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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한 고개
김 욱 남
당신은 정점에
항상 서 있었네요,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온전한 원(圓)처럼
매일 같이 시계추처럼
중심축이 한 치라도 기울면
조용히 자 버리더이다
때론 오첩 반상
국 그릇 마저 자리를 거부 하더이다
삶의 한 고개 넘을 때마다
그 궤도는 아직도 평행인가요.
친구야
김 욱 남
움츠리지 말게 나
어께 시린 이 계절
언짢아 본 일 없는 이
어디 있는 가
어금니 한 번
꽉 깨물어 보지 않은 이
어디 있겠는 가
사람 사는 게 별 것인가
친구가 하늘나라로 가고
정을 준 이웃이
제 멋대로 훌쩍 떠나가도
그 누가 말리겠나
살면서 큰 일 한번 치르지 않은 이
어디 있는 가
제 속도 모르는데
남의 속을 어찌 알거나
이제 남은 것 마저 비울 때 아닌 가
해맞이
김 욱 남
해맞이 준비로
선잠을 깬 고속도로
자동차 상향등에 놀라
가벼운 어깨 운동을 한다
깊어가는 초겨울
연말의 들뜬 분위기
여명의 순간을 지켜보는
내 마음도 어느새 춤을 춘다
새날의 빛이 두 눈에 어린다
희망의 잎새들이 훨훨 날아
행복을 찾기 시작한다.
꽃 속에 핀 기쁨
김 욱 남
새 봄을 맞아 첫 인사하는 산수유 꽃과 생강 꽃
무리지어 울타리가 된 개나리 꽃, 황매화
홀로 핀 민들레 꽃
온통 노란 꽃들의 합창소리가
저 멀리 흩어 질 때면
진달래, 연산홍꽃들이
분홍의 물결로 다가와 춤을 추기 시작 한다
목련 꽃에 바톤을 이어 받은 아카시아 꽃, 층층나무 꽃
이팝나무 꽃, 산딸나무 꽃 노각나무 꽃들이 하얀 소복을
두른 듯 산야를 덮는다
여름이 지나 가을까지
꽃 속에서 기쁨과 행복에 파묻힌다
눈꽃은 그리움을 담아서 다가올 계절을 기다린다
솜사탕
김 욱 남
어쩌다 간혹 눈에 띄는
하얗게 핀 도심 눈꽃
고사리 손에
들려 있는 추억 하나
설탕의 무한 변신
분자요리다
요술과 마술 같았던 기억들
아끼며 먹고 만져본
아련한 할아버지의 따뜻한 손
돌매화(岩梅)
김 욱 남
흙 한 줌 없는
화산회토에 뿌리 내려
클래야 클 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난쟁이나무
기네스북에도 살짝 올라 있는 한국 토종
가장 숭고한 눈물로 지는 꽃
향기마저 없어 누굴 유혹도 못 한다
칼바람 속 처절한 고독을 지켜
다섯 밤의 광명을 보고자
순수한 마음으로 피어나는 천상의 꽃
유대인이 보는 땅
김 욱 남
나라를 잃고 2000년을 떠돌던
주권 없이 헤매던 유대 민족
그네들이 땅을 살 때면
자신을 위함이 아니란다
풀 한 포기 안 자라고
물 한 방울 안 나오는 곳일지라도
먼 후일
자식의 손자
손자의 증손자
대대손손 최소 300년의 가치를 본다니
위대한 민족성에 고개가 숙여진다.
북극 털 곰 애벌레
김 욱 남
영하 70도 상상이 안 되는 온도
동토의 북극
그 속에서도 삶을 이어가는
조그마한 애벌레
비상의 꿈을 잃지 않고
7번을 죽었다 살았다를 반복 한다
심장이 얼고 모든 핏줄이 얼어도
하늘을 날 수 있다는
하나의 꿈을 향해 부활 한다
극한의 땅 저 쪽에서는 오늘도 꿈이 피어난다.
