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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 14일 수요일
성동구청 신우회 예배 설교
시리즈 주제: 하나님의 경륜 12
제목: 구름(Clouds)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다니엘 7:13~14
설교 목적
데살로니가전서 4장에 나오는 사도 바울의 글에서 우리는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한다는 이야기를 읽는다. 이것은 휴거를 의미한다고 알려졌는데 나는 이번 설교에서 이에 대하여 비판하고자 한다. 사도 바울이 그 서신에서 말하고자 한 의도가 무엇이었을까? 나는 그의 설명과 표현이 다니엘서 7장의 내용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구름에 대한 성경의 용법을 잘 나타낸다. 그렇게 보면 구름이라는 평범한 단어가 성경 안에서 사용되는 방식은 성경 밖에서 사용되는 것과 매우 다르다는 것이 드러난다. 이를 통해 나는 성경적인 세계관으로 세상과 미래를 생각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그것은 오늘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사고하고 꿈꾸는 방식이 비그리스도인과 어떤 점에서 다른지를 잘 나타낸다. 이를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좀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설교 개요
1. 그리스 작가 아리스토파네스
2. 성경에서 구름의 이미지
3.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
1. 그리스 작가 아리스토파네스
성동구청 기독신우회 여러분, 무더운 여름날씨에 노고가 많으십니다. 여러분들이 구정의 업무를 수행하실 때, 주님의 돌보심을 힘입어 몸 성히 맘 편히 선한 뜻 펼치시기를 빕니다.
여러분은 드라마를 좋아하십니까? 제가 본 드라마 중에 기억에 남은 작품들을 찾아보다가 문득 작가가 어떤 분들인지 궁금해서 정리해 보았습니다. 우리나라 드라마 작가 중에 가장 널리 알려진 분은 김수현 작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분은 올해 81세로서 많은 작품을 썼는데 제가 본 작품은 ‘사랑이 뭐 길래’입니다.
‘사랑의 불시착’과 ‘별에서 온 그대’를 쓴 작가는 박지은 작가입니다. 웹툰 DP를 쓴 김은희 작가도 있고요, 현재 가장 인기 있는 드라마는 ‘미녀와 순정남’입니다. 그 작품을 쓴 이는 김사경 작가입니다. 김사경 작가가 쓴 작품 중에 제가 본 작품은 ‘하나뿐인 내편’과 ‘신사와 아가씨’입니다. 최근에 TvN에서 방영 중인 ‘감사합니다’는 남성인 최민호 작가의 작품입니다.
이 드라마 작가들은 우리시대의 삶에 대하여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 드라마를 보면서 우리는 웃기도 하고 감동을 받기도 합니다. 드라마는 우리 자신을 보여주는 거울과 같습니다.
그런데 약 2,500년 전에도 드라마가 인기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놀랍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인기드라마를 공연하고 최우수 작품을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고대 그리스에도 인기 작가들이 있었습니다. 그 드라마들은 슬픈 내용도 있고 즐거운 내용도 있습니다. 슬픈 내용을 다룬 비극 작가 3인방은 아이스퀼로스(bc 523~456), 소포클레스(bc 496~406), 그리고 에우리피데스(bc 484~406)입니다. 희극작가의 대표는 아리스토파네스(bc 448~380)입니다.
제가 공과대학생으로서 고대 희랍어를 배울 때 그리스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아리스토파네스는 소크라테스와 같은 시대의 사람입니다. 그는 소크라테스를 자기 작품에 등장시켜서 풍자하는 작품을 써서 공연했습니다. 그의 작품 중에 구름이 있는데 거기에서 소크라테스가 등장합니다. 극중에서 소크라테스는 진실한 철학자가 아니라 교묘한 말로 재판에서 이기는 법을 가르치는 강사로 등장합니다.
연극 구름에서 어떤 사람이 소크라테스에게 아들을 맡겨 재판에서 이기는 기술을 배우게 했습니다. 그런데 학원에서 돌아온 아들이 아버지에게 대들고 나중에는 손찌검까지 합니다. 그런데 그 아들의 이야기가 가관입니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말합니다. 어린 시절에 자신을 왜 때리셨느냐고. 아버지는 아들에게 사랑해서 그랬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아들은 아버지에게 말합니다. 노인들은 아이가 되는데 노인이 되어서 실수하면 맞아야 한다고. 자신도 아버지를 사랑하기 때문에 때렸노라고.
