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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 록펠러 왕조. 글로벌리스트 프로젝트.유엔, 에너지,금융분야에서의 전략적역할
2026年5月20日 Azzurra https://cafe.daum.net/flyingdaese/WK49/82
第4章:ロックフェラー王朝。グローバリスト・プロジェクト。国連、エネルギー、金融における戦略的役割。
2026年5月20日 Azzurra
제4장 : 록펠러 왕조. 글로벌리스트 프로젝트. 유엔, 에너지, 금융분야에서의 전략적 역할
2026年5月20日 Azzurra 번역 오마니나
실체권력의 역사와 구조
Por Kontrainfo / Fausto Frank
"그 중에는, 우리들(록펠러가문)이 미합중국의 국익에 반하는 비밀결사의 일원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은 나와 우리 가족을 국제주의자로 간주하며, 전세계의 사람들과 공모해, 보다 통합된 글로벌 정치·경제구조, 이른바 ‘하나의 세계’를 만들려 한다고 비난하고 있습니다.만약 그것이 비난이라면, 나는 유죄이며,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데이비드 록펠러, '회고록' 405페이지
록펠러가문은, 미국에서 가장 중요하고 유력하며 명성이 높은 가문 중의 하나이며,그 가문은 세계의 비즈니스와 정치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창업자는 존 D. 록펠러이며, 그는 특히 석유부문에서 거대한 비즈니스 제국을 구축했다. 그 후, 록펠러가문에는 유명한 비즈니스 리더, 경영자, 정치인이 다수 배출되었다. 그들은 제2차 세계대전의 위대한 승자였으며, 그 결과로서 탄생한 글로벌리스트 질서의 주요한 입안자 중의 한 사람으로, 미래의 세계정부를 목표로 하는 많은 조직설립에 기여했습니다. 유엔(1945년), 세계은행(1944년), IMF(1944년), 유네스코(1945년, 글로벌리스트인 줄리안 헉슬리 의장),WHO(1948년), WTO(1948년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으로서,1995년에 WTO로), NATO(1949년), 빌더버그 회의(1954년), 삼극위원회(1973년)등 입니다. 이러한 조직 덕분에, 즈비그네프 브레진스키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대서양 국가들은 중대한 군사적 위협에 직면하면서도, 세계은행과 IMF부터 유엔에 이르기까지, 협력적인 국제기구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국제정치에 있어서 지배적인 지위를 제도화하고, 그 우위를 유지하기 위한 글로벌 틀을 강화할 수 있었습니다.”
록펠러 가문은, 뉴욕주 맨해튼 섬에 있는 유엔본부의 부지를 기증할 정도다.
스탠다드 오일 트러스트가 설립되면서,존 데이비슨 록펠러는 미국석유의 95%이상을 장악하고, 생산·정제·유통·판매를 총괄했습니다. 그는 명문 시카고 대학과 록펠러 대학을 설립했습니다. 1937년 5월 23일에 사망했으며, 9,000억달러가 넘는 거대한 유산을 남겼습니다.
그의 입버릇은 “돈을 위해 일하지 말고, 돈에게 일하도록 하라”와 “경쟁은 죄다. 따라서, 우리는 경쟁을 배제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사상을 정확히 표현한 말로, “위대한 기업의 성장은, 적자생존과 다름없다. 아름다운 미국의 장미는, 주변에 피어있는 꽃봉오리를 희생시키므로서 비로소, 그 빛과 향기를 최대한 발휘해 우리를 매료시킬 수 있다. 이것은 비즈니스에 있어서 나쁜 경향이라고 할 수 없다. 오히려 자연의 법칙과 신의 법칙이 작용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1906년, 토마스 로슨은 저서 '광란의 금융'을 출간해, 그 안에서 (12페이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스탠다드 오일의 성공은, 주로 2가지 요인에 의해 이루어진다. 하나는, 직원 간의 충성심이고,또 하나는 적에 대한 처벌이다. 입회하기 전부터, 직원들은 모두, 자신들의 신조가 친구에 대한 보상과 적의 제거임을 알고 있다. 이 마법의 고리 안에 들어가면, 직원은, 지구상의 다른 모든 사람이 같은 서비스에 대해 지급할 수 있는 보상을 모두 받을 뿐만 아니라, 그 이상이 전액지급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게다가 스탠다드 오일 직원들의 보상은 언제나 충분하며 만족스러운 것이지만, 불충에 대한 벌은 확실하고 무서운 것이며, 지구상의 어느 곳에서도 벗어날 수 없고, 어떤 권력도 그를 보호할 수 없다는 것을, 천차만별의 방법으로 끊임없이 깨닫게 된다."
