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죽음관
1)죽음관의 배경
(1)붓다 출가의 동기와 죽음인식
불교에서 죽음은 인간의 숙명적 의미를 지닌다. 붓다는 생(生)은 사(死)로 귀착되고 죽음을 거스르는 길은 없음을 끊임없이 말해주고 있다.
붓다는 죽음의 필연성을 강조하며 죽음이 모든 인간에게 공통된 사실임을 알리고 있다. 죽음은 필연적이며 일체 중생에게 공통적이다. 남녀노소, 현명해도 어리석어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 그 뿐만 아니라 어떠한 다른 존재도 자기 죽음을 대신하거나 막아줄 수는 없는 것이다.
붓다는 죽음은 개개인이 스스로 떠맡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자각시키고자 하였다. 이처럼 불교는 죽음을 자각하는 것을 출발점으로 하고 있다. 한편 설일체유부의 대표적인 논서인 『구사론(俱舍論)』에서는 수명이 다함으로써 죽음이 있다고 설하면서 수명은 명(命)이며 체온과 식별작용을 보존 유지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들 수명과 체온과 식별작용이 몸을 버릴 때 신체를 떠나서 지각이 없는 나무처럼 되어버린다."
불교에서는 인간이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존재임을 통찰하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는가라는 것을 근본적인 과제로서 추구하고 있는데 이는 붓다의 출가동기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어느 날 붓다는 유원(遊園)으로 가기 위해서 곱게 꾸민 수레를 신두산(産) 말에 매고 가던 중, 머리는 희고 이는 빠진 채 지팡이를 손에 쥐고 부들부들 떠는 노인을 만남으로써 살아있는 모든 것이 늙는다면 태어나는 일 자체가 화(禍)라고 느꼈으며, 마찬가지로 질병과 죽음을 보고 인생의 덧없음을 알았고, 최후로 출가 수행자를 보고 자신도 집을 떠날 결심을 굳혔다."
이 초기경전에서의 내용은 불전문학의 형식을 갖추고 있고, 사문유관(四門遊觀)이라는 사건 속에서 제시되고 있지만 이러한 문학적 표현 이외에도 초기경전에는 붓다가 자신의 출가동기를 밝히는 구절들이 전해지고 있는데, 『잡아함경』에서는 "이 세상에 만약 늙고, 병들고, 죽는 이 세 가지가 없었다면 (중략) 여래, 응(應), 등정각(等正覺)은 세상에 출현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사문유관의 문학적인 묘사나 붓다의 육성이 담긴 회고는 붓다의 절실한 출가 동기가 무엇이었던가를 잘 말해주고 있다. 붓다는 일찍부터 늙음과 병듦과 죽음의 것에 대하여 고뇌했고 필연적인 인간의 죽음에 대해 괴로워하였으며, 마침내 생사윤회의 고통을 끊고 영원한 안락인 열반을 이루기 위해 출가를 단행했던 것이다.
사문유관을 마친 붓다는 오랜만에 기쁜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붓다가 기쁨에 젖어 있는 모습을 본 궁중의 한 여인이 붓다가 궁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고 다음과 같은 애욕의 게송을 읊었다.
"저런 아들을 둔 어머니는 즐겁겠네
그 아버지 또한 정말로 기쁘겠네
저런 남편을 둔 아내는
열반 속에서 기뻐하겠네."
이 말을 듣고 붓다는 환희용약하는 마음이 저절로 생겨나 무상의 열반을 이루겠다는 마음을 품고 다시 궁으로 돌아왔다. 경전에서 붓다의 출가를 예견하는 구절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그 중에서도 마하파자파티, 정반왕, 야소다라 그리고 붓다 자신의 꿈의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마하파자파티는 흰 소 한 마리가 성안에서 큰소리로 울면서 조용히 걸어가는데 한 사람도 그 앞을 가로막는 이가 없는 꿈을 꾸었다. 정반왕도 다음과 같은 꿈을 꾸었다.
"성안 복판에 제석천왕의 깃대가 우뚝 섰는데 온갖 보배로 장엄했으며 또 갖가지 영락을 가지고 꾸미고 장엄해서 마치 수미산이 땅에서 솟아 허공 가운데 있는 것과 같았다. 그 제석천왕의 깃대 가운데서는 또 큰 광명이 나와서 사방을 두루 비췄으며 또 사방에서 큰 구름이 일어나 그 제석천왕의 깃대 위에 모여 큰비를 내렸는데 큰 빗줄기가 쏟아져 그 깃대를 씻었다. 또 공중에서 갖가지 한량없는 묘한 꽃을 비 내리고 그 깃대 둘레에는 또 한량없는 갖가지 미묘한 음악이 있어 치지 않아도 저절로 울렸다. 또 다시 곱고 흰 일산이 하나 있었는데 온갖 보배로 대를 만들고 황금으로 살을 만들어 단정하고 아름다우며 저절로 그 깃대 위의 사방을 덮었다. 또 사대천왕과 모든 권속들이 성 가운데로 와서 문을 열고 그 제석천왕의 깃대를 가지고 나갔다."
