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스승의 은혜
만약 수혈피관(輸血皮管)에 있는 양쪽 은침이 뽑혀지게 된다면 필시 혈액은 바로 밖으로 뿜어나오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설사 음살신이 손을 뻗치지 않는다 해도 그들 두 사람은 저절로 목숨을 잃게 될 판이었다.
음살신은 우주신의가 감히 자기의 일장에 힘으로 맞닥뜨려 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라 얼떨떨해졌다. 그러나 냉소를 다시 터뜨리며 음살신은 매섭게 소리쳤다.
"장노인, 당신은 순순히 목숨을 바치시오."
말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장력이 다시 휘몰아치면서 우주신의를 향해 성난 파도와 같이 밀려갔다. 우주신의와 주호는 어쩔 수 없이 목숨을 빼앗기는 위기의 순간에 부딪치게 되었다.
바로 그 위기일발의 순간, 한 줄기의 경풍이 뒤에서 음살신을 향해 뻗쳐왔다. 음살신은 배후에서 사람이 공격해 올 줄은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던 터라 그만 가슴이 섬뜩했다.
그래서 눈앞의 상대방은 상관하지 않고 황급히 몸을 돌려 일장을 뻗었다. 장력이 뻗쳐 나갔으나 동굴 밖에는 사람의 그림자라곤 보이지 않았다. 음살신은 놀랍고 의아하여 일시에 식은땀이 치솟아 나왔다.
그는 자신의 허점을 감추려고 무겁게 입을 열었다.
"누가 감히 나에게 암습을 했단 말이냐?"
그러자 동굴 앞에서 누군가가 미친 듯이 웃어댔다.
"음살신, 기력을 잃고 있는 사람에게 장력을 펼치다니 그래 천하 구존(天下九尊)이라 위명을 날리고 있는 사람으로서 할 짓이라 생각되오?"
도대체 누군지 음살신은 알 수 없었다. 우선 우주신의를 먼저 죽여야만 홀가분할 것 같았다. 즉시 우주신의를 훑어본 뒤 별안간 왼손을 쑥 내밀었다.
우주신의는 무거운 목소리로 한 마디 던졌다.
"음살신, 네 놈은 실로 악독하구나."
이렇게 말하며 그가 다시 장력을 뻗쳐 맞닥뜨리려 했을 때 동굴 밖에서 한 줄기의 장력이 또 맹렬하게 음살신을 향해 몰아쳐 왔다.
음살신은 곧 몸을 휙 돌려 손을 뻗쳤다. 그의 신속한 신법은 전광석화와도 같았다.
하지만 동굴 밖에서 뻗쳐온 그 장력은 그보다도 더욱 신속했다.
음살신은 별안간 장력을 거둬들였다.
그런데 장력을 미처 거두어들이기도 전에 한 줄기의 인영이 번개 같이 음살신과 우주신의의 사이로 뛰어들었다.
흰빛이 번쩍하며 유성처럼 날아오는 속도는 실로 빨랐으며 어둠 속에서 소리도 없이 나타나는 신법은 유령과도 같았다.
음살신은 흠칫 뒤로 이삼 보 물러갔다. 음살신은 정신을 가다듬고 상대방을 쳐다보았다.
백의를 입은 하얀 얼굴의 노인이 앞에 우뚝 서 있었다.
음살신은 자기가 일장으로써 우주신의와 주호를 제거해버리려 했을 때 중도에서 느닷없이 저지한 인물이 바로 이 흰옷을 입은 늙은이였음을 알았다.
이 돌연한 암습자로 인하여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음살신은 울분이 치밀어 올랐다.
검은 얼굴이 자색으로 변하더니 끝내는 흐흐흐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아주 유유하게 입을 열었다.
"귀하는 공력이 비범한 것으로 보아 필시 명성을 가진 인물일 거요. 성명을 밝히시오."
하얀 얼굴의 노인은 냉랭하게 웃다가 천천히 말을 받았다.
"노부는 다만 당신의 부끄러움을 모르는 그런 행위가 눈에 거슬렸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서서 당신 일에 간섭하는 것이오. 만약 당신이 그래도 물러가지 않겠다면 다시 일장을 펼쳐 당신을 객사시키겠소."
음살신은 소름이 끼치도록 음산하게 웃었다.
"무림삼신은 남의 일에 간섭하는 사람을 가장 미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오. 귀하는 아마 살기가 싫은 모양이구려."
음살신은 이렇게 말하며 이미 연속 삼장을 뻗쳐갔다.