그들의 사업유산은, 엑손모빌, 셰브론, 소히오, 펜조일, JP모건 체이스, 록펠러 그룹 등, 다양한 기업의 이름하에 서서히 통합되었다.
일가는 현재도, 유명한 록펠러 센터 5600번지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사업의 대부분을 운영하며, 수십억 달러 규모의 자산을 계속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록펠러 가문은, 새로운 글로벌리즘의 "기후변화"라는 언설에 따라,석유 부문에 대한 투자를 종료하고, "청정에너지"로의 전환을 발표를 했다. 이 발표는, 록펠러 브라더스 펀드의 이사장인 스티븐 하인츠에 의해,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열린 기후변화 정상회의가 열리기 불과 며칠 전에 행해졌다.
우생학과 인구억제
록펠러 가문은, 우생학 및 인구억제 프로젝트에 대한 자금지원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1910년에는 이미, 록펠러 가문이 뉴욕주의 콜드 스프링 하버에 우생학기록국(ERO)을 설립했다. 이 연구기관은, 1910년부터 1939년까지, 우생학적 목적을 위해 생물학적·사회적정보를 수집해, 인간의 유전을 연구하는 역할을 맡았다. 사실상, 이것은 가족계획연맹(Planned Parenthood)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1911년에는 존 D. 록펠러 주니어가 "사회보건국"을 설립했고, 1914년에는 록펠러 재단이 미국 성건강협회(American Sexual Health Association)의 설립과 자금지원에 협력했다.
록펠러 가문의 경제력, 생명정치, 공식정치, 그리고 정보기관의 네트워크는, 20세기 내내 계속 확대되었다.
존 포스터 달레스(1888년 2월 25일 ~ 1959년 5월 24일)는, 1951년부터 1952년까지 록펠러 재단의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그 후, 1953년부터 1959년까지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재임 중에 미국국무장관을 맡았다. 달레스는 프린스턴 대학에 다니며, 1908년에 비밀결사 파이베타카파의 회원으로서 졸업했다. 또한, 영향력 있는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의 이사장, 1935년부터 1952년까지 록펠러 재단의 이사도 역임했다. 달레스는, 강력한 외교문제평의회의 창립멤버이기도 했다. 게다가, 프레스콧 부시의 변호사이자, 영향력 있는 유나이티드 프루트사의 주주이기도 했다. 그의 아들인 에이버리 달레스는 예수회의 사제였으며, 나중에 가톨릭교회의 추기경이 되었다. J.F. 달레스는, 초대 CIA국장 알렌 달레스의 형이다.
1952년, 존 D. 록펠러 3세와 존 포스터 달레스는, 그 이름 그대로, 세계인구연구와 관리를 목적으로 하는 인구평의회를 설립했다.
J.P.모건 체이스
1946년, 데이비드는,오랫동안 일가가 운영해 온 체이스 내셔널 은행(통칭 "록펠러 은행")에 입행해, 일가에서 최초이자 유일한 은행가가 되었다. 당시, 그의 삼촌 중의 한 명(윈슬롭 알드리치, 어머니인 애비 알드리치의 동생)이 지점을 맡고 있었다. 체이스 내셔널 은행은 1955년에 체이스 맨해튼 은행으로 회사명을 변경했으며, 현재는 J.P.모건 체이스 앤 컴퍼니로 알려져 있다.
