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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박2일 원정산행
일자:6월13일~14일 산행지:강화 마니산(472.1m).석모도
강화도 남서단에 위치하고 한반도의 중앙에 자리잡고 있어 마니산을 중심으로 한라산과 백두산까지의 거리가 같다. 마니산이 단군이 제천할 정도의 명산으로 용이 승천하고 용마가 나왔으며, 신선이 사는 곳으로 72대 왕후장상이 나올 곳이라 한다. 마니산 정상에는 단군성조께서 하늘에 제천의식을 봉행하신 참성단이 있으며 ‘88 세계 장애자 올림픽을 비롯 매년 전국체전시 성화를 채화 봉송하고 있는 민족의 영산이다. 등산로를 따라 918개의 돌계단을 올라가노라면 서해바다 풍경이 한눈에 들어와 아름다운 경치를 만끽할 수 있으며, 동쪽 기슭으로 신라 선덕여왕때 지은 정수사 법당 살문짝 꽃무늬의 아름다움도 즐길 수 있다.
사용료 1,500원을 지불하고 통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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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로를 따라서 계속 오르다가 여기서 오른편 참성단 단군로로 빠진다. 앞으로 가면 빠른 길이나 계단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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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도초등학교 방향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 정취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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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허동천 계곡에서 이 도로를 타고 야영지를 오른편에 끼고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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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코스▣
마니산주차장-매표소-단군로-삼거리-참성단-마니산정상-
삼거리-함허동천전망대-함허동천주차장 (6.4km, 3시간)
석모도 보문사.마니산 전등사
보문사의 경우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는 사찰입니다.
요새야 보통 입장료를 다 받기에 그런가 합니다만 가끔씩
입장료가 없는 사찰도 있기 때문에 이런 건 자발적으로 나올 때 내는 걸로 해도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어디든 입장료가 있으면 그만한 가치가 있는가 생각을 해보게 되는데
석모도는 왕복 16000원의 차량 입장료에 성인 2천원, 소인 1천원의 입장료가
이 보문사로 인해 아깝지 않으네 보문사의 경우는
절에서 보이는 경치가 저 입장료가 아깝지 않게 해줍니다.
뭐 아무튼 많은 분들이 공감하는 의견이 석모도에는 보문사 보러만 가도 좋다는 점
같이 간 친구의 경우는 절이 좋은 점은 부족한 운동을 하게 해주기도 하고
보통 좋은 절은 공기가 좋은 곳에 있기 때문에 들어가면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라고
확실히 좋다고 느끼는 절은 경치도 좋고 공기도 좋은 게 사실 같습니다.
겨울의 끝이 순도 올라오지 않은 나무들만 봐도 이렇게 풍성한 기운인데
초록이 짙어지고 수풀이 우거지면 참 좋겠구나 싶은 보문사
올라오는 길에도 보호수 표지판을 보기는 했지만
석모도에는 수령이 꽤 되는 나무님들이 제법 많은 듯 합니다.
이 냥반은 몇년이나 사셨을까 하고 봤더니 무려 400년을 살아온 나무
이런 나무는 꼭 보호를 해줘서 오래오래 함께 살게 해줘야겠지요.
석모도에 놀러오신 분들은 모두 보문사에 오신 듯
가족끼리 연인끼리 친구들끼리 정말 많은 분들이 보문사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계셨습니다.
무려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된 사찰이라니 그만큼 역사도 오래 되었고
양양 낙산사, 금산 보리암과 더불어 3대 해상 관음기도 도량으로 유명합니다.
절은 역시 불교를 믿지 않더라도 조용한 경내를 거니는 것만으로도
개인 수량이 되는 듯 합니다.
와불전 옆으로 오백나한상과 33관세음보살 사리탑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24시간 나한전에서 스님들의 기도가 계속 이어지고 있어 언제라도 기도를 할 수 있어
불자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다는 보문사
둘러보면서 석가탄신일에 오면 참 좋겠다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러고 보면 명승 사찰은 주요 관광지인 경우가 대다수인 이유가
이렇게 산 중턱에 오래도록 자리를 잡고 불자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았으니
절로 들어오는 입구에 불자들을 위한 식당도 자리를 잡게 되고 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보문사를 방문하기 전 알면 좋은 사찰 예절 중에서 정숙이나 경거 망동하지 않는 것
그리고
자신과 남을 서로 잘 살펴 밝은 도량이 되도록 노력합니다.
