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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 문서를 작성하는 이유는 예수교가 도저히 종교로서의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사랑하라고 하기는 커녕 가족과 이웃간에 사랑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였고 사람들을 죽이고 재물을 빼앗아 예수에게 바칠 것을 주장하였고 사채를 장려하였고 창기장사를 하며 로마와 헤롯을 위한 설교를 했으며 유대민족을 하나도 남김없이 없애려 했습니다. 이러한 자가 겨우 원수를 사랑하라 했다는 말 한마디에 사랑의 신으로 둔갑하게 된다면 이 세상의 앞날이 어찌 되겠습니까? 예수교는 반듯이 사라져야 하며 그들은 지금까지의 잘못을 뉘우쳐 의를 행하여 그동안의 죄값을 치뤄야만 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선택 할 것 입니까? 학살을 원하는 권력자의 편입니까? 아니면 이웃과 함께 고난을 이겨나가는 사람들의 편입니까? 답은 여러분의 자유이지만 여러분은 그 학살의 대상이 언제든지 될 수 있음을 잊지마시기 바랍니다. 이 사실을 잊은 사람들이 존재한다면 역사는 또 다시 여러분을 고난 속으로 이끌게 될 것입니다.
저는 2천년전의 유대인속에서 있는 세례요한을 생각해 봅니다. 그는 예수와 같이 기적을 행하지는 않았지만 선지자로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랐습니다. 이는 그가 권세가와 달리 민족과 함께 고통을 나누며 민족에게 나아갈 길을 제시해 주었기 때문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가져 봅니다. 그리고 저는 권세가와 다른 세례요한과 같은 선지자를 기다려 봅니다. 그들은 아마도 이웃과 함께하는 사람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세례요한이 원하는 세상은 무엇이였을까요? 그것은 기본적으로 민족이 분열하지 않는 하나이길 원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배를 받던 당시 혼란한 시대를 헤쳐나가기 위해 의를 외쳤고 죄인이라면 의를 행하여 그 죄값을 치르도록 했습니다. 이는 첫번째로 예수와 달랐고 두번째로 마치 현대에 수 많은 사람들이 죄를 지어 옥에 갇히거나 벌금을 내는 형식적인 죄값이 아니라 그 이상의 무엇이였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로마와 헤롯에 대한 투쟁이였겠지만 현대에는 의를 무엇으로 보아야 할까요? 어떤 의를 행하면 그 죄값이 사라지는 것일까요? 정말 돈을 벌금으로 내고 옥에 갇히는 것이 정답일까요? 알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교와 사상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 봅니다.
저는 가끔 생각해 봅니다. 새로운 사상과 종교란 무엇일까요? 그 해답은 민족이 어려움을 당하거나 가족이 어려움을 당 할 때에 그들을 단결 시켜 어려움을 이겨 낼 수 있는 힘을 제공하는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 여러분이 타민족에게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그리고 윤리적으로 핍박 받을 때에 여러분의 민족을 지켜 줄 수 있는 사람은 여러분의 민족 뿐입니다. 이를 가르쳐 주는 정신적 교리는 역사 밖에 없습니다. 역사를 외면하거나 역사가 존재하지 않는 민족은 민족이 아니기 때문에 타민족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지배를 받아도 자신들의 역사를 지켜나간다면 여러분의 민족은 성공 할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민족이 유대인입니다. 그들은 국가는 없었지만 민족이 존재했고 역사가 존재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 타민족이 함부로 할 수 없는 민족이 되었습니다.