이 은행은, 경영진이 스탠다드 오일에서 파생된 기업,특히 엑손모빌과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제너럴 일렉트릭이나 석유업계에 대한 대출과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모건 은행이 미디어에 미친 영향은, 1915년에 미국하원의원 오스카 캐러웨이가 비판한 것처럼, 매우 흥미로운 것입니다.
“JP모건은 보도계에서 가장 중요한 12명을 모아,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신문을 선정하게 했다. (…) 이 12명은, 최대규모의 신문 25개지를 장악하면 충분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 신문들을 매수해, 각 신문사에 편집자를 배치시켜, 군국주의, 금융정책, 그 외 매수자의 이익에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는 국내외의 문제에 관한 정보를 적절히 감독·편집하도록 했다.(출처:http://query.nytimes.com/)
1960년,데이비드 록펠러의 지휘 아래, 은행의 새 본사는 맨해튼의 미드타운, 리버티 거리(Riberty Street)에 건설되어, 뉴욕 연방준비은행의 맞은편에 위치했습니다.
당시에도 지금도, 체이스 은행의 주요한 경쟁상대는, 뉴욕의 내셔널 시티은행(현재의 시티뱅크, 시티그룹 산하)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셔널 시티은행은, 스탠다드 오일의 제임스 스틸먼과 데이비드의 큰아버지 윌리엄 록펠러를 통해, 록펠러 가문과 오랜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들의 자녀들이 결혼하면, 스틸만 록펠러 가문이 되고, 제임스 스틸만 록펠러가 내셔널 시티은행의 총재에 취임한 것은 1959년 초이며, 데이비드가 체이스 은행의 총재에 취임한 것은 1960년이었다.
데이비드 록펠러의 리더십 아래, 체이스는 국제적으로 사업을 확장하고,유엔의 주요은행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등, 글로벌 금융시스템의 핵심을 담당하는 존재가 되었다.
데이비드 록펠러가 평생 수행한 주요 직책은 다음과 같다:
삼극위원회의 창립자 겸 회장·명예 회장
외교문제평의회의 회장·명예회장
빌더버그 클럽의 미국 창립 멤버, 스폰서, 종신회원, 운영위원회 멤버
록펠러 대학 이사회 명예회장 및 종신회원
체이스 맨해튼은행의 회장
체이스 국제자문위원회의 공동설립자 겸 회장
록펠러 파이낸셜 서비스 회장
뉴욕 연방준비은행 이사
미주 평의회의 창립자 겸 회장·명예회장
미주 협회의 창립자 겸 회장·명예회장
미주 포럼의 창립자
Japan Society 명예회장;
뉴욕 현대미술관 명예관장;
피터슨 국제미술연구소 소장;
뉴욕 상공회의소 회장;
뉴욕시 파트너십 창립자;
뉴욕시 프리메이슨 명예 회원;
다운타운 로우아먼 해튼 협회 회장;
세계무역센터 기념재단 이사;
비즈니스 커미티 포 더 아츠(BAC) 공동 설립자(1967년);
모닝사이드 하이츠 사 사장;
미주 관계 센터 설립자;
미국 무역 긴급 위원회 창립자;
해외개발협의회 이사;
미소 무역경제협의회 이사;
미중 무역 자문 위원회 부위원장;
일미 경제관계 자문위원회 부위원장;
국제통화제도개혁 자문위원회 위원장;
백악관 펠로우십 위원회 창립 멤버;
시카고 대학 이사회 영구 회원; 존 F. 케네디 도서관 이사회 멤버;
International House(뉴욕) 이사회 명예 회원;
하버드 대학 평의원회 위원장;
하버드 대학 외국 연구 위원회 위원장;
