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천문학(古天文學)으로 본 단군조선사
우리 한민족의 고대사는 그야말로 소문만 무성한 옛 절터와 같다고나 할까.
상고시대에 우리 옛 나라들의 변천과 흥망을 밝히기 위하여 역사학자들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으나, 소위 삼국시대 초기와 이전의 고대사는 만족할 만한 풍부한 내용과 체계성을 아직 갖지 못하다는
것이 중론이 아닐까 한다.
본인은 역사학자들의 연구에 조그만 도움이 되고자 고대사 연구의 한 가지 방법을 1993년에 제시하였다.
그 방법은 연구 대상 측면에서는 자연현상을 기술한 고대의 문헌 및 금석문 기록을 역사 복원에 이용하는 것
이었다.
또 연구 방법론적 측면에서는 천체역학적 계산에 의한 과거 기록의 검증법 뿐만 아니라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과
통계적 가설검증에 의해 객관적 결론을 도출하는 과학적 기술을 특히 강조하여 제시하고자 하였다.
우리 민족의 상고사에 대한 현존하는 기록과 유물, 유적은 너무나 부족하여 연구에 한계가 있다.
그러나 이미 있는 기록들에 마저 등을 돌린다면 우리의 옛 역사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우리의 역사는 결국 역사학자들의 손에 의해 규명되고 완성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역사를 연구하는 모든 분들이 각자의 역사관을 절대적 신앙으로 지키지 않고 이견(異見)을 환영
하며 서로에게 귀를 기울이는 포용력을 발휘하리라 생각한다.
이 발표문은 고 라대일 박사와 본 발표자가
1993년 9월 한국상고사학보 제14호에 발표한 논문을 간략히 정리한 초록에 해당한다.
단군조선시대 천문현상기록의 과학적 검증 초록
단군조선 시대의 역사가 기록된 현존하는 대표적인 사서로는
발해시대 대야발 (大野勃)이 쓴 단기고사와 고려시대 이암(李癌)이 쓴 한단고기의 단군세기 편이 있다.
이 책들에는 10회의 일식기록, 1회의 오행성(五行星) 결집과 강한 조수현상 등의 천문현상 기록들이 있었다.
또한
3회의 양일병출(兩日竝出, 두 해가 나란히 뜸) 기록,
1회의 백일관홍(白日貫虹, 흰 태양이 무지개를 뚫음) 기록,
4회의 지진기록 외에 홍수, 가뭄, 태풍 등 다수의 자연현상기록을 찾을 수 있다.
이런 자연현상이 실존하였음을 증명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이 사서들의 문헌학적 가치를 증명하는 것이고,
따라서 단군조선의 역사적 실재성을 입증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천체현상들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해와 달과, 수성에서 토성에 이르는 오행성들의 위치 계산을 하여야
한다. 그 결과를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10회에 걸쳐 나오는 일식기록들은 실제 일식현상과 비교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그 이유는 연대가 불확실한 일식기록들이 이 사서들에 약 100년에 한번으로 매우 드물게 수록되어 있는 반면,
실제 일식은 수년에 한번 꼴로 빈번히 일어나기 때문이다.
각 단제(檀帝)의 제위 시기를 서력으로 정확히 바꿀 수 있지 않는 한 일식 기록은 유용하지가 못하다.
이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일식이 일어나는 위치를 이용하여 관측자의 위치를 찾을 수 있고,
따라서 단군조선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역사학자들이 이 연대문제에 좀 더 관심을 기울여 준다면 이 기대를 아직 포기하지 않아도 되리라.
둘째로
BC1733년에 일어났다고 기록된 다섯 행성들의 결집 현상을 검증하기 위하여
BC2000년에서 BC1450년까지 550년간 오행성들의 위치를 계산하였다.
그 결과 이들이 하늘에서 가장 가까이 모인 때는 BC1953년 2월 25일이고,
두 번째로 가까이 모인 때는 BC1734년 7월 13일이었다.
따라서 단기고사와 한단고기에 나오는 오행성 결집기록은 BC1734년에 일어난 현상과 쉽게 관련지어 생각할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위의 두 사서가 현실과 무관하게 쓰인 위작이라면 자연현상 기록이 임의의 해에 등장할 것이고,
이 경우 기록이 실존했던 자연현상과 1년 차이로 우연히 들어맞을 확률은 얼마인가?
오행성 결집의 경우 550년간 2회의 강한 결집이 있었고,
그중 하나가 기록과 1년 차이로 있으므로
무작위 과정에 의해 이러한 정도의 일치를 보일 확률은 22/550 = 0.007이다.
따라서 이런 기록을 무작정 사서에 삽입해서는 이 정도의 일치를 보이기가 매우 힘들다.
셋째로 BC935년에 있는 강한 조수현상 기록도 비슷한 결론을 준다.
이 해를 주위로 200년간 해와 달의 위치로부터 지구에 미쳐지는 조석력을 계산한 결과, 4년 후인 BC931년 11월
22일 최대 조석력이 지구에 미쳐졌다.
