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수행자들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오늘도 수련에 용맹정진하고 있다.
그 수련의 핵심은 단전호흡이다.
그리고 경전을 탐구하며 앎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우리 몸에는 7개의 차크라(단전)가 있고
이 차크라와 연관된 많은 경락이 존재하며 이 경락을 여는
수련법이 단전호흡이다.
경락이란 의식(마음)이 작용하는 통로이며
의식은 차크라를 통해 우주의 모든 차원과 연결되어 있다.
경락은 해부학적 신경계와 유사하다.
차크라는 순서대로 열리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모든 차크라가 동시에 조금씩 열린다.
이러한 차크라가 모두 열리면서 깨달음이 온다.
우주와 내가 하나 되는 우아일체(宇我一體)를 체험하게 된다.
스스로 인식하든 못하든 차크라가 열리는 과정 없이는
깨달음은 찾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강렬하다.
기독교 종교인들에게도 이러한 체험이 일어나며
기(氣)에 대한 인식이 없기 때문에 성령의 작용으로
해석하고 있을 뿐이다.
근원 속으로 녹아 들어가는 소위 깨달음이란
모든 종교에서 말하는 구원을 의미한다.
그런 측면에서 나는 지금까지 알려진 지구인 중에서
구원된 사람을 열 명도 보지 못했다.
외계인들과 지구인들과의 차이는
몸의 차크라가 얼마나 열려있느냐의 차이다.
그렇다고 외계인들의 차크라가 완전히 열려있는 것은 아니다.
비물질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영계가이드들만이
근원 속에 녹아있는 순수한 존재들이다.
그러나 지구인들의 차크라는 지구의 부정성과
밀도 높은 물질적인 몸으로 인해 거의 닫혀있다.
그래서 형이상학적 세계를 인지하지 못하고
물질 속 오감의 세계에 갇혀 우주에서 가장 힘든 삶을 살고 있다.
내게도 2004년 차크라가 열리는 체험이 있었다.
단학수련 단체와 인연을 끊고 몇 년이 지난 뒤였다.
빚도 있는데, 스포츠마사지 샵을 열었다가 망해서
신용불량자가 되어 막노동을 하며 몸과 마음이 힘든 시간들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이러한 혼란한 마음 상태에서도 차크라가 열린다는 것이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것과도 달라 나도 놀라웠다.
그리고 나는 단학수련을 몇 년 한적이 있었지만
호흡수련이라든가 수행이란 걸 깊이 해본 적이 없다.
어느 날 심한 두통과 함께 밤새 많은 콧물을 쏟아내며
머리쪽이 정화되고 있었다. 딱 잘라 주로 우뇌쪽이었다.
사실 얼마 전부터 생각들이 사라지는 변화가 시작되었다.
나는 차크라가 쉽게 열리는 영매체질이기도 하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몸 주위에 부드러운 기운이
온 몸을 감싸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우주의 모든 것들을 다 알것같이 느껴졌다.
이후로 몇 년 동안에 걸쳐 많은 영적체험들이 일어났다.
척추의 독맥이라는 경락을 타고 강렬한 기운이 올라와
호흡과 함께 가슴의 임맥을 타고 내려가며 기가 순환되고 있었다.
이것이 자율적으로 이루어지는 단전호흡이며
경락의 열림과 함께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단전호흡이다.
내 경험으로는 모든 경락이 열리기 전에 먼저 열리는 것은
정수리의 백회혈과 전정혈이다.
수행자들은 차크라가 닫힌 인위적인 단전호흡을 하고 있다.
그리고 가슴차크라가 먼저 열려야 하는 것이 호흡의 발전 단계다.
가슴차크라는 우리의 마음(의식)이 머무는 자리이다.
감정이 정화되지 않고는 차크라가 열리지 않음을 의미한다.
존재 내면의 부조화는 인간의 의지와 수행으로
정화하기 어려울 뿐더러 일정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
또한 부정성의 정도도 존재마다 각기 다 다르다.
따라서 깨달음의 정도도 몸에 깃든 존재에 따라 다르다
우리나라에도 깨달음의 과정을 체험하는 분들이 많다.
전생에서 수행의 기억들이 축적된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수행자들에게서 인간의 감정에서 해방되어
더 깊은 깨달음으로 이어지는 경우를 보기 어렵다.
나도 그 이상의 단전호흡으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잠깐 깨달음의 과정을 맛보고 만 것이다.
진정한 깨달음은 인간의 감정이 전혀 없는
순수한 존재가 육체에 깃들게 될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내게 순수한 존재가 잠깐 깃든 것도 그로부터 몇 년 후였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차크라가 다시 닫혀있다.
생각을 멈추고 가슴 차크라에 집중하며 호흡하는 것은
상기증에 도움을 주고 마음을 안정시켜준다.
가슴 차크라가 이완되어야 호흡이 저절로 하단전까지 깊어지고
머리는 맑아지고 시원해진다. 이것이 호흡의 발전 단계다.
그러나 나는 상기증으로 힘든 순간 말고는
단전호흡 수련 등이 필요함을 느끼지 않는다.
그것이 상기증을 치유하고 깨달음을 가져다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깨달음은 수행과는 상관없이 일어나는 현상이며
수행자의 삶을 선택하든 종교인의 삶을 살아가든
모두 존재의 성향에 따른 다양한 지구적 체험 중 하나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삶이라는 체험을 통해
자신에게 필요한 기억들을 축적하는 것이다.
그 기억들은 지구대변혁을 통해 존재 내면의 부조화를
자각하게 만들고 근원을 다시 기억하도록 이끌 것이다.
내 삶이 곧 수행이며
그것이 우리가 지구에 온 목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