토종밤
김 욱 남
조그만 토종밤을 보면
6살 때 기억이 생생하다
앙증맞고 노랗고 잔주름이 많은
껍질이 잘까지는 밤톨
쓰고 쌉쌀한 삼 한 뿌리와 먹던 기억
손가락보다 가느다란 실 삼을 먹고
어머니가 까주신 달달한 밤맛을 잊을 수 없다
인천 귀퉁이 조그마한 셋방을 전전한 어린 시절
보릿고개로 쌀 맛보기 어려웠던 때
아들사랑에 가락지와 바꾼 산삼
어머니의 사랑
어찌 잊을 수 있으리오
정답
김 욱 남
만나면 만날수록
정답이 나왔으면 한다
말하면 할 때마다
같은 답이 나왔으면 한다
이름 모를 꽃은 볼 때나
잊고 있었던 기억들도
한결 같이 한치도 어긋나지 않는
답이 만들어 졌으면 한다
거짓이 아닌 생각이 다르고
그릇되고 어긋나도
참값이 나오는 그런
세상이 왔으면 한다.
드넓은 뉴질랜드
김 욱 남
남십자성이 잠든 하늘엔
흰 구름도 길을 잃고
끝없이 너른 광야엔
한가하게 풀 뜯는 소 떼, 양 떼들
먹이 걱정
잠잘 걱정
입을 걱정
걱정이 없다
인간들이 너희를 그리는
다툼이 없는 세상
기차도 배를 탈 수 있는
저 적도 넘어 뉴질랜드의 남북섬
또 다른 세상엔
가축의 낙원이 있다
또 하나의 배움이 있는 곳
떠날 때 뭔가 아쉬움 하나
두고 올 것 같다
Glowworm
김 욱 남
와이토모
뉴질랜드 북섬의 한마을 지명이다
구멍을 따라 흐르는 물 이란
마오리 족의 언어
석회 동굴 속에 마법의 신비
반디불이 같은 glowworm유충
이 곳 동굴에서만 사는
세계 유일의 빛을 내는 생명체
적당한 미풍
알맞은 습도
한 점의 빛도 허락 않은 시공간 속
풀리지 않는 숙제를 안고
인류는 진화한다.
11월의 시린 하늘
김 욱 남
애들의 온기가
채 가시지 않은 동네 놀이터
주인 떠난 그네에
늦가을 바람이 스친다
목쉰 산새 울음이 정적을 깨고
뒹구는 붉은 낙엽은
혼이 나가 방향 잃고 헤 맨다
축 쳐진 그네는
짧은 석양 햇살에 애처럽다
저멀리
청와대를 다시 본다
고속도로
김 욱 남
화사한 꽃들의 잔치도 잠시
연두 빛에 눈길을 빼앗기는
초록으로 물들어가는 여름의 길목
찌든 삶의 때를 한 번쯤 벗어나려
뻥 뚫린 고속도로를 달린다
후련한 속도감 개운함을 온 몸으로 느낀다
길이 있어 떠나고 싶은 충동
길이 주는 행복감
누구에게 이 기쁨의 즐거움에 감사할까
이 길이 끝나기 전에
한번쯤 생각해 볼일이다
병상 밖 수채화
김 욱 남
가을로 한 발짝 두 발짝 뛰어가는
창밖의 수채화에 행운의 방점을 찍어 본다.
염치도 없이 이름 모를 세균덩어리가 자기 집인 양
헤집고 다니다 급성간염이란 반란을 일으켰다.
안이한 대처가 온도 제어를 어렵게 했다.
저 능선의 붉은 잎새들이 건너 편 계곡보다
더 핏빛으로 물드는 건 찬 이슬을 좋아 했나
아니면 새벽 향기에 취한 것인가
내 몸속에 세균들을 색칠해 옥 조르고 싶다.
저 멀리 보이는 희뿌연 낙엽들에 덧칠을 해주고 싶다.
하루하루 멋진 가을의 한가운데에 접어들면
나의 수채화는 17층을 떠날 수 있을 것 같다.
비오는 6 月
김 욱 남
KTX의 차창에
선명하게 들어오는 한 폭의 그림
수많은 그림을 그리며
제법 먼 길을 왔다
300KM의 순간이동
위대한 첨단 토목기술의 감동이다
6月의 밤꽃
싱그러운 초록에 밑간을 한 능선과 멋진 조화
기억 속 향이 한참을
콧잔등에 머물다 갔다
혁신도시가 된 울산 통도사역으로도 불린다
올해는 경주마처럼 달려가고 있다
오늘따라 풀잎에 제 집을 이고 있는
달팽이가 유난히 눈에 띈다.