하얀 얼굴의 노인은 상대방의 장력이 음한(陰寒)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만약 상대방의 장력에 적중된다면 틀림없이 전신에 한기가 퍼지며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때문에 하얀 얼굴의 노인은 이를 악물고 오른손으로 급히 삼장을 후려쳤다.
그들 두 사람은 말을 주고받는 사이에 이미 삼초를 겨루었다. 장력으로 보아 쌍방의 공력은 막상막하였다.
하얀 얼굴의 노인은 상대방과 겨루고 있으면서도 재빨리 생각을 굴렸다.
(무림삼신의 이름은 과연 듣던 바와 같구나……)
이렇게 여기며 즉시 우렁찬 고함을 외치고 다시 비스듬히 일장을 뻗쳐갔다.
이 일장은 하얀 얼굴의 노인이 전신의 공력을 집중시켜 뿜어낸 것이기에 강맹한 그 공력은 마치 산을 휩쓸 것 같았다.
그 바람에 음살신도 도리없이 동굴 밖으로 밀려 나갔다. 음살신은 처음에 상대방을 대수롭지 않게 평가했으나 이렇게 되자 비로소 상대방의 공력은 자기에게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 차렸다. 그는 즉시 음산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귀하의 공력은 과연 심후하구려."
하얀 얼굴의 노인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냉소했다.
두 사람은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이미 쌍방에 공력을 주입시키고 수시로 공력을 펼치려 하였다.
순간 음살신이 먼저 큰소리로 부르짖으며 일장을 뻗쳤다. 그리고 장력을 뻗쳐내기가 무섭게 재빨리 몸을 치솟아 동굴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음살신의 공세는 신속했지만 하얀 얼굴의 노인도 그에게 뒤지지는 않았다. 그는 즉시 일장을 뻗쳐 맞닥뜨리고 동시에 오른발로 날아오는 음살신의 몸을 향해 걷어찼다.
음살신은 깜짝 놀랐다. 만약에 그 노인의 발에 걷어차이게 된다면 즉시 죽음을 당하지는 않는다 해도 역시 중상은 면치 못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음살신은 목숨을 버릴 수는 없었다. 맹렬히 뻗쳤던 기세를 멈추고 왼손을 휘두르자 하늘을 덮을 듯한 흑점이 하얀 얼굴의 노인을 향해 덮쳐갔다.
(아!)
얼굴이 흰 노인은 속으로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음살신이 뿜어낸 것은 바로 그가 천하에 명성을 떨치고 있는 독문 암 기인 독음사(毒陰砂)였기 때문이다.
독음사…… 모래의 일종인 이 암기가 일단 뿌려지면 일장의 범위 안은 즉시 독안개로 뒤덮이게 되고 그 독안개의 냄새를 맡기만 하면 전신이 핏덩이처럼 붉게 녹으면서 죽게 되는 것이었다.
얼굴이 흰 노인은 음살신이 그토록 악독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는 분노가 치밀어올라 미친 듯이 부르짖으며 음살신을 향해 덮쳐갔다. 이렇게 되자 얼굴이 흰 노인은 정말 살기가 넘쳐 마치 성난 호랑 이처럼 몸을 치솟으면서 음살신을 삼 장 밖으로 격퇴시켰다.
이 때 그 독음사는 독안개로 변해 있었다. 만약 동굴 입구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었다면 우주신의와 주호는 아마 핏덩이로 녹아서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우주신의는 수혈하고 있는 동안 음살신의 일장의 힘에 맞닥뜨리는 기세에 그만 내부에 상처를 입었었다. 그의 입에서는 선혈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고 또한 이미 의식을 잃고 있었다.
이를 본 주호는 참지 못하고 부르짖었다.
"노선배님, 저는 머리가 어지럽습니다."
주호가 어지럽다고 말한 것은 이미 그의 혈관 속에 피가 충족해졌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외쳤는데도 우주신의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주호는 깜짝 놀라며 다시 외쳤다.
"노선배님!"
그러나 우주신의는 아무런 대꾸가 없을 뿐만 아니라 또한 여전히 그는 움직이지도 않았다.
이것은 실로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만약 우주신의가 의식을 잃은 채 깨어나지 못한다면 주호는 전신의 혈관에 피가 지나치게 많아져 혈관이 터져서 죽음을 당하게 될 뿐만 아니라 우주신의도 역시 전신의 피가 완전히 흘러버려 빈혈로 죽게 될 것이다.
주호는 몹시 초조해졌다. 그는 두 눈을 번쩍 뜬 채 놀라움에 싸인 표정으로 부르짖었다.
"노선배님……"
그 소리는 몹시 다급하고 애원하는 마음이 가득해서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비통한 느낌이 들게 했다. 하지만 그 소리가 아무리 동굴 안에 울려 퍼진다 해도 우주신의는 이미 의식을 잃고 있는데 어찌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단 말인가?