우연히 이 정도의 일치를 보일 확률은 18/200 = 0.04이다.
이로부터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최소한 이 두 기록만은 실제 역사를 기록한 것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그리고 좀 더 넓게 유추하면 이 사서들에는 실제 역사가 아닌, 후대에 첨가되고 윤색된 내용도 여럿
있지만, 이 사서들이 기본적으로는 실제 역사에 기초되어 쓰였다는 것이다.
(졸저. 하늘에 새긴 우리 역사 참조)
(박창범 약 력)
- 서울대학교 천문학과 졸업
- 미국 프린스턴대학 천체물리학과 박사
- 우주론·외부은하·고천문학 연구
- 서울대학교 천문학과 교수
- 고등과학원(KIAS)의 물리학부(2003. 9월)
삼국의 활동무대는 중국대륙일수도
서울대 천문학과 박창범 교수는 「삼국사기」에 기록된 천문현상을 검증한 결과 삼국의 활동무대가 한반도가
아니라 중국대륙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밝혀냈다.
이같은 결과가 애초의 연구목적은 아니었다.
박교수는 「삼국사기」의 천문기록이 중국의 기록을 베꼈거나 꾸며낸 것이라는 일본 천문학자들의 주장에
의문을 품었다.
박교수는 이를 검증하기 위해 삼국시대의 천문상태를 재현한 프로그램을 짜고 이를 대학의 중앙컴퓨터에 연결
해 가동시켰다.
시간이 흘러 방대한 관측결과가 나타나자
금성이 낮에 보이는 현상과
달이 행성을 가리는 현상,
일식현상
등에 대한
「삼국사기」의 기록들이 정확하게 컴퓨터의 계산과 일치했으며, 중국의 문헌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기록이었다.
삼국이 중국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천문현상을 관측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
그런데 실험결과 더욱 놀라운 사실이 발견됐다.
삼국에서 주기적으로 관측한 일식기록을 분석한 결과 삼국의 최적 관측지점이 한반도를 벗어나 중국 동부지역에
걸쳐 있었던 것.
초기 신라의 경우 중국의 양쯔강 유역,
백제는 발해만 유역,
고구려는 백제보다 더 북방에 최적 관측지가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같은 결과에 대해 박교수는 매우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이를 근거로 삼국의 무대가 중국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것.
그는 “내 역할은 과학적인 실험결과를 제시하는데까지며, 삼국의 관측지점이 왜 중국 동부에 있었는지 밝혀내는
것은 역사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몫“이라고 말한다.
아직 학계에서 제대로 소화되지 않은―그것도 다른 분야의 학자가 제기한―「돌출적인」 이론이 일반인에게 직접
소개되면 불필요한 오해와 반발을 야기할 수 있다고도 우려했다.
그러면서도 “「삼국사기」의 내용 가운데 40% 정도는 자연현상과 관련된 기록인데도 많은 학자들이 이를 외면
하고 나머지 60%의 기록만으로 역사를 해석하는 것이 아쉽다“며 그 「40%」의 가치와 효용성을 강조했다.
(출처) 異論/異說 주간동아 1998-12-03 0161호
(박창범 교수의 답변)
"삼국시대 천문관측 연구 논문을 발표한 이후 국사학을 전공하는 어느 학자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천문학이나 열심히 할 것이지 왜 남의 학문에 끼여들어 근거도 없는 말을 하느냐“라는 것이었다.
무엇이 근거가 없는지를 대보라고 하니까 국사학자들이 연구하고 판단한 상식과 맞지 않는다는 겁니다.
저는 과학자입니다.
과학자는 과학적인 결과만 놓고 말할 뿐입니다. 과학적으로 연구 결과가 틀렸다면 얼마든지 정장할 용의가
있습니다.
그러나 과학적 연구결과를 인정한다면 학문에 있어서 다시 생각해 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러면서 박교수는 왜 역사가 국사학자들만의 것이냐고 반문했다.
한국인이면 당연히 한국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 보는 것이 상식적이지 않느냐는 것이다.
(자연현상 기록을 이용한 삼국의 위치 고증)
- 1994년도에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식 논문 발표전 내용이다
고려시대에 집필된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일연의 삼국유사에는 삼국시대에 일어난
일식(日蝕)이 67회,
행성(行星)운동의 이상현상이 40회,
혜성(彗星)의 출현이 63회,
유성(流星)과 운석(隕石)의 낙하가 42회,
기타 14회 등
총 226회의 많은 천체 현상들이 기록되어 있다.
중국과 일본의 고대 사서에도 나타나는 이러한 천문현상 기록들은 각 국 고대과학의 수준과 역사를 가늠하는
척도로서 인식되기도 한다.
천문현상에 대한 우리의 고대 기록들은 그동안 국내외 학자들에 의하여 연구되어 왔다.
그런데 이 천문현상 기록들은 순수 과학적인 그리고 과학사적인 가치뿐만 아니라,
고대 역사학에도 그 응용가치가 있다.
