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량의경소 無量義經疏
전체 3권이지만, 현재 전하지 않는다.
『무량의경』의 역본은 유송(劉宋)의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역 1권(일실)과
소제(蕭齊)의 담마가타야사(曇摩伽陀耶舍) 역 1권(481년, 현전본)이 있다.
이 경의 주석서로는 유규(劉虯)의 『무량의경소』 1권,
신라 원측의 『무량의경소』 3권,
원효의 『무량의경종요』 1권이 있었다고 하나 전하지 않고,
일본 최징(最澄)의 『주무량의경』 3권이 전한다.
한편 일본의 천태종 승려 연소(憐昭)가 찬술한 『무량의경소』 3권이
사실은 원측의 『무량의경소』 3권을 필사하였다는 의견도 있다.
그것은 이 책이 일본의 『천태종전서(天台宗全書)』 제19권에 수록되어 있는데,
『무량의경』에 대한 주석서로 자은 규기(慈恩窺基)를 비롯하여 경전과
직접 관련 있는 법상종(法相宗)의 것은 눈에 띄지 않고,
3권이라고 하는 권 수 구성에서부터 원측의 찬술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원측의 소(疏)가 일본에서도 필사된 기록 역시 남아있기때문이다.
원측은 신라의 왕손으로 일찍이 출가하여 15세에는 당나라에 들어가
법상(法常)을 비롯한 여러 승려들의 강경(講經)에 참여하였다.
특히 당나라의 수도 장안(長安)의 원법사(元法寺)에 머물며
비담(毘曇)·성실(誠實)·구사(俱舍) 등 대승·소승경론을 폭넓게 연구하여 그 명성을 크게 떨쳤다.
특히 676년 인도의 고승 지바하라(地婆訶羅)가 인도의 여러 불경들을 가지고 와서
중국어로 번역하기를 당 고종에게 청하였을 때 원측은 박진(薄塵)·영변(靈辨)·가상(嘉尙) 등과 함께
『대승밀엄경(大乘密嚴經)』 등 18부 34권을 번역하였다.
원측은 『대승현식경(大乘顯識經)』을 번역할 무렵
고증자(考證者)로서 번역하는 무리의 우두머리를 맡기도 하였다.
693년에는 인도 승려 보리유지(菩提流志)가 가져온 범본 『보우경(寶雨經)』을 번역하였고,
695년 실차난타(實叉難陀)가 우전국(于闐國)으로부터 와서 『화엄경』을 번역할 때도
번역사업에 참여하였으나 완성을 보지 못하고 불수기사(佛授記寺)에서 입적하였다.
『무량의경』은 『법화경(法華經)』,
『보현보살행법경(普賢菩薩行法經)』과 함께
법화삼부경(法華三部經)이라고 한다.
이 가운데 『무량의경』은 『법화경』에서 『무량의경』을 설하고 무량의처삼매(無量義處三昧)에서 일어나
『법화경』을 설하는 것으로 되어 있어, 『법화경』의 개경(開經)이라 한다.
또한 삼부경으로 보아 본경인 『법화경』의 서경(序經)이라고도 한다.
이는 부처가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하기 전에 먼저 『무량의경』을 설하여 무량의처삼매에 들어가고,
이 삼매에서 나와 「방편품(方便品)」에서 비로소 『법화경』 설법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무량의경』은 이 경전을 설한 큰 뜻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중생의 욕망과 성품이 한량이 없는[無量] 까닭에 설법도 한량이 없다.
설법이 한량 없기 때문에 그 뜻[義]도 또한 한량이 없느니라.
무량의(無量義)는 하나의 법에서 나며 그 하나의 법은 무상(無相)이라.
이와 같은 무상은 상이 없고 상이 아니니라.
상이 아니며 상이 없음을 실상(實相)이라고 하느니라.”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무량(無量)’은 제법 곧 점교 돈교, 삼승(성문·연각·보살), 사성(아라한·벽지불·보살·불)의
한량없는 법을 말한다. ‘의(義)’는 의처(義處: 도리), 곧 실상을 설한다는 것이다.
또한 ‘경(經)’은 부처님이 설하신 교법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