또 그날 밤 야소다라는 20가지의 상서롭지 못한 꿈을 꾸었다. 이 20가지는 다음과 같다.
①온 대지가 두루 진동하는 것
②제석천왕의 깃대가 땅에 떨어지는 것
③허공의 해와 달과 모든 별들이 땅에 떨어지는 것
④그전부터 그늘을 지어 나를 수호하고 나를 연민히 여기던 크고 깨끗한 일산이 하나 있었는데 종이 낳은 차닉이 건장한 힘으로 빼앗아가는 것
⑤모든 보배로 장엄한 내 머리털을 칼로 끊는 것
⑥몸에 있던 영락이 물에 떠내려가는 것
⑦몸이 아름답고 단정한데 문득 추하고 더러워진 것
⑧몸에서 손발이 저절로 떨어져 나가는 것
⑨몸이 문득 벌거숭이가 되는 것
⑩그전부터 항상 앉던 상(床), 내가 앉아 태자를 섬기던 그 상이 문득 저절로 땅에 떨어지는 것
⑪항상 태자와 함께 누워 자며 쾌락을 누리던 침대의 네 다리가 부러지는 것
⑫많은 보배로 이루어진 큰 산의 가늘고 날카로운 네 모서리와 한량없이 높은 봉우리가 불에 타서 무너져 땅에 떨어지는 것
⑬정반왕의 궁전 안에 미묘한 나무가 하나 있었는데 바람이 불어 거꾸러지는 것
⑭밝고 둥근 달이 뭇 별에 에워싸여 이 궁중에 있다가 문득 꺼지는 것
⑮밝은 해가 환하게 비추어 천 가지 빛으로 이 궁전을 에워싸고 있다가 문득 꺼지자 세간에 빛이 없어 어두워진 것
⑯궁성 안에서 한 개의 큰 횃불이 성 밖을 향해 나가는 것
⑰성을 수호하던 신이 온 몸에 갖가지 영락으로 장엄하여 아름답고 단정했는데, 그가 문득 슬피 울다가 큰소리로 통곡하면서 문 밖에 서 있는 것
⑱가비라성이 문득 빈 들판이 되어 두렵기 밤과 같아서 마음에 즐거워할 곳이 없는 것
⑲가비라성의 모든 못의 물이 다 흐리고 모든 나무의 꽃과 과실과 가지와 잎이 다 떨어져 땅에 흩어지고 하나도 볼 것이 없게 되는 것
⑳모든 장사들이 손에 칼과 창을 들고 몸에 갑옷을 입은 채 사방에서 이리 저리 뛰어가는 것.
이처럼 야소다라는 자신이 꾼 두려워할만한 일들에 대한 꿈을 붓다에게 토로하면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야소다라는 그가 꾼 꿈이 길한지 흉한지, 어떤 과보인지 또 그의 목숨이 다하려 하는 것인지, 태자와 이별할 것인지 등을 걱정하였다. 붓다는 이 말을 듣고 나서 '나는 이제 오래지 않아 세상을 버리고 출가하리라. 그런 까닭에 지금 야소다라가 이렇게 무서운 꿈을 꾼 것이다'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날 밤 붓다도 다음과 같은 5가지의 큰 꿈을 꾸게 된다.
①대지로 침상을 삼고 수미산을 베개로 삼고 동쪽 대해를 왼팔에 놓고 서쪽 대해를 오른팔에 놓고 남쪽 대해를 두 발에 놓는 것
②건립(建立)이란 풀이 한 줄기 배꼽에서 솟아나 그 머리가 위로 아가니타 천에 이른 것
③여러 가지 빛을 가진 네 마리의 새가 사방에서 날아와 태자의 두 발 아래 있었는데 자연히 변하여 순전히 한 가지 흰빛이 되는 것
④네 마리의 흰 짐승이 있는데, 머리는 다 검은 빛이며 발 위에서 무릎에 이르도록 태자의 다리를 핥는 것
⑤높고 큰 똥무더기 큰 산이 있었는데 태자 자신이 그 산 위에서 두루 걸어 다니나 똥이 묻지 않는 것.
붓다의 전기를 기록한 대부분의 경전에서는 붓다가 아무도 모르게 성을 빠져나간 것으로 기록했다. 그러나 『방광대장엄경』에서는 다음 두 가지 이유를 들어 붓다가 정반왕에게 미리 출가의 허락을 받고 있음을 알려준다.
"내가 만약 부왕(父王)에게 알리지 아니하고 사사로이 집을 떠나 버리면 두 가지의 허물이 있으리라. 첫째는 법과 가르침에 어긋남이요, 둘째는 세속의 조리에 따르지 않음이니라."