저는 여러분께 역사를 믿으라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작게는 가족의 역사이고 크게는 민족의 역사입니다. 유대교는 제가 볼 때에 신을 믿는 종교가 아닙니다. 유대교는 역사를 믿는 종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끊임없이 민족을 이끌어 나갈 선지자를 찾으며 선지자가 되고자 노력합니다. 그들이 랍비입니다. 랍비라 불리는 사람들이 역사서이며 종교입니다. 그것이 유대교가 아닐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주장합니다. 역사를 믿는 종교를 만드시라고 주장하는 바 입니다. 역사학자가 목사가 되어 역사를 가르치고 역사학자가 있는 회당을 제공하는 사람은 집사가 되고 그렇게 모인 사람들이 서로를 가르치며 서로를 도와가기를 바랍니다. 이를 주장함에 있어 위험한 생각이 있을 수 있는데 첫번째 이는 타 민족을 무시하는 민족 우월주의를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나라와 모든 민족이 자신들의 민족을 역사로 배우고 민족안에서 서로 협동해 가며 그것이 각 민족의 독립된 종교로 발전했을 때에 나아가 타민족을 배우고 타민족과 화합하기 위한 기초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타민족을 이해하기 위해 타민족의 역사를 배우고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자 하는것과 동일한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유대인으로 부터 배운 새로운 사상과 종교의 개념이며 이에 대한 증거가 예루살렘이며 현재의 한국입니다. 한국인 역시 역사가 있었기에 지금 이렇게 존재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번째로 역사학자에게 힘과 권력을 주기 위함이 아닙니다. 역사라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로 같은 민족 혹은 그 민족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유일한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서로가 부족한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가 서로의 행복을 위해 도와 줄 수 있는 기초일 뿐입니다. 따라서 역사학자는 상징적인 것이고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모을 수 있고 각자의 생각을 주장하고 가르칠 수 있는 모임이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비판과 비난을 하게 되어있습니다. 이를 금지하는 예수는 사탄의 탈을 쓴 자이기 때문에 비판하지 말라 한 것입니다. 그러나 비판과 비난은 소중 한 것입니다. 우리는 비판과 비난을 받으며 강한 정신력을 키워 나가야 합니다. 악한 자들은 어려서 부터 비판과 비난에 강해져 있으나 선한 자들은 그렇지 못하여 죽음을 결심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이 모든 것이 예수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를 이겨낼 정신력을 키워야 하는데 이는 비판과 비난을 즐거워 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하며 그것이 비판 받는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되면 그에 상응하는 의를 행하여 비판과 비난을 삭감하고 이를 통해 이웃과 더 가까이 다가 갈 수 있는 용서 입니다. 이는 의를 행하여 죄사함을 얻는 용서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예수와 달리 비판과 비난을 서로하여 즐거워하고 발전할 수 있는 밑거름으로 생각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는 자칫 선한 자들이 악한 자가 될 수 있는데 비판과 비난에 면역력이 생겨 잘못을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경계하며 비판과 비난을 즐긴다면 분명 여러분은 강한 사람으로 발전하여 있을 것이며 그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문화를 여러분의 모임에서 하시길 바랍니다.
예수는 구제함에 있어서 은밀히 하라 하였으나 이는 완전히 잘못된 사탄의 교리입니다. 만약 세상 사람들이 다른 사람도 하지 않는 구제를 우리가 왜 하는가라고 묻는 사람들이 생길 수 있고 도와 주는 문화가 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권세를 가진자들은 조금 도와주고 생색을 냅니다. 이것이 바로 구제를 은밀히 하라는 예수의 사악한 교리 때문입니다. 우리는 구제활동과 여러분의 모임에서 하는 모든 활동을 공개하고 나아가 증명하여야 합니다. 그렇게 하여 세상이 아름답고 따뜻하다고 증거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이웃과 여러분의 기업이 이웃을 어떤 비율로 도와주는지 확인하고 외면할 이웃과 도와줘야 할 기업을 구분하시길 바랍니다. 그러한 사회가 강제하는 것 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문화가 되었을 때에는 행복한 사회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구제활동은 은밀히 하고 여러 죄인들을 억지로 가두는 강제하는 사회보다 더 큰 효과를 얻을 것입니다. 처음은 강제로 보이는 것이 훗날에는 문화가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유럽에서 서로 안으며 키스하는 인사의 문화가 강제였으나 문화가 된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한국에 밭에서 신발을 고쳐신지 말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는 의심을 할 만한 행동은 애초에 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이와 같이 속옷과 겉옷의 비유는 그 자체로 악의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교리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 교리가 사악하게 사용되는 예를 성경에서 보았습니다. 사소한 교리와 사소한 발언 그리고 사소한 일에 의심을 받는다면 이를 인정하고 의를 행하여 죄값을 치르고 훗날 더 큰 이웃의 사랑을 받는 것이 중요 합니다.
얼마전 모 가수가 인터넷에 한국에 대한 안 좋은 글을 올려 논란이 되어 미국으로 떠난 사건이 있었습니다. 진의는 사실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가 그 가수였고 자신의 떳떳함을 증명하고자 했다면 한국에 남아 의를 행하여 그 죄값을 치뤘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분열이 일어났었습니다. 아무런 책임감없이 한국을 떠난다면 그것 역시 이와 같이 죄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하는 비판도 달게 받아 해명하고자 한다면 의를 행하는 것이 그 첫번째이며 의를 행하는 방법은 여러분이 각자 찾아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교도들은 무조건 죄사함을 받는다 하였으니 그 사악함이 이루 말 할 수 없습니다.
