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도비산
2024년 05월 04일(토요일)
산행코스 : 부석사주차장(09:45) - 부석사(10:00) - 동사(10:45) - 도비산(11:45) - 활공장(12:05) - 해넘이전망대(12:10) - 주차장(12:20)
산행거리 : 6.7km
부석사 주차장
부석사 일주문
일주문 편액
도비산 부석사(島飛山浮石寺) 편액은 조계종 전 총무원장 직무대행을 지낸 '송원당' 설정 대종사의 글씨입니다.
일주문 안쪽 편액 삼일수심도량(三日修心 道場)
일주문 안쪽 편액은 "법을 돈을 받고 팔지 말라"고 말한 송암스님의 글씨입니다.
도량은 한자로 '道場'이라 쓰고 '도량'이라 읽는데, '場'자의 흙 토(土)변을 오른쪽에 써놓은게 특이합니다. 이 글은 <자경문>의 '삼일수심 천재보(三日修心 千載寶) 백년탐물 일조진(百年貪物 一朝塵) '삼일간 마음을 닦으면 천년의 보배요, 한평생 탐하여 모은 재산은 하루 아침에 먼지가 된다'에서 따온 말입니다.
일주문을 지나 부석사로 올라갑니다.
운거루(雲居樓) 구름이 머무는 누각
운거루는 이 곳의 트레이드 마크입니다. 고풍스럽고 길다란 나무기둥과 난간, 지붕이 웅장하고 이국적인 모습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금강문
천왕문과 마찬가지로 보통 정면 3칸, 측면 1칸의 건물입니다. 정면 3칸 중 가운뎃칸은 통로로 사용하고, 양쪽 1칸은 바깥쪽 3면을 벽으로 처리하여 안에 금강역사상을 세워둡니다.
금강문(金剛門) 편액은 송원 설정스님의 글씨입니다.
밀적금강
밀적금강은 손에 금강저를 들고 항상 부처를 호위하는 야차신인데
부석사의 밀적금강은 도깨비방망이 같은 금강저(金剛杵)를 들고 있습니다. 금강저는 지혜의 무기이며 번뇌를 부수는 보리심의 상징입니다.
밀적이란 붓다의 비밀스러운 사적을 들으려는 서원을 세웠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나라연금강
나라연금강은 코끼리보다 100만 배나 힘이 세다는 야차신이다.
그러나 단순히 힘만 있는 신중(神衆)이 아니라 이들의 머리 뒤에는 커다란 원광이 있는데, 그것은 신성한 지혜가 깃들어 있음을 상징합니다.
부석사의 나라연금강은 원광은 없고 손에 도끼를 들고 있습니다.
도끼에 용(龍) 문양이 새겨져 있는 것은 금강역사는 비를 조절하는 용신과 힌두교의 우신(雨神)인 인드라(Indra)와 관련이 있기 때문인데 그래서 가뭄이 들었을 때는 금강역사에게 기원드린다고 합니다.
보통 입을 열고 있는 역사를 "아금강역사", 입을 다물고 있는 역사를 "훔금강역사"라고 합니다.
그의 자세로는 주먹을 쥐고 한쪽 팔을 들어 올리거나, 한 손으로 칼을 잡은 모습이 대표적입니다.
부석사의 금강역사는 도깨비방망이 같은 금강저와 도끼를 들고 있는 것이 특이합니다.
부석사
충남 서산시 부석면 도비산 자락에 있는 부석사(浮石寺)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7교구 본사인 수덕사의 말사이며, 충남 문화재자료 195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신라 문무왕 17년(677)에 의상이 부석사를 창건했다고 전합니다.
하지만 의상이 당나라에서 귀국하여 영주에 부석사를 창건한 때가 문무왕 16년(676)이었는데,
1년 후에 영주에서 멀리 떨어진 서산에 또 하나의 부석사를 창건했다는 것은 쉽게 믿기 어려운 내용입니다.