카네기 국제 평화 재단 이사회 멤버;
다트마스 회의 초대 창시자;
피스 파크스 재단 회원;
스톤·번즈 복원 공사 이사장;
국제 엑시큐티브 서비스 코프(IESC) 창립자 겸 회장;
미국 무역 긴급위원회(ECAT) 창립자;
글로벌 서클 오브 필란소로피스트 산하 단체 시나고스 공동 창립자;
고마쓰노미야폐하 기념 세계문화상(Praemium Imperiale) 명예고문·국제고문;
데이비드 록펠러 재단 설립자;
록펠러 패밀리 펀드 공동 설립자;
록펠러 브라더스 재단 공동 설립자;
하버드 대학 데이비드 록펠러 라틴아메리카 연구센터 공동 설립자 겸 자문 위원회 위원.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진 국제기구에서의 지도적 역할 :
외교문제평의회(CFR) : 1949년, 록펠러는 미국의 외교정책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조직인 외교문제평의회의 이사장에 취임했다. + 상세
빌더버그 회의 : 아버지의 영향으로 철저한 글로벌리스트가 된 데이비드 록펠러는, 1954년에 빌더버그 회의를 창설하므로서 인맥을 크게 확장했습니다. 제1차 회의는 네덜란드에서 열렸으며, 당시 가장 영향력 있는 실업가와 현역 정치인, 그리고 거의 모든 주요 언론의 대표자들이 모였습니다.
1965년, 데이비드 록펠러는 미주 평의회를 설립했습니다. + 상세
https://es.wikipedia.org/wiki/Consejo_de_Relaciones_Exteriores
이 세계적인 은행가는 이데올로기를 초월해,소련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1973년, 냉전이 한창 중임에도 불구하고, 체이스 은행은 당시, 아직 소련의 영토였던 크렘린 근처인 칼 마르크스 광장의 1번지에 미국은행으로는 최초의 지점을 개설했습니다.
웹사이트 "러시아 비욘드"에 의하면 :
체이스 은행의 지점은, 1973년에 소련의 수도 중심부에 개점했습니다. 이 사건에 앞서, 이 억만장자는 소련사회 및 정부관계자와 10년 이상 빈번히 접촉해 왔습니다. 이러한 접촉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 취임후에 미국과 소련에서 열리게 된, 이른바 다트머스 회의 형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록펠러의 회고록에 따르면, 록펠러와 소련지도자인 니키타 흐루시초프와의 회담을 기획한 사람은, 유엔사무총장 우 탄트였습니다. 이 회담은 1964년, 록펠러가 최초의 다트머스 회의 중의 하나에 참석하기 위해 레닌그라드를 방문했을 때 열렸다. 흐루쇼프는, 이 억만장자와 그의 딸을 모스크바의 크렘린으로 초대했다. 록펠러에 따르면, 흐루쇼프와의 회담은 이례적이었으며, "엄격하고 때로는 공격적이고 적대적"이었다고 전한다. 록펠러는, 흐루시초프가 현지 공산당의 협력을 받아, 라틴아메리카와 아시아의 몇몇국가에서 정권교체를 모색하고 있다고 비난했다."소련의 지도자는 답답함을 느끼면서도, 혁명은 객관적인 이유에 기반해 이루어지는 것이며, 외부로부터의 간섭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고 반론했다. 이 회담은 엄격했지만, 록펠러는 소련의 지도자들로부터 적대감을 느끼지 않았다고 한다.
데이비드 록펠러와 딸 네바, 그리고 니키타 흐루시초프(소련, 1964년).
다트머스 회의의 소련측 주최자인 게오르기 알바토프는, 저서 '냉전의 독수리와 비둘기'에서,록펠러는 미소관계의 정상화를 지지했다고 언급하고 있다. 1970년대, 록펠러는 거의 매년 소련을 방문해, 알렉세이 코스위긴 총리와 여러차례 회담을 가졌다.
