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미국 보스턴의 보스턴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75회 미국당뇨학회 연례회의에서 한미약품이 월 1회 투여하는 당뇨 신약 '에페글레나타이드'(Efpeglenatide)의 임상시험 중간 결과를 공개했다. 후기2상에 참여한 당뇨 환자 209명중 86명에 대한 중간분석결과로 체중 감소 효과와 혈당 감소 효과가 모두 입증됐다고 한미약품은 밝혔다.
신약 하나 개발하는데 1100억원 들어
신약 하나를 개발하는 데는 얼마의 시간과 비용이 필요할까?
미국에서 신약 개발사업에 관여했던 한 대학교수는 “평균 개발기간 10~15년, 개당 평균 비용이 1억 달러(1100억원) 가량 든다”고 했다. 이 교수는 익명을 전제로 “성공확률은 1/1만5000에 불과하기 때문에, 국내 기업은 감히 도전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했다.
우리나라에 있는 제약사 전체의 연간 총매출액은 다 합쳐서 13조원 규모. 그런데 ‘화이자’ 한 곳의 연매출은 이 4배에 달하는 연 50조원 규모다. 글로벌 제약사 한 곳의 매출액이 우리나라 제약사 전체 매출을 다 합친 것 보다 4배 가까이 많은 것이다. ‘2015 제약산업연구개발백서’에 따르면 지금까지 국내에서 시도한 신약은 총 27종. 평균 개발기간은 개당 9.1년으로, 여기에 총 360억원 정도가 투자됐다. 외국에서 신약 하나에 투자하는 금액 1억달러의 1/3 수준에 불과하다. 이중에서 정부가 지원한 금액은 4.7%. 나머지 340억원이 넘는 돈은 모두 민간에서 부담했다.
신약 개발에서 필수적인 것이 임상시험(Clinical Trial)이다. 임상은 임상 직전 단계인 전(前)임상, 1상, 2상, 3상의 4단계로 나뉜다. ‘전임상’까지 가는데 통상 3~6년, 이후 1상~3상까지 가는 데엔 통상 6~7년이 걸린다. 시판이 이뤄지고 난 이후의 적응증을 추가적으로 관찰하는 ‘4상’도 있다. 여기까지 가려면 일반적으로 6개월~2년이 더 걸린다.
그러니까 신약 하나를 개발하는 데엔 약 10년~15년이 걸리는 셈이다. 이렇게 공들여 개발했다 해서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다. 일반적으로 신약 개발의 성공확률은 1/1만5000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쓸만한’ 1상 사들이는 신약시장 형성
신약 성공확률이 워낙 낮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에선 1상에 통과한 ‘쓸만한’ 신약을 사고 파는 신약시장이 형성돼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9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신종플루 치료제 ‘타미플루’다. 신종플루의 공식 명칭은 ‘신종 인플루엔자 A, H1N1’. 2009년 발생한 이 새로운 인플루엔자는 2010년 1월 기준 1만4142명의 목숨을 앗아가며 전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길리어드(Gilead)사가 개발한 '타미플루'.
신종플루 백신인 ‘타미플루’는 길리어드(Gilead)라는 회사가 1999년 개발했다. 당시 길리어드는 타미플루의 ‘임상 1상’에만 성공한 상태였다. 길리어드는 이 기술을 로슈(Roche)라는 회사로 넘겼다. 그 대가로 길리어드는 로열티로만 연간 4500억원을 로슈로부터 받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타미플루를 통해 로슈가 거둔 수익 규모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연 4500억원의 로열티를 주고도 충분히 남을 만큼의 수익을 거뒀다는 점만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타미플루는 현재 신종플루 치료제 시장의 90%를 장악하고 았다. 나머지 10%는 영국의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의 ‘리렌자’가 차지하고 있다.
당시 로슈와 타미플루 생산 파트너십을 맺은 제약사 중 하나가, 이번에 한미약품이 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한 프랑스 제약사 사노피 아벤티스(Sanofi-Aventis)다. 사노피는 백신 판매로만 한 해에 6조원의 수익을 거두는 초대형 글로벌 제약사다.