의상이 당나라에서 유학할 때 의상을 사모한 선묘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의상이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게 되자 선묘는 용으로 변하여 의상의 귀국길을 수호하였고, 의상이 서해안에 도착하여 선묘를 위한 절을 지으려 할 때, 이곳 백성들이 반대를 하자 용으로 변했던 선묘는 커다란 바위를 공중으로 들어 올려 사찰 건립에 반대하는 백성을 제압함으로써 의상은 절을 세울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커다란 바위는 바다 멀리 떨어져 섬이 되었는데, 지금의 검은여가 그 섬입니다.
이후 절의 이름을 뜬 바위라는 뜻의 부석을 인용하여 부석사라고 하였습니다.
이 내용은 삼국유사에 실린 영주 부석사 창건 내용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합니다.
검은여는 부석사에서 10km 떨어진 정면으로 바라다보이는 바다에 있는 바위입니다
천수만 간척지 공사를 하기 전까지는 밀물 때 바닷물에 잠겨 윗부분만 드러났는데, 그 색깔이 검은색이어서 검은여라 불렀고, 바다 위에 뜬 바위 같다 하여 부석(浮石)이라고도 불렀습니다.
한편,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하자 고려의 신하 유금헌이 망국의 한을 품고 이곳으로 내려와 별당을 짓고 독서로 소일하며 살다가 여생을 마쳤는데, 그가 죽은 뒤 적감이라는 승려가 별당을 사찰로 바꾸고,
절 이름은 도비산 자락 절벽에 자리한 사찰이 마치 섬이 바다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기에
부석사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둘 중에서 후자가 더 설득력이 있습니다.
창건 이후 조선 초기에 무학(1327~1405) 대사가 중건하였고, 근대에 들어와 만공(1871~1946)이 주석하면서 선풍을 크게 일으켰습니다.
목룡장(牧龍莊), 심검당(尋劒堂), 부석약수
심검당과 목룡장은 근대 선불교의 중흥조 경허스님과 만공스님이 수행정진 하던 곳입니다. 현재는 종무소와 요사채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안양루
안양(安養)이란 말은 불교에서는 마음을 편하게 하고, 몸을 쉬게 함을 의미하는 서방정토의 주인인 아미타불이 살고 있다는 정토를 일컫는 말입니다.
방치된 전각처럼 보이며 약사여래, 와불(臥佛), 아미타불 등이 모셔져 있습니다.
안양루( 安養樓) 편액
약사여래, 아미타불, 와불
극락전
극락보전, 무량수전, 무량전, 보광명전, 아미타전이라고도 합니다. 예로부터 극락정토신앙이 강하여 내부 구조는 대웅전 만큼이나 화려합니다.
정면 3칸, 측면 2칸, 주포식 맞배지붕의 이 건물은 부석사의 본당인 극락전이다.
수미단에는 아미타불을 본존으로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을 협시로 두고 있습니다.
탱화로는 칠성탱, 신중탱이 걸려 있고, 지장 보살상을 따로 조성해 놓았습니다.
극락전(極樂殿) 편액
극락전 내부
극락전에는 아미타불을 본존으로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이 협시하고 있습니다.
아미타불좌상은 숙종 15년(1689년)에 왕자 균(장희빈의 아들, 후에 경종)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한 것으로 원래는 홍성군 홍북면 신경리 용봉사에 있었는데, 고종 42년(1905년) 풍양 조씨의 묘역 조성으로 용봉사가 파괴되어 이 곳 부석사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1980년에 도난당해, 현재 불상은 최근에 다시 조성한 것입니다. 후불탱화는 1867년 태화산 마곡사에 있는 아미타불화를 가져온 것인데, 아미타불 좌우에 4대 보살과 사천왕 및 8대 제자를 묘사한 극락회상도로 고종 4년(1867년)에 제작되었습니다.
칠성탱
극락전의 칠성도는 치성광여래와 일광·월광보살, 칠원성군이 그려져 있으며 1924년에 조성한 것으로 씌여 있습니다.
