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보다 둘
구름도 누워 잠자다 간다는 산골 마을에서 육남매를 토실토실 잘 키워
도시로 떠나보내고
내 새끼
탯줄 묻힌 이곳을 떠날 수 없다며
남은 인생의 무게를 기꺼이 짊어지며
살고 있다는 노부부는
힘들었던 지나온 세월마저
삶에 거름이 되어 고맙기만 하답니다
마당에서
놀고 있는 닭 한 마리를
뒤뜰 한켠에서 삶아 온 할아버지는
“임자..
얼렁 먹지 않고 뭘 혀 ?‘“
“속이 메쓱거리고 요 며칠 전부터 입맛이 없으니 영감이나 많이 드슈”
할아버지는
누워 있는 할머니를 자전거에 얼른 태우고 야속한 하루해를 붙들고
읍내에 있는 작은 의원으로
가 보았지만
큰 병원으로 가보라는 이야기만 듣고
집으로 돌아와 앉았습니다
“영감
아무래도 큰 병인가 보네요”
“재수 없는 소리 말어.”.
내일 해 뜨자마자
도시에 있는 큰 병원에 가자며
떨리는 할머니의 두손을 꼭 쥐여준 채
잠이 든 할아버지는
새벽녘 길을 잃고
울고 있는 별들의 울음소리에
선잠을 깨고 일어나보니
옆자리의 할머니가 보이질 않습니다
이리저리
훑어보던 할아버지 눈에 부엌 한편에서 음식을 만들어 놓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는
“더 자지 않고 왜 일어난겨?”
“혹 내가 입원하면 영감 먹을 거라도 만들어놓고 갈려고요”
“지금 그게 문제여?”
할아버지는 알고 있습니다
할머니의 고마움을요
하지만 지금은 서둘러 병원에 가는 게
우선이기에 장롱에서 일 년에 한 두번 입어 본 어색한 옷을 입혀 도착한 병원에서 이런저런 검사를 받은 할머니는 입원하라는 의사의 말에 큰 한숨부터 내쉽니다
“할머니…
아들 집에 놀러 와 며칠 푹 쉬다 간다
생각하시고 편히 계세요”
아침을 기다리고 있는 해님 몰래
새벽을 걸어 나온 할아버지가
집에서 이런저런 것들을 챙겨와 보니
할머니의 모습이 보이질 않습니다
“여긴 왜 온겨?”
하루 온종일 찾아 헤매다 집에 와 있는 걸 본 할아버지는 화가 많이 나신듯 다시 묻고 있었습니다
“치료 안 받고 여긴 왜 온겨?”
“병원비가 얼매나 비싼데..
그냥 죽으면 되지 우리가 돈이 어딨대유”
“돈이 없긴 왜 없어
사방천지가 다 우리땅인디…“
자식들 먹이고 키우고 장가보내느라
다 팔아먹은 땅을 아직도 내 땅이라고 객기를 부려본 할아버지는
결국 병원비 때문에 겁을 먹고 돌아와 잠든 할머니의 모습을 애잔하게 바라보던 그날 밤
달님과 함께
막걸리를 밤새 나누어 마셨답니다
다음 날 아침
오늘도
어김없이 햇살을 따라나온 가을바람이 허틀어놓은 마당에서 빗질을 하는 할아버지는
매일매일 하는 이 빗질에
어제의 걱정을 쓸어내기라도 하려는 듯 땀을 흘리는 수고로운 모습에도
할머니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토라져 있는데요
"임자...
오늘 장인데 읍내에 가자구?"
할아버지의 말에도 가지런하고 정갈한 하루를 베고 누운 할머니는
"안 가요
영감 혼자 다녀오시구려"
할아버지는
고집 센 할머니와 다툼이 되지 않을
적당한 마음의 온도를 알고 있기에
녹슨 자전거에 올라 뒷자리에
앉아야 할 할머니 대신
고운 햇살 한점을 앉혀놓고 천천히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거 인절미 하나만 주슈”
할아버지는 장을 돌면서
할머니가 좋아하는 인절미도 사고
예쁜 참빗도 사셨는데요
할아버지는 바지춤에서 꺼내 든 돈으로 전당포로 들어가더니
빛바랜 은비녀 하나를 들고나와
동그랗게 그려진 할머니의 사랑을
노을빛에 담아가지고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한편
집 앞까지
내려온 산 그림자를 안고 누워있던
할머니는
단걸음에 벌써 도착하고도 남았을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이질 않아
마을 어귀까지 나와 있습니다
“이 것 받어 생일선물이여“
“........영감.
병원비 한다고 잡힌 건데
뭔 돈이 있어 찾았대유..“
“미안혀 늦게 찾아줘서“
“고마워유. 영감.”
“내일 병원에 입원할 거니까
준비혀 의사가 치료 잘 받으면 낫는다잖아“
“영감은 왜 의사가 입원하라는데
말을 안 듣고 나왔슈 ?”
“내야 막걸리 몇 사발 먹으면 낫는 병이래 ”
할아버지는 알고 있습니다
좀 더 살아볼 거라고
하나 있는 집마저 팔아버리면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 감사했던 시간은 가고 남아있는 할머니가 결국 자식 집으로 원치 않는 길을 떠나야 한다는 걸요
“그야 임자 걱정이 되어서 그랬지 ”
“나도 마찬가지 유
영감 안가면 나도 안가 유"
“그려 ..
우리같이 병원에 가더라고..“
내가
오래 묵으면
우리가 되듯이
모든 날
모든 순간이 우리였기에
잊어야 하는 그 순간까지
함께하자며
두 손을 마주 잡고 단잠을 든
두 사람은
밤새 달려온 아침을 따라
곱게 단장한 머리에 은비녀를 꽂고
동그란 두 바퀴에 사랑을 감으며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하나보다 둘일 때
아름다운 게 부부이기에..
펴냄/노자규의 골목 이야기
카페 게시글
$ 우리들의 이야기
하나보다 둘 - 노자규
추웅처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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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9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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