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테의 돈으로 세상 읽기 78
석유 고갈론의 허구
우리나라는 에너지의 95%를 수입하는 국가다. 원유는 전량 해외에서 들여온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라고 말하지만, 도로는 자동차로 미어터진다. 에너지 안보 따위의 거창한 담론은 책상머리들이 할 일이다. 여행에 들뜬 사람들은 삼천리 금수강산을 노래하다가도 주유소 미터기가 코 고는 소릴 할 때면 중동의 모래사막이 부럽다.
사막 없는 나라에도 바다는 있다. 행운일까 불운일까, 동해에 기름띠가 번진다. 고래들이 내뿜는 날숨이 거칠다. 용산 고래는 4년 동안 쓸 석유와 30년 가까이 뽑아낼 가스가 매장되었다고 거품 문다. 여의도 고래가 신경질을 내며 물리 탐사봉을 물어뜯는다. 마치 상대의 업적이 될까 시샘하는 태도다. 단지 물리 탐사한 결과라는데 관련 주가는 널뛰기한다. 일희일비할 일이 아니니 그만들 하시라. 잘못하면 애꿎은 새우등만 터진다.
석유 고갈론만큼 웃기는 논쟁도 없다. 시작은 미국 광산국이 헛다리를 짚고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똥 볼을 찼다. 그들은 세계의 유정이 말라가고 있다며 호들갑 떨었으나 신기하게 뽑을수록 더 많은 석유가 솟구친다. 1970년 5,500억 배럴로 추정했던 석유 매장량은 1조 7천억 배럴로 늘어났고 지금도 새로운 유전이 개발되고 있다.
사람을 만만히 봐선 안 된다. 미국 광산국이나 카터의 허언에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통찰이 없었다. 그들은 인간이 곧 자원이란 사실을 간과했다. 장담컨대 석유 매장량은 더 늘어날 것이다. 셰일가스에서 보듯 유전개발 기술이 더욱 고도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지구가 부풀어지지 않는 한 이대로 석유를 퍼 올린다면 언젠가는 고갈한다. 하지만 인류는 석유가 사라지기 전 더 좋은 에너지를 찾아낼 것이 틀림없다. 비극적 지구환경 종말론도 허구이긴 마찬가지다.
자원은 변화한다. 『이성적 낙관주의자』의 저자 매트 리들리의 말처럼 인류는 에너지원을 인간(노예)에서 동물과 물, 바람, 화석연료로 교체해 왔다. 나무를 태워 에너지를 얻던 사람들은 석탄을 캐내고 석유와 가스를 발굴했다. 이제 인간은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에너지를 개발하는데 창조주의 경지에 접근하고 있다. 오래전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장관을 지낸 야마니의 말이 핵심을 찌른다. “석기시대가 끝난 건 돌이 부족해서가 아니듯 석유 시대의 종말도 석유의 고갈로 오진 않을 것이다” 쓸모없던 우라늄이 거대한 발전소를 짓게 하고 머지않아 소형 핵융합발전소가 마을마다 들어설지 모른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라고? 그것도 한심한 말이다. 한국은 손꼽는 석유 강국이다. 원유정제량은 미국, 중국, 러시아, 인도에 이어 세계 5위이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수출 품목 4위가 석유제품이다. 2023년 석유 수출액은 522억 달러에 달해 전체수출액의 8.3%를 기록했다. 수입 원유를 정제하여 절반 가까이 수출하는 구조다.
이것만이 아니다. 석유화학제품의 생산능력은 원유정제 과정에서 부산물로 생기는 에틸렌 생산 규모가 결정한다. 에틸렌은 합성수지, 합성원료, 합성고무 등 화학제품의 핵심원료로 쓰이며 반도체와 더불어 산업의 쌀로 불린다. 우리나라의 에틸렌 생산 규모 또한 세계 4위로 일본과 독일보다 배나 많다. 작년에는 456억 달러에 달하는 석유화학제품을 해외에 내다 팔았다.
한국의 원유정제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는 석유화학 플랜트수출로 이어진다. 알고 보면 꿩 먹고 알 먹는 산업이 석유산업이다. 원자력기술 또한 강국이다. 에너지 분야에서 한국만큼 고른 산업기반을 갖춘 나라가 별로 없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의 저력이다.
자원의 저주라는 말이 있다. 베네수엘라와 중동 산유국들이 대표적인 자원의존형 경제모델 국가다. 지하자원이 풍부한 국가들이 대체로 선진국이 되지 못하는 이유가 밝혀졌다. 천연자원 개발은 부가가치가 높다. 생산요소인 자본, 토지, 노동이 그곳에 집중되기 마련이다. 노동의 경우 천연자원 생산업 종사자가 고임금을 받게 되면 다른 산업도 임금이 턱없이 올라가게 된다. 고임금 구조는 점차 경쟁력을 잃게 되며 여타 산업의 몰락은 천연자원에 대한 의존을 심화시키는 악순환을 가져온다.
천연자원은 필연 소유와 분배 문제를 야기한다. 세계은행 연구에 따르면 지하자원이 없는 나라의 내전 위험은 0.5%에 불과하지만, 지하자원으로 먹고사는 나라는 23%나 된다고 한다. 한편 광물 수출에 따른 유통화폐의 증가는 물가상승으로 이어진다. 인플레이는 노동자의 임금인상 요구를 초래하고 노사갈등을 부추긴다. 풍부한 천연자원이 사회 혼란과 무관치 않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우리에게도 산유국의 꿈이 이루어질지 모른다. 포항 앞바다가 에너지 자립의 광구가 된다면 새로운 경제도약의 기회가 될 것이다. 수입대체효과에서 고용에 이르기까지 얻을 것이 많다. 하지만 유전개발이 축복이 되려면 지금보다 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땅속을 파헤쳐 잘되는 나라가 많지 않다.
동해 유전이 경제성이 없더라도 실망할 필요 없다. 엉터리 경제학자들은 박정희의 중화학공업육성을 가당치 않은 일이라고 냉소했다. 그들은 강단에서 한국은 농업 국가로 나아가야 하며 양은 냄비나 만들면 된다고 가르쳤다. 빈곤한 부존자원이 주된 이유였다. 그러나 우리는 없는 석유를 팔아 돈을 벌고 있다. 4차산업혁명에서도 인적자원이 핵심자원이란 사실만 잊지 않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