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심도 지하(도로)는 누구의 것일까?
기존 지하 공간은 이미 전력, 통신, 상하수도, 교통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기존 지하 공간은 일부 지하철 노선, 폐기물처리장 같은 특수시설 등을 제외하고 40m 깊이 이내에서 활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공사를 하고 있는 서부간선도로, 제물포길, 동부간선도로 지하화 사업은 모두 대심도(지하 40m 이상 깊이)에 설치되는 도로입니다. 서울에 더 많은 사람이 모일수록, 지표공간이 한정된 상황이기에 더 깊이, 더 넓게 지하 공간을 개발하려는 사회적 압력이 증가할 것입니다.
여기서 문득 단순한 궁금증이 생깁니다. 지하 공간도 주인이 따로 있을까요? 네, 따로 있습니다. 활용하고자 하는 지하공간에 수직 대응하는 지표공간의 토지주가 바로 주인입니다. 다른 말로하면 지표상의 토지주는 지하공간의 주인이기도 하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지하 공간을 개발할 때는 지상의 토지주에게 법에서 정한 기준에 따라 보상을 합니다.
지하 공간에 대한 통합적인 법이 따로 있지 않고 지하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따라 적용되는 법이 다릅니다. 하지만 도시에 적용될 수 있는 토지보상법이나 도시철도법에 비춰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토지 용도와 이용하는 지하공간의 깊이에 따라 보상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토지의 지하 및 공중공간 등에 대한 보상기준에 관한 연구」 8쪽
토지소유자가 이용하지 않고, 지하시설물로 인해 토지주의 토지이용에 지장이 없는 것으로 판단하는 깊이가 한계심도입니다. 그림에서 보듯이 고층시가지의 경우엔 40m, 저층시가지 및 주택지의 경우엔 30m, 농지 및 임야의 경우엔 20m 깊이 까지를 한계심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각각의 한계심도 내에서는 보상해야할 공간(지상과 지하) 면적에서 법에 따라 산정된 지표 토지의 적정가격을 기준해서 지상의 건물, 지하, 기타 이용에 저해를 끼치는 정도(입체적이용저해율)를 산정한 비율만큼을 보상 하게 됩니다(보상비 = 구분지상권 설정면적×토지의 단위면적당 적정가격×입체이용 저해율). 하지만 한계심도 깊이 이상의 범위에서는 그림에서처럼 한계심도 초과범위에 따라 법에 따른 적정가격의 1%이하로 보상을 하게 됩니다.
▸ 「토지의 지하 및 공중공간 등에 대한 보상기준에 관한 연구」 8쪽
기술발전으로 한계심도가 더 깊어질 수도 있지만, 현재시점에서 지하 40m 깊이 이상은 개인이 개발하기는 어렵습니다. 만약 한계심도를 초과하는 대심도 지하를 개발하게 된다면 현재로선 도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도시 시설이 들어서게 될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그렇기에 현재의 공적 활용을 위해 어느 깊이까지 얼마큼 보상을 개인에게 해야 할지는 늘 쟁점의 대상입니다.
일본의 경우엔 2000년 5월 대심도지하의 공공적 사용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제정해 대심도 지하공간에 공공사업을 실시하는 경우 원칙적으로 토지소유권자의 동의나 보상없이 사업을 할 수 있게 했습니다. 물론 추후에라도 지하공간 이용에 토지주의 손실이 발생하면 보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보면, 대심도 지하는 토지소유권자(개인)와 공적으로 공간을 활용하고자 하는 공공기관(다수의 시민)의 문제인 것처럼 보입니다. 사적 소유권과 공적 이용권의 충돌로 보입니다. 하지만 여기엔 한 번 더 고려되어야 할 이해당사자가 더 있습니다. 바로 지하 시설의 지상 공간 및 그 주변에 사는 지역 시민들입니다. 왜냐하면 대심도 지하개발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의 가장 직접적인 당사자이기 때문입니다.
가령, 서부간선 지하도로(공사중), 제물포길 지하도로(공사중), 동부간선 지하도로(예정)는 지역 시민들보다는 서울을 오가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지하시설입니다. 서부간선 지하도로의 사후환경영향평가서에 따르면 공사로 인해 안양천 수위하강이 예상된다고 합니다. 그 피해는 불특정 시민다수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특히나 대심도 지하도로는 차량 통행으로 발생한 매연을 환기해야하기 때문에 지상의 환기구로 많은 오염물질이 배출됩니다. 특정 지점으로 모아 배출하기 때문에 환기구 주변의 대기오염은 심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설정된 환경기준 이하더라도 노출된 지역 시민들에겐 위험할뿐더러 이는 다수의 시민을 위해 특정 지역민들이 더 많은 위험 부담을 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도로에 한정해 보자면 문제는 또 있습니다. 건설되는 3개의 도로는 모두 민간투자사업입니다. 즉 완공 이후에 운영사가 통행료를 징수해 수익을 창출합니다. 만약 개발하는 지하의 토지주가 개인이라면, 보상은 개인이 받고 수익은 사업자가 벌어갑니다. 그러나 발생되는 문제의 피해는 시민들이 감당해야합니다. 생각보다 복잡한 문제입니다. 법률 상의 소유권 문제를 넘어, 대심도 지하(도로)는 누구의 것일까요? 누가 관여해 결정해야할 문제일까요? 조금 더 치열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대목입니다.
▸참고자료
서부간선지하도로 민간투자사업 사후환경영양평가서
전재호, <[단독] 지하도로 건설 토지보상 기준 새로 만든다>, 조선비즈, 2016.04.15.
한국토지공법학회, 「토지의 지하 및 공중공간 등에 대한 보상기준에 관한 연구」, 국토해양부, 2012.
현윤정 외, 「도심지역 대심도 지하공간 개발의 지반환경영향 및 정책 제언」,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