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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일명 ‘대세’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름난 개그맨중에서도 첫 손가락에 꼽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또 다른 닉네임은 바로 ‘달인’이라는 표현인데요...
김병만이라는 사람입니다.
개그맨이 되겠다는 꿈 하나를 안고 무작정 올라온 서울, 팍팍한 살림에 집 얻을 돈까지 떨어질 때면 연극이 끝난 무대 위에서 잠을 청하곤 했습니다. 어느 새벽 시간, 건물 화장실에서 세면대에 물을 받아놓고 샤워를 하고 있었는데 뒤에서 문이 확 열리더니 건물 관리인이 뭐하는 짓이냐고 야단을 쳤습니다. 옷을 홀딱 벗은 채로 야단을 맞는 그 자신을 보고 자신은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자기가 너무 창피했고 이렇게 사는 것이 바로 비참한 삶이구나"
개그맨 공채 시험에서는 7번이나 떨어졌지며 개그맨이 될 길이 막막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가까스로 TV에 얼굴을 내밀게 됐는데 방송에 얼굴을 내민 지 얼마 안되었을 때 발목 뼈가 부러졌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차마 수술을 못했습니다. 한번 쉬면 가까스로 잡은 기회를 영영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진통제를 먹어가며 부러진 뼈가 저절로 붙기만 기대하면서 방송을 했다고 합니다.
거북이 같은 삶을 살았지만, 꿈이 있기에 지칠줄 모르고 달려 오늘에 이르렀다라고 말하며 며칠 전 그는 자서전 하나를 냈습니다.
그가 쓴 자신의 이야기의 제목은 “ "꿈이 있는 거북이는 지치지 않습니다"라는 책입니다.
이 책에서 그는 그 자신이 거북이라고 말하고 꿈을 위해서 지치지 않고 그 길을 걸어왔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처럼 아무리 토끼가 빨라도 결국에는 거북이의 꾸준함이 토끼를 이겼다고 말합니다. 그의 말처럼,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꿈을 가진 거북이처럼 지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교훈을 이 책을 통해 얻게 됩니다.
우리는 각자 우리의 인생의 시작이 다르고 인생의 중간 부분이 다르고 인생의 마지막 부분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인생을 평가할 때 우리는 어떻게 태어나서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었다는 각자 다른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우리의 인생에서 우리가 어떻게 태어났다라는 부분은 우리의 의지로 바꿀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하지만, 인생을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었다라는 것은 우리의 의지와 노력으로 가능한 부분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인물들을 보면 참 힘든 인생을 살았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라헬이 등장하고 라헬의 마지막 아들 베냐민이 등장하고 야곱의 첫째 아들이요 레아가 낳은 르우벤이 등장합니다.
이 세 인물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어떤 인생을 살 것인 지 우리는 어떤 인생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인지를 생각해보는 귀한 은혜의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여주는 인생 첫 번째는 열매맺는 인생이 복된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16절, 17절 말씀입니다.
“그들이 벧엘에서 길을 떠나 에브랏에 이르기까지 얼마간 거리를 둔 곳에서 라헬이 해산하게 되어 심히 고생하여 / 그가 난산할 즈음에 산파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지금 네가 또 득남하느니라 하매”
라헬은 지금까지 야곱이 레아와 빌하, 실바 등 세 명의 여인에게서 10명의 아들을 낳는 동안 단 한 명의 아들을 낳았습니다. 물론 요셉이라는 이스라엘 역사속에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는 중요한 인물을 낳았지만 그럼에도 숫자적으로나 아들의 서열로 보았을 때 별로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중 여행중에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낳은 아들이 바로 ‘베냐민’이라는 아들입니다.
결과를 중시하고 숫자를 중시하는 일반적인 우리들의 생각으로는 야곱의 네 아내중에서 라헬은 별로 좋은 성과를 얻지 못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 물론 마음으로는 야곱의 가장 큰 사랑을 받고 인정을 받았던 아내라고 위안을 삼을 수 있지만 아들의 숫자나 장자를 중시하는 이스라엘의 문화속에서 아들의 서열로 따졌을 때 별로 성공한 인물이 아닐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결국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았을 때 라헬이 낳은 요셉과 베냐민은 다른 어떤 아들들보다도 대단한 역할을 하는 것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아이들을 낳기 위해 라헬은 큰 고통을 경험했습니다.
요셉을 낳을 때도 계속 임신이 안 되고 아이를 낳을 수있는 형편이 안 되었는데 하나님께서 태의 문을 열어주시고 겨우 임신이 되어 어렵게 요셉을 낳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베냐민을 낳을 때는 이 아이를 낳다가 죽을 정도로 어렵게 아이를 낳았습니다. 이 출산을 통해 결국 라헬의 인생은 끝이 나게 됩니다.