예수는 모이지 말고 골방에서 혼자 기도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완전히 사악한 교리입니다. 그리고 예수교도들 조차도 이를 행하지 않고 있으니 그 사악함을 스스로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반대로 하여 모여서 의를 행하고 모여서 서로에게 기도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모인 기도가 여론입니다. 그러한 기도는 여러분에게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여러분은 원하고 있는 것 아닌가요? 예수교도들은 자신들의 사악한 교리안에서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위해 한국의 정치를 삼키려 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한국인이 모여야 할 때입니다. 신의 탈을 쓴 예수교에 대항할 사람들은 역사학자들 뿐입니다. 역사학자들은 민족을 모을 수 있고 역사가 그 민족을 모으기에 충분한 공통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주장합니다. 역사학자님들이여 일어나 역사서를 성경과 같이 만들기를 바랍니다. 그 성경이 역사서이며 정신이며 종교입니다. 성경은 유대신을 믿는 것이 아니라 유대민족의 역사서이며 지혜서 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우리의 역사서와 지혜서를 성경책과 같이 만들어야 합니다. 이 종교의 이름이 무엇이든지 상관하지는 않겠지만 이를 통해 우리가 하나가 되고 그 안에서 서로 뜻이 맞는 사람들을 모아 세상에 여러분의 의를 펼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발전 할 수 있는 밑거름을 여러분이 할 수 있습니다.
이 사상은 각 민족이 서로 분열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민족이 자신의 민족과 역사 그리고 문화를 소중히 하고 이웃의 민족과 역사와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민족은 각각의 민족의 역사서와 지혜서를 만들어 민족의 사상으로 만들고 이를 통해 이웃과 나아가 이웃민족과 함께 발전 할 수 있으리라 생각 됩니다.
자신의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은 타민족도 충분히 사랑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전세계적인 문화로 발전 시킬 수 있다면 세상은 천국이 될 것입니다.
이 글을 쓰는 것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부정하기 위한것이 아닙니다. 저는 예수교에서 주구장창 외치는 단어이며 예수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사랑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사랑은 매우 중요한 단어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사랑의 가장 기본은 가족에서 남편과 아내의 사랑이며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이를 위해 젊은 날에 남녀간에 사랑을 이야기하며 사랑을 찾습니다. 이러한 사랑에는 독점적인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교의 사랑도 마찬가지 입니다. 예수교에서는 사랑을 외치지만 교인들 사이의 사랑보다 예수를 믿는 사랑을 더 중요시 합니다. 나아가서는 예수를 믿지 않는 비예수교인과의 사랑은 금지시키고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이웃과 친구사이의 사랑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 사이에 조금 더 자신과 친해지거나 더 큰 사랑을 받고자 노력합니다.
어쩌면 사랑은 사람을 독점 하기 위한 욕심에 의해서 비롯된 단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집니다. '나를 사랑해?'라고 묻는 그 말 속에는 독점적인 사랑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욕심은 그 사랑을 잃을 때에 불행의 씨앗이 되기도 합니다. 언제부터 사랑이라는 단어가 시작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라는 단어가 사라지고 너와 나 그리고 사랑이라는 단어가 많아지면서 우리는 '우리'와 '행복'이라는 단어를 버리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너를 사랑해'라는 말 보다 '너를 만나 행복해'라고 말해 보세요. 이웃과 만나 욕심없이 '우리가 만나 대화하니 행복하다' 말해 보세요. 사랑을 조금만 버리고 독점이 없는 행복을 찾아 보세요. 그 때에 우리는 진짜 사랑을 찾게 되는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사랑 보다 더 큰 사랑은 행복이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것이 저의 언어 도단이라 말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행복은 욕심을 버리면 찾아 오는 사랑의 밑거름입니다. 행복없이는 사랑이 있을 수 없습니다. 행복없이 쌓이는 열매는 거짓 사랑이며 행복으로 쌓여진 열매가 진짜 사랑입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말합니다. 사랑 보다 더 큰 사랑은 '행복'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교에서 말하는 '사랑'은 독점적 사랑입니다. 독점적 사랑은 불행의 씨앗입니다. 그들은 거짓 사랑을 가르치며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독점적 사랑을 버리면 인류는 행복해 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행복위에 쌓이는 진짜 열매, 사랑을 찾아야 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는 죄인이 아니며 죄라는 것은 사람이 만든 욕심에 의한 환상입니다. 지금부터 말하려는 것은 죄라는 것을 두둔하기 위함이 아님을 밝힙니다.