아리스토파네스는 이 연극 구름에서 소크라테스를 괴상한 사람으로 그립니다.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bc 428~348)은 많은 책으로 자기 스승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소개합니다. 하지만 아리스토파네스의 연극에서 소크라테스라는 인물은 사람들에게 가르치기 전에 구름의 여신에게 지혜를 구합니다. 결국 사람들을 망치는 그 지혜와 기술은 구름의 신들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이 연극을 통해서 작가 아리스토파네스는 구름처럼 허망한 지혜로 아테네를 망치는 소피스트들을 비판한 것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오늘날 우리도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이 정치계에서 어떻게 국민에게 해를 끼치는 일을 하는지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설교에서 저는 구름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스 작가 아리스토파네스는 구름을 허망한 지혜를 인간에게 주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말에도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말에도 역시 구름은 구체적이지 않고 비현실적인 것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구름이 어떤 의미로 사용될까요?
2. 성경에서 구름의 이미지
성경에서는 구름이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나타나실 때는 구름 가운데서 등장하십니다. 성경 말씀 몇 구절을 소개하겠습니다: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매
그들이 광야를 바라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구름 속에 나타나더라
출애굽기 16:10
셋째 날 아침에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리니 진중에 있는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출애굽기 19:16
여호와의 영광이 시내 산 위에 머무르고
구름이 엿새 동안 산을 가리더니
일곱째 날에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시니라
출애굽기 24:26
모세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산 위에 올랐으며
모세가 사십 일 사십 야를 산에 있으니라
출애굽기 24:18
예수님도 기도하러 산으로 올라가셨다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셨습니다. 그 장면을 본 제자들은 놀랐습니다. 그 대목을 마태는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마태복음 17:1, 5
이처럼 성경에서 구름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며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나타나실 때 등장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하늘 구름을 타고 온다는 말은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신다는 의미와 같습니다. 특별히 다니엘서를 보면 하늘 구름을 타고 하나님 앞으로 가서 권세를 받는 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다니엘 7:13~14
여기서 우리는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인자 같은 사람을 봅니다. 그가 하늘 구름을 타고 온다는 말은 비유적입니다. 손오공처럼 도술을 부린다는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성경이 하늘 구름을 말할 때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나 하나님의 처소 또는 하나님의 영광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하늘 구름을 타고 온다는 말은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간다는 의미가 될 것입니다.
실제로 위 본문에서 인자 같은 분은 하나님 앞으로 인도되어서 권세와 영광과 나라들을 받습니다. 우리가 주기도문의 말미에서 고백하는 바로 그것입니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다니엘서는 이 세상을 다스리는 왕들을 짐승으로 묘사합니다. 그 이유는 아마 하나님의 뜻을 따라 정의와 자비, 그리고 겸손으로 세상을 통치하는 대신에 불법과 폭력과 교만으로 세상을 다스리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통치자들이 지배하는 세상은 언제나 정의롭고 진실한 사람들이 박해를 받습니다.
다니엘서는 혼란스러운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이 세우실 지도자가 일어날 것을 소개합니다. 그분은 짐승처럼 무자비한 통치자들과는 달리 인자 같은 분입니다. 인자는 사람의 얼굴을 한 존재를 말합니다. 인간미가 넘치고 따뜻한 마음과 진실한 태도를 가진 인자 같은 분은 사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을 가리킵니다. 다니엘서에서 예언자는 성도들에게 하늘 구름 가운데 계신 하나님이 언젠가 진정한 통치자를 보내실 것이라고 희망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리스인들은 혼탁한 세태를 풍자하기 위해서 하늘의 구름을 의인화하여 작품을 만들어 공연했습니다. 그들은 오늘날의 드라마 작가들처럼 달콤한 이야기와 살벌한 이야기를 통해서 사회의 세태를 풍자하거나 공감을 이끌어냅니다. 이것은 오늘날 모든 문학과 예술에서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방식입니다. 저명한 영화제에 출품된 수많은 작품들을 통하여 작가들은 우리 인류에게 뭔가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런데 성경의 메시지는 이 모든 것들과는 다른 독특한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늘 구름 가운데 계시는 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분은 산 위의 빽빽한 구름 가운데 계시며 자기 백성에게 나타나실 때는 우레와 번개와 나팔소리가 길잡이가 됩니다. 그분은 구름 가운데서 구름 속으로 사람을 부르셔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모세를 구름 속으로 부르셨고 예수님도 변화산 구름 속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위대한 일을 맡기셨습니다.
