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규동 시인의 시 읽기
달맞이꽃, 그리고 우주의 연기
❙김어진 시집 『담쟁이는 벽을 종교인 것처럼』
-「낙화는 달빛 조각이다」, 「창부타령」을 읽고_
시 「낙화는 달빛 조각이다」는 꽃잎이 떨어지는 순간을 달빛의 조각으로 형상화한다. 낙화는 전통적으로 소멸과 허무의 상징이지만, 시인은 그것을 달빛에 투영해 새로운 존재의 흔적으로 남긴다. 낙화는 사라짐이 아니라 빛나는 흔적이며, 순간이 곧 영원으로 이어지는 은유적 다리다.
우리 민요 「창부타령」은 이 정서를 미리 품고 있다.
“한송이 떨어진 꽃을 낙화진다고 서러워마라
한 번 피었다 지는 줄은 나도 번연히 알건마는”
낙화의 서러움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인간의 정서적 울림을 노래한다. 시가 낙화를 달빛 조각으로 환원한다면, 창부타령은 그것을 노래와 흥으로 다시 살려낸다. 두 세계는 서로 다른 언어를 쓰지만, 삶과 소멸을 동시에 끌어안는 태도에서 교차한다.
시의 두 번째 연은 장미의 가시에 찔린 날의 불편함을 이야기한다.
“장미 가시에 찔린 날엔 검은 장갑이 불편하고
달빛이 머리털로부터 새끼손톱까지 통과한다”
이 장면은 단순한 시적 장식이 아니라 현실의 은유다. 가시는 삶의 고통과 불편, 우리가 매일 맞닥뜨리는 현실의 상처다. 손끝에 맺힌 피가 곧 달빛 조각처럼 흐른다는 상상은, 인간의 육체적 고통조차 우주적 순환 속에 놓여 있음을 드러낸다. 현실의 고통은 회피할 수 없는 삶의 일부지만, 시인은 그 고통을 달빛과 연결하여 삶이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음을 증언한다.
이 지점에서 시는 개인의 아픔을 넘어 우주적 공명으로 확장된다. 칼 세이건이 말했듯, 인간은 “별의 먼지”로 이루어져 있다. 달빛이 태양에서 출발해 달을 거쳐 우리에게 도달하듯, 꽃잎 또한 흙으로 돌아가 다시 생명을 낳는다. 낙화의 순간은 허무가 아니라, 우주의 질서 속에서 다시 이어지는 연기(緣起)다.
요즘 지천으로 핀 달맞이꽃은 이 시의 정조를 현실에서 증언한다. 낮에는 보이지 않다가, 어둠이 내리면 은은히 피어나 달빛과 공명하는 달맞이꽃은, 낙화가 결코 끝이 아님을 보여준다.
20여 년 전, 필자는 문학 아카데미 「숲속의 시인학교」에서 열린 시 축제에 참석한 적이 있다. 박제천 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시인들과 밤새 시와 삶을 이야기한 뒤, 자정을 훌쩍 넘어 숙소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그때 길가에 환히 피어 있던 달맞이꽃이 눈에 들어왔다. 달빛에 젖은 꽃잎들은 마치 시 속의 달빛 조각처럼 빛나며, 빈 자리를 충만으로 바꾸는 듯했다. 그 장면은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 시와 삶, 그리고 우주의 연기가 교차하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낙화는 달빛 조각이다」는 낙화를 단순한 소멸로 보지 않는다. 그것은 달빛 속에 남아 새로운 의미를 낳는 순간이며, 인간의 고통과 사랑이 연기의 질서 속에서 어떻게 이어지는가를 보여준다. 창부타령의 가락, 달맞이꽃의 밤빛 개화, 박제천 선생님과 함께했던 숲속의 시인학교의 기억, 그리고 시인이 붙잡은 달빛 조각은 서로 다른 언어이지만, 모두 같은 진실을 증언한다.
낙화는 끝이 아니다. 그것은 우주의 빛과 노래로 이어지는 또 다른 시작이다. 꽃잎이 떨어지는 찰나, 달빛은 그 흔적을 붙잡아 영원의 편린으로 남긴다. 우리의 삶 또한 그렇게 달빛의 조각으로 남아, 언젠가 또 다른 세계와 우주의 심연 속에서 다시 반사될 것이다.
부처도 꽃잎 떨어지는 순간 흙으로 돌아가고
낙화는 무덤 모서리에 떨어진 달빛 조각이다
장미 가시에 찔린 날엔 검은 장갑이 불편하고
달빛이 머리털로부터 새끼손톱까지 통과한다
손가락에 피가 달빛 조각의 낙화처럼 흐르고
낙화 소리는 달빛 비벼내는 공기의 탄식이다
푸른 하현달에서 연분홍 악사가 풍악 울리고
감성의 현에 올라탄 낙화가 시인 품에 안긴다
-「낙화는 달빛 조각이다」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