이 부르짖는 소리와 동굴 밖의 고함 소리는 듣는 이로 하여금 소름이 끼치게 하였고 미구에 어떤 불행한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불안감을 안겨 주었다.
주호의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상태는 점점 심해졌다. 공포를 느끼는 순간이었다. 아니 위험이 금방 닥쳐오는 듯한 순간이었다. 주호는 두 눈이 뻘겋게 충혈된 채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노선배님…… 왜 그러십니까?"
그는 너무나 다급한 나머지 왼손으로 우주신의의 팔을 두들겼다. 주호가 그렇게 두들긴 것은 불과 일장의 공력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는 설우(雪芋)라는 선과를 복용했고 또한 독룡수의 공력을 주입받은 데다가 또한 우주신의의 생명의 피를 얻었기에 그 일장은 보기에는 매우 가벼웠지만 사실 강대한 힘은 백 근이 넘을 정도였다.
우주신의는 주호가 그렇게 두들기는 기세에 팔이 거의 떨어져 나가는 듯한 아픔을 느끼며 두 눈을 번쩍 떴다, 그러나 눈을 뜨긴 했으나 눈앞이 흐릿하게 보였다.
주호가 다시 부르짖었다.
"노선배님, 저는 머리가 매우 어지럽습니다."
우주신의는 비록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말소리만은 또렷하게 알아들을 수가 있었다. 그는 안색이 갑자기 변하면서 오른손으로 수혈피관을 움켜쥐려 했다. 하지만 그는 오른손을 절반쯤 쳐들었다가는 다시 맥없이 아래로 떨어뜨렸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피는 이내 고갈되었고 또한 내부가 이미 파열되었으니 무슨 힘으로 손을 쳐들 수 있단 말인가?
주호가 다시 외쳤다.
"노선배님, 제 말이 들립니까?"
순간 우주신의의 두 눈에서는 별안간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는 이를 악물고 오른손을 쳐들려고 했지만 그의 뜻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의 오른손은 맹렬히 떨리고 있었고 창백한 안색은 백납처럼 차갑게 굳어 있어 산송장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 사이 주호의 온몸에 있는 혈관은 차츰 팽창되어 갔고 정신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계속 이런 상태로 나가다가는 반 시진이 안 되어 그들 두 사람은 죽음의 길을 함께 걷게 될 것이 뻔했다.
설사 신선이 나타난다 해도 두 사람을 구해낼 수 없게 될 것이다. 이 때였다. 별안간 휘파람 소리가 주호의 귓가에 들려왔다. 그 휘파람 소리에는 처량한 기운이 가득 들어 있었다.
현기증에 정신이 몽롱하던 주호는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어 다시 외쳤다.
"노선배님, 정신을 차리십시오."
우주신의는 이 순간이 가장 위험천만한 고비의 일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주호에게 은침을 뽑으라고 말하려 하였으나 말할 기운조차 없어 입술만 꿈틀거릴 뿐 끝내 말이 되어 나오지 않았다. 그는 마음속으로 분명히 알고 있었다.
만약 주호에게 은침을 뽑으라는 말을 하지 못한다면 자기는 주호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의 생명을 구해주었었던 젊은이를 해치는 결과를 빚고 말 것이라고. 그는 마음이 조급하여 땀과 눈물로 얼굴이 흠뻑 젖어 있었다. 그러다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빨리, 빨리……"
"빨리 어떻게 하라는 말씀입니까?"
우주신의는 마음이 다급해질수록 더욱 말이 안 나왔다. 잠시 후 그는 더듬거리는 말투로 다시 입을 열었다.
"빨리…… 빨리…… 은침…… 뽑아라……"
우주신의는 자기에게 은침을 뽑을 만한 힘조차 없다는 것을 알고 할 수 없이 주호에게 스스로 은침을 뽑으라고 시킨 것이다.
주호는 그 말을 듣자 즉시 손을 내밀어 피관(皮管)을 잡아당기자 은침은 쉽사리 뽑혀졌다. 은침을 뽑자 한 줄기 혈액이 주호의 혈관에서 뿜어져 나오며 우주신의의 일신을 온통 선혈로 물들였다.
주호는 일찍이 이런 상황을 본 적이 없었다. 그는 놀라움에 넋을 잃었다. 주호는 우주신의가 그에게 알려준 말을 잊고 있었다. 은침을 뽑은 뒤에는 신속하게 고약을 붙여야 된다고 하던 말을……
그는 선혈이 쉴 새 없이 뿜어나오는 것을 보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다시 공포스럽고 위험천만한 순간이 닥쳐온 것이다. 만약 주호가 고약을 붙이지 않는다면 우주신의가 그에게 준 피를 필경 완전히 흘려 버리게 되는 것이다.