은행가인 록펠러는, 소련붕괴후인 1992년을 포함해, 고르바초프와 여러차례 회담을 가졌다. 그 몇 년전에는, 보리스 엘친과도 회담을 가졌다. 후에 러시아 대통령이 된 엘친은, 1989년에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해, 국제문제평의회에 참석했다. 록펠러는 2003년에 소련붕괴후의 러시아를 방문했다. 방문목적은, 러시아어판 회고록을 발표하는 것이었다.
1973년에는, 록펠러가 중국을 방문했으며, 체이스는 중국국립은행의 미국최초의 지점이 되었다.
데이비드 록펠러와, 중국의 주은래 총리 겸 중국공산당 부주석(1973년).
1973년, 헨리 키신저는 마오쩌둥과 회담을 갖고, 소련에 대항하기기위해 중국에 접근했다.
키신저는 오늘, 시진핑 씨와 나란히 사진을 찍었다.
신자유주의가 전성기를 맞이하던 시기에, 조지 부시(아버지)와 나란히 섰다.
조지 소로스 씨도 그의 주요 협력자 중의 한 사람으로 활동했다.
데이비드 록펠러와 비데라, 마르티네스 데 오즈.
헨리 키신저와 독재자 비데라.
1970년대, 아르헨티나의 독재자 호르헤 라파엘 비데라와 경제부 장관 알프레도 마르티네스 데 호스와 함께.마르티네스 데 호스는, 팬아메리칸 항공의 이사이자, 엣소의 변호사, 체이스 맨해튼은행의 국제고문으로서, 록펠러의 이익을 공식적으로 대표했다. 1980년, 데이비드 록펠러는 콜론 극장에서, 당시 경제부 장관으로부터 표창을 받았다. 그때, 록펠러는 마르티네스 데 호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저는 마르티네스 데 호스 씨를 깊이 존경하고, 경외하고 있습니다. 이는 지리적 거리에도 불구하고 오랜 우정을 쌓아온 것뿐만 아니라, 경제분야에서 그의 창의성과 엄격한 업무태도에서도 비롯된 것입니다. 그의 프로그램이 아르헨티나 경제의 재생에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은, 저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은행·경제계 전체에도 명백합니다. 게다가, 그의 노력은, 오랫동안 아르헨티나에서 볼 수 없었던 경제적 안정감을 되찾는 데 큰 혜택을 주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https://es.wikipedia.org/wiki/Consejo_de_Relaciones_Exteriores)
세계은행과의 관계
체이스 은행은 세계은행과도 강한 연계를 가지고 있으며,역대총재 중의 3명(존 J. 매크로이, 유진 블랙, 조지 우즈)은 이전에 체이스 은행에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네번째 총재(제임스 D. 월프슨)도 록펠러 재단을 비롯한 록펠러가문이 설립한 기관의 이사로 활동하는 등, 록펠러 가문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폴 볼커도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장에 취임하기 전에는 체이스 은행에 근무했습니다. 볼커는 록펠러가문과 오랜동안 관계를 유지해 왔으며,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장직을 물러난 후, 록펠러가문이 운영하는 대규모 지주회사인 록펠러 그룹의 평의원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삼극위원회 – 삼극 위원회
일본을 이 그룹에 가입시키려는 시도가 실패로 끝난 것에 대한 불만으로, 1973년, 데이비드 록펠러는, 카터 대통령의 국가안보담당 보좌관 즈비그네프 브레진스키 등에게 영향을 받아, 삼극위원회를 설립했다. 카터 대통령은, 위원회의 전 멤버 15명을 정권의 핵심직책에 임명했으며(그들은 취임시에 위원회를 떠날 필요가 있었다). 카터 자신도 삼극위원회의 위원이었다(클린턴 정권에는 대통령을 포함해 12명의 위원이 있었으며, 제럴드 포드와 조지 부시(아버지)도 삼극위원회의 위원이었다). + 상세https://es.wikipedia.org/wiki/Comisi%C3%B3n_Trilateral
1989년, 록펠러는 당시의 소련을 방문했다. 그때, 헨리 키신저, 지스카르 데스탄 전 프랑스 대통령,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총리, 그리고 외교문제평의회(CFR)의 기관지 '포린 어페어스'의 편집장 윌리엄 하이랜드 등을 포함한, 위원회의 유력 대표단을 이끌었다. 대표단은 미하일 고르바초프와의 회담에서, 소련의 세계경제에 대한 통합에 관한 설명을 요구했고, 그것을 얻었다. 그후, 소련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 지는 이미 널리 알려진대로다.
