워 있으려니 곤혹스러웠다. 주말에는 어차피 세심도 휴일이어서 아침 10시쯤 샹그리제 거리 벤치에서 길거리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예쁜 동양아가씨가 영어로 길을 묻는데 어투가 한국식이어서 우리말로 한국인이냐고 물었더니 웃으며 그렇다고 했다. KAL승무원들이었다. 당시 KAL 한주에 2편이 들어와서 파리에 처음 온 스튜어디스들은 다음편을 기다리는 사이에 마음이 들떠서 사무장과 함께 파리를 구경하고 있었다. 한국사람을 만나 반갑다고 이것저것 물었다. 나도 벤치에 앉아있는 것보다 이들과 조인해서 함께 움직이는 게 좋을 것 같아 동행하겠다고 했더니 몹시 좋아했다. 이들도 이미 독립문과 엣펠 타워를 보고 와서 알렉산더 3세 브리지 부터 시작해서 콩코오드 광장과 오페라하우스, 루우부르 궁전까지 안내했더니 그들이 한식을 준비해 온 게 있어서 저녁을 대접하겠다고 해서 한끼 떼우려고 따라갔더니 바로 내가 묵고 있었던 4 스타 호텔이었다. 기장에게 인사도 드리고 사무장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스튜어디스들이 한상을 차려왔다. 거기에는 오랜만에 보는 김치도 된장도 있었고 고기국도 차려져 있었다. 호텔에는 별도 식탁이 없으니 응접탁자에 차려 놓고 기장이 ‘자 먹읍시다’ 하고 고기국을 한입 물더니 ‘스톱, 스톱’이라고 외치며 먹지말라는 시늉을 했다. 영문도 모르고 수저를 든 채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사무장이 조리한 스튜어디스들과 한참 이야기하더니 고기국을 전부 회수해갔다. 오랜만에 고기국을 먹고 싶었는데 왜 그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김치에 된장찌개까지 있어 맛있게 먹고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가 나왔다. 그 고기국은 수퍼에서 파는 개나 고양이의 동물용 사료 용이었다는 것이다. 처음 온 스튜어디스가 가격만 보고 마트에서 사와서 그렇다고 하마터면 동물사료를 음식으로 대접할 뻔했다며 사무장이 사과 겸 변명을 해서 한바탕 웃었다. 그날 나도 그들에게 한수를 배웠다. 스튜어디스들은 라면을 사서 소스만 갖고 다니며 스파게티 캔을 사서 물을 부어 덥히고 거기에 라면소스를 넣으면 라면보다 더 맛 있다는 것이다. 다음날은 일요일이었다. 차라리 이럴 바엔 돈이 좀 들더라도 로마나 다녀올 걸 하는 마음이 들었다. 투스타급 호텔에 묵는 기간은 꽤나 길게 느껴졌다. 에어컨도 실내욕실도 없고 공용욕실은 조석으로만 오픈해서 좀처럼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적으로 샹제리제 거리로 나와 파리 가이드 북을 들여다보다가 지나가는 사람들도 보다가 했다. 내가 일어 판 가이드북을 보아 그런지 갑자기 일본 남녀학생들이 와서 베르사이유궁에 가는 길을 물었다. 당시는 일본 대학생들이 여름방학때면 영국에서 한달간 영어 연수를 하고 돌아가는 길에 파리관광을 하던 때였다. ‘소우데수까 와다시모 이쇼니 이꼬우가, 와다시모 이끼다인데(그래요, 그럼 나도 함께 갈가요, 나도 가고 싶은데)’ 했더니 학생들이 좋아했다. 나도 한자리에 앉아있기가 너무 지루해서 어제 못본 베르사이유 정원도 보고싶어 다시 가기로 했다. 그들의 대표는 내 전차표와 베르사이유 궁 입장권까지 사 주었다. 궁내를 안내한 다음에 지난번에 못 본 정원이 보고 싶어서 일어 가이드 북에 있는 대로 정원을 대충 설명하면서 아폴로 분수까지 왔다. 젊은 친구들이라 시간을 보더니 전차시간까지 한시간 정도 여유가 있다며 십자로로 형성된 캐널 주변을 걸으며 이런 것 저런 것 다 보았다. 덕택에 나도 베르사이유 실외정원은 처음 보았다.
