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김씨 경파(京派) 〉
금녕군파(金寧君派) : 김목경(金牧卿),
참판공파(參判公派) : 김영견(金永堅),
횡성공파(橫城公派) : 김영서(金永瑞),
안경공파(安敬公派) : 김영정(金永貞),
석성공파(石城公派) : 김영순(金永純),
호참공파(戶參公派) : 김진서(金震敍),
참찬공파(參贊公派) : 김달문(金達門),
봉상공파(奉常公派) : 김현문(金顯門),
밀직사공파(密直使公派) : 김창문(金昌門),
문간공파(文簡公派) : 김저(金著),
밀직공파(密直公派) : 김수(金秀),
평장사공파(平章事公派) : 김란(金蘭)
가선공파, 남강공파, 문절공파, 병조참의공파, 성균진사공 영변공파, 제학공파,
직암공, 진국파, 참봉공, 충정공(김우항 / 별명;갑봉파), 판서공파, 천주교 성인공파,
안경공(安敬公) 김영정(金永貞)께서는
조선 전기의 문신이시며 증호조판서 김진손(金震孫)의 아들이며, 이조참판 김영견(金永堅)의 동생입니다.
1475년 목천현감에 제수되었으며, 성절사검찰관으로 북경(北京)에 다녀왔고, 이듬해 사간원정언을 거쳐
1481년 사헌부지평·성균관직강을 역임하고,
1484년 예조정랑이 되었습니다.
1492년 행사헌부집의가 되고
1494년 봉상시정으로 백악·삼각산행향사(白岳三角山行香使)를 맡았고,
1497년(연산군 3) 대사간,
1498년 우부승지·대사헌을 거쳐 정조사로 북경에 다녀왔습니다.
1499년 지돈녕부사로 하정사에 발탁되어 다시 북경에 다녀왔으며,
1500년에도 도총관을 거쳐 정조사로 북경에 다녀왔습다.
1502년 지돈녕부사를 거쳐 이듬해 전라도관찰사를 겸하였습니다.
1505년 사노비를 내수사에 소속시켰다 하여 비판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시호(諡號)가 안경(安敬)이기 때문에 그 자손들을 안경공파라고 합니다.
김해김씨(金海金氏)항렬표(行列表)
金寧君諱牧卿派(금녕군 휘목경파/경파)
20세 : 顯(현)○,
21세 : ○培(배),
22세 : 鍾(종)○,
23세 : ○泰(태), 洙(수),
24세 : 榮(영)○,
25세 : ○燮(섭), 謙(겸),
26세 : 在(재), 載(재)○,
27세 : ○鎭(진),
28세 : 浩(호)○,
29세 : ○根(근),
30세 : 性(성), 炳(병)○,
31세 : ○用(용), 坤(곤),
32세 : 錫(석), 鎬(호)○,
33세 : ○淳(순),
34세 : 東(동)○,
35세 : ○煥(환), 烈(열),
36세 : 重(중)○,
37세 : ○鎔(용), 善(선),
38세 : 洛(낙)○,
39세 : ○相(상)
40세 : 炯(형), 炳(병)○ ,
41세 : ○基(기), 奎(규)
출처
https://cafe.daum.net/kimc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