경건하고 바른 마음가짐은 인생을 사는 참 진리가 아닐까 합니다.
보문사 극락보전
알면 아는만큼 보이는 것이겠지만 모르고 봐도 참 좋은 보문사
1975년에 지어진 당시 국대 최대의 범종이 봉안되어 있는 범종각
천연석굴사원인 보문사 석실
저 기와에 많은 분들의 소원이 담겨 올라가게 되겠지요.
보문사는 역시 마애관세음보살님을 만나러 가야합니다.
서해 최고의 낙조로 손꼽힌다는 경치가 일품이라니 그만큼 높은 곳에 있다는 의미
조금만 올라와도 멋진 경치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연등을 보고 있노라니 해질녘에 불이 들어오면 정말 장관이겠다 싶습니다.
보문사 야경을 검색해보니 야간에 일부러 보문사 찾아도 좋겠습니다.
마애관세음보살님한테 오르는 길은 가파른 듯 가파르지 않은 가파른(?) 코스입니다.
올라보면 항구쪽에서 이어진 등산로 코스가 참 좋다는 분들이 계시는 곳인데
아이들도 잘 오르는 코스지만 발목이 안 좋아 가파른 건 사실
중간 지점에 가면 용왕단이 자리잡고 있는데 소원을 적은 유리병을 달 수 있습니다.
100일간 이 자리에 두었다가 스님들께서 축원을 하고 소전한다 합니다.
사진 중간 정산을 하기에도 좋은 자리
멀리서 볼 때보다는 그리 힘들지는 않지만 막상 오르고 보면 제법 높습니다.
마애불 발 아래까지 오르면 이런 경치가 펼쳐집니다.
낙조로 유명하다는 이유를 오르게 되면 자연스레 알 수 있습니다.
저 아래 보이는 입구에서부터 걸어올라 온 것이니 제법 한참을 올랐네요.
등산로로도 각광받는 코스라고 하는데 완만하게 이어진 능선을 보면서
산 타는 분들이 참 좋아하겠다 생각이 들긴 했습니다.
다 왔는지 모르고 마애불 아래 쉼터에서 쉬다가 올라가니 바로 도착
서해를 자애롭게 내려다 보고 계신 마애관세음보살
일제 강점기 하에서 만들어졌다 하는데 많은 소원을 들어주시기로 유명세
아마도 대한독립에서부터 아들 점지, 취업, 가족 건강까지
수십년을 수많은 소원을 들어왔을 마애관세음보살
바로 이게 마애관세음보살님께서 보고 계신 경관입니다.
보문사도 좋지만 올라와 보면 역시 하는 이 경관의 아름다움에 반하게 됩니다.
땀 흘리면서 올라와야 할 가치가 있는 경관
전등사
산성에 얽힌 단군과 관련된 전설이 있고 조선왕실의 사고(史庫)수호사찰이었던 전등사
대한이 소한집에 와서 얼어죽는다는 말이 있듯이 하늘은 화창하지만 기온은 매우 차가운 날에 전등사를 찾았다.
전등사는 독특한 절집이다. 산성 안에 절집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등사에는 산문이나 일주문이 없다. 대신 종해루(宗海樓)란 이름을 가진 삼랑성의 남문과 누각이 없는 아치형태의 동문이 절집의 출입구인 일주문 역할을 하는곳이다.
▲ 겨울나무가 도열하듯 반기는 전등사로 오르는 길 ⓒ 2015 한국의산천
▲ 전등사 기념품을 파는 가게를 보니 어린 시절 수학여행왔던 시절이 떠오른다 ⓒ 2015 한국의산천
중학교때인가 이곳 전등사로 수학여행을 왔다. 인천에서 배를 타고 왔는데 오다가 썰물때 갯벌에 배가 얹혀서 있다가 반나절 있다가 밀물때 이곳에 왔던 추억이 떠오른다. 참 오래전 이야기이다. 세월이 유수와 같구나.