위험한 아르바이트 ‘임상 알바’
임상시험의 첫 단계인 ‘1상’은 사람에게 안전한가의 여부를 따지는 단계다. 1상은 통상 ‘암’에 관한 것과, 암이 아닌 다른 병에 관한 것의 2가지로 나뉜다. 암에 대한 임상시험에는 이것저것 다 해보고 포기한 말기 환자들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응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암 이외의 병에 대한 임상시험은 건강한 사람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실제 사람의 몸에 처음 투여하는 단계로, 이 약이 어떤 결과를 낳게 될지는 이 과정에서 알 수 없다.
photo=마더세이프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참가자는 100% 자원자로 충당된다. 소위 말하는 ‘임상 알바’가 여기서 존재하게 된다. 일본의 경우엔 1회에 70만원, 미국의 경우엔 1000~3000달러를 지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위험한 아르바이트를 국내 일부에선 ‘꿀알바’로 부르고 있다.
다음 단계인 ‘임상 2상’은 이 약 또는 백신이 사람에게 효능이 있는가 하는 점을 살피는 단계다. ‘3상’은 기존의 표준치료와 비교해 새로운 방식이 더 효능이 있는지를 따지는 단계. 4상은 시판 이후의 추적조사를 통해 장기적 효능을 살피는 단계를 말한다.
전통의학은 인류가 사용하면서 이미 검증… 임상 대상서 제외
여기서 예외가 되는 것이 한약과 같은 전통의약이다. 이들 약재는 이미 수천년 동안 사람들이 복용하면서 자연스럽게 ‘임상시험’을 거친 것들이다. 따라서 유해성에 대한 검증이 사실상 이미 끝난 것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임상시험은 ‘새롭게 만들어진 화학적 약물’을 대상으로 국한한다. 다시 말해 오랜 세월동안 인류가 약용으로 사용해온 허브나, 사향, 산삼 같은 생약은 임상시험의 대상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약에 대해 “임상시험을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법”이라 주장하는 것은 법리적 궤변이 된다.
‘화학적으로’ 새롭게 개발한 신약을 시판하려면 통상 2상 이상의 임상시험을 거쳐야 한다. 따라서 한미약품이 사노피와 수출 계약을 맺었다고 밝힌 ‘퀀텀 프로젝트’ 중에서 시판이 가능한 것은 현재로선 없다.
임상시험 결과는 해당 국가의 식품의약품안전 담당기구에 제출, 해당 기구가 승인 여부를 심사하게 된다. 그런데 임상시험의 계획과 세부 내용은 대부분 ‘기업 비밀’로 취급돼 해당 기구와 관련 제약회사만 갖고 있다. 따라서 외부에서는 어떤 신약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기 어렵다.
임상시험은 ‘새로 만든 화학적 약물’ 만이 대상
미국 정부가 ‘임상시험(clinicaltrials.gov)’이란 정부 사이트를 통해 관련 결과를 공개하긴 하지만 세부 내용은 밝히지 않고 있다. 예를들어 이번에 한미약품이 수출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힌 ‘GLP-1 에페글레나타이드’를 검색해 보면 “결과가 없다(no studies)”고 나온다. ‘GLP-1’에 대한 당뇨병 임상 결과는 일부 나와 있지만 이는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있는 그라스 의과대학(Medical University of Graz)가 후원한 것으로, 한미약품이 개발한 ‘GLP-1 에페글레나타이드’와는 다른 것으로 보인다.
신약 임상시험을 주관하는 의사들은 통상 월급의 3~4배에 달하는 금액을 1건당 연구비로 받는다. 관련 의료진의 인력 풀이 넓지 않기 때문에 한 사람이 여러 건의 임상시험을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연구비를 후원하는 곳은 거대 제약사들이다. 임상시험을 둘러싼 여러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미국에선 지난 6월 3명의 의사들이 변사체로 발견되고 2명의 의사가 행방불명됐다. 모두 전통요법을 주장하며 신약과 임상시험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가졌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많이 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