손자의 백일
김 욱 남
손자의 웃는 얼굴이
어찌나 귀여운지
볼 때마다 웃음의 의미를
새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힘들게 옹아리 하는 입술을 볼 때면
지난날 말의 실수로 힘들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여리 디 연한 두 손과 두 발을
허공에 휘저을 때
무엇을 찾으려는 주장하려는
세상을 향한 몸짓임이 분명하다
손자는 매일 매일
새로운 것을 알려 준다
내일이 기대 된다
2017년 6월 29일 김동현 백일날
지하철
김 욱 남
3호선 지하철
환승역을 찾아 두리번 두리번
우루루 몰려간다
마치 한 무리 누우 떼 같다
초원을 질주하는 모습
역방향은 없다
머리가 검은 인간만
꺼지지 않는 불로
지하를 밝힌다
세상을 바꾼다
토목공학의 위대함
우주를 품는다
소중한 기억들
7월의 마지막 토요일 창밖은 뭉게구름이 피어오르고 목수국이 봄에 핀 불도화 같이 풍성하여 자꾸 눈길을 달라고 보챈다. 장마 끝을 알리려는 매미는 7년 만의 비상을 축하라도 하듯 목청을 높이는데 더위는 물러날 기세가 없다.
내년 이맘 때 쯤 교단을 떠난다. 1978년 늦가을 동아건설 회사에 입사해 전라북도 계화도 간척사업을 시작으로 사우디아라비아 공사 현장에서 측량 및 시공을 했다.
준공 검사를 받은 후 기성정산이 끝난 전 현장을 돌며 미 청구된 부분을 찾아내는 일을 해 회사에 큰 도움을 준 일, 영어를 좀 한다고 사우디왕궁 공사를 맡아서 공주를 만나 즐거운 대화를 나눈 일, 원효대교 건설 현장에서 사고가 나 무사히 마무리 한 일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지평선을 보며 일기 같은 시를 낙서로 하얀 백지에 채웠던 기억. 그런 것들이 나이 50이 되어 시인이 될 줄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붉은 사막 언덕과 텅 빈 죽음의 사막은 늘 부족하고 허전한 공백을 채우라 채찍질 해주었다.나를 눈뜨게 했으며 공부하게 만들었다.
뜻하지 않았던 가족의 시한부 삶은 조기 귀국을 해야 했고 직업을 바꿀 결심을 하게 되어 야간고등학교 선생님이 되었다. 10년간 서울의 신진공업고등학교에서 근무하며 30대를 보냈다. 가르치고 공부하는 이중생활을 하며 열심히 살았다. 갓 태어난 연년생 사내애들 때문에 공부하기가 무척 힘이 들었다. 두 아들과 민속촌도 아직 못 가보았으니... 한강 유람선도... 언제 손자를 데리고 이 이야기를 하며 가보아야 할 것 같다.
대학 교수인 친구가 석사를 졸업한 날 강의를 해보라며 인덕원역 부근 전문대학의 강의를 주었다. 이것이 대학교 첫 강의 시작으로 대전에 있는 목원대학교를 10년 강의를 하였고 인덕대학교 3년 반, 서일대학교, 강원대학교, 명지대학교, 가톨릭관동대학교 강사로 현재는 성남에 있는 신구대학교에서 27년이 되었다. 시간 강사 생활 까지 합치면 햇수로 60년이 넘는 학교생활 이였다. 겹치는 시간 속의 강의였지만 최선을 다했다. 고등학교 10년에 그 당시 대충 한 반이 60명이니 1년에 4반을 가르쳤으니 졸업생이 240명 총 고등학교 제자만 약 2,400명이다. 대학교 근무가 27년이니 평균 한 해 100명 만 잡아도 졸업생이 2,700명이 된다. 석사,박사,포함해 5,000명이 넘는 제자를 길러냈으니 무얼 더 바라겠는가
41살에 박사학위를 받고 청평 댐 아래에서 느낀 표현하기 어려운 기억, 45살에 기술사를 합격하고 백운대를 멍하게 올랐던 기억, 50살에 등단을 해서 시인이 된 기억들 중복된 시간 속에 행복과 감사의 시간을 잊고 살았다. 제자들이 있었기에 보람되고 참되게 살아온 것을 여기서 고백 하고 싶다. 고맙다 제자들아 앞으로 여생은 시를 쓰며 보내고 싶다. 많은 기억들을 떠올리며 누가 읽어도 누가 보아도 편하고 행복해지는 시 한수 보태고 싶다. 정문 문학 속에 남아 제자들을 그려보며 행복을 줍고 싶다. 서쪽하늘에 두둥실 떠 있는 구름이 황혼에 흠뻑 젖어 눈부시게 아름답다.
이 글은 매 순간 행복을 준 보고 싶은 제자들에게 바친다