이 인생을 보며 요즘 부모님들은 무리한 결정을 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면 자녀를 낳고 기르는 것보다 자기의 삶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부모들을 요즘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난 5월 12일 대전동부경찰서는 고등학생 a양이 대전 중구 자택에서 5월 1일 오전 6시께 여아를 출산한 뒤 목을 졸라 숨지게 했으며, 고등학생 b군은 숨진 아이를 화단에 버린 혐의로 형사입건했다고 합니다.
또 서울남부지방법원은 애인에게 낙태를 강요한 혐의로 의사 29살 한 모 씨에게 벌금 2백만 원을 선고했습다고 합니다. 의사 한 씨는 1년 넘게 사귄 애인이 임신하자 지난해 6월, 서울 압구정동의 한 산부인과에서 낙태 시술을 받게 한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법으로 금지된 낙태수술이 일부 산부인과에서 공공연히 시행되고 있고 엄청난 숫자의 아이들이 부모의 잘못된 선택으로 태어나기도 전에 생명이 끊어지는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보다 중요한 것이 살아가고 있는 부모의 삶이 중요하다고 생각할 지 모릅니다. 특별히 생명의 소중함을 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아직 태어나지 않는 생명은 완전한 생명이 아니라고 말할 지 모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의 라헬은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의 소중함을 너무나 잘 알았던 사람이었고 이 생명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창세기 48장 4절 말씀입니다.
“내게 이르시되 내가 너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 하고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소유가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출애굽기 1장 20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 그 백성은 번성하고 매우 강해지니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많아지는 것을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아이들을 많이 낳아 하나님의 백성들로 번성하여 지기를 원하십니다.
얼마 전 몇 분의 선교사님을 모시고 차로 이동하는 중간에 선교지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의 어려움을 이야기나누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선교사님들이 한결같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최근에 이슬람 세력이 엄청나게 불어나고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이 많이 줄어드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을 믿는 국가들은 자녀들을 많이 낳지 않고 자녀들을 믿음으로 잘 키우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실패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슬람 종교는 몇 명의 아내를 공식적으로 가지고 한 명의 여인이 대여섯명의 아이들을 낳습니다. 그래서 보통 한 집에 자녀가 10명이상은 있습니다. 그리고 이슬람종교는 의무적으로 종교교육하게 되어 있고 국가에서 종교교육을 관리합니다. 그러니 이슬람 세력은 전 세계적으로 커질 수 밖에 없다는 얘기가 됩니다.
지금 한국의 출산율이 줄어드는 것이 엄청난 사회문제입니다. 앞으로 노년, 장년인구가 전체 인구의 50%까지도 갈 지 모른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회 분위기가 한국 교회내에도 똑같이 퍼져서 성도의 자녀숫자도 한명, 두명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회가 성장하기 위해 하나님의 나라의 부흥이 있기 위해서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양육하며 키워야 합니다.
교회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전도도 열심히 해야하지만 가장 근본적으로는 믿음의 부모가 아이들을 많이 낳아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인간을 이 땅에 보내시며 명령하신 명령입니다.
저와 여러분!! 라헬과 같이 믿음의 사람을 낳을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자신이 자녀를 낳을 수 없는 건강의 상태임에도, 혹시나 자녀를 낳다가 죽을 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음에도 하나님의 백성을 낳는 축복에 목숨까지도 내어놓았던 것처럼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백성을 낳고 키우는데 쓸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여주는 인생 두 번째는 고통속에서 축복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18절,19절입니다.
“그가 죽게 되어 그의 혼이 떠나려 할 때에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라 불렀으나 그의 아버지는 그를 베냐민이라 불렀더라 / 라헬이 죽으매 에브랏 곧 베들레헴 길에 장사되었고”
베냐민은 태어나면서 어머니의 죽음의 댓가로 태어난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젖을 먹지 못하고 태어나면서 어머니가 없이 자란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베냐민이 저주받은 사람이었을까요?
베냐민은 이스라엘을 이루는 12지파의 완성을 이룬 인물입니다. 베냐민이 없으면 11지파로 이스라엘민족이 이루어졌을까요? 물론 우리가 생각해볼 수 있는 의문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베냐민이 태어남을 통해 12라는 숫자를 만들어냈고 결국 완전한 의미의 이스라엘을 만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의 쓴 맛을 보고난 후에 진정한 인생의 단맛이 어떤 것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처음부터 돈도 많고 잘 생기고 공부도 잘했던 사람이 그보다 조금 더 많은 돈이나 그것보다 조금 더 나은 건강이나 원래 잘 했던 것보다 조금 더 잘하는 것에 대해서는 만족감이 덜 합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너무 힘들고 비참한 삶이었는데 어느 순간 편안한 삶, 즐거운 삶, 보다 나은 생활이 되게 되었을 때는 기쁨의 정도가 확연히 달라지는 것입니다.
