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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화의 거센 물결 속에서 슬레이트 지붕이 양옥으로 변모하는 동안 어느 집을 불문하고 집 마당 한켠을 떡하니 차지하던 장독대가 놓여있었다. 뒷마당의 장독에 어머니의 손길이 지나가면 반질빈질 윤이 났고, 장독 속에는 한해 가족들의 건강을 책임지던 된장·간장·고추장이 무르익어 숙성돼 가고 있었다. 풋고추를 찍어먹고 쌈을 싸먹던 된장도, 싱싱한 횟감의 필수품 고추장도, 멸치국물에 육수를 우려낸 국수에 간을 맞추던 간장도 모두 그 장독 속에서 나왔다.
아파트 문화의 대량 유입으로 보통 베란다 쪽에 놓이던 장독은 이제 거의 자취를 감췄고, 냉장고에 자리를 대신 내어주게 되었다. 냉장고의 진화에 이어 김치냉장고까지 등장하자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장독의 존재는 점점 잊혀져갔다. 이처럼 실생활에서 옹기는 공산품으로 쏟아지는 그릇에 뒷전으로 밀려나는가 싶었다. 그러던 것이 매스컴에서 우리의 전통에 대한 자부심을 비추며 살아 숨 쉬는 옹기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더해졌고, 옹기는 이제 또 다른 생활의 대세로 자리 잡게 되었다. 한정식 식당의 그릇이나 찻잔·화분·도자기 등의 생활용품으로 우리 곁으로 돌아오게 됐다.
옹기는 일차적인 재료가 흙이기 때문에 공정에서 물과 결합해야 생명을 얻게 된다. 그런 다음 1000도가 넘는 뜨거운 불시련을 견디어야 하고, 마지막 과정에서도 선선한 바람의 응원을 받아야 된다. 이런 공정에서 하나라도 어긋나면 파기(破器)되고 완성되지 못한다.
높이 2.2m, 둘레 5.2m, 무게 172kg의 세계 최고의 옹기는 옹기 장인들의 치열한 정신이 스며있고, 마침내 기네스북에 등재됐으며 옹기박물관에 자랑스럽게 전시돼 있다. 2년 동안 다섯 번의 실패에 이어 여섯 번째 완성됐다. 이런 옹기의 장인들이 모여 있는 외고산 옹기마을은 새로 울산 12경에 이름을 올렸고, 이제 울산의 또 하나의 랜드마크가 됐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유망축제로 선정됐으며, 올해로 16번째 이어지는 울산옹기축제의 현장을 다녀왔다. 옹기박물관 앞마당에는 진흙을 던지는 체험부스가 만들어져 있었다. 아이들은 신발 벗고 맨발로 들어가 흙을 집어 벽으로 던지며 색다른 경험에 즐거워했다. 어린이날을 맞아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나온 아이들은 공연을 보고 사진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미꾸라지 잡기 체험을 하고, 소망지에 소원을 적어 가족들의 행복을 빌고, 옹기를 직접 만들기 위해 흙을 만지는 아이들은 재잘거림과 웃음소리가 이어졌다.
토마스 어린이 기차를 탄 아이들은 실제와 똑같은 기차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칙칙폭폭 기차를 탔고, 물놀이장의 보트 위에서 아이들은 시간가는 줄 모르고 페달을 밟았다. 방금 자동차였다가 순식간에 로봇으로 변신한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르는 아이는 결국 울음을 터뜨려 부모의 승낙을 받아내자 그것을 손에 쥐고 세상 다가진 것처럼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특히 옹기 장인들의 옹기 시연이 펼쳐지는 현장에서는 진흙이 옹기로 변해가는 것을 눈앞에서 보면서 감탄사를 연발하며 신기해했다. 먼지 날리던 흙이 장인의 손길에 따라 그릇의 형태를 잡아가고, 마침내 완성돼 불가마에 들어가면 작품이 되듯이 인생도 뜻을 품으면 저마다의 이름으로 개성 넘치는 멋진 작품이 되리라.
보잘 것 없던 흙이 장인의 손길을 거쳐 그릇으로 빚어지고 작품으로 거듭나는 과정은 인생이란 그릇이 빚어지는 과정과 흡사하다. 잘났다고 뽐내봐야 주인이 내버리면 끝이고, 멋있다고 해봐야 뒷전에 내쳐지면 빛을 보기 어렵다. 이처럼 옹기는 우리네 인생의 흥망성쇠와 많이 닮아있지 않은가.
기네스인증을 받은 세계최대 크기의 옹기작품
옹기마을 언덕, 옹기빚는 손을 형상화한 작품
옹기박물관 포토존-굿뉴스울산 이금희 대표
옹기난장촌. 진흙던지기 체험
옹기박물관 포토존, 박정관 편집장
반질반질한 크고 작은 옹기들
옹기판매장의 옹기들
꼬마 토마스 기차 타는 아이들
체험부스
물놀이장에서 신나는 아이들
미꾸라지 잡기 체험
앙증맞은 옹기에 담긴 다육이
축제가 벌어지는 마당 한켠 꽃밭에 놓인 옹기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