우주신의가 갑자기 말을 건넸다.
"고…… 약은 붙였는…… 가?"
그 찰나에 주호는 깜짝 놀라며 깨달았다. 비로소 그 하얀 고약이 생각났던 것이었다. 급히 혈관을 향해 고약을 붙였다. 고약을 붙이니 피는 더 이상 뿜어나오지 않았다.
주호는 우주신의가 아직 다른 한 쪽의 은침을 뽑지 않은 것을 보자 급히 그것을 뽑아주고 또한 거기에 고약을 붙여 주었다. 이렇게 위기는 일단 모면하였다. 숨가쁜 침묵이 흘렀다. 나뭇가지가 활활 타고 있을 뿐 동굴 안은 죽은 듯한 적막에 싸여 있었다. 마치 죽음의 검은 휘장이 동굴을 내리 덮고 있는 듯했다.
주호는 어느새 일어서서 멍하니 땅바닥에 앉아 있는 우주신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현재 자기의 심정을 뭐라고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의 마음속에는 감격, 사랑, 슬픔, 고통, 그리고 실망 등이 어우러져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우주신의를 내려다보고 있던 주호는 돌연 미친 듯이 부르짖었다.
"노선배님!"
이 한 마디를 내뱉고는 우주신의의 몸에 쓰러지면서 통곡을 터뜨렸다. 애간장을 끊어내는 듯한 비통한 울음이었다. 동굴 밖의 바람 소리조차 그 울음소리를 따라 슬피 울고 있었다.
우주신의는 더듬거리면서 띄엄띄엄 말했다.
"여보게…… 왜…… 그러는가?"
"제가 노선배님에게 해를 끼치고 말았습니다."
우주신의는 그 말을 듣자 씁쓸히 웃었고 그의 두 눈에서는 별안간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뭐라 말을 하고 싶었지만 뜻대로 말할 기운조차 없었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한마디했다.
"아! 내 품속에 천년석유(千年石乳)가…… 있으니…… 꺼내어 나에게…… 먹여다오!"
그는 몹시 힘에 겨운 듯이 말을 하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주호는 우주신의가 말한 대로 그의 품속에서 천년석유 병을 꺼내 그의 입을 벌리고 따라 넣었다.
천년석유란 천지의 정령지기(精靈之氣)를 모아서 만든 것이다. 돌 속의 정무(情霧)를 응결시키어 만든 것이기에 한 방울만 복용해도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릴 수 있다는 효력을 가지고 있어 세상에서도 드문 귀중한 약이었다.
우주신의는 천년석유 몇 방울을 복용하니 과연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러나 그는 약의 효력이 떨어진 뒤 자신은 필경 죽음을 당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여보게 괴로워하지 말게……"
"노선배님, 선배님은 돌아가시지 않겠지요?"
"음, 세상에 죽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자네는 인생 칠십고래희(七十古來稀)라는 말을 듣지 못했는가? 더욱이 나는 이미 칠십 하고도 여덟 살이나 더 먹었는데 죽음에 대해 무슨 유감이 있겠는가?"
주호는 고개를 세차게 내저으며 말을 받았다.
"아닙니다. 선배님…… 노선배님이 어째서 저를 구하기 위해 돌아가실 수가 있단 말입니까?"
우주신의는 감개 어린 목소리로 대꾸했다.
"먼저 나를 구해준 사람은 자네였네. "
주호는 다급하게 말을 받았다.
"그러나 저는 노선배님이 저를 구하기 위해 죽음을 당하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우주신의는 고개를 저었다.
"나로 하여금 죽음을 당하게 한 것은 자네가 아니라 바로 음살신일세……"
우주신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우렁찬 고함소리가 동굴 밖에서 들려왔다.
주호는 갑자기 안색이 변하여 살기가 등등해졌다.
"음살신, 나는 네 놈을 죽이고야 말겠다."
이렇게 소리치는 그의 고함소리는 듣는 사람의 간담을 써늘하게 했다. 그는 몸을 치솟아 동굴 입구를 향해 돌진해 갔다.
주호의 몸이 막 솟구쳤을 때 우주신의가 급히 부르짖었다.
"돌아오게나!"
주호는 부르짖음 소리를 듣자 곧 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가 어쩐 영문인지 몰라 잠시 망설이고 있는 사이에 우주신의가 다시 덧붙였다.
"돌아오게나. 내 자네에게 할 말이 있네."