FTAA – 미주 자유무역지역
1992년, 미국은 미주자유무역지역(FTAA)을 제안했다.이 구상은, 관세장벽이 없는 미주전역에 걸친 자유무역체제를 확립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미국과 동등하게 경쟁할 수 없는 국가의 산업을 파괴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이 구상은, 2005년 11월 4일과 5일에 아르헨티나의 마르델플라타에서 열린 미주정상회담이 실패한 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산업계의 엘리트층의 압력으로 포기되었다. 그들은, 미국기업과의 "자유경쟁"이 사실상 자신들에게 사형선고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좀 놀랐다.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고 조지 W. 부시는 당시 아르헨티나 대통령이자 정상회의 의장이었던 네스틀 킬치넬에게 작별 인사로 전했다.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하면, 미국은 최종문서에 FTAA 재개를 위한 조항을 넣지 못했다는 것이다. https://es.wikipedia.org/wiki/%C3%81rea_de_Libre_Comercio_de_las_Am%C3%A9ricas
오늘,이 프로젝트는 환태평양 파트너십 협정(TPP)에 의해 갱신되었습니다. TPP는 자유무역협정으로,국내산업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국가가 글로벌기업의 이익을 제한할 수 있는 능력을 제한,국제중재기구를 설립해, 기업의 사업활동을 제한하는 모든 입법을 저지합니다.https://www.pagina12.com.ar/diario/contratapa/13-284299-2015-10-21.html
록펠러가 평생 맡았던 직책·설립기관 :
삼극위원회의 창립자 겸 회장·명예회장;
외교문제평의회의 회장·명예회장;
빌더버그 클럽의 미국창립멤버, 스폰서, 평생회원, 운영위원;
록펠러 대학 이사회 명예회장 겸 종신회원;
체이스 맨해튼 은행 회장 ;
체이스 인터내셔널 자문위원회의 공동설립자 겸 회장;
록펠러 파이낸셜 서비스 회장;
뉴욕 연방준비은행 이사 ;
미주평의회의 창립자 겸 회장·명예회장;
미주협회의 창립자 겸 회장·명예회장;
미주 포럼의 창립자;
Japan Society 명예회장;
뉴욕 현대미술관 명예회장;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 소장;
뉴욕 상공회의소 회장;
뉴욕시 파트너십 창립자;
뉴욕시 프리메이슨 협회 명예회원;
다운타운 로우아먼 해튼 협회 회장;
세계무역센터 기념재단 이사;
비즈니스 커미티 포 더 아츠(BAC) 공동 설립자(1967년);
모닝사이드 하이츠 사 사장;
미주 관계 센터 설립자;
미국 무역 긴급 위원회 창립자;
해외개발협의회 이사;
미소 무역경제협의회 이사;
미중무역 자문위원회 부위원장;
일미 경제관계 자문위원회 부위원장;
국제통화제도개혁 자문위원회 위원장;
백악관 펠로우십 위원회 창립 멤버;
시카고 대학 이사회 영구 회원;
존 F. 케네디 도서관 이사;
International House(뉴욕) 명예 이사;
하버드 대학 평의원회 회장;
하버드 대학 외국 연구 위원회 회장;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이사;
다트머스 회의 창립자;
피스 파크스 재단 회원;
스톤·번즈 복원 공사 이사장;
국제 엑시큐티브 서비스 코프(IESC) 창립자 겸 회장;
긴급 미국무위원회(ECAT) 창립자;
글로벌 서클 오브 필란소로피스트 산하의 시나고스 공동 창립자;
고마쓰노미야폐하 기념 세계문화상 명예고문/국제고문;
데이비드 록펠러 재단설립자;
록펠러 패밀리 펀드 공동설립자;
록펠러 브라더스 재단 공동설립자;
하버드 대학 데이비드 록펠러 라틴아메리카 연구센터의 공동설립자이자 자문 위원회 위원.