▲ 전등사 남문 출입문 종해루 ⓒ 2015 한국의산천
대개의 사찰이 일주문으로부터 시작되는 것과는 달리, 전등사는 성문(남문)이나 동굴처럼 생긴 아치형의 문(동문)을 통과해야 한다. 이것은 전등사 전체가 산성으로 둘러싸여 있는 이 산성이 단군이 세 아들을 시켜 쌓았다는 정족산성이다.
고대에 흙으로 만든 토성이었던 것을 삼국시대에 고려, 조선을 거치면서 더욱 튼튼하게 보강되었다. 성 안에는 전등사와 정족산 사고가 있고 원래 동서남북 네 개였던 출입문은 현재 동문과 남문만 사용되고 있다. 이 두 개의 문이 전등사의 출입구로, 독특하게 다른 절의 일주 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 작은 아치형의 전등사 동문 출입문 ⓒ 2015 한국의산천
이곳이 전등사의 일주문 역할을 하는 동문 아치 성문으로 많은 아이들이 올라온다. 멀리서 여행온듯한 모양이다.
단군 왕검이 세 아들(부루, 부소, 부여)에게 봉우리 하나씩 성을 쌓게 하여 만들었다고 전해오는 삼랑산성 안에 자리 잡은 절집의 위치도 유별나지만,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한 '정족산사고'를 지킨 조선왕실 종찰로서의 사격(寺格)도 이채롭다. 사고수호사찰(史庫守護寺刹)은 전등사와 함께 월정사(오대산사고), 안국사(적성산사고), 각화사(태백산사고)뿐이기 때문이다.
▲ 삼랑산성 ⓒ 2015 한국의산천
국가사적 제130호로 지정되어 있는 삼랑산성은 삼국시대 토성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으며, 고려시대에 이어 조선시대에도 산성을 보수하거나 새롭게 쌓은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삼랑산성은 타 지역의 산성과는 달리, 성내에는 오직 전등사만 있기 때문에 역사성과 희귀성을 함께 간직한 산성으로 유명하다.
산성의 전체 길이는 2.3km로 높낮이의 편차가 크지 않기 때문에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누구나 쉽게 올라 일주를 할 수 있다.
전등사 대웅전으로 가기 위해서 남문이나 동문으로 올라와 두 길이 합치는 지점에 이르면 2층 건물이 보이고 1층 전면에는 '전등사'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이 건물이 바로 전등사의 불이문 구실을 하는 대조루이다. 이곳을 지나려면 천장이 유난히 낮아 허리를 굽히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을 통과하면 바로 대웅전이 나타나며 법당의 부처님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기도 하다. 아마도 겸손한 마음으로 절에 들라는 뜻이기도 하겠다.
대조루에는 1726년 영조 임금이 직접 전등사를 방문해서 썼다는 '취향당'이라는 편액을 비롯해 추사가 쓴 '다로경권' 등 많은 편액이 보관되어 있다.
본래 대조루는 기도를 하거나 법회를 열던 공간이었으나 지금은 불교 서적과 기념품 등을 파는 곳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곳에 올라 보면 남동쪽으로 멀찌감치 강화해협이 내려다 보인다. 강화해협은 일명 '염하'라고도 부르는데 이 염하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 전등사 대조루이다.
기록에 따르면 전등사는 고구려 소수림왕 11년 (서기 381년) 고구려의 승려 아도화상에 의해 '진종사'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들어온 지 9년만의 일이다. 이후 고려 말인 1282년, 왕비 정화궁주가 절에 옥등을 시주하면서 '전등사'라는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불교에서 '등'은 부처의 가르침을 뜻한다. 때문에 전등사라는 이름은 '불법을 전하는 사찰'이라고도 해석된다.
조선 선조 38년(1605)과 광해군 6년(1614)에 큰 불이 일어나 절이 모두 타버려, 그 이듬해 다시 짓기 시작하여 광해군 13년(1621)에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고 한다.
대웅전 지붕의 네 귀퉁이, 날아갈 듯 하늘을 향해 들려있는 추녀 아래에 이상한 형상의 조각들이다. 이 조각을 두고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석가모니의 전생 중 하나인 흰 원숭이라는 주장도 있고, 불교의 악귀 중 하나인 나찰상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그런 여러 설 중에서도 가장 많이 회자되는 이야기가 벌거벗은 여인의 형상, 곧 '나부상'또는 나녀상(裸女像)에 관한 한 도편수와 주모의 그럴싸한 사랑 이야기가 전해진다.