이처럼 자신의 출가를 알리지 않고 몰래 성을 빠져나가는 것은 불법의 가르침에 어긋나고, 세속의 도리에도 어긋나기 때문에 부왕에게 출가를 알리는 당위성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하여 여러 천신들이 붓다의 출가를 도와주었고, 그리하여 붓다는 출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정반왕은 붓다가 이미 출가의 결심이 선 것을 알고 이를 막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였다.
"왕은 다시 갖가지의 묘하고 훌륭한 오욕거리 더하여 낮이나 밤이나 오락으로써 태자 마음 즐겁게 하려 하였네. 그럴수록 태자는 더욱 싫어해 끝끝내 사랑하고 즐길 마음 없어지고 다만 나고 죽는 괴로움 생각하기 마치 화살 맞은 사자(師子) 같았네."
이처럼 왕이 출가를 막으려 할수록 붓다의 결심은 더욱 굳어졌다. 붓다가 출가를 결심하게 된 것은 앞서 사문유관에서 발견한 생로병사에 대한 괴로움으로부터의 벗어남에 있다. 이를 경전에서는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읊고 있다.
"이 세간은 참으로 고달프고 괴롭다. 늙음·병듦·죽음으로 무너지는 것. 몸이 맞도록 큰 괴로움 받건마는 사람들은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서 남의 늙음·병 듦·죽음만 싫어하나니 이야말로 커다란 근심거리 아닌가. 내 이제 훌륭한 법 찾고 있나니 마땅히 세상 사람과는 같지 않아서 스스로 늙음·병듦·죽음에 얽매인 채 도리어 다른 사람 미워하네. 이것은 진실한 관찰이니 젊은 육체와 힘과 또 목숨 새록새록 바뀌어 잠시도 머물지 않고 마침내 멸해 없어지는 법으로 돌아가네."
정반왕은 붓다가 출가한다는 말을 듣고 매우 두려워하였다. 경전에서는 이를 "마음이 크게 두려워 벌벌 떠니 마치 커다란 미친 코끼리가 작은 나뭇가지를 흔드는 것 같았네"라고 표현하고 있다.
정반왕은 붓다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면서 타일러 말하였다.
"부디 그런 말 말아라. 아직 법에 귀의할 때가 아니다. 젊을 때엔 마음이 항상 흔들려 행하는 일마다 잘못이 많단다. 저 오욕의 경계에 마음이 아직 떠나지 못했다면 비록 집을 나가 고행을 닦더라도 능히 마음을 결정하지 못하리라. 텅 비고 고요한 넓은 들에서 마음이 아직 적멸(寂滅)하지 못했다면 네 마음에 비록 법을 좋아하더라도 나의 이 시기만은 아직 못하리니 너는 마땅히 나라 일 맡아 다스리고 나로 하여금 먼저 출가케 하라. 아비를 버리고 후사를 끊는 것 그것은 곧 올바른 법이 아니다. 부디 출가할 마음을 접고 세간법 받아 익혀서 안락하고 좋은 이름 널리 퍼뜨리고 그런 뒤에 출가함이 마땅하리라"
그러자 붓다는 공손히 정반왕에게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오직 네 가지 일만 보전할 수 있다면 마땅히 출가할 마음을 접겠습니다. 저의 목숨 보전하여 영원히 살고, 병 없고 또 늙어 쇠하지 않으며 모든 살림살이 모자라지 않는다면 명령대로 출가를 그만두겠습니다."
붓다의 이러한 대답에도 정반왕은 출가를 허락할 수 없었다. 그러자 붓다는 다음과 같이 확실하게 자신의 출가의 뜻을 밝혔다.
"네 가지 원을 보전할 수 없다면 아들의 집 떠남을 허락하시고 부디 만류하여 그만두게 하지 마소서. 아들은 지금 불붙은 집에 있거늘 어찌하여 나가는 것 허락하지 않습니까. 헤어져 갈라짐은 평범한 이치이거늘 어찌하여 구함을 허락하지 않습니까? 행여 저절로 닳아 없어질 것이라면 법으로써 여윔만 못 하리니 만약 법으로써 여의지 못한다면 죽음이 닥쳐올 때 뉘 능히 보전하겠습니까."
현재 자신의 처지가 불붙은 집[燒舍]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것인데 왜 이를 막느냐고 되묻고 있다. 또한 만나면 헤어지는 것이 이치인데 왜 그러한 이치를 외면하는가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결국은 자신이 깨달은 바 4고(四苦)의 해결을 자신 스스로가 해결하기 위해서는 출가하는 길밖에 없다는 뜻을 비친 것이다.
<불교 죽음관과 상장례의 콘텐츠화 연구/ 한성열(탄탄) 원광대학교 대학원 한국문화학과 문학박사학위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