록펠러 가문과 로스차일드 가문
이 두 금융왕조는, 역사상 여러 국면에서, 제휴관계와 적대관계를 반복해 왔다.
2012년, 양 가문은 금융사업에 있어서 파트너십을 통해, 록펠러 왕조와의 관계를 공개했다.이 관계는, 제휴기간과 대립기간을 반복하면서, 부침을 겪어왔다. 안드레이 풀소프 등의 러시아 분석가들은, 예를들어 제2차 세계대전은, 록펠러 가문이 로스차일드 가문을 이긴 전쟁이었다고 주장한다. 2012년, 로스차일드 가문의 영국계 일족인 제이콥 로스차일드는, 록펠러 파이낸셜 서비스사의 주식 37%를 인수했다. 이는 로스차일드 가문이 록펠러 가문의 상대적인 세계적 패배를 인정한 것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제이콥 로스차일드 경(영국계)과 데이비드 록펠러
로날드 로더는, 로스차일드 시오니즘 조직인 세계유대인회의(WJC)의 회장이었으며, 데이비드 드 로스차일드는 WJC의 이사장을 역임했다.
록펠러 가문과 프리메이슨
역사적으로 록펠러 가문은 스컬 앤 본스(해골기사단)와 뉴욕 그랜드 롯지와 관계가 있었습니다.
록펠러 센터는, 제우스에게서 훔친 빛의 횃불을 오른손에 든 프로메테우스의 조각상으로 유명합니다. 프로메테우스 이야기는, 인류가 신성한 것을 창조하고 소유하는 대담함을 상징하는 것으로, 역사 속의 많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어 왔습니다. 이 때문에, 프리메이슨은 자신을 신격화하고 신의 권위에 반항하는 루시퍼식 도전과 프로메테우스의 이야기를 연결하고 있습니다.
이 이미지에는,12개의 별자리에 둘러싸인 프로메테우스가 그려져 있으며, 뒷면에는 “모든 기술의 달인인 프로메테우스는 불을 가져왔고, 그것은 인간에게 강력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되었다”는 구절이 적혀 있다.
한편,뉴욕의 유명한 5번가에 위치한 록펠러 센터의 파사드에는, 또 다른 신화 속의 인물인 아틀라스의 조각상이 설치되어 있다.
그리스 신화에 있어서,아틀라스는 반신반인인 프로메테우스의 형제이며, 올림포스의 신들의 질서에 대한 반란을 이끄는 지도자였지만, 패배후, 제우스(산스크리트어로 "하늘의 아버지"를 의미하는 Dyaus Pitar에서 유래)에 의해 하늘을 어깨에 메고 다니도록 강요받았다.
록펠러 가문이 지배했던 미국의 금융자유주의는, 아인 랜드의 개인주의에서 그 대표적인 예를 찾을 수 있다. 그녀는 1957년의 대표작 '아틀라스 슐라그드'에서, 이 신화적 상징적 인물을 그려냈다.
"만약 당신이, 세계를 어깨에 짊어진 거인 아틀라스를 본다면, 그가 그 자리에 서서, 가슴속에서 격렬히 피가 뛰고, 무릎이 무너지며, 팔이 떨리면서도, 마지막 힘을 짜내어 세상을 지탱하려는 모습을 본다면, 그리고, 그가 힘을 다하면 다할수록, 어깨에 실리는 세계의 무게가 점점 커지는 모습을 본다면, 당신은 그에게 무엇이라고 말하고 싶을까? 반역하라고 말할 것이다."
