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노파(雪老婆) 곡성(哭聲)
아이고~ 아이고~
마조도일(馬祖道一) 선사(禪師)의 속가(俗家) 친척(親戚) 중에 장거사(張居士)가 있었는데, 거사가 애지중지(愛之重之)하는 딸이 있었다. 이름은 설(雪)이다. 설(雪)은 미령의 나이에도 아주 열심히 관음상(觀音像)을 모셔놓고 집에서 매일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보문품(普門品)을 하루도 빼먹지 않고 지극 정성(至極精誠)을 들여 독경(讀經)도 하고 참선(參禪)도 하였다. 출가는 아니 했지만, 절에 스님들보다도 더 신심이 있게 수행정진(修行精進)을, 하였다. 또 발원(發願)하기를 이상적(理想的)인 남편(男便)을 만나 가정을 꾸려서 자녀들도 많이 두어서 행복한 삶이 되도록 부처님 보살님들께서 돌봐 주소서! 하고 매일 기도도 드렸다. 집안 살림할 때도 항상 일념으로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염송(念誦)하였다. 장거사 가족들도 그런 딸을 더욱 예뻐하고 애지중지했다. 그런데 그렇게 신심이 돈독하던 딸 설(雪)이 어느 날 시냇가에서 빨래를, 하다가 깊은 산골에서 울려 퍼지는 저녁 종소리를 듣고 미증유(未曾有) 오감(悟感)을 느끼고 나서는 딴, 사람이 되어버렸다. 매일 지극정성으로 부르던 관세음보살도 부르지도 않고 그냥 방안에 멍하니 앉아만 있었다. 문틈으로 딸의 동태를 살피던 장거사가 문을 열고 딸이 앉아있는 방으로 들어와서 보니, 그동안 모셔놓았던 관세음보살상 탱화도 불경도 방석으로 깔고 앉아있는 것을, 보고 거사가 깜짝 놀라서 노발대발(怒發大發) 그런 딸을 나무라고 꾸짖었다. 너! 그것이 무슨 짓이냐? 이렇게 소중한 경전(經典)을 깔고 앉아 방석으로 앉은 다는 것이, 할 짓이냐? 이 못 된 것! 같은 것! 가진 말로 꾸짖고 나무라는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딸 설이가 피식 웃으면서 거사를 향해서 말을 했다. 아버지! 소중한 것이 경전에 있습니까? 만약 경전에 있다면 무엇이 그리 소중합니까? 하고 맹랑한 말로 질문(質問)을 하였다. 거사가 불법(佛法)이 소중하지, 않느냐? 설이 또 따져 묻는다. 그럼 불법이 종이나 문자에 있습니까? 부녀간 문답이 갈수록 탱탱하게 긴장감이 돈다. 그럼! 너는 불법이 어디에 있느냐? 아버지는 모르십니다. 마조선사(馬祖禪師)께 가셔서 물어보세요.
장거사는 뷰랴! 뷰랴! 마조선사를 찾아가서 자초지종(自初至終)의 말을 말씀드리고 혹시! 딸 설(雪) 이가 미친 것이 아닙니까? 묵묵히 장거사 말을 듣고 마조대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미치다니? 전혀 미치지 않았소! 미친 것은 애비 인 장거사요. 제가 미치다니요? 선사님? 딸애가 미치지 않았습니까? 불경과 보살상을 방석으로 깔고 앉았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입니까? 거사는 걱정할 것 없소!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하면 될 것이요. 하고, 마조선사께서 게송(偈頌) 하나를 지어주고 딸 방에 붙여 두라고 했다. 장거사가 집으로 돌아와서 딸 설이 방에 게송을 붙여두었다. 방에 앉아있던 설이 벽에 붙어있는 게송을 보았다. 게송 글귀는 밤 삼경 나무 닭 우는 소리를 들으니, 내 마음 내 고향 분명하구나! 나의, 집 앞마당에 들어서니, 버들은 푸르고 꽃은 붉도다. 선사의 게송을 읽고 난 설이 평하기를 도인(道)도 다 그렇구나! 혼자서 고개를 끄덕, 끄덕, 하더니, 마지막 게송구(偈頌句)를 읽고 또 읽고 하였다. 버들은 푸르고 꽃은 붉도다. 는 수긍(首肯)이, 안되는 향상구(向上句)라 보고 또 본다. 부처님 경전도 보살상도 깔고 앉았을 때는 살불살조(殺佛殺祖)의 경지(境地)였는데, 죽일 줄만 알았지, 봉불(逢佛) 활불(活佛)하고 봉조활조(逢祖活祖)하는 묘용(妙用)을 쓸 줄 몰랐으니, 의심(疑心)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장거사 딸 설(雪) 이는 그날로 음식과 자는 것을, 완전히 철폐하고 용맹정진(勇猛精進)에 들어갔다. 죽기 살기로 화두삼매에 몰입한지 일주일(一週日) 만에 타성일편(打成一片) 의단(疑團)이 타파(打破)되어서 마조선사(馬祖禪師)를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다. 때마침 마조선사님 조실방에 호암(湖巖) 선사(禪師)가 와계셨다. 아~ 이 소녀(少女)가 공부 정진 잘한다는 장거사 딸이군요? 그렇다면 내가 이번에, 한번 점검(點檢)을 해 보겠습니다. 설(雪)아! 경에 이르기를 겨자씨 안에 수미산(須彌山)이 들어가고 수미산 속에서 큰 돌을 쪼갠다고 하였으니, 이것이 무슨 도리인고?
설이 말을 듣자마자 찻잔을 집어서 마루 기둥에 획! 하고 던져 버렸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마조선사가 옳지! 옳지! 공부를 많이 하였구나! 이번에는 내가 한번 물어보자. 고인(古人)의 인연(因緣)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일러보아라! 네! 무슨 말씀인지 한번 더 말씀하여 주십시오. 마조선사께서 다시 그대로 묻자 설이는 미소를 머금고 합장하면서 고개를 숙이고 큰 스님! 수고하셨습니다. 이와같이 감사를 드립니다. 마조선사께서 무릎을 탁, 치면서 앗차! 내가 너에게 속았구나! 하고 흡족한 얼굴로 인가를 했다. 이런 설 이도 한 가정을 꾸려서 행복하게 잘 살았는데, 나이가, 먹자 백발이 성성한 노파(老婆)가 되었다. 그런데 사랑하던 손녀딸이 어린 나이에 죽게 되었다. 노파는 손녀딸 시신 앞에서 대성통곡(大聲痛哭)을 하고 울었다. 동내 할머니들이 말했다. 여보시오! 설이 할멈! 당신은 소녀 때부터 도를 통해서 마조선사로부터 인정을 받은 분이 어찌 그리도 슬프게 통곡을 하오? 이말 듣고 노파(老婆)가 통곡을 뚝 그치고 이 어리석은 친구들아! 이 이상 더 잘하는 시달림 설법이 어디 또 있겠는가? 이 할미의 통곡하는 눈물이 이 애에게는 향화반식(香華飯食)임을 어찌 모르나? 고승(高僧) 선지식(善知識) 법문(法門)보다 내 통곡(痛哭) 소리가 공덕(功德)이 큼을 어찌들 모르시나? 했다는 선화(禪話)다. 아이고! 대고! 통곡(痛哭) 소리가 손녀딸 애도(哀悼) 천도(薦度) 법문(法門)이라는 설노파(雪老婆)의 고준(高峻)한 법문(法門) 선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