주호는 온 얼굴에 가득히 어려 있던 살기를 거두고 서서히 우주신의에게로 돌아가 그의 곁에 앉았다.
"노선배님, 어떤 분부가 있으십니까?"
우주신의는 가만히 탄식하면서 입을 열었다.
"지금 나는 비로소 오우선사의 예언이 생각났네. 과연 그의 예언은 적중한 것이네. 여보게, 나는 자네에게 알려줄 말이 있는데 자네가 들어주기를 바라네."
주호는 곧바로 대답했다.
"어떤 일인지 말씀만 하십시오. 설사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가는 일이라 해도 저는 역시 노선배님을 위해 이루어 드리겠습니다."
우주신의는 또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생사는 하늘에 달려 있는 것일세. 오우선사는 당초 나에게 말하기를 삼 개월 안에 필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음살신의 손에 죽음을 당할 것이고, 삼 개월 안에 사람을 구하지 않으면 몰라도 만약 구하게 되면 죽음을 면할 수 없다고 말했었네 ……"
주호는 그 말을 듣자 깜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물었다.
"오우선사는 누굽니까? 그가 어찌 지금의 일을 알 수 있단 말입니까?"
우주신의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그 선사가 누군지에 대해서는 강호의 인물들도 전혀 모르고 있네. 노부도 단지 그 사람과 몇 번 만난 정도의 안면이 있었을 뿐이네, 그러나 오늘의 상황으로 보아 오우선사는 아마 이미 도통하여 과거와 미래를 알 수 있는 신통력을 지니고 있는 것 같으이."
주호는 이해가 가는 듯 고개를 끄덕이다가 갑자기 물었다.
"노선배님, 그렇다면 우리를 구해준 사람은 누구입니까?"
우주신의는 잠시 생각해 보다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모르겠네. 자세히 보지 못했네."
주호는 이내 조금 전의 상황을 생각하고 한 마디 외쳤다.
"혹시 그 선사는 휘파람을 불지 않습니까?"
"휘파람이라고?"
"설마 노선배님은 휘파람 소리를 듣지 못한 것은 아니겠지요?"
우주신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못 들었는데."
주호는 섬칫 놀라며 속으로 이상하게 여겼다.
(나는 분명히 휘파람 소리를 들었는데 이 분은 어째서 못 들었단 말인가? 그리고 휘파람을 불었던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그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우주신의가 입을 열었다.
"이런 일에 대해서 자네는 생각할 필요가 없네. 지금 자네의 공력은 아마 강호에서 적수가 별로 많지 않을 정도로 고강해졌을 것이네. 설우란 선과를 복용했으니 이십 년의 공력은 충분히 쌓아 올린 셈이고, 또한 자네에게 삼십 년의 공력을 자네의 칠성정맥에 주입시켜 준 사람이 있었고 또한 나의 생명의 피를 얻었으니 자네의 지금의 공력은 충분히 일 갑자 이상이 되는 것이네. 만약 자네가 엇갈린 길을 걷지 않는다면 무림은 복을 누리게 될 것이네……"
주호는 숙연한 표정으로 공손하게 말을 받았다.
"노선배님, 안심하십시오. 복수 외에 절대로 나쁜 일은 하지 앉을 것입니다."
우주신의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좋으이. 노부는 젊었을 때 연인이 중병을 앓아 목숨을 잃었기에 심혈을 기울여 의도를 연구해 왔었네. 그리고 일생 동안 천하의 곳곳에서 기화이초(奇花異草)를 채집하여 약품을 만들었네. 강호에서 나에게 은혜를 입은 사람들은 적지 않네. 결코 나의 소원이 헛된 것은 아니었네. 그러나 지금……"
여기까지 말했을 때 그는 갑자기 한숨을 내쉬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내가 죽은 뒤 자네는 나의 뜻을 이어받아 무림인물들을 위해 고통을 해소시키고 강호의 의도(醫道)에 계속 몸담아주기를 바라네"
주호는 약간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그러나 저는 의도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는데 어떻게 강호의 의도에 몸을 담고 있을 수가 있습니까?"
우주신의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 점은 안심하게나."
그리고 그는 품속에서 의리대전(醫理大全)이라고 적힌 책 한 권을 꺼내 주호에게 건네주었다.
"내가 평생에 연구해낸 온갖 병의 증세와 치료법이 모두 이 책에 적혀 있네. 지금 자네는 내 생명의 피를 얻었고 또한 지혜까지 얻은 것일세. 자네의 지혜로써 닷새 동안만 이 책을 읽으면 자네는 곧 제 이의 나로 변할 수가 있을 것일세.“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