역대상 4장 9절~10절을 보십시오.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우리가 야베스의 삶을 보며 우리 또한 야베스의 축복을 받기를 기도할 때 야베스가 이루었던 삶에 대해 묵상을 하고 물질적인 복과 영향력을 기도합니다. 하지만 이런 야베스도 어머니의 고통스러운 출산이 없었다면 이 땅에 존재하지 못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통스러운 출산과 어려운 인생의 굴레가 있었기에 그의 삶이 아름다워지고 그의 모든 재력이 축복이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인생의 큰 축복을 받기를 기대하면서 혹시나 힘든 일, 어려운 환경은 전혀 경험하지 않았으면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기적을 행하시려고 할 때 우리의 힘든 형편을 변화시키시고 좋은 형편으로 바꾸어놓으시는 분입니다.
어려운 환경이 우리에게 있어야 결국 그 환경이 새로운 환경으로 바뀌는 것을 통해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35장 5~7절을 보시겠습니다.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될 것이며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될 것이며 승냥이의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날 것이며”
저와 여러분의 지금의 삶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남들이 보기에 놀랄만한 좋은 결과를 얻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복된 삶을 통해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여주는 인생 세 번째는 세상의 축복이 곧 영적인 축복은 아닐 수있다는 사실입니다.
22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이 그 땅에 거주할 때에 르우벤이 가서 그 아버지의 첩 빌하와 동침하매 이스라엘이 이를 들었더라 ○야곱의 아들은 열둘이라”
야곱에게 아들은 열둘이 있었습니다. 이 열둘의 대표는 바로 르우벤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문화에서 장자의 역할과 권한은 엄청난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특별히 이스라엘의 첫 부족으로 가나안에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야곱의 집안에서 장자라는 것은 대단한 권한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르우벤은 이런 장자의 권한을 소홀히 했을 뿐 아니라 도무지 해서는 안될 망동을 했습니다.
왜 르우벤이 아버지의 또 다른 아내인 빌하와 성적 관계를 가졌는 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우리가 추측해 볼 수 있는 것은 어머니인 레아의 라이벌인 라헬이 죽고나서 가장 적대적으로 남아있을 것 같은 라헬의 여종 빌하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면 이제는 적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상대는 아버지의 또 다른 아내요, 자신의 배다른 형제를 낳은 여인입니다. 만약 이 관계를 통해 임신이 되었다면 르우벤과 임신한 아이와의 관계가 복잡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르우벤에 대해 이런 평가를 내리십니다.
역대상 5장 1절 말씀을 펼쳐보십시오. 함께 읽겠습니다.
“이스라엘의 장자 르우벤의 아들들은 이러하니라 (르우벤은 장자라도 그의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혔으므로 장자의 명분이 이스라엘의 아들 요셉의 자손에게로 돌아가서 족보에 장자의 명분대로 기록되지 못하였느니라”
장자의 축복의 결국은 르우벤을 망치는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르우벤이 가진 장자로서의 권한과 축복은 결국 그를 세상적인 욕심으로 내몰았고 그 세상적 욕심을로 영적인 권위와 축복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야고보서 1장 15절을 보십시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요한일서 2장 15절,16절,17절입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르우벤은 틀림없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뜻안에서 살았다면 큰 복을 누릴 위치에 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인간적인 욕심대로 살다보니 결국 멸망의 길을 걸었던 것입니다.
한국 교회가 지금 참 시끄럽습니다. 특별히 대형교회 몇 교회는 진짜 이곳이 하나님을 섬기는 교회인가라고 생각할 정도로 재산문제,담임목사 청빙문제, 직분자들간의 다툼등으로 시끄럽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세워진 교회임에도 그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결국 세상적인 욕심으로 무너져가는 교회의 모습을 보게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위치에서 항상 바르게 살아감으로 그 축복을 온전히 누리며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으로 인해 이 세상을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세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맺을까 합니다.
우리의 마지막은 어떤 평가를 받게 될 지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어렵게 살아가는 인생이지만 큰 인생이 될 수도 있고 지금은 편안한 인생이지만 나중에는 비참한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어차피 살아갈 인생이라면 처음도 좋고 나중도 좋으면 좋겠지만 지금 좋지 못한 삶의 여건속에서도 힘을 내어 살아가는 것을 통해 나중에는 잘 되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욥기 8장 5절~7절 말씀 “네가 만일 하나님을 찾으며 전능하신 이에게 간구하고 /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반드시 너를 돌보시고 네 의로운 처소를 평안하게 하실 것이라 /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이 말씀이 저와 여러분에게 큰 위로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