그리스 철학을 헬라철학이라고도 부릅니다. 그것은 인간중심의 사유체계입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성경에는 하나님 중심의 사유체계가 있습니다. 이 두 방식을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아리스토파네스의 풍자 작품 ‘구름’과 하늘 구름 가운데 계시고 사람들과 소통하시는 하나님의 이야기를 통해 비교하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이성과 계시라는 말로 단순화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둘은 인간이 사는 어느 곳에나 필수적입니다.
이제 오늘 설교에서 정말로 하고 싶었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설교 제목은 ‘구름’이지만, 그 구름이 나오는 성경본문 하나를 설명하고자 이렇게 먼 길을 돌아서 여기에 왔습니다.
3.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지난 주에는 존 레논의 노래 이매진(imagine)을 감상하면서 신앙의 본질과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이야기를 통해서 제가 말씀드리고 싶었던 것은 하나님의 의도는 우리를 저 하늘로 불러서 우리를 이 땅에서 건져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서 펼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의도를 오해했으므로 성경을 오해한 성경 본문이 있습니다. 그 본문에는 구름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것이 데살로니가전서 4장입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데살로니가전서 4:16~17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나타나실 때 성경이 어떤 표현을 했는가를 보면, 이 본문에서 말하는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은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과 나팔소리를 생각나게 합니다(출애굽기 19:16). 그리고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진 사람들의 이야기는 모세와 예수님이 산에 올라가 구름 속에서 하나님을 만난 이야기를 생각나게 합니다. 그분들이 구름 속에서 하나님을 만난 후에 어떻게 했습니까? 그분들은 땅으로 내려와 백성을 인도했습니다.
사람들이 오랫동안 이 본문을 ‘휴거’(rapture)로 이해했습니다. 휴거는 하나님이 신실한 사람들을 이 땅에서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잔치를 벌이고 영원한 나라로 데려간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것을 간절히 바랐기에 1992년 휴거 소동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성경을 심각하게 왜곡한 과오였습니다.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인자 같은 분을 하늘 구름 속으로 인도하여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주지 않습니까? 그것으로 이 땅을 새롭게 다스리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짐승처럼 통치하는 세력들을 다 꺾으신 후에 하나님은 인자 같은 분에게 이 세상을 맡기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그 인자처럼 하나님께 신실한 성도들에게 대한 약속도 다니엘서에는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본즉 이 뿔이 성도들과 더불어 싸워 그들에게 이겼더니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와서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을 위하여 원한을 풀어 주셨고 때가 이르매 성도들이 나라를 얻었더라
다니엘 7:21~22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나라들의 위세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거룩한 백성에게 붙인 바 되리니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라 모든 권세 있는 자들이 다 그를 섬기며 복종하리라
다니엘 7:27
성도들이 나라를 얻었다고 다니엘서는 기록합니다. 성도들의 원한은 풀립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옳음을 판결해 주셨고 그들을 높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인자 같은 분과 마찬가지로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나라들의 위세를 받아 통치를 시작합니다. 그것이 다니엘서에 그려진 성도들을 위한 하나님의 경륜 곧 마스터플랜 (masterplan)입니다.
이런 희망을 가진 사람들은 어서 빨리 이 세상을 떠나 저 위 세상으로 올라갈 생각을 하겠습니까, 아니면 주님이 어서 오셔서 우리가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져 하나님이 주시는 권세와 나라들에 대한 통치권을 받아 만국을 새롭게 할 기대를 하겠습니까? 그런 기대를 가진 성도들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기대와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 기대와 확신은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처럼 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늘의 구름을 허망한 지혜를 가르치는 신들의 이야기로 사용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늘의 구름을 장차 이 땅에서 떠나 올라갈 천상의 관문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늘의 구름을 만국의 통치자이신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 하늘 구름 속에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계시하시고 만국을 다스릴 권세와 지혜와 영광을 주십니다. 그런 기대와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오늘 여기서 이미 새로운 통치를 시작합니다. 그 통치는 짐승을 대적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아들들로 사는 통치입니다.
과거와 달리 오늘날 우리는 구름 속을 지나 구름 위를 다닐 수 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아갈 때 우리는 구름이 어떻게 생겼는지 내려다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오늘 하늘 구름 위에 계시고 만국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뵙고 그분의 지혜와 권세를 힘입을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날 고통으로 신음하는 세상은 그런 사람들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끝>.
관련 설교 영상:
휴거보다 더 중요한 것
https://youtu.be/BTrcXtOBAKY?si=sRA6ynbbaPxdEART
아리스토파네스의 구름 해설
https://youtu.be/HQq0dODzgus?si=cwVjVwC3A0r-bDx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