그 이유는 천체에 대한 기록을 당시 주변 국가들의 기록과 비교함으로써 과학 문물의 흐름을 알 수 있고,
또한 특정 국가가 남긴 천체 관측 기록을 분석하여 정세변화, 강역의 위치 등을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천문현상 기록뿐만 아니라, 지진(地震), 홍수(洪水(, 태풍(颱風) 등의 기상학적, 지질학적 기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자연현상 기록은 다양한 가치를 갖는다.
이 기록들을 이용하여 본문에서 논의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나라 고대 삼국의 위치를 추적하는 것이다.
천체 관측 기록으로부터 관측을 수행한 나라의 위치를 알아볼 수 있다는 생각은 일식과 같은 현상의 경우 달
그림자가 지구상의 모든 곳에 드리워지지 않기 때문에, 일부 지역에서만 식(蝕)의 진행을 볼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또한 여러 해 동안 한 장소에서 일어난 일식들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위치가 관측자의 위치, 곧 그 국가의 위치가
되리라는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일식을 이용한 삼국의 위치 고증에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하였다.
첫째는
특정 국가가 기록한 일식들에 대응하는 천체역학적으로 계산한 실제 일식들의 진행상황을 동아시아 전역에서
조사하여, 그 일식들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최적 관측지를 찾는 방법이다.
다음 쪽에 나오는 세 도표의 평균 식분도는
신라(24회)와
백제(19회)와
고구려(8회)
에서 기록한 일식 중 동아시아에서 관측할 수 있는 일식들의 평균식분을 보여준다.
윤곽선 안쪽 지역으로 갈수록 평균식분이 크며, 이것은 곧 그 기록을 남긴 국가의 위치를 암시한다고 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삼국의 일식을 가장 잘 관측할 수 있는 곳이, 세 경우 모두 한반도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일식 기록 횟수가 적은 고구려의 경우에는 최적 관측지가 확실하게 나타나지는 않지만,
대체로 백제나 신라의 경우보다 북쪽에 치우쳐 있음을 알 수 있다.
최적 관측지가 확실히 보이는 백제와 신라의 경우에는 각국의 관측자가 발해만과 양자강 유역에 각각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삼국의 위치를 찾기 위한 두 번째 방법으로는
앞의 방법과 정반대로 개개의 일식을 볼 수 없는 지역을 제거해 나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특정 국가가 기록한 일식을 모두 볼 수 있는 지역을 바로 그 국가의 위치로 생각하는 것이다.
다음 쪽의 세 도표에서 잔 점들을 찍은 곳이 바로 이런 지역이고, 바깥으로 나갈수록 1개, 2개 또는 그 이상의
일식들은 기록이 되어있음에도 볼 수 없는 지역이다.
분명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백제와 신라의 경우 기록된 일식을 많이 볼 수 있는 지역이
앞에서 보인 최적 관측지와 일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신라의 경우 관측자가 경주에 있다면, 동아시아에서 관측 가능한 24개 일식 중 2개를 전혀 볼 수 없다.
백제와 신라가 현재 중국의 동쪽 지방에 있었다는 생각은 최근 일부 재야 사학가들에게서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본 연구의 결과는 그들의 주장과 상당히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천체 관측만을 이용한 본 연구 내용에서만 생각하면,
왜 기존 역사관과 달리 백제와 신라의 위치가 중국대륙에 있다는 결과가 나왔는가에 대하여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삼국사기에 실린 일식기록이 중국기록을 차용한 것일 가능성이다.
삼국의 천체관측 기록은 일제 식민지 시대부터 일본학자들에 의해서 꾸준히 연구되어왔다.
천체역학적 계산과 사료 비교를 통해 그들은 적어도 5세기까지의 삼국사기 천문현상 기록들은 중국이 그대로
베낀 것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1910년대에서 현재까지의 이러한 연구 결과는 국내외적으로 상당한 인정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국내에서 출판되고 있는 과학사 서적들에도 이런 주장이 긍정적으로 언급되고 있으며,
구미에서는 사실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일본학자들의 주장에는 논리적 타당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는 같은 문제에 대한 국내 학자들의 연구가 필요한 시점에 와 있다고 할 수 있다.
둘째는
백제와 신라가 실제로 중국대륙 동부에 있었을 가능성이다. 따라서 일식기록도 삼국의 독자적인 천체 관측 기록
들일 가능성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본 연구의 결과는 삼국의 위치가 분명 중국대륙에 있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알려져 있는 우리나라의 고대역사는 심하게 왜곡된 것이고, 바로 잡혀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의 역사를 진실에서 벗어나 이(異)민족이 보고 싶은 대로 왜곡시켜 후손에게 전해서는 더욱 안 될 것이다.
(완)
이 강의록은 논문이 공식적으로 발표되기 전에 발표된 것입니다
이후 박교수는 삼국사기 천체기록은 일본놈들 말처럼 베낀 것이 아닌 독자기록임을 입증하여 삼국사기 초기
기록의 정확성을 입증하였다
(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