신중탱
극락전에는 동진보살을 중심으로 그린 신중도가 있습니다.
정진선원
금종각
금종각에는 불전 사물인 금시조종, 법고, 운판, 목어가 있어 지옥중생, 축생, 조류, 어류를 제도합니다.
금시조종 사면에는 사방불이 새겨져 있습니다.
금종각(金鐘閣) 편액
입구에는 쌍용의 조형물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법고는 호랑이를 닮은 영물이 바치고 있습니다.
설법전
부석사 부도
부석사 부도는 극락전 아래 아주 작은 크기와 규모로 소박하게 조성되어 있습니다.
극락전 옆 부석사 표지석
부석사 마애불
서산 부석사 마애불은 아미타여래로 2014년 8월에 조성했습니다.
높이 4.5m, 폭 1.5m 규모로 자연 암반 위에 석공예 문화재 기능보유자인 김대연 조각가가 제작했으며,
거의 사각에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다.
마애아미타여래입상
마애불에서 바라본 부남호와 태안반도
마애불 옆 돌기둥
마애불 옆 돌기둥에는 수많은 염원을 담은 동전들이 붙어 있습니다.
산신각 왼쪽은 용왕각, 오른쪽엔 선묘각이란 현판이 걸려있습니다.
산신각(山神閣) 편액은 송원 설정스님의 글씨입니다.
용왕각(龍王閣) 편액
선묘각( 善妙閣) 편액
산신각에는 용왕, 산왕대신, 선묘낭자(좌측부터)의 탱화가 봉안되어 있습니다.
만공토굴 입구
일제강점기 한국 불교를 일본화하려는 일제에 맞서 독립운동을 펼치던 만공선사의 토굴입니다 .
사람 한 명 겨우 기어들어가 앉을 수 있는 공간입니다.
토굴 내부
정진선원 뒤편에 부석사 7층석탑
동사 1.5km, 도비산 정상 0.6km, 부석사 0.1km
도비산 정상 0.4km, 부석사 0.3km, 주차장
동사갈림길
도비산 정상 0.2km, 부석사 0.5km, 주차장, 동사 0.8km
지산리 갈림길
동사 0.6km, 부석사 0.75km, 지산리
정상 0.8km, 부석사 1.1km, 동사 0.2km, 해돋이 1.2km
해돋이 방향으로 진행합니다.
동사
동사(암)(東庵) 편액
성지용이라는 분은 알 수 없지만, 임자 초사월파일(壬子 初四月八日) 간지는 화재 후 복원한 1912년으로 추정됩니다.
동사 0.5km
해돋이전망대 이정표가 떨어져 나가고 없습니다.
평림원(평택 임씨 문중 묘원)
묘원 아래 임도길로 내려가면 해돋이 전망대를 볼수 있으나 바로 도비산 정상으로 진행합니다.
해돋이전망대 0.3km, 동사 0.7km, 정상 1.3km
조망바위
천수만
도비산 정상 1.0km, 해돋이전망대 0.5km
동사 0.5km, 해돋이전망대 1.0km, 도비산 정상 0.5km
도비산정상 아래 정자
도비산 정상이 보입니다.
도비산 정상
부석사 0.6km, 해돋이 1.4km, 해넘이 1.2km
도비산에서 바라본 천수만
부석사 갈림길
도비산 정상 0.2km, 해넘이 전망대 1.0km, 부석사 0.4km
활공장
활공장에서 바라본 천수만 방향 파노라마
천수만 방향
부남호 방향
저멀리 백화산, 흥주산이
활공장에서 바라본 서산시 방향 파노라마
저멀리 팔봉산과 금북정맥
서산시 방향
저멀리 가야산이
뒤돌아본 도비산
임도
석천암 2.0km, 부석사 1.5km, 도비산 정상 1.2km
해넘이전망대
천수만
해넘이전망대 0.8km, 취평리 1.0km, 부석사 0.6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