투어가 끝나고 저희 들끼리 쑥덕거리더니 돈을 가져왔다. 가이드 안내비로는 부족하지만 사례를 하고 싶다며, 그래서 가이드가 만족했는지 먼저 물었다. 자기 들로서는 충분히 만족했다고 한다. 돈을 받고 싶은 마음이야 간절했지만 학생들의 돈을 받을 수가 없었다. 난 프로 가이드가 아니고 시간이 남아서 서비스한 것이고 덕분에 나도 베르사이유를 한번 더 보게 되었다며 사양했다. 일본 학생들은 그들 특유의 고맙다는 인사로 허리를 몇 번이나 굽히며 인사를 하더니 일본 어느 지방 사람이냐고 물었다. ‘나는 일본사람이 아니고 한국인이다’ 라고 했더니 ‘소우데수네 고토바가 오까시갓다네(말이 좀 이상했다)’라고 말하며 관사이벤(일본 관서지방 사투리)이 섞였는데 어느때는 아니라 서 이상하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일본어를 배울때 나고야 주변에서 몇 개월 생활한 적이 있다고 말하며 나도 파리에 주재하면서 일본인들의 도움을 받았다며 다음에 한국사람들을 만나면 도와주라고 했더니 서로 웃으며 일본을 오면 꼭 연락하라고 전화번호까지 주면서 동양사람끼리 서로 도우며 살자고 이야기하며 헤어졌다. 월요일 아침 일찍 포스타 호텔로 가서 프론트에 메시지를 찾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체크인 시간까지 호텔 로비에서 방이 날 때까지 기다렸다. 한주이상 있었다고 청소가 끝난방이 나오자 바로 체크인을 해 주었다. 예상외로 르 아브르 일정은 쉽게 잡혀 지지 않았다. 그 쪽에서 거부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며칠을 더 기 기다리라는 거다. 하지만 GM이라는 대우를 받았으니 어디로 갈수도 없고 호텔 룸에서 며칠을 더 기다려야 했다. 그날은 호텔 바로 앞에 있는 엣펠탑 사진을 찍으려고 마르스광장(Champ de Mars)에서 엣펠탑 전체가 들어가도록 삼각대를 세워놓고 사진을 찍었다. 갑자기 두 남자가 삼각대 앞으로 모여 들었다. 동시에 경찰도 달려들어 삼각대를 잡더니 파리에서는 위험하니 삼각대 촬영은 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파리가 그렇게 위험하냐고 물었더니 파리지앤(Parisien, 파리사람)은 다 휴가 가고 휴가철엔 각지의 집시들이 모여들어 삼각대 촬영을 하면 카메라체로 날라간다고 손짓을 하며 설명했다. 그럼 로마는 어떠냐고 했더니 로마는 더 심할 것이라고 했다. 고맙다고 인사하고 루우불 박물관 내부 전시품을 보고싶어 가는데 마르스 광장에서 삼각대 쪽으로 다가온 남자 2사람이 여자 한사람과 계속 따라왔다. 두려움이 생겨 박물관 광장 경찰에게 신고했다 경찰이 그들을 불러서 한참이야기 하더니 자기들 카메라와 삼각대를 바꾸자고 제의한다는 것이다. 불가리아 사람인데 불가리아에는 카메라는 있어도 삼각대는 없다는 것이다. 자기들 셋이 사진을 찍으려면 꼭 필요하다며 카메라를 내밀었다. 프랑스에서 살수 있다고 했더니 일제만 못하다며 필요하면 돈으로 사겠다며 값을 물으며 간절히 요청했다. 파리고 로마고 삼각대로 사진 찍으면 카메라체 날라간다는 경찰의 주의도 받아서인지 그렇게 생각하니 삼각대가 필요 없을것 같다. 오랫동안 사용해서 낡은 걸 팔지니 그렇고 아예 그냥 가지라고 주었다. 그랬더니 불가리아의 주소와 이름을 적어주며 불가리아에 오면 꼭 연락을 달라며 불가리아 동전을 주었다. 나도 한국 동전을 주었지만 불가리아는 당시 공산국가라서 갈수도 없는 나라였다. 미련없이 주고는 바로 루우불 박물관 내부를 관람했다.
교과서에서만 보든 미라를 비롯하여 이집트 유물이 많았다. 대부분 나포레옹 때 가져온 것이라 설명되어 있었다. 꼬레박물관에서 한사군 유물을 보았을때 처럼 다시 한번 약소국의 서러움을 느꼈다. 관람코스대로 다니다 보니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그 유명한 모나리자 상이었다. 갑자기 사진을 찍고 싶은 생각이 나서 그림 아래에 Photography prohibited(촬영금지)라고 영문으로 쓰여 있는데 기회를 보다가 사람이 적을 때 후래쉬 없이 찍었다. 들키면 일본에서 대만인에게 들은 것처럼 글자를 모르는 척하며 피할 생각이었다. 일본 나라에서 금당벽화를 찍는데 성공한적이 있었다. 그러나 필름을 현상을해보니 모나리자 상은 검게 나왔다. 몰래 찍어도 사진이 나오지 않도록 어떤 장치가 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호텔로 돌아오니 메세지가 있었다. 수요일에 섭외가 되어 아침 일찍 세일스매니저가 픽업해서 출발해서 르 아브르(Le Havre)와 됭케르크(Dunkerque, 영명으로 Dunkirk, 던커크)를 1N2D로 간다고 했다. 르 아브르는 항만 도시지 만 됭케르크는 또 무엇인지? 세심에 물어보기도 창피했다. 그러니 또 하루가 남았지만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웠다가 앉았다가 하면서 항만에 가서 무얼 보아야 할지만 생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