우리는 자신의 것을 강제로 혹은 거짓으로 빼앗는 사람들을 죄인이라 부릅니다.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한 욕심입니다. 우리는 살인한자를 죄인이라 부릅니다. 이 역시 자신이 함부로 죽임을 당하는 것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비난하며 비판하는 사람들을 죄인이라 부릅니다. 이 역시 자신이 놀림 받지 않기 위한 욕심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강제하는 자를 죄인이라 부릅니다. 이 역시 자신이 자유롭기 위한 욕심입니다.
예수는 비판받지 않으려면 비판하지 말라 했으나 정작 본인은 수많은 사람들을 비판했습니다. 특히 유대민족과 그들을 이끄는 바리새인, 대제사장, 세례요한까지 또한 예수를 믿지 않는 모든 사람들을 비난하고 비판하며 예수의 입장에서 예수를 따르는 자들은 천국에 가고 그 반대는 죄인이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죄라고 하는 것은 예수와 같이 사람이 만든 욕심에 의한 것입니다. 그래서 죄라고 하는 것은 타인을 구속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우리는 타인을 죄인이라며 손가락질하고 죄인이라며 그를 구속합니다. 나아가 그들이 사회에서 낙오자가 되게하고 그들이 영원히 자신들의 아래에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더욱 더 강한 사회 모임을 만들어 나갑니다.
이제는 사람을 죄인으로 만드는 법이 너무나 많아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 입니다. 이 모든 것이 타인을 구속하여 자신이 그들 보다 위에 있음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욕심에서 비롯 된 것입니다.
'죄와 죄인, 부끄러움, 멸시...' 이 모든 것은 여러분의 생각에 따라 달라 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누구의 편입니까? 다른 사람위에 서기 위해 죄인을 만드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죄인과 함께 하는 사람입니까?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제가 위와 같이 말을 하면 예수와 같은 말을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예수는 아닙니다. 그는 더 많은 죄인들을 만들어 내는 사회악이 되었으며 잘못된 교리를 만들어 사회를 혼란 시킨 사람입니다. 물론 저 역시 아닙니다. 저는 모든 죄를 두둔하고자 하는것도 아니며 예수교리와 예수가 사악하다며 그들 모두를 죄인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헷갈리십니까? 여러분은 생각하셔야 할 때 입니다. 정리하자면 죄라고 하는 것은 자신을 보호하고 타인을 모독하여 아래에 두고자 하는 욕심에서 비롯된 사회악 입니다. 물론 모든 죄를 사회 악이다 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사회에서 걱정 없이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사악한 자라는 것은 예수와 같이 죄인을 만드는 사람들인거 같습니다. 돌고 도는 이야기인것 같지만 우리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너무 사람들을 핍박하며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 봅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의 모임이 죄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의를 행하여 보다 나은 사회로 가는 일원으로 만들기 바랍니다. 물론 구속해야 할 죄인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윤리라는 기준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 기준을 여러분이 새로이 만들어 가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저는 다음과 같이 예수교와 유대교를 한국식의 모임으로 만들어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이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여러분들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 일은 교회와 같이 회당과 집사를 만들고 성경과 같이 역사서와 지혜서를 만들고 목사와 같은 역사학자가 선생님(랍비)이 되고 찬송가를 버리고 위인과 역사를 찬양하는 노래와 일반적인 가요를 부르고 독점적 선교를 버리고 타민족을 이해하고 그들의 민족이 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도록 가르치고 전파해야 할 것이며 창조과학 보다는 많은 정보를 공유 할 수 있는 모임을 만들며 선교를 위한 봉사가 아니라 순수한 봉사를 공개적으로 하고 기도와 신앙고백을 버리고 이웃에게 기도하는 여론을 형성하여 종교의 정치화가 아니라 시민의 정치화를 이루기 바랍니다. 이리하여 새로운 시대를 열기를 바랍니다. 이는 여러분 각자의 동네와 마을에서 동에서 시에서 구에서 여러분 만이 할 수 있는 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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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새로운
교는 필요치 않습니다. 유대인들이 작금 저지르는 죄악을 생각하면 그들은 영원히 사라져야 할 인
임에 틀림이 없다 하겠습니다.
기존의 모든 종교는 사라져야 합니다.
워런교라고 조선일보에 나오는 네요 왜 새로운 종교가 필요 하냐면 종교 해체지요 다닥다닥 마트가 있으면 장사 망하듯 자꾸 종교가 나오면 종교 망합니다.그래서 너도 교주 나도 교주 이렇게 하므로 해서 종교가 설 자리를 없게 하는 것이지요
눈을 떠님... 위의 새로운 종교가 종교로 이해하셨다면 잘못 이해하신 것입니다. 다시 읽어 보세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