천상의 질서에 대한 개인의 반역은, 그리스·로마 전통뿐만 아니라,기독교의 전통에서도 나타나는 주제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이기적인 자유의 추구라는 자세가, 루시퍼의 신에 대한 반역의 근저에 있다고 여겨집니다. "나는 일할 수 없다’"Non serviam)라는 말이 그의 말이었습니다.
록펠러 센터에 아틀라스 동상이 설치된 장소는, 상징적인 정치세계의 모든 사안과 마찬가지로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록펠러 아틀라스는 대체 누구에게 반역하고 있는 걸까요? 이 조각상은 전략적으로 배치되었습니다. 뉴욕의 성 베드로 대성당을 마주하고 있는 것입니다.
록펠러 재단
록펠러 가문은,재단설립이전부터,문화·사회·경제에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결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890년, 존 D. 록펠러는 신자유주의 경제이론의 세계적 중심지인 시카고 대학교를 설립했습니다.
1913년, 미국에서 연방준비제도가 설립된 해에,록펠러 가문의 재단이 탄생했습니다.
이 재단은, 수십 년에 걸쳐, 다양한 분야에서 미국의 정보기관의 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해 왔습니다.
-시각예술(특히 추상 예술)분야의 다양한 움직임을 지원.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세계적인 미술관인 뉴욕 현대미술관(MoMA)은, 애비 알드리히 록펠러에 의해 “사람들이 현대의 시각예술을 이해하고, 활용하며, 즐길 수 있도록 돕는다”라는 목적으로 설립했습니다.소장작품에는,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몬드리안의 "브로드웨이 부기우기", 피카소의 "아비뇽의 딸들", 달리의 "기억의 고착", 그리고 잭슨 폴록과 앤디 워홀 등 미국 아티스트들의 작품이 포함된다.
―역사서술적 접근으로서는, 프랑스의 아날 학파(저명한 역사가 페르난 브로드엘에 의해 인정받은) 등이 있다.
1930년대, 독일에서의 우생학 연구를 카이저·빌헬름 인류학·인류유전학·우생학 연구소를 통해 지원. 뉴욕의 우생학 기록국의 주요 자금 제공자.
포드 재단과의 협력을 통한 "젠더 연구".
대규모농업과 석유계 비료, 제초제, 살충제의 대량사용을 포함한, 이른바 "녹색 혁명"에 대한 중요한 자금지원.
또한 최근에는,빌 & 멜린다 게이츠 재단과 공동으로 2019년 10월의 이벤트 201 등 팬데믹 시뮬레이션을 진행. 2020년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 팬데믹과 같은 전세계적인 사태를 예측했는데, 이것은 2010년의 시나리오에서 이미 "시뮬레이션"된 것이었다.
실제, COVID-19통계의 세계적 리더인 존스 홉킨스 대학 공중보건대학원과 하버드 대학 공중보건대학원을 설립한 것은 록펠러 재단이다. 생체인증데이터와 블록체인기술을 활용해 전세계 사람들의 디지털화를 목표로 하는 야심찬 ID2020 프로젝트는, 테크놀로지계의 거물인 빌 게이츠가 진행하는 여러 논란을 일으키는 사업 중 하나이며, 이번에는 역사가 깊은 록펠러 재벌과의 연관성이 지적되고 있다. ID2020("디지털 아이덴티티 2020")은, 2017년부터 2018년에 걸쳐 록펠러 재단, 마이크로소프트, 그리고 Gavi(백신연합)에 의해 설립되었다.Gavi는 빌 & 멜린다 게이츠 재단과 세계적인 제약사들이 모인 조직이다. 이들 설립 파트너 외에도, 블록체인 기술기업인 Hyperledger, 생체인증데이터를 활용한 디지털 아이덴티티 개발에 참여하는 IRespond와 Simprints, 유엔 국제 컴퓨팅 센터(ICC) 등이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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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ote.com/fake567/n/ne25919c86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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