석가여래삼존불을 모시고 있는 대웅전은 광해군 13년(1621)에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한 장식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전등사는 단아하다. 고즈넉하다. 크지 않아 편안하다. 정족산의 삼랑성(三郞城) 안에 있다. 삼랑성은 단군의 세 아들 부여 부우 부소가 쌓은 2.3km 길이의 성이다. 전등사는 일주문이 따로 없다. 삼랑성 남문과 동문이 곧 일주문 역할을 한다.
1866년 병인양요 당시 조선군 양헌수 대장(1816∼1888)은 바로 이 남문 동문에 300여 명의 포수를 나눠 배치했다. 11월 9일 프랑스군 160명이 이 두 성문으로 공격해 오자, 일제 사격을 퍼부었다. 적군은 사망 6명 부상 60여 명의 흔적을 남기고 퇴각했다. 조선군은 전사 1명, 부상 4명뿐이었다. 성 안의 정족사고에 있던 조선왕조실록이 무사했던 것도 바로 이 승리 덕분이었다.
▲ 나부상인가? 원숭이 상인가? (사진 정중앙) ⓒ 2015 한국의산천
전등사 대웅보전 네 귀퉁이의 연꽃좌대에 쪼그리고 앉아 무거운 기와지붕을 떠받들고 있는 벌거벗은 여인조각상(또는 원숭이상) ?
전등사
- 고 은
강화 전등사는
거기 잘 있사옵니다
옛날 도편수께서
딴 사내와 달아난
온수리 술집 애인을 새겨
냅다 대웅전 추녀 끝에 새겨 놓고
네 이년 세세생생
이렇게 벌 받으라고 한
그 저주가
어느덧 하이얀 사랑으로 바뀌어
흐드러진 갈대꽃 바람 가운데
까르르
까르르
서로 웃어대는 사랑으로 바뀌어
거기 잘 있사옵니다
시인 고은 선생은 효봉스님의 제자로 출가를 하였고 해인사에서 4.19를 거쳐 속리산 법주사 주지로 임명을 받고 법주사를 전등사 주지와 교환하여 전등사 주지를 역임(1967년)하셨다 한다.
대체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 신성한 법당에 웬 벌거벗은 여인인가 하고 궁금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나부가 아니라 원숭이로 간주하는 경우도 있다. 원숭이는 사자나 용과 마찬가지로 불교를 수호하는 짐승으로 중국, 인도, 동남아시아의 사찰에 모셔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등사 대웅전의 조각상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나부상이라는 데 의견이 더 많다.
사랑을 배반하고 떠난 도편수의 연인인 나부상(나녀상 裸女像)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은 이렇다
전등사는 1600년 이상의 역사를 간직한 가운데 여러 차례 화재를 겪고 이 때문에 대웅보전도 여러 번 중건되었다. 그 중 지금의 나부상이 만들어진 것은 17세기 말로 추측된다.
당시 나라에서 손꼽히는 도편수가 대웅보전 건축을 지휘하고 있었다. 고향에서 멀리 떠나온 그는 지리적 특성으로 섬에 들어오면 수개월째 바깥출입을 할 수 없었던 탓에 외로움을 달래려 사하촌의 한 주막을 찾았고 그곳 주모와 눈이 맞았다. 사랑에 눈이 먼 도편수는 돈이 생길 때마다 주모에게 모조리 건네주었다.
"어서 불사 끝내시구 살림 차려요."
"좋소. 이 일이 끝나면 우리 그림 같은 집 한 채 짓고 오순도순 살아봅시다."
도편수는 주모와 함께 살게 될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대웅보전 불사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공사 막바지에 이른 어느 날 그 주막으로 찾아가보니 여인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며칠 전에 야반도주를 했수. 찾을 생각일랑 아예 마시우."
이웃집 여자가 말했다.
도편수는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었다. 여인에 대한 배반감과 분노 때문에 일손이 잡히지 않았고 잠도 오지 않았다.
그래도 도편수는 마음을 다잡고 대웅전 공사를 마무리했다. 공사가 끝나갈 무렵 대웅전의 처마 네 군데에는 벌거벗은 여인이 지붕을 떠받치는 조각이 만들어졌다.
이것이 전등사 대웅보전에 얽힌 전설이다.
불상이 모셔진 금당이지만, 설령 저잣거리에서 주고받는 이야기의 소재가 되었다고 해서 불경스럽다고 할 필요는 없다. 절이란 모든 사람 가리지 않고 껴안고 보듬으며 깨달음으로 나가도록 등을 도닥여 주는 곳이지 않은가.
어쨌던 전설은 흥미롭지만 종종 현실을 비껴가고, 기록은 생생하지만 대개 상상력이 부족하다. 전등사 대웅보전은 역사인 동시에 전설일 뿐이다. 하여간 위의 조각상은 당시의 능숙한 조각 솜씨를 엿볼 수 있고, 조선 중기 이후의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6월 원정산행인 마니산과 석모도 보문사 관람은 대구에서 쉽게 접근하기가 어렵습니다.
현지에서 맛있고 유명한 음식으로 식단을 꾸몄으며.
이번정기산행에서 회원님들과 좋은추억을 함께할수있도록 많은 참여바랍니다.
★ 원정산행 일정 ★
6월13일(토요일)
대구출발-강화도착-외포리선착장(버스승선)-석포리선착장-
중식-보문사관람(눈썹바위 마애불상까지 왕복 1.5시간예상)-
다시 외포리선착장-마니산 전등사관람-숙소-석식-화합의밤.
(시간이 늦을경우 전등사는 다음날 산행후관람)
6월14일(일요일)
조식-마니산산행(약4시간)-중식-(전등사관람)-강화출발-
대구도착-해산.
(전날 전등사관람시 강화8경중 1~2곳관람후 출발)
♥ 준비물 ♥
1박에필요한 편안한옷.세면도구.등산장비의 모든것
물.중식.장갑.모자.선크림.가벼운외투,여벌옷~!!
◆회 비 ◆
\150,000
정회원:10만 산악회지원:5만
비회원:15만
◈탑승시간◈ (6월13일)
07:00 (반월당 적십자병원앞)
07:10 (반고개네거리 대구은행앞)
07:20 (죽전네거리 SK주유소앞)
♣=== 5분 일찍나와주는 센스^&^===♣
차량안내 : 버스는 삼성그린관광 2139호 입니다.
*** 참석인원을 47명 선착순으로 접수합니다.
정회원님들께 먼저 연락드리고 인원이 부족할시 비회원님들께
연락드리니 이점 양해하시고 정회원님들의 빠른 신청 부탁드립니다 ***
◈비상연락처◈
회 장 : 김종일 010-3537-6384 산행대장:조창근 010-6330-3535
총 무 : 박동국 010-5523-9279 구조대장:정경호 010-3542-4518
김미경 010-9053-9065 구조대장:박현순 010-3030-3543
버스기사 : 김동현 010-3385-7744
◈ 1.산행도중 본인의 신병 또는 안전사고(응급사고)는
전적으로 본인 과실임으로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수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2.산행시 선행대장을 앞지르는 행위 절대삼가.
(코스이탈및 사고예방.인원통제불가)
대구비봉산악회장 김종일
첫댓글 수고하셨읍니다. 대장님.
네 총무님 ㅎ
참석합니다
와우 어서오게나 환영.
댓글하나 달려다가 하산주 먹겠내요.!?^^
이거야 원.!^^
산대장님 수고 많으십니다~!^^
감사 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ㅎ
기억이 아련하여, 친구에게 물어보니 (우리가) 2005년 대부도 지나 석모도도 갔다하는군요..
(전날 과음? 으로 기억 못하는건지 ㅋ..)
그래도 확실히 기억나는 추억!
석모도 가는 뱃길 약 5분? 10분? 밖에 안되지만
손바닥 위에 새우깡 얹어 놓으면 갈매기가 날아와서 채 갔던 짜릿함은 살아 있습니다
공중에 던져도 날쌔게 채 가고..
멋지고, 보기 드문 광경 이었지요
그래서 배 타기전 길거리에 새우깡을 왜 그리도 많이 파는지 이유를 알았지요 ㅎㅎ
(갈매기 수백마리가 배 따라 오는 장관이란! )
석모도 갈매기는 새우사냥은 않고
인간이 주는" 새우깡" 만 먹고 산다는 !!!
지금도